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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미성숙을 벗고 (히 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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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계절 가을입니다. 알알이 꽉 찬 열매들을 볼 때마다 영적인 열매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9월, 키르키스탄에서 의료사역을 할 때입니다. 약속의 땅 마당에 큰 상수리 나무가 두 개 있는데, 상수리는 우리나라 상수리 두배 이상 큽니다. 그것도 꽉 차 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사역하는데 도토리 한 개가 딱 떨어져서 머리 옆을 맞았는데 얼마나 아프든지 . . 만약 머리 정수리에 맞았다면 뒹굴었을 정도입니다. 꽉찬 열매 . . . 가을에 느껴보는 정취입니다.

이 풍성한 열매의 계절에 우리 신앙의 성숙을 생각해 봅니다. 성장과 성숙에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에는 알에서부터 큰 누에가 되기까지 몸무게가 일 만 배 가량 성장하며 누에 일생에 네 번 탈피한다고 합니다. 알로 지내는 기간이 15일, 애벌레로 25일, 고치를 짓는 기간이48시간, 번데기로 15일, 나방으로5일 합해서 60일이 누에의 일생이라고 합니다. 한 과정이라도 거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성장에도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에나 사람이나 성장할 때마다 진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 진통이 두려워서 도망을 다닌다면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영적 미숙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본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장사밑천입니다. 장사를 할려면 본전을 가지고 더욱 많이 남기고 발전을 해야 합니다. 신앙에도 ‘본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본전입니다.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 겨우 본전만 붙들고 있으면서 거기에 만족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크리스찬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일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장성해서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신앙의 출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 자녀답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성숙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8)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성숙되지 못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체적으로 성숙되지 못하면 신체적인 장애인이 됩니다.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 문제를 일으킵니다. 오늘날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관리들, 밤낮 상대방만 헐뜯는 정치인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에 혈안이 된 사람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지만 정신 연령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미성숙한 결과입니다.
오늘날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지위를 가지고도 성숙하지 못해서 사리사욕에만 눈이 멀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신앙적 구별능력이 없어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려져서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시험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을 영적인 ‘성인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숙을 위해 날마다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1. 성숙을 위해 도전해야 합니다.

성숙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점점 나아지기는 커녕 본전도 다 까먹게 됩니다. 신앙은 완료형이 아니라 계속 진행형입니다. 모든 크리스찬인들은 어느 방향으로든 진행중인 사람들 입니다. ‘완전한 크리스찬’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신앙의 미성숙 상태를 어린아이의 비유로 설명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1절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은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이 멜기세덱의 비밀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너희의 들은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장성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을 젖병을 물고 있는 어른,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는 성인,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성인 아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부모의 도움 없이 성인이 먹는 음식을 먹고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처음에는 미숙한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으나 장성한 신앙인이 되면 성숙하게 되고 마침내는 남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 자란 어른이면서도 아직 영적 어린아이를 벗어나지 못해서 젖병을 입에 물고 사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젖 외에 조금의 단단한 것만 들어가면 소화 불량이 되고 설사를 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오고, 시험이 오면 넘어져서 딩굽니다. 일으켜 주기 전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초신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에릭프롬이라는 사회심리학자는 “인간의 성숙한 양심은 적극성을 띤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일하는 적극성이 없는 사람은 성숙되지 못합니다. 두 눈이 어둔 사람은 앞을 더듬거리기만 하나 두 눈이 밝은 사람은 언제나 앞을 바라보면서 바른 방향을 선택하여 나아갑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향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염려한 것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네 파로 나뉘어져 있었던 교회입니다. 너무 고집들이 셉니다.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합니다. 그 고린도 교회를 보면서 바울은 염려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자기 의사 전달이나 주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깨닫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너무 근시적이며 이기적이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순간적이고,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사고하고, 계획했습니다.

어린아이 때는 부분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될 때면 온전히 알게 됩니다. 그것은 더 높은 산에 오르면 시계가 더 넓어짐과 같습니다. 어린아이 땐 모든 사고방식이 자기 위주였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그러한 아첨이나, 이기주의적 사고와 활동에서 벗어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은 매사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장성한 교인이 되면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남의 영혼을 위해 살게 됩니다.

오늘, 교회 속에 ‘젖도 떼지 못한 아이’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사람이 젖을 물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성경암송대회가 오늘로 닥아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을 사모하면서 말씀을 읽는 모습들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 에 아름다울 줄로 생각됩니다.

