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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가속도 (사 6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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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주 설교제목은 ‘여유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번 말씀은 ‘하나님의 가속도’ 입니다.

이 세상에는 가속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경사진 평면을 따라서 공을 굴리면 공은 구르기 시작한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속도가 증가합니다.  이와 같이 시간에 따라서 속도가 증가하는 것을 가속도라고 하지요.  세월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얘기를 했더군요.

“또 한해가 소리 없이 저물고 있습니다. 나이가 더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니 세월이 가는 것도 가속도가 붙는 모양입니다”라고요.  옛날 어느 승려는 해질녘만 되면 다리를 뻗고 앉아서 울었답니다. 참선 공부는 성과가 없는데 덧없이 하루를 또 보내버린 것이 답답해서 말입니다.  세월이 어렸을 때는 그렇게 잘 가지 않는 것 같고 청년 때에도 천천히 가는 것 같은데 40세를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한 해 한 해 지나가는 것이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50, 60 지나가면서 세월은 가속도가 붙는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한 해가 빨리 지나가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인생의 가속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속도는 또한 더 빨리 속력을 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에는 가속 페달이 있습니다.  빨리 가고 싶을 때 가속페달, 엑셀레이터를 밟지요.  그래서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나갑니다.  전에는 언덕을 올라갈 때 차들이 힘들어 했지만 요즈음 차들의 성능이 좋으니 언덕올라갈 때 가속페달을 밟으면 쏜살같이 쉽게 올라갑니다.  브레이크로 안전하게 잘 조절만 할 수 있다면  이런 가속의 힘은 또한 우리들에게 매우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가속도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1.먼저, 가속도의 은혜가 있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가속도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에 속히 이루어지는 것을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주님, 속히 이루어 주옵소서, 라는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시69:17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102: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143:7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이사야60장22절에서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사60:22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분의 가속페달을 밟아주실 때 우리는 놀라운 속도로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속도입니다.

2. 그리고 은근한 가속도가 있습니다

주님의 일의 진행은 느린 것 같다가 어느 순간에 보니까 다 놀라운 속도로 큰 꿈이 이루어지는 그런 은근한 가속도가 있습니다.  세상 일에는 가속도가 붙어 이루어지는 일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5년 전인 1990년 10월 3일 베를린에서는 매우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2차대전 이후로 분단되어져 다시는 회복되어질 것 같지 않아 보이던 동독과 서독의 장벽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모두가 놀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서구의 모든 매스컴들과 언론들은 이 사건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20세기말에 최대의 사건으로 손꼽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토록 오랜 시간 사전 정지 작업과 준비 작업을 통하여 통일을 준비하여 왔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독일 통일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커다란 마찰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마찰음의 실예가 바로 통일 이후에 독일 국민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서독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이었습니다. 1990년 통일을 선언한 뒤, 2003년까지 구 동독 지역의 균형을 위하여 독일 정부는 1조 2400억 유로(한화 1552조원)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서독 국민들 가운데에는 동독과의 통일로 인하여 이익 본 것은 하나도 없고 경제가 더 궁핍해졌다면서, 심지어는 ‘동독 사람들은 동독으로 돌아가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그런 부담을 안았지만 통일의 가속도를 경험하는 가운데 새로 거듭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속도는 인생에게 결국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가운데 가장 독특한 점은 하나님의 일이 실제로 속력을 받아 가속도를 내기 전까지는 대부분 우리가 잘 알아채지 못하고 왜 이렇게 응답이 안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뜻이 어느날 순식간에 나타나고 성취되기 까지 때로는 소수의 사람들 밖에는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중국 서북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투루판’이라고 불리우는 곳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투루판에 가면 매우 특별한 장관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톈산 수로’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텐산, 이란 하늘 천자 천을 쓰고 뫼산 자를 써서 하늘의 산(天山)이란 뜻입니다.
이 톈산 수로가 투루판의 명물이 된 이유는 톈산 수로의 물줄기가 무려 300킬로 정도나 되는 먼거리에 떨어져 있는 톈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톈산 수로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톈산에서 출발한 물줄기가 투루판에 이르기까지 300킬로의 거리를 지나오는 동안 결코 그 모습을 땅위로 들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지하 200미터 깊이 밑으로 어느 누구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하게 도도히 그리고 고요히 흐르던 물줄기는 투루판에 와서 그 정체를 갑작스럽게 드러내면서 그 풍부한 수량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톈산수로에 관한 것을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멈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분에게는 은근한 가속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은근히 진행되다가 감추어져 있던 것이 일단 우리 눈에 뜨이는 그 순간에는 엄청난 속도의 가속도가 붙어서 일들이 진행되어지는데, 특히 하나님의 일하심은 사람의 힘으로는 능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일이 진행되어집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같이 그 진행속도를 잘 모르는 가운데 어느덧 가루 전체를 다 변화시켜 빵을 만들어놓듯이 그렇게 천국운동도 은근한 가속도로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서 1907년에 일어난 대부흥운동도 그러했습니다.  1903년부터 원산에서 장로교 여선교사님과 감리교 여선교사님 두 분이 서로 함께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다가 하디선교사님이 함께 하면서 회개운동으로 발전했는데 어느덧 그 기도운동이 순식간에 대부흥운동으로 폭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속도가 붙자 부흥운동은 전국적으로 그리고 저 중국땅으로 번져가면서 놀라운 열매들을 맺은 것입니다.  부흥의 가속도가 붙은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이렇게 가속도가 붙습니다.  그리고

