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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가지 부족한 그것 때문에... (눅 18: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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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변화시키시고, 창조하시고,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의 이 본문 말씀은 읽는 사람 모두에게 적잖은 부담을 주는 말씀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이 말씀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엄청난 부담을 주는 말씀입니다.

성남 판자촌에서 빈민목회를 할 때에는 강남의 부촌 아파트에 있는 교회의 초청을 받고 설교하러 가서 이 말씀을 본문으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설교한 적도 있었습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라라! 는 이 말씀 자체가 주는 압력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나눠주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덕목으로 설교했었습니다.

최근에 이 말씀을 읽는 중에 젊었을 때에 제 가슴을 울렸던 이 말씀이 새롭게 다시 한번 제게 도전을 주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가난한 자들에게...”란 대상을 지목한 말씀에 눈길이 머물렀었는데, 다시 묵상하면서 제게 다가온 말씀은 오늘 설교 제목처럼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란 말씀이었습니다.

1. 칭찬 받을 만한 주인공.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 관원 마 19:16~ 에서의 말씀에서는 그를 청년이라 표현하였기에 보편적으로 부자청년으로 자주 묘사된다.을 얕잡아 봤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목사가 된 것이 그 사람보다 훨씬 더 훌륭한 위치에 있는 걸로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부자 관원은 예수님께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마가복음서에는 어려서부터 이런 계명들을 다 지키었노라고 고백하는 이 사람을 향해,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결코 내가 얕잡아 보거나, 쉽게 경멸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계명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교의 서슬 퍼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일부러 찾아왔었던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또 영적인 부분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하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물었던 질문은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눅 18:18)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인생과 종교의 깊은 생각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었던 질문을 던졌던 것에서 우리는 그의 됨됨이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 부자 관원을 아래로 내려다 보았던 제 시선이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2. 주인공의 고민, 영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영생’이라는 주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서에서는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 19:16)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그 부자처럼 영생을 얻기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피해야 할까? 의 차원을 넘어 서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라는 적극적인 성취욕을 가질만큼 지금의 내 믿음 생활은 영생의 문제에 대해 도전하는 믿음인가? 라고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핵심 성구로 알고 외우고 있는 요한복음 3:·16절도 궁극적으로는 믿음의 결과로 영생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다름 말씀에서는,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부자 관원은 바로 이 문제를 안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이 주제야말로 예수님이 그토록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체험케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사랑의 눈빛으로 이 사람을 보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본문을 볼 때 가진 것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윽박지르면서 한 제 설교는 중심을 벗어났던 설교였습니다. 중요한 핵심을 놓쳐버린 채 문구에만 집착해서 흥분한 설익은 설교임에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한가지 부족한 것.

오늘의 이 말씀을 부자, 돈, 가난한 자, 다 팔아... 라는 문구에 집중하다보면 이 말씀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자 관원의 통장의 잔고나, 그가 갖고 있는 부동산의 규모, 살고 있는 집의 으리으리한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부자관원을 제자로 삼기 싫어서 짐짓 딴지를 걸어 넘어뜨리려 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한가지 부족한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제가 전에 이 말씀을 더 깊이 보지 못했을 때에는 그 한가지 부족한 것이 바로 인색함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한가지 부족한 것’은 얼마든지 유동적인 것,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 싶습니다.

만일 예수님께 찾아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은 사람이 자신의 미모가 삶의 희망이자 자랑거리였다면 예수님은 다른 대답을 하셨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셔서 화장품 다 치우시고, 화장 지우시고, 그 비싼 명품 옷 다 바자회에 내어 놓으시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십시오.”라고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운동을 너무 너무 잘해서 그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에게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셔서 그 스포츠 장비들을 다 처분하시고, 운동기구 대신 성경책을 들고 나를 따르십시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낚시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셔서 낚시대를 다 다른 사람 줘 버리시고, 그 후에 나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하실런지도 모릅니다.

돈이 생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가지고 있는 통장을 가져다가 의미있는 일에 희사하고 난 후에 나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하실 것입니다.

명예가 목숨처럼 소중한 사람에게는, “그 양복의 뱃지 떼어 버리시고, 거실에 쭈욱~ 전시되어 있는 감사패, 상장을 다 태워 버린 후에 나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는 이 말씀은 듣는 이들 누구에게나 다르게 적용되어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4. 우리에게 부족한 그 한가지...?