도전하는 인생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복하면 할수록 실력이 늡니다. 공부도 하면 할수록 학문의 감각이 더해갑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스포츠를 하는 사람이나 연습 할 수록 감각이 예민하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도 하면 할수록 영감이 더해 갑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귀가 예민해집니다.

충북 청원군 현도면에는 ‘꽃동네 현도 사회복지 대학교’라는 학교가 있는데 거기에 5,60대 늦깎이 대학생 다섯 분이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고 모두 사회에 있을 때 교수, 교육감, 정부 투자기관의 책임을 맡았던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연륜이 오랠수록, 받은 직분이 중할수록 말씀의 진보, 성장 성숙의 진보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영적인 미숙을 벗고 성숙을 위해 오늘도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2. 영적 둔감을 벗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여”라고 했습니다. IQ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은 지 오래된 교인들 중에 성경을 많이 안다고 뽐내고, 자기는 신앙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교인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도 못하면서 성숙한 것 처럼 자만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냥 어린이가 아니고 수염이 난 어린아이입니다. 몸은 어른인데 유모차를 타고 젖병을 입에 물고 있는 영적 미숙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미숙하여 둔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학습 심리학에서 소위 ‘고원 장애(plateau barrier)'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학습니 이루어지면 이제 더 이상 학습곡선이 올라가지 않는 단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식의 포만‘이라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처럼 지식도 어느 정도가 되면 포만감에 빠지고 다 아는 것 처럼 생각이 되어서 더 이상 배울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연륜이 오래 된 사람들이 이런 장애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열심히 배우고 봉사할려고 애쓰면 점잖케 말합니다. “처음이라서 저러는데 시간이 지나고 연륜이 깊어지면 나처럼 될 꺼야. 아직 어려서 그렇지 . . .” 이것이 바로 고원 장애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런 증상을 ‘섣부르게 아는 데서 오는 위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끝없이 진보를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엡4:13-15)
우리가 영적인 둔감함을 벗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합니다. 또 성숙돼야 합니다.

3. 장성한 사람은 단단한 것을 먹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듣는 것이 둔하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는 자", "젖을 먹는 자는 어린아이"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6:1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그들의 신앙은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 세례의 교훈,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등 6개 조항 정도, 즉, 단편적인 신앙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편적인 신앙 정도를 가지고는 닥아오는 핍박이나 유대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에 쉽게 넘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교인들은 히브리서 기자가 염려하고 있는 단편적인 신앙도 갖지 못하고 있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가지고 세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와서도 늘 죽만 먹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물렁 물렁한 것들 . . 목사가 입에 넣고 씹어 놓은 것들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기까지 영적으로 내적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14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바른 분별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의 '선악'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위배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 분명히 분별력을 갖춘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단단한 음식물을 섭취하는 장성한 사람들은 경험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을 가지려면 어려서부터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많은 경험과 훈련을 쌓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인간은 낳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태어나면 왼 손, 오른 손 쓰는 법을 배우고, 걷는것을 배우고, 말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잘 배운 것이 좋은 습관이 되는 것이고, 잘 못 배우면 잘못된 습관이 됩니다.
이 시대, 이 역사의 선과 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분별하기 위하여 세련된 지각을 갖추어야 할텐데,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이런 일을 소홀히 하여 왔습니다. 예수를 믿는 일은 그저 심심풀이 생각했다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나 얻으려고 교회에 나온다면 이제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영적 지각을 갖추므로 가치관이 혼돈 되어 있는 세계 속에서 결코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으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독하고, 공부하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훈련, 인내, 섬김 . . .전도 . .또 성령의 도움을 항상 간구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훈련해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4:15) 사랑의 실천 없이는 어떤 신앙의 성숙도 없습니다. 천사의 방언을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여전히 미성숙한 교인입니다.(고전13:1-3) 또 공동체 생활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싫은 사람과도 교제하고, 함께 어울리고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울안에 들어오셨다면 이제는 성숙하십시오. 성숙해야만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고, 남에게 혜택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장성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주를 위해서 삽니다. 주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고전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금 얼마나 했는지를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교인 수가 얼마인지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직분의 높이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앙의 성숙도를 보실 것입니다.
얼마나 전도? 얼마나 사랑? 인내? 봉사? . .
주님 앞에 갈 때에도 젖병물고 기저귀 차고 갈 것입니까? 이 가을에 결심하고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고 여러분들의 믿음에, 삶속에 능력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임 경 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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