3.감격의 가속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속도는 감격의 가속도입니다. 그 감격이 함께 증가되면서 우리는 놀라움, 꿈꾸는 것 같은 기이함을 느끼며 감사하고 감탄하는 그런 가속도를 경험합니다.  지난 주 7일 금요일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의 최신예 비행기 F-15K 전투기 두대의 비행속도가 마하2.5라고 합니다. 소리의 속도보다 두 배 반이 빠른 것이니까 그 전투기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비행기는 다가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비행기 사진이 있는 인터넷에 감탄하는 글들이 올라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이로운 속도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가속도는 훨씬 더 감격스러운 경이로운 속도를 갖고 있습니다.  때가 되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그 은혜는 신속하고 빠릅니다.  정말 어느 순간인가 우리를 구원하시고 어느 순간인가 우리를 축복의 세계로 옮겨 놓으시는 속도를 갖고 계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본문에 언급되어지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예언인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60: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러나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이사야서 전체를 통하여 지금 남유다가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눈 앞에서 전혀 일어나지도 않은 유다의 멸망과 아울러 바벨론 포로 생활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사 60장에서는 도리어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들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이사야의 예언은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유다 민족은 자신의 왕이 바벨론 왕에 의해 두 눈이 뽑혀서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고, 아울러 70년동안 바벨론에 나라를 빼앗긴 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비극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70년의 때가 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본문 22절 말씀과 같이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유다 백성들은 바라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던 유다 거민들도 알 지 못하였지만,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들조차도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의 일들이 공개되어지면서 급속도로 일이 진척을 보이면서 ‘속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126편에서는 이를 보고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하나님의 큰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꿈꾸는가, 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큰 일이 속히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속히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하시는 방법 가운데 ‘속히’라고 하는 매력적인 단어에 좀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60:22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속히’(후쉬)라고 하는 단어는 단순히 빨리 일을 이룬다라는 의미 이상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처삼촌 묘 벌초 하듯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하기 싫은 것 억지로 대충 대충 처리해서 일을 빨리 진행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속히’라는 말은 너무 좋아서 ‘흥분과 즐거움이 넘쳐 열망하는 마음으로 급히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마찰음이나 부작용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 얼마나 놀랍고 흥분되는 말씀입니까?

그동안 우리는 자신의 눈에 도무지 역사하시지 않아 보이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얼마나 많은 원망을 하여 왔습니까?
심지어 다른 사람 하나님은 몰라도 나의 하나님은 어디서 주무시든지 아니면 죽었나 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하에 물을 흐르게 하시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의 때가 되면 갑자기 급속도로 ‘흥분과 즐거움’으로 그 분의 일을 기쁘게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리고 그토록 약해 보였던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고, 작은 자를 큰 자로 만드시는데 방해하는 원수를 향하여 어떻게 하십니까?  에스더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하루 아침에 다 몰살시키려던 하만이란 사람의 계획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그와 함께 한 이스라엘의 모든 원수들은 하루 아침에 다 처단되었습니다.  모세와 함께 한 출애굽의 백성들에게 430년의 애굽노예생활은 하루 밤에 해방의 감격으로 바뀌었습니다.  홍해바다에서 하루 밤에 다 구원받았지만 애굽군대는 한 순간에 다 그 바다에서 몰살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홍해에서 나온 여인들이 감격으로 찬양했고 온 이스라엘이 춤추며 찬양했습니다. 감격에도 가속도가 붙습니다. 그리하면 기뻐 뛰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이런 좋은 일이 있어서 온 가족이 펄쩍 펄쩍 뛰며 감격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은혜,감격을 주는 일, 그 일에.