예수님은 이 부자관원의 아킬레스건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보시고, 또 아십니다.

저는 잘 압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부자관원처럼 훌륭한 분인 것을...
이 부자 관원도 존경받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얼마나 훌륭한 신앙인인지 모릅니다.

더 편안하고 쾌락적인 삶의 유혹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 시간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주일 성수를 잘 하시는 분들입니다.

자기 직업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교회 일에 봉사하시는 그 모습도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모릅니다.

재정 보고를 주일마다 볼 때에 정성과 최선을 다한 예물을 볼 때에는 정말로 콧등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아끼시고, 절약하시는 분인데...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뜻 옥합을 깨는 모습 속에서 천국의 소망을 둔 분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요...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아니 믿는 어느 다른 교회의 성도들보다 칭찬들을 만한 자리에 서신 분들이십니다.
90점 신앙인입니다. 95점 봉사자이십니다. 98점 교회의 임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여러분의 모습을 사랑의 눈빛으로 봐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애정어린 눈빛으로 우리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을 물어 오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실까요?

예수님은 믿어도, 내가 아무리 예수님을 위해 산다고 할지라도... 이것만큼은 양보 못해~! 라고 붙잡고 계신 것은 없으신지요?
어떤 이에게는 자존심일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것만큼은 못 참아!’라고 한다면 바로 그것이 한가지 부족한 것입니다.

‘내가 다른 건 다 포기하고, 버렸는데... 그것만큼은 아니되옵니다.’할 때 바로 그것이 한가지 부족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부자관원은 90점을 훨씬 넘는 훌륭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는 커녕 알지도 못하고 사는 사람에 비하면 이 사람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자신있게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저 살려만 주셔도 감사합니다. 라고 부들부들 떨면서 나오는 사람에 비하면 이 사람은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입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자랑... 있진 않을까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는 더 정직하게 사는 나, 교회일에 어느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일하는 나, 누구보다 더 바르게, 착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

내가 매겨 놓은 점수에 따라 의기양양하다가 예수님의 나지막한 말씀 하나에 근심하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후에 예수님은 부자를 비유하기를 약대, 즉 낙타떼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들이 천국 가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셨습니다. 즉, 그 한가지 것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한 식구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해 준 것입니다.

5. 비교되는 다른 장면 하나.

이 이야기 바로 다음의 이야기는 큰 대조를 이루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시던 예수님을 큰 소리로 불렀던 소경 거지 이야기입니다. 이 소경은 사람들이 잠잠하라 해도 막무가내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입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거지 소경은 예수님을 부르는 데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나, 제지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자존심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따갑게 느끼는 창피함도 내려 놓은 채 생명의 소생함을 위해 달려갑니다. 이 소경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눅 18:43) 『그러자 그는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보고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부자 관원은 근심하면서 집으로 돌아갔고, 거지 소경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이 극단적인 대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99점 맞고서도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던 부자관원,
0점짜리 인생을 살고 있었던 소경 거지...

이 두 인생은 극과 극의 삶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로 다시 한번 극과 극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 두고두고 인생과 영생의 질문을 안고 갈등 속에 살아가는 한 인생과,

기쁨을 안고 예수님의 뒤를 쫓아 다니면서 영생을 바라보며 살게 된 행복한 거지의 인생...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그 한가지, 무엇인가에 매여있었던 착고에서 해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죄의 사슬을 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격의 단점들을 극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정의 기복을 넘어서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시면서 영적인 눈을 떠 “내게 부족한 한가지 것”이 무엇인지 기도 중에 찾아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제목을 붙잡고 기도하십시다.

그 한가지 때문에 9개 다 잘하고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지 못할 것인가?
좀 더 힘을 내서 그 한가지마저 하나님 앞에 내려 놓고 영생을 얻을 것인가?

성경의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대면에서 그 마지막 한가지를 포기하도록 명령받았을 때에 순종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의 자존심과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버렸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하늘에서 내려온 광주리에 담긴 부정한 음식을 먹기를 권하심으로 마지막 보루처럼 여겼던 유대교의 율법을 버리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고대 베두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유목공동체를 떠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나아만 장군도 문둥병이 낫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자존심을 꺽어야만 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리스도, 만인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비를 넘기셔야했습니다.

이제 다시 질문은 여러분을 향합니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이 물음 앞에 정직히 대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 연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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