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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 신앙 (1) : 인격의 열매 (빌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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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미국의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ML)를 다 아시죠? 박찬호 등 우리나라 선수들이 진출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저 리그에서 스타가 된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성공입니다. 돈과 명예 등을 한꺼번에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메이저 리그 스타 중에 ‘타이 콥’이란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설적인 강타자로 무려 30여년간 슈퍼스타의 명성을 누렸습니다. 대단하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1961년 7월 17일 그의 장례식장의 모습은 이례적이다 못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날 조객으로 참석한 메이저 리그 관계자는 겨우 3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그의 인격적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라운드에서는 팬들을 열광시켰지만, 조급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공격적이어서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성공한 인생일까요? 과연 행복한 인생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생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공 기준은 결코 그런 게 아닙니다. ‘인격의 성숙’을 이루는 것이 성공입니다. 타이 콥은 야구선수로서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인격에 실패함으로 한 인간으로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지난주일 제가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인생의 성패는 ‘열매’에 있다고 했습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인생이 되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참 신앙의 증거로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과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맺을 열매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까? 인격의 열매, 선행의 열매, 그리고 전도의 열매 등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드렸지만, 우리가 풍성히 열매 맺기 위해서는 좀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세 번에 걸쳐 각각의 열매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인격의 열매’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더욱 더 풍성한 인격의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인격의 열매 :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증거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의 서문입니다. 그는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예수님의 심장’(마음)이란 표현을 통해 우리는 그이 심정이 얼마나 간절한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습니까? 9절~10절.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 간단히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이런 겁니다. 성도들이 사랑의 사람, 선한 사람, 진실한 사람, 그리고 허물없는 성결의 사람이 될 것을 간구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소원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기대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기대 수준’입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인격의 문제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인격적인 성숙’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을 또 11절에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11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의의 열매’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인된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삶 속에서 나타나는 인격적 변화입니다. 사61:3 보면 이스라엘을 가리켜 ‘의의 나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인정(稱義)된 ‘의의 나무’입니다. 의의 나무는 반드시 ‘의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의인 되었다면, 이제는 의로운 모습으로 성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게 곧 ‘의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내 마음 속에 성령을 통해 내주하는 게 사실이라면 당연히 내 생각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을 평가하실 때 제일 먼저 보시는 게 바로 인격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사건이 사무엘상 16장에 나옵니다. 그 아버지 이새에게 다윗 위로 일곱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새도 사무엘도 그들 중에 차기 왕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중심은 무엇입니까? 마음 곧 인격입니다.

  이새는 다윗에게 형들을 대신해서 양이나 돌보라고 했습니다.(삼상16:11) 전혀 다윗에 대해서는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모나 조건으로 볼 때 제외시킨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들을 제외시키고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의 모습, 신앙으로 변화된 인격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앞에 인정받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신앙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인격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평가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인격의 열매의 구체적인 모습 : 말씨, 얼굴 표정, 대인관계의 태도

