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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베스형 기도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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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참으로 좋아 했습니다. 야베스처럼 복을 받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 환경이 좋지 않고, 소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여 그렇게 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원래 야베스라는 이
름은 히브리어로 “슬픔의 사람, 불행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야베스’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는 뜻이라고(9절) 말씀합니다. 그 이름은 그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큰 고통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편모슬하에서 정상적인 아이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자라난 것 같습니다.

숙명론자들은 인간을 가리켜 운명의 사슬에 묶여진 존재, 즉 운명의 노예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사주나 관상에 따라 그 인생이 좌우된다고 합니다. 나쁜 운세를 좋은 운세로 바꾸려면 신명나는 굿판을 하거나, 이름을 바꾸거나, 부적을 써서 몸에 지니면 어느 정도 운명(운세)을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 인생이 사주나 관상에 의해 행, 불행이 결정되는 것입니까? 운명에 의해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단호하게 숙명론을 배격합니다. 인생의 생사와 화복이 하나님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베스는 숙명론적으로 볼 때 사주나 관상도 좋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는 일마다 어려움과 실패의 잔을 마셨으며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의 이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절 “그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경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불행한 환경속에서 살았지만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도전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해 나가고 불행을 행복으로 변화시키며,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 .미래를 개척해 나가며 지경을 넓혀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야베스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 마음과 생각을 넓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마음을 크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고, 태도, 공포, 희망 등의 역사(일)는,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복을 받는 것도,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마음이 길가 밭과 같은 사람, 흙이 얕은 돌밭과 같은 사람, 가시떨기 밭과 같은 사람, 좋은 땅과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밭이 좋아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넓은 마음으로 사는 것 보다 큰 복이 없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태생적으로 마음이 넓은 사람은 없습니다.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마음을 넓히십시오. 사도 바울은 네 파로 나뉜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고린도 성도들이여, 마음을 넓히십시오”라고 책망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왜, 네파로 나뉘었을까요? 마음의 문제입니다. 욕심과 고집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깊은 산 속 오솔길 옆에 작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쁜 붕어 두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맑은 여름날. 그 작은 연못 속의 예쁜 붕어 두마리가 그만 싸움을 했습니다. 누가 더 힘이 센지, 누가 더 잘났는지 한번 겨뤄보았던 것. 그 연못을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그 두 녀석은 격렬하게 싸웠고 급기야 힘이 센 놈이 약한 놈을 아주 잔인하게 물어뜯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죽은 녀석은 물 위에 떠오르고 그 놈 살은 점점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힘센 녀석은 자기가 이겼다고, 그래서 연못을 혼자 독차지하게 됐다고 으시댔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센 녀석이 이겼다고 뽐내는 사이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은 이겼다고 으시대던 힘센 녀석도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마음이 넓어져야 됩니다. 생각이 깊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됩니다. 봄이 오면 나무 가지가 부드러워져서 꽃이 피고, 얼었던 땅이 녹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야베스같이 복을 부시는 것입니다.