4.예수님의 가속도가 있습니다

감격의 가속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가속도의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실 인류구원의 일이 성경에서 예언된 것이 4000년이 넘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일, 구속의 십자가의 속죄의 은혜를 사모했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구원 사역이 그렇게 빨리 진행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공회원들에게 잡힌지 불과 하룻만에 신속하게 재판이 이루어지더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6시간 만에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한 속죄사역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주님의 외침이 십자가에 있을 때 수천년의 인류구원의 큰 과업이 순식간에 완성되고 하늘의 문이 열리고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순식간에 예루살렘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면서 주님의 십자가로부터 열리는 구원의 길이 다 열린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 위대한 구원의 일이 십자가에서 순식간에 하나님의 가속도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에 십자가 처형을 하였던 죄수들은 십자가에 달려도 숨이 끊기지 않아 마지막에 가서는 무릎뼈를 꺽어버리는 일이 일상적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제 3시에 매어 달려 제 9시에 숨을 거두셨기에 십자가에 달리셨어도 사람들이 그 뼈를 꺾지 않았습니다 너무 빨리 돌아가셨고 분명히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는 순식간에 이루어진 면이 있습니다.

또한 부활 사건 역시 3일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이것 또한 실재로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금요일 제 9시(오후 3시)에 숨을 거두시고 나서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대략 37시간(9시간 + 24시간 + 4시간)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부활의 능력, 은혜의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지금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덮고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될 때에는 이런 예수님의 가속도가 붙습니다.  예수님의 십가가, 부활의 속력이 여러분께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의 속력을 내어야합니다. 

5. 기도와 응답의 가속도가 있습니다

기도운동이 일어나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도의 힘을 가하는 가운데 응답이 속히 옵니다.  응답의 가속도입니다.  예수님이 억울함을 재판관에게 호소하던 한 여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눅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속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가속도를 소망하면서 겸손히 신뢰함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6.의와 거룩의 가속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속도는 우리를 신속히 의롭고 거룩한 성도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 가속도가 붙은 인생은 큰 절제의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의 인격의 열매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5장22절에 보면 마지막이 절제입니다.  절제가 없는 인격은 거룩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술에서 나오기 쉬운 원망과 불평, 불신앙적인 모든 말들을 여기에서 지금 멈추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의를 힘입어 거룩한 성도,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의와 거룩함을 이루는 가속도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60: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거룩함의 가속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속죄의 은혜를 맛본 사람은 그 은혜를 의지하는 거룩함, 성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속도가 붙습니다.  더욱 더 주님의 속죄의 의를 힘입기를 원하여 죄 사함을 기도하면서 주님의 손으로 거룩하게 되는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가속도가 붙기시작하면서 어느날엔가에는 순식간에 거룩함의 경지에 들어가서 정말 그 깨끗한 거룩함의 계곡물을 마실 수 있게 됩니다.  거룩함의 세계가 함께 열리면서 함께 회개하고 함께 거룩하게 되고 함께 거룩함으로 땅을 차지하게 되어 죄악이 떠나는 가정, 일터를 확보하기 시작하는 성도의 나라가 성취됩니다.  성경은 다시 말씀합니다.

60: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대부흥운동이 일어날 때 마다 영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술집이 문을 닫고 유흥업소가 폐업하고 교회가 부흥하는 역사들이 일어난 것은 거룩함의 가속도가 붙는 은혜를 성도들이 경험했을 때입니다.  거룩함에도 성령의 권능으로 가속도가 붙는 것입니다.
영국의 대표적 신앙저술가였던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룩이 재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룩을 정말 모르는 사람이다.일단 거룩을 만나면 결코 거스를 수 없다.... " - C.S . 루이스 -

