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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눅 22: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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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이 있는 반면 좋지 않은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살이가 전혀 풍랑이 없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으로는 소용돌이치는 그런 겉과 속이 다른 모습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겉만 보입니다. 겉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에 우리 마음이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화려할수록 어두운 그늘을 볼 줄 아는 눈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살아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날이 언제까지 이어지겠습니까? 지나 놓고 보면 순식간입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다 지나가고 맙니다. 그렇다면 잠시 있다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우리가 아니라 더 크고 영원한 것에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마지막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주님이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서로 다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제자들을 타이르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다툰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야단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지적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조용히 해결책을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해결책은 너희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예수님 자신도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주시는 말씀은 칭찬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시험 중에 예수님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어려움을 함께 겪고 이긴 자라고 칭찬을 하십니다. 참 잘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나라를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겠다. 
이렇게 희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는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몸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십니다.
이어서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들은 대답합니다.
"없었습니다."
왜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가 받은 바 은혜와 은사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 무엇을 주고 생명을 얻을 수가 있냔 말입니다. 거기다가 주님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많은 은사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받은 바 은혜와 은사를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잠시 기뻐하고 신나서 뛰다가 그 은혜를 계속해서 유지하지 못하고 어느 새 시들해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주님 때문에가 아니라 작은 세상 일들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건강 때문에 힘들어하고 가족이나 이웃 친지들과의 인간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냔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이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들입니다.

돈, 있다가도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나마도 주님께서 이 모든 필요를 아시고 다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아파서 힘들어합니까? 그 아픈 것도 이 세상에 있을 때뿐입니다.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다시는 아픈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주님께서 다 어떤 병도 다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결국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요.

인간 관계 때문에 힘들어합니까? 이 역시 주님은 사랑 안에 거하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닌가 말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민다면,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축복하고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되면 아무리 어그러졌던 관계라도 다 회복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나는 손 내밀지 않으면서 안 된다고만 하지를 않았습니까?

