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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의 복 (고전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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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교회가 성찬식을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성찬의 복"이라는 제목을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괴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찬식은 하나의 식사입니다. 성찬식의 자리는 식사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보통 식사의 자리가 아니라, 거룩한 식사의 자리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예수님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는 거룩하고 특별한 식사의 자리가 성찬식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성찬식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성도는 처음의 교회부터 이 성찬식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찬식을 언제 만들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으로 12제자들과 함께 유대인들이 유월절마다 전통적으로 먹던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유월절 식사하시는 자리에서 이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앞에 두시고 왜 이런 예식을 만드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항상 기억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먹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의 의미를 알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떡과 포도주를 볼 때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기억하게 되고 그 기억은 우리들의 삶이 더욱 그리스도를 위한 거룩한 삶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성찬식에 대하여 보다 근거 있고 상세한 이야기가 오늘 성경말씀과 고전 11:23-25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마태26:26-29, 막14:22-25, 눅22:14-20)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식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 26:26-2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막14:22-25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14-20
이 말씀에 근거해서 성찬식이 주는 복 3가지를 생각하는 중에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성찬식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복입니다.

어저께 10월1일 청계천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3,60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는데 그 효과는 몇 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주변의 땅값이 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고 덕분에 공기도 맑아지고 온도도 내려가고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해서도 청계천의 물이 다시 흐르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같이 흐르는 복된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월남전에서 월맹군의 포로가 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미 해군 준장 제임스 스톡턴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포로가 된 후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을 하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길이 없어 죽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 왔을 때 기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그런 고통 중에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 이 때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 고통 중에 자기 옆을 지나던 다른 포로 병사들이 발로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데 “똑, 똑똑똑, 똑”입니다.
한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지날 때 마다 발로 이와 같은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데 이 소리 "똑, 똑똑똑, 똑" 가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갓 브레스 유!” 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축복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래, 하나님이 나와 지금 함께 계신다. 요셉에게 함께 하신 것처럼,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를 도우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믿으니까 힘이 나서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연결된 통로가 있다고 할 때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통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성찬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하고 하신 것입니다.

프랑스의 교회역사 속에는 교회의 존폐위기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당시 프랑스 의회는 기독교를 폐지했던 것입니다. 자연히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날인 주일은 사라져 버렸으며, 성직자들은 숲 속으로 내쫓겼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아무도 죽음의 형벌이 두려워 내놓고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은혜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모여서 주님의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심부름꾼이 비밀 암호를 가지고 집집마다 뛰어다니며 “검은 습지요.”라고 말하고는 인사나 작별도 고하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만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들고는 자정 직후에 깜깜한 밤에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동네 아래에 있는 습지에 은밀히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추방당한 목사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그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도 않았고 반면에 무슨 말을 듣지도 못했지만 이 성찬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찬은 들리지 않는,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찬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또 다른 통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 사실을 증거하는데 23-26절을 같이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식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시에 "이 예식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신 것처럼 세상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희생의 제물로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거룩한 예수님의 희생제사를 '재연하는 것'입니다.

모든 형태의 종교적 제의 중심엔 '희생' 이나 '희생제물'이 있습니다. 모든 희생제의가 말하려는 본래적 의미는 "생명이란 생명으로서만 속죄된다는 것입니다.”
희생제물이 파괴된 생명질서의 회복을 위해 생명의 제단에 바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희생제물(sacrifice)'은 다른 생명들을 살려내기 위해 드리는 제물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열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희생제물이 되시고 우리를 살리신 것을 기념하면서 성찬에 참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제물'이란 고대종교의 야만적 유산이 아니라 엄존하는 '생명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 몸을 하나님께 몸으로 드리는 산 제물이 되라는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대로 이제는 자신의 몸을 그대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바른 예배요 참 예배라는 것입니다. 성찬은 눈으로 보는 설교입니다. 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둘째 성찬은 예수님의 도움을 요구할 수 있는 복이 있습니다.