이제 끝으로

7.부흥의 가속도가 있습니다

부흥은 교회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에 부흥이 있습니다. 가정에 부흥이 있습니다. 사업, 일터, 학업, 우리의 인생에 부흥이 곳곳에 임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나는 인생의 부흥. 그리고 교회가 대부흥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 모든 대부흥의 가속도는 먼저 작은 자가 되는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의와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작아져야합니다. 작은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연단을 주셔서 우리를 작게 하십니다. 큰 꿈을 주신 후에도 우리를 이제 큰 꿈을 이루는 길로 인도하시는데 아주 작은데 눈을 돌리게 하십니다. 큰꿈이 잘못된 것 아닙니다.  큰 꿈을 꾸어야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이제 작은 데 눈을 돌려야합니다.  큰 교회가 되기 위해서 작은 겨자씨 교회를 세워야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60: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거룩한 작은 자, 겸손한 작은 자가 되어야합니다.  먼저 작게 모이는 일부터 해보아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주님의 뜻에 집중하며 순종하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다른 책 읽는 것 보다 작아보이지 않습니까.  너무 다른 일이 중요해서 성경은 작아보이지 않나요.  그러나 우리가 작아지면 성경이 위대해보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성경의 한 자 한 자를 잘 읽기 시작합니다. 그러다보면 성경 읽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성경을 일곱시간 만에 독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알다가 기도의 맛을 알면 가속도가 붙습니다.  기도하는 일에 더욱 더 빠릅니다. 전보다 놀랍게 빨리 기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큰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작은 자로 낮추시고 겸손하게 만드셔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가속도를 붙여서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가지가 심어졌는데 어느덧 수천그루의 큰 나무가 됩니다.  숲을 이룹니다.  작은 데서 출발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부흥이 거대한 연합 집회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선 작은 자를 들어서 천을 이루고 약한자를 들어 강국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 2의 중흥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 역시 우상숭배를 일삼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아 더러워진 가정이라고 하는 작은 부분에서부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고자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결단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영적 재건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작은 소그룹에서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가속력을 기대하며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미국의 식물학자인 조지 워싱톤 카버박사는 미국인(1865 ~ 1943)으로 식물에 관하여 매우 학식과 조예가 깊던 분이었습니다.  남북전쟁의 초기에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난 흑인으로, 그의 큰 업적은 미국남부 지방에 농업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카버박사는 어느날 하나님께 우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죠오지, 우주는 네가 이해하기는 너무광대 하다. 그것은 내가 맡아 처리하마 "
그 말씀에 겸손해진 카버씨는
"주님 그러면 저에게 한 개의 땅콩은 어떻습니까?"라고 여쭈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래, 그것이 너에게 적당할 것같다. 내가 도와 줄테니 그것에 관하여 연구 해보라”
는 응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작은 땅콩 하나를 놓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하나님이 지으신이 작은 땅콩으로 부터 무려 300개 이상의 상품을 만들수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큰 꿈을 꾸어야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작은 일에 집중해야합니다.  작은 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3인의 교회 소그룹으로 우리가 모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삼인의 모이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결석이나 한 분의 사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삼인의 교회를 하면서 우리는 작은 자 하나에 대해서 큰 비중을 두는 교회가 되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가치, 영적인 상태등이 잘 발견되는 것이 작은 자 작은 그룹의 삼인의 교회 신앙생활입니다.  작은 소그룹으로 모여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대그룹 속에만 들어있으면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와 변화를 민감하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일어나는 몸의 변화는 쉽게 우리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흥의 가속도 은혜를 구해야합니다.  부흥의 가속도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근원을 알아야합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가속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열두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권능의 가속도는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서부터 체험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불같이 임하였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120명의 교회는 곧 3000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5천명이 되었습니다.  그 후 교회는 아시아로 퍼지고 순식간에 세계로 퍼지는 선교의 대장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온 땅에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가속도를 받은 교회는 순식간에 큰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성령의 가속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을 바라보기 전에 성공의 원동력을 얻어야합니다.  좋은 결과를 바라보기 전에 그 결과를 주시는 주님을 모셔야합니다.  시간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되는 것 보다 시계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본을 갖추면 부수적인 것은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속도가 붙습니다. 주님의 뜻이 어느날 순식간에 이루어지곤 하는 것을 경험하는 신앙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들을 속히 이루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작은 우리의 인생을 의롭게 하신 그분의 영광을 들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을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의 가속도 은혜를 구하십시요.  기도의 가속도, 성경읽는 가속도, 성취의 가속도를 구하십시요.  그리고 먼저 작은 자가 되고 작은 겨자씨 같은 교회 일에도 충성하십시요.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듯이 집안과 교회와 일터가 강하게 부흥할 줄 믿습니다.  성령을 받은 분들은 이 은혜를 시인하십시요.  이미 받은 줄 믿으십시요. 그리고 주여, 주의 가속도를 나타내옵소서, 라고 간구하십시요.  응답이 올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놀라운 가속도를 믿음으로 소망하며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오 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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