물론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난감한 지경에 빠질 때가 어찌 한 두 번이었겠습니까? 슬퍼하며 탄식할 때도 많았고 속상해서 울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받은 바 은혜와 은사를 망각하더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와 은사를 기억한다면 속상한 일이 있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가 없어요. 그 큰 은혜를 받아 누리고 있는데 작은 상처 때문에 울고 계십니까? 지금까지 주님이 어떻게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가를 깊이 묵상해 보시란 말입니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보다도 더 힘들던가요? 주님이 채찍에 맞으시는 것보다도 더 아프던가요? 주님이 쓰신 가시 면류관보다도 더 고통스럽던가요? 주님은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어 주고 계시지를 않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정말 힘들어하던 지난 날들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정말 기적과만 같습니다. 당시로 보아서는 절망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도무지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를 어떻게 지나왔습니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아니었습니까?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순간 순간 우리를 사로잡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우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아무리 힘들고 지쳐 있어도,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에 함께 하셨던 주님이 오늘은 외면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도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오늘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에 필요한 지혜를 주님께 구해야 합입니다. 문제를 보지 말고 해결책을 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해결책이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셨던 주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주님이 우리의 길을 열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작은 재주로가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길이 열려질 수 있고 바로 세워질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시험하는 악한 마귀를 주님의 이름으로 다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앞에 거칠 돌을 놓고 거기에 걸려 넘어지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들 앞에 시험거리를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악한 마귀가 잔꾀를 부려도 주님의 이름 앞에 주님의 능력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 주님이 어떻게 약속을 주셨습니까?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해서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어 주시리라"
이 귀한 약속의 말씀들을 의지해서 먼저 사단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묶고 악한 마귀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신다고 하는 믿음의 고백과 함께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리십시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그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의 우리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더란 말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길을 열어 가실까 기대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엎드리게 되면 홍해 바다도 열리게 되고 반석에서 물도 솟구치게 되고 아말렉도 물리치게 되고 주님의 영광의 나라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변치 마세요. 그 어떤 것으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결코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나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며 믿음의 고백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넘쳐날 것입니다. 이 귀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항상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주 안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또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지금까지는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후로는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그 때를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모든 것을 주시지만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 스스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내일을 위한 준비를 지금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약속하신 바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십니다. 아니 지금까지 폭력을 막아왔던 주님이 이제부터는 너희도 칼을 써라 즉 폭력을 행사하도록 하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 어려운 때를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를 시험하는 악한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도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를 입되 특별히 성령의 검으로써의 말씀을 우리가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있을 때 성령께서 나를 붙들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있을 때 성령이 우리 마음에 믿음이 자리잡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우리가 사랑의 실천을 할 수가 있고 그 어떤 때라도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칼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항상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말씀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물질도 모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보면 내가 생각지 못하는 어려움이 따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할 수 있는 대로 돈주머니도 챙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내 힘닿는 데까지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면 실망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고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 안에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의 심령을 통해 일하셔야 됩니다.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일은 치열한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믿지 않는 영혼들 때문에 울 수 있는 안타까움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가진 것이 없어서 누구의 도움이나 청하러 다닌다면 그런 나를 보면서 사람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너나 잘 믿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정말 한 영혼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도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가족들은 굶든 말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걸 보는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정말 말씀 안에서 살아간다면 내 가족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하는 일 없이 백수로 지낸다면 누가 나를 보고 주님께로 나오겠느냔 말입니다. 남에게 그저 손이나 벌리고 있다면 그런 나를 보면서 주님께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울러 우리는 건강해야합니다. 때로는 연약한 육신을 도구 삼아서도 성령이 역사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건강해야 됩니다. 그래서 육신의 건강도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하며 건강 관리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먼저 주님 앞에 시간을 바칠 수 있어야 하고 정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요?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함께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수고와 헌신은 하나도 없이 그저 주님만 바라본다고 한다면 그런 나를 주님이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물론 세상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이 이루어주실 때도 있습니다. 아니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주님이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주님만 바라본다고 한다면 그런 나를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냔 말입니다. 최소한의 사랑하고자 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화해와 용서의 손길도 내밀지 않으면서 사랑하게 해달라고 한다면 주님이 어떻게 내 안에 사랑이 넘치게 만들어주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내가 할 도리를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수고와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정말 물질적으로도 풍족하기를 원한다면 내 힘써 수고하고 그 수고하여 얻은 것을 가져다가 말씀대로 먼저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럴 때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으로 풍족하게 채우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렸다'고 하는 이 성경 말씀이, 내게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한 일은 이루어지고 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리셨습니다. 다른 강도 두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래요 주님은 이렇듯 철저히 말씀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도 다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누릴 수 있도록 먼저 실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에게 은혜로 모든 것을 허락하시면서 이제 은혜 아래서 감사함으로 너희 몸을 그리고 너희 가진 것을 내게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냥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약속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너희에게 모든 쓸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풍족하게 누리기를 원한다면 먼저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재물을 드리고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도 이런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다면 어떻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부터는 너희 돈주머니를 챙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그 사랑을 내 가족과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내 이웃이나 친지들과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어떻게 더 큰사랑 안에 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오직 복을 빌도록 하여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복을 유업으로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정말 복을 유업으로 받기를 원한다면 복을 빌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먼저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을 빌며 사랑을 고백하게 될 때 주님께서 내 안에 사랑으로 가득하게 채워주실 뿐 아니라 그런 나를 주님이 더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더욱 힘써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가진 것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고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그런데도 아직도 나만 생각하시렵니까? 남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렵니까? 먼저 나를 죽이십시오. 나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을 은혜로 받으십시오. 모든 것을 아멘으로 받으십시오. 철저히 말씀대로 사십시오. 주님께서는 말씀을 이루신 분입니다. 철저히 말씀대로 사신 분입니다.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라면 당연히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십니까?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말씀대로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먼저 사랑한다고 하십시오. 먼저 축복해주십시오. 먼저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을 감싸 안으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내 안에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드리십시오. 그러면 채우십니다. 어떻게요?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을 믿으십시오. 주님은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주님의 약속을 따라 먼저 드리고 베풀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며 오늘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악한 마귀는 아주 비상이 걸립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로 하여금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이런 저런 시험거리를 우리 앞에 만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면서 나를 죽이고 주님의 말씀대로 따르게 되면, 내 앞에 놓여 있던 모든 근심거리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풍랑이 심하게 몰아쳐도 주님이 내 손을 붙잡아주시는 순간 다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를 위해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이루시는 주님과 함께 말씀 안에서의 놀라운 승리를 함께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 인 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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