한 성도가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돈지갑을 집에다 놓고 현금 얼마만을 가지고 교회에 갑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어떤 분이 질문을 했답니다. 아니 당신은 평소에 그렇게 잘 가지고 다니던 돈지갑을 교회에 갈 때는 왜 놓고 갑니까? 그랬더니 이분이 하시는 말이
“예, 저희 교회는 헌금을 할 때에 찬송을 부르는데 그 찬송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이 찬송을 부를 때 마다 마음에 찔려서 놓고 가는 겁니다"
하더랍니다. 그래요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아낌없이 드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왜 찾아왔습니까?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하나님의 계명도 다 지키는 데 이 청년에게 주님은 한 가지 부족함을 지적하시면서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 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을 때 이 청년은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 그렇게 삽니까? 만약에 이 청년이 "주여 도우소서!" 라고 했다면 성경의 역사는 달리 쓰여 졌을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라면 누가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킬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시간도 신앙생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27-29울 같이 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죄가 있느니라.”

여러분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성찬에 참여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저는 이 성찬을 받을 때마다 이 말씀이 마음에 걸려 성찬에 참여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도저히 이런 모습으로는 성찬에 참여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를 못한 거지요.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하고 헌신도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과연 성찬에 참여할 만큼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게 봉사도 잘했고 헌신의 삶도 살았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내가 과연 성찬에 참여할 만한 사람인지를......

그러나 만약에 그래서 나는 봉사가 부족해서라든지 지은 죄가 있어서 라든지 해서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성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에 막 2:17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라야 의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은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죄인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도, 이방인의 사도 바울도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곤고한 자라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했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보았던 성경말씀 마28:19-20을 기억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제자삼고 세례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제자가 되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며 산다고 해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켜 주신다는 것이지요.

오늘 성찬을 받을 자격을 묻는 다면 나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 없는 능력자라는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라는 사람이 받는 것이 성찬이기에 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나를 따르라는 책에서 값싼 은혜를 책망합니다.
“값싼 은혜란 회개를 요구하지 않고 용서에 대해 설교하는 것. 교회의 훈련이 없는 세례. 신앙고백이 없는 성찬식, 개인적인 죄의 고백이 없는 죄 사함이다. 값싼 은혜란 제자도가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시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다 ”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은혜 속에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는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필요하다''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라는 고백이 진정한 자격입니다. 주의 도우심을 요구하고 그래서 능력있게 신앙생활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안에서 하나가 되는 복입니다.(33-34)

교회는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은 여러 계급이 있지만은 교회는 계급이 없고 누구나 다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22)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 12:5).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8).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빌2:2).

성찬식은 하나의 공동식사입니다. 이 식사자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초대한 자들이 참여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세례 받은 모든 자들을 초대합니다. 함께 모여 하나의 떡을 나누어 먹으며, 공동의 잔을 나누어 마십니다. 함께 하나의 떡을 나누어 먹고 공동의 잔을 나누어 마시는 경험을 통하여 형제자매라고 하는 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요즘에는 미리 떡을 작게 썰어 놓거나 우리교회처럼 밀병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관계없이 하나가 됩니다. 남녀노소, 피부색깔, 사회적 신분은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연대감과 일체감을 나누게 됩니다.
옛날 로마 시대에 노예들은 성찬식에 비로소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짐승처럼 취급받는 노예들이 성찬식의 자리에서는 주인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취급받고 인정을 받으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주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열려한 기독교진리의 증인들이 되게 만들었고, 이후 자진하여 순교하기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즉 어느 곳에서도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자기들을 인간대우를 해주었다는 그 감사와 감격이 순교하기까지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시간이기에 복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 초대로서의 성만찬이 되는 것입니다.

성만찬의 자리가 이루어지도록 주선해 주신 분이 성부 하나님이시고, 성만찬식을 직접 제정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성찬식의 자리에서 성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도록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깊은 의미를 느끼도록 만드시는 분은 누구일까? 그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도움과 역사가 없이는 포도주는 한낱 포도주로 느껴질 뿐입니다. 그리고 떡은 한낱 밀가루 덩이로만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성찬식의 자리에 오실 때 성찬식을 진정으로 성찬식 되게 만드신다고. 그래서 성찬식을 할 때, 반드시 성령초대(epiklesis) 의 기도를 먼저 올리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여, 이 자리에 오셔서 아들을 희생 제물로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해 주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느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소서!’ 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어떻게 성찬식에 임재 하시는가? 그것은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찬식의 자리에 임재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을 행할 때는 반드시 성찬식에 해당하는 성경을 낭독하고, 설교하고 성찬식에 합당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오늘 성찬식이 여러분에게 복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복
둘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복
셋째, 주안에서 하나가 되는 복 그런 신령한 은혜가 성찬식을 통해서 새롭게 거듭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새로워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 창 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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