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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까? (고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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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진화론이 철저히 인간의 죄악과 교만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쩜 그리 확률이 없는 것을 믿을까? 여기 볼펜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람이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어서 조립될 확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확률이 있다고 그것이 사실인 것은 아닙니다. 이것의 볼펜이 그렇게 비바람이 쳐서 조립된 것일 거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100조개의 세포로 되어진 사람, 의식(영혼)을 가진 사람이 비바람이 불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악 때문입니다. 교만 때문입니다.

비고 올슨이라는 의대생과 그의 아내 조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무신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부모님이 기독교인인 것이었습니다. 그 부모님은 교회에 다닐 것을 권고했습니다. 어느 날 밤새 내내 설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할 수 없이 기독교 신앙을 살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기독교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조목조목 부모님께 전해드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빈 종이에 그 내용을 빈 종이에 적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오류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토론을 해 보면 금새 달라졌습니다. 도저히 오류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오류인가 싶어 좀 더 생가가고 연구하면 그들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무렵 “현대 과학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책을 읽게 되고 그 책의 인용된 책을 탐독하면서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기독교인들과 의료시설이 없는 곳으로 자신들을 보내달라는 대담한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들은 결국 가난에 찌든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33년을 보냈습니다.

교만은 진화론을 낳았습니다. 교만은 오늘날도 우리들에게 은혜를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올슨부부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은혜를 알게 되었고 의사로서 누리기 보다는 그 은혜에 헌신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을 보면 너무 은혜를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혜를 모르고 삽니다. 은혜를 모르니 행복이 없습니다. 은혜를 모르니 짜증만 늘어갑니다. 은혜를 모르니 내 욕심만 늘어갑니다. 은혜를 모르니 좌충우돌합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남에게서 받는 고마운 혜택”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을 이름”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보통 은혜는 호의 정도로 해석되며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세상에서는 은혜라는 말을 잘 사용 안 합니다. 조금 귀하게 사용해서 “스승의 은혜” 또는 ‘부모의 은혜“ 정도에만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은혜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용어입니다. 종교에서도 기독교에서만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아주 기독교적인 용어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 은혜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머릿속에는 은혜가 어떤 단어로 정의되어 있습니까?

은혜를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격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는 것입니다. 집나간 탕자가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가 받아들이는 것은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 대신 죽으신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본래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작은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하실 때 옆에서 같이 못박힌 죄인도 받아들인 것 아닙니까? 무식한 사람도, 어린아이도 가질 수 있는 것이 믿음 아닙니까?  그런데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구원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믿음의 법칙, 곧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 은혜라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자격이 없는 것이기에 무작위인가? 맘대로인가? 그것은 오해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분은 무작위로 행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인격이십니다. 우리도 인격이십니다. 은혜는 철저히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방식입니다. 우리 나라는 너무 은혜만을 말하는 부흥강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은혜를 저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는 율법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율법을 전제로 하여 은혜가 있는 것이지 율법 없는 은혜는 없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은혜를 베풀 이유도 없는 것이지오. 우리는 율법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빼고 은혜만 강조하면서 사람들이 기독교세계관이 없어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그것이 은혜인줄 압니다. 아주 큰 잘못이지요.

은혜는 그것을 가지고 무슨 마법인냥 다루는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증스럽습니다. 누가 은혜받을 만합니까? 그래도 작은 죄를 저지른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회개하는 자입니다.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소망하는 자입니다. 자격은 없는데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은혜받을 사람입니다. 그 사랑스러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 분은 창녀와 같이 더러운 죄를 행한 여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은 사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죄로 마음이 상해있는 사람 그 사람은 은혜받을 사람입니다. 은혜의 눈으로 보면 회개하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주를 의지하며 나가기를 소망하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은혜경험(은혜는 깨달아 잡아야합니다)

은혜를 경험해보셨습니까? 저는 창조주도신 그 분이 피조물인 저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이 가슴에 박힐 때 너무 감사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조선시대 때 주인이 평생노비였던 사람의 노비 문서를 태우는 장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때 노비들은 은혜를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신용불량이 되어 항상 쫓기는 목사님들이 많이 생겼다 합니다. 그 분들이 그 돈에서 해방된다면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어제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한 연애인이 저녁 달빛아래 달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달을 쳐다보면서 인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느껴지고 갈곳 없이 느껴지면 어떨까? 너무나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책상에 앉아 다리를 올리고 비스듬히 앉아있을 때 인생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할 때에 갈 곳이 있어 좋고, 하늘에 집이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것이 참 큰 은혜입니다.

오늘 나는 은혜를 얼마나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산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은혜로 가득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도 손바닥보다 작은 전파수신기인 라디오만 있으면 서울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중에는 이미 전파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은혜는 인생 어느곳에서나 가득합니다. 우리는 수신기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은혜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지옥에 있어야 쌉니다. 당연히 지옥에 있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로 지금 이 땅을 살고 있습니다. 그 죄인이 소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인이 잘살고 있으면 죄값을 치루어야 하기에 절망 밖에 없어야 하는데 소망이 있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 땅을 살면서 자증과 불만과 절망을 가진 많은 사람을 봅니다. 그 분들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사는 것이 힘들고 짜증이 납니까? 아직 은혜를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알면 놀라워집니다. 무엇에 놀랄가요? 내가 차 많은 것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가지지 않은 것만 보지만9고만하게도 자신은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가진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자격이 없는데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황송하고 감사합니까? 사람들이 “더‘라는 단어에 속아 살고있습니다. 더 가져야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은혜가 풍성합니다.

전에 조수아씨가 저희 교회에 왔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자신이 힘이 들어서 산에 예수원에 갔다가 산 능성이에 솟아나 있는 들풀이 파르르 떠는 것을 보고 그것이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인 것을 느꼈었다고.. 그렇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은혜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예배, 집안의 일, 운동, 등산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삶속에 주님의 은혜가 가득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라고 말하는 바울처럼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은혜를 깨달아 알기를 기도합니다. 은혜의 지평선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를 알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은혜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은혜를 깨달아 알면 행복해집니다. 은혜를 깨달아 알아야 행복합니다. 인생이 풍요롭습니다. 삶의 구석구석에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해서 은혜를 모릅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전히 너무 놓이 있습니다. 나를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보십시오.

은혜를 알면 기쁨이 있습니다. 마치 자격없이 로또 돈벼락을 맞으면 기쁨이 있듯이 은혜를 알면 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은혜를 조금 압니다. 그 기쁨을 어찌 로또 당첨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라는 단어를 바울은 의도적으로 끼뻐하라는 단어인 카이레를 변형시켜 사용합니다. 은혜는 너무 좋은 것을 받았기에 기쁨이 충만한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합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 베푸시는 은혜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합니까? 충만하기를 바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라는 엄청난 것을 가지고 살고 있고, 오늘도 그것을 받으면서 그것을 모른채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만을 버리십시오. 그래야 은혜를 압니다. 지그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자격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며 은혜라는 단어가 우리의 가슴으로 고백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라”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장석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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