틱낫한이라는 불교 승려요, 베트남 시인은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화를 풀으십시오. 그래야 인생이 풀립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은 못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내 상처의 응어리를 풀어야 인생이 풀립니다.
소나무는 큰 나무이기 때문에 가시넝쿨이 몸을 휘감아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찬바람이 불면 가시넝쿨은 우수수 다 떨어집니다. 그리고 소나무만 홀로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큰 나무에는 많은 새들이 깃들게 됩니다. 그 그늘 아래에는 많은 나그네들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큰 숲에는 많은 동물들이 그 속에 거처를 정하게 됩니다. 큰 나무도 자그만한 묘목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넓혀가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지경을 넓혀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마음이 넓은 사람을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인물이 좋고 공부를 많이 했어도 속이 좁으면 작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소한 것 때문에 자기 자신이 왜소하게 보인 일이 있습니까 그러면 오늘로서 끝내십시오. 인생 짧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큰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미래학자들은 내일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미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람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만 매여 율법만 생각하고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생각하게 하고 은혜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먹고 사는 땅의 문제로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생각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의 폭을 넓혀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를 떠나 보지 못한 제자들에게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하셨습니다. 그리고 땅 끝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 끝까지 가서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의식에 붙잡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에 집착하면서 율법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핍박을 통해 흩어지게 하셨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들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자기만 보고, 자기 교회만 보게 되면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그 생각은 좀처럼 바뀌어 지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미래를 향하여 열린 교회가 되도록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듣는 귀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야베스는 큰 능력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넓은 세상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큰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하나님께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하였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사람들은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앞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현재에 안주하지 마십시다. ‘우리 교회가 좋다. 이만하면 됐지 뭐.더 커서 뭘해. .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날마다 겨자씨가 자라듯 자라야 합니다. 우리는 결단코 오늘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미래의 사람입니다. 비젼의 사람입니다. 자기가 이룬 선교업적에 대하여 자랑하거나 거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세운 교회를 자기가 목회 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열심히 전도하고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면 다른 일꾼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종말적인 신앙이며 미래 지향적인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3-14)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직도 자기는 불완전한 존재요, 미완성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난 날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잊어버렸습니다.
경주장에서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사람이, 100m 달리기 시합을 하는 사람이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보면 그만큼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던 토마스 제퍼슨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과거의 역사보다 미래의 꿈을 더 좋아한다.” 태양을 등지고 사는 사람은 늘 눈앞에 그림자만 바라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태양을 향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밝은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도 과거의 역사와 전통에 집착하는 과거지향적인 교회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꿈을 펼쳐나가는 미래지향적인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1) ‘이 일은 내가 옛날에도 한번 해봤는데 이렇게 하니까 실패하더라’ 과거에 붙잡혀서 삽니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도전합니다. 2) ‘이것은 너무 큰 변화야!’ 자기 생각 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잠재시키려고 합니다. 3) ‘지금도 괜찮은데 뭘 또 새로운 일들을 도약하려고 하는가?’ 하고 오늘에 안주하려 합니다. 4) ‘조금 더 기다리자.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애.’ 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로 교회 자체에 집착하여 미래를 향하여 열리지 못한다면 결국 버림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사람이 성공자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시력이 나빠져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시력은 다시 회복하게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의사는 당황해서 재수술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억은 돌아왔으나 또다시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하는 중에 의사는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양자택일을 해야겠는데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시력입니까, 과거에 대한 기억입니까?” 그 환자는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기를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잊어버려도 괜찮소,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회복시켜 주시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눈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의 폭을 넓히십시오. 생각의 깊이를 더하십시오, 내일을 생각하시고 세계를 생각하는 성도가 됩시다.

3. 기도는 우리의 지경은 넓힙니다.

본문 10절에서 “주께서 내게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베스는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으며, 마음의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야베스는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무엇이 야베스를 근심케 했는가? 가난, 질병 일수도 있습니다.
환난 중에 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모든 두려움과 환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렘29:11-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할 때에는 작은 복을 구할 것이 아니라 큰 복을 구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복을 구해야 합니다. 큰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가 아닙니다. 탐욕의 기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것마다 후히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큰 복, 큰 은혜, 큰 믿음, 큰 사랑 . . .

왕하4:에 보면 엘리사가 엘리사의 선지학교 생도가 죽고 빚만 산더미같이 떠 안은 부인이 엘리사에게 찾아와 도와 달라고 호소 할 때 엘리사는 ‘네 집에 있는 것이 뭐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한병 기름 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릇을 많이 빌려다 놔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복을 받는가? 큰 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지경이 넓어지기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아시아로,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장막의 지경도 넓혀 큰 꿈과 큰 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30배, 60배, 100배의 수적인 성장, 내적인 성숙이 있게 하옵소서 . . .하나님을 사랑하되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큰 믿음 . . . 넉넉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기도의 지경도 넓어지게 하셔서 세계를 품고 기도하게 해 주시옵소서. 동서남북 어디든지 선교사를 파송하고 우리도 선교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가 지경을 넓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반드시 지경을 넓혀 주실 것입니다.
구하기만 하면 주시는데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미련한 사람입니까? 만약 야베스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평생 동안 가난과 근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그 형제 중에서 존귀한 자도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한숨을 쉬며 걱정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 일이 났다고 하면서 염려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사람들의 삶의 영역을 넓혀가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기도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야베스형의 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임 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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