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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단 12:1-4, 계 22:10-15, 마 24: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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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가끔 택시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대체로 택시를 이용할 때는 매우 중요하고 바쁜 일이 있을 때일 것입니다. 별로 중요하거나 바쁘지도 않은데 굳이 택시를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택시를 이용하게 될 경우, 보통 어떻게 합니까? 인도(人道)에 우두커니 서서 택시가 와서 알아서 태워주기를 기다립니까? 그렇게 하다가는 하루 종일 기다려도 택시를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울 같은데 가보면 이건 완전히 전쟁이요 난리입니다. 도로 한복판까지 나가서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택시가 서게 되면 총알같이 달려가서 앞뒤 돌아볼 여지없이 올라앉아야 합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 택시를 타고나면 어떻게 합니까? 먼저 행선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안심하고 좀 졸아도 기사가 목적지까지 가서 승객을 깨우게 됩니다.

우리가 요한 계시록을 보면 처음부터 그 이야기가 매우 긴박하게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1:1에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을 마무리짓게 되는 22:에 와서 이 말이 다시 반복해서 강조되어지고 있습니다. 6절에 보면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예수께서 "내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처음 교인들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긴박감을 느꼈겠습니까?

1950년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방송이 라디오를 통하여 시민들에게 들려졌습니다. "우리 국군은 용감하게 적군을 물리치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지 말고 일상생활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방송이 나갈 때 대통령은 벌써 서울을 빠져나갔고, 한강 다리는 끊어지고 난 뒤였습니다. 사태는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대통령의 방송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시민들이 죽음의 길로 내몰려야 했습니다.
이제 말씀드린 "속히 될 일"이라고 하는 이 말은 매우 긴박한 표현입니다. 마치 시간이 급한 사람이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나가서 온통 온몸으로 춤을 추듯이 "'택시! 택시!"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전쟁이 터졌으면 메가폰이라도 들고서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면서 "피난 가라!"고 외쳐야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렇게 긴급하게 알려야 할 사항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속히 될 일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을 말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임박했으면 오늘 본문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옛날 다니엘 선지자에게는 일련의 묵시를 주시고 나서 당부하기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너무 단축하여 졌기 때문에 이 예언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속히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지 인봉할 여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공산군이 이미 서울을 점령한 판국에 대통령의 육성 방송은 "우리 국군은 용감하게 싸우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안심하십시오"라는 따위의 방송이나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때가 단축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긴박한 시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 7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시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임박할수록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그분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일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주인이 먼 길을 떠난 후 종들 가운데 주인이 언제 오더라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종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에게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돌아올 시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냥 잠만 잔다든지, 먹고 마시고만 있으면 어느 시점에 갑자기 주인이 오게되면 엄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실 날이 가깝다고 할수록 우리는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즉 깨어있어 주인을 기다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2) 9절에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아주 정확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보는 대로 세계적인 추세가운데 하나는 예배가 점점 폐하여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서구 교회당들이 텅텅 비어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당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든지, 또는 운영이 어려워 방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새벽기도회를 페지하는 교회들이 늘고 있습니다. 수요 기도회를 드리지 않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나중에는 주 5일제라고 하니까 아예 주일은 내어주고 미리 금요일 날 예배드리는 교회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는 말씀은 예배를 드리되 제대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예배를 페하지 않는 여러분, 예배를 드리되 제대로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11절에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말세의 특징 중의 하나는 아무리 다급하게 주의 재림을 외친다고 해도 악한 사람은 여전히 그 악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악하게 되어집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바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려고 할 때 먼저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를 압박하여 속히 이스라엘을 내보내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재앙이 계속될수록 바로는 더욱 완악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손길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벌을 고스란히 다 받고야 이스라엘을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은 애굽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벌을 다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들은 시대를 분별하기 때문에 세속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주님 오실 날을 위하여 준비합니다. 그것이 의롭게 사는 것이요 거룩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때를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계시록 14절에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두루마기는 성도들의 행실을 말합니다. 우리 죄가 주님의 보혈로 씻음 받았으면 우리 행실도 역시 보혈로 정결함을 입은 행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천국에서 제외되어질 사람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15절에 "개들과 점승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지금쯤은 우리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성 밖에 있을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과 함께 저 영광에 들어가게 될 사람인가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때가 매우 가깝게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갓 택시를 타기 위해서도 온 몸으로 돌진해야한다면 우리가 천국 열차에 몸을 싣는 일에 지금처럼 안일해서야 되겠습니까?

2. 오늘 우리들은 대체로 요한 계시록은 숨겨진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요한 계시록은 텃치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계시록은 열려진 책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우리 교회 같은 경우에도 벌써 오랫동안 요한 계시록을 가지고 상고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마 성도들 가운데 다소 약삭빠른 분들이 계시다면 이것을 매우 마땅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요한 계시록은 황당한 이야기인줄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성경에서 계시록은 떼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십자가의 죽음과 사흘만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영광만 바라보던 제자들은 도대체 "십자가"라는 말조차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베드로까지도 예수님의 팔을 끌고 은밀한 자리로 가서 예수님을 꾸짖는 태도로 "그 말 같지 않은 소리하지 말라"고 감히 충고까지 했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여지없이 나무라셨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가운데도 주님께 책망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님의 재림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것은 인지가 미개할 때나 통하는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변화 산의 제자들처럼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면서 여기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장막 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자주 자주 "인자가 구름을 타고 권능과 영광으로 올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중에 저 감람 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들이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갈릴리 사람들아 왜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가신 이 예수는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시작하면서 1:7에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한 계시록을 끝내면서 자주 자주 말씀하십니다. 22:6절, 12절, 20절에 반복해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감히 주님의 이 명백한 말씀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이 말씀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아니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고 하는 오늘 우리들 삶이 과연 어떠합니까?  주님을 기다립니까? 주님 맞을 준비를 갖추며 살아가십니까?
주님에게는 상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 몸은 이 땅에 있으나 이미 우리는 하늘나라의 생명과 은총과 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예 이 땅 백성이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세상 가치관에 오염되어 하늘나라가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소유하게 되었으나 우리 상급은 믿는 우리들의 행위를 통하여 받게 됩니다. 성경에는 구원을 받기는 하되 부끄러운 구원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늘나라 백성답게 산다면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 비록 겨자씨 같다고 할지라도 태산같은 상급으로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는 우리 영원한 고향이 아닙니다. 우리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보물을 하늘에 쌓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여건을 가지고 자기만 위해 쓰고 살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위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우리 이웃의 가난하고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선용하십시오. 이것이 천국에 가서 상 받을 씨앗이 되는 것을 기억하시고 옥토에 씨뿌리는 농부처럼 사십시오. 전도서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아멘.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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