  인격은 내면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내면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격의 열매입니다. 그것이 곧 갈5:22~23에서 언급한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입니다. 그리고 본문 9절~10절에서 언급한 사랑, 선, 진실, 성결 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덕목들은 내면의 모습이므로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하면서도 사실은 막연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면 말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인격의 변화를 이루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가시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인격의 척도를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격은 내면의 모습이므로 하나님만이 정확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우리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외부로 표출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외식하는 사람의 경우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표출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개의 인격이 이렇다 저렇다고 어느 정도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내면이 외부로 표출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말씨와 얼굴 표정, 그리고 대인관계의 태도 등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실제 인물의 케이스를 보면 좋습니다. 이미 앞서 언급했던 다윗의 삶을 보기로 합니다. 다윗은 성경 인물 중 인격자의 전형입니다. 그의 말씨, 얼굴 표정, 대인관계의 태도 등을 통해 그의 인격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① 말씨 :
  다윗의 말씨가 어떠했을까 성경에서 파악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갑니다. 시141: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그는 항상 인격 성숙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요, 특별히 언어생활을 위해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입술과 혀를 다스려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말은 내면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말씨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 수준을 파악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런 점에서 말이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특히 잠언을 보면 언어생활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잠10:20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잠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잠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잠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히브리서에서는 말을 통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릴 것을 권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말을 툭툭 내뱉고,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런 우스개 말을 했습니다. “대화는 대놓고 화는 내는 것이다.” 대화의 기술이 없다 보니까 정말 대화하면서 화를 내고 다투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대화 기술도 부족하지만, 그만큼 내면의 인격이 빈약하다는 반증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영국의 노부부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105세, 부인은 100세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인데 결혼 80주년을 맞이해서 최장수 결혼생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겁니다. 기자가 노부부에게 오랜 세월 행복하게 해로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두 마디의 말 때문이죠. Sorry!(미안해!) Yes, Dear!(맞아, 여보!)”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상대방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온 게 행복의 비결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실생활 속에서 어려운 말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닙니다. 삶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말은 유치원 때 배운 것으로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만 잘 해도 충분합니다. 아주 간단한 말 같지만 사실은 성숙한 인격이 아니면 사용하기 힘든 말들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말씨에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인격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② 얼굴 표정 :
  다윗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합니다. 사진도 초상화도 남아있지 않으므로 알 수 없습니다. 흔히 다윗을 사울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윗은 외모로 사울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울은 기골이 장대하고 잘 생긴 미남자였을 겁니다. 모든 백성들이 환호를 보낼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생김새 자체는 낫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얼굴에 풍겨나는 표정은 아름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으려고 다윗을 불렀을 때 성경을 그의 모습을 뭐라고 표시합니까? 삼삼16: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이것은 외모가 잘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얼굴에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전8:1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여기서 지혜는 ‘신앙’이란 말과 바꾸어도 좋습니다. 성숙한 신앙이 있으면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사나운 모습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행6:15 보면 스데반의 얼굴이 나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그는 유대인 공회는 아주 살벌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서 있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마음속에 평안과 담대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굴의 생김새는 타고 나는 선천적인 것입니다. 요즘에는 성형을 하는 시대지만 완전히 뜯어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표정은 얼마든지 자신이 바꿀 수 있습니다. 얼굴 생김새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얼굴 표정입니다. 그것은 풍기는 분위기인데, 내면의 인격이 표출된 것입니다.

  우리말에 ‘겉볼안’ 이란 말이 있습니다. 겉을 보면 속은 안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순 우리말인 얼굴의 어원이 ‘얼꼴’이란 학설이 있습니다. ‘얼’은 영혼이고, ‘꼴’은 모양을 가리킵니다. 얼굴에 내면의 인격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더 테레사를 잘 아시죠? 사진으로 많이 보았으므로 그분의 얼굴을 대충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늙고 주름이 굵게 진 얼굴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얼굴을 보면서 흉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느 젊은 미녀보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얼굴에 그의 신앙과 인격이 풍겨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을 잘 가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얼굴 표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벧전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외모를 가꾸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미적 감각을 주셨습니다. 문제는 외모에만 신경을 쓰고 내면을 가꾸는 데 무관심한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죠?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된다.”(A. 링컨) 이것은 선천적인 얼굴 생김새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인격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은 지 수 년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부디 우리 얼굴이 예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거룩한 얼굴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주님을 알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③ 대인관계의 태도 :
  우리 삶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입니다.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업, 학교생활 등 모든 게 사실은 인간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일 자체도 중요하지만, 대인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대인 관계에서 우리가 사랑이 가득한 모습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마땅한 것입니다. 

  다윗은 대인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그는 항상 온유하고 겸손함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길을 떠나는 다윗의 길을 막고 저주했던 시므이! 그때 다윗의 신하들이 그를 처단하려 합니다. 다윗은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 삼하16:10~12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 ” 결국 그는 승리합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격자 왕 ‘성군 다윗’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용서가 대인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한편 용서는 하나님의 성품, 예수님의 성품을 가장 많이 닮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태도 가운데 인격의 열매가 나타나면 하나님이 그로 인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11절. “ ...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리고 우리 자신이 평안과 기쁨을 풍성해집니다. 더 나아가 아름다운 인격이 만드는 ‘태도’가 우리를 승리와 축복으로 인도해 줍니다. 새뮤엘 스마일즈가 쓴 「인격론」을 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회사의 사외보(社外報)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어느 사업가가 레미콘 사업을 시작하려고 다 준비를 해놓고 자동차 회사에 전화를 했답니다. 그 전화를 받은 영업 사원이 전화번호를 묻더니 급히 끊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자동차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한참 걸릴 텐데 시외통화요금을 고객에게 부담지우는 옳지 않다는 겁니다. 사업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것은 묻지도 않고 당장 자동차 16대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자동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장황한 설명이 아니라 영업 사원의 태도에서 풍기는 인격의 힘이 그런 결과를 얻어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열매를 매어야 합니다. 특별히 인격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말씨를 통해서, 얼굴 표정을 통해서, 대인관계의 태도를 통해서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우리 자신도 행복해지고, 이웃에게 감동을 주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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