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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출애굽기강해(1) -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성장 (출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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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강해(1) 출애굽기1:1-22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성장

마음과 생각을 여는 말씀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창세기에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즉 그 이야기는 개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부터는 더 이상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민족의 이야기이고, 한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장은 출애굽 공동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출애굽 교회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더불어 자라났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이들을 통하여 확장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시작한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아 보이는 말씀을 들을 때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과하면서 성장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때에 더욱더 확장되어 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길 원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신앙과 삶도 형통하고 부흥하길 원합니다. 또한 천국의 평안과 능력이 우리 자신 물론 우리를 통하여 우리 주위로 퍼지길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시작하고 성장하게 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고 성장하고 확장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적용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1.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통해서 시작되려면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5-7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의 끝부분은 고대 중동 지역에 닥쳐온 칠년 흉년이 배경입니다. 칠년 흉년으로 인하여 야곱과 그의 후손은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숫자가 7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미 예언된 사실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시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창세기 15:13-14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신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그 예언의 말씀대로 야곱과 그의 후손 70명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사백년을 애굽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사백년이 찰 때에 이스라엘은 70명에서 엄청난 숫자로 증가했습니다. 즉 출애굽기 12:37을 보시면 장정만 육십 만 명 가량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체 수는 최소한 200만 명이 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70명에서 200만 명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로 부흥하고 번성했습니다. 그것도 이방 땅인 애굽에서 그러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2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는 70명이라고 하는 작은 숫자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작은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자를 칭찬하시고 더 큰 일을 맡겨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한 것을 잊지 않으시고 상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것에 충성하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작은 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큰 것은 사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이란 존재하지 않고, 작아 보이는 것들만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작다고 여기고 소홀히 하기 쉬운 것들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통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소홀히 여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지금 현재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먼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소홀히 대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소홀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행복을 먼 곳에서만 찾으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신앙의 행복이든 삶의 행복이든 행복은 우리들의 자족하는 마음에서 시작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을 소홀히 여기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리는 우리가 지금 있는 곳,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허락하신 이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계속 읽어보면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통하여 애굽을 징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과 애굽 사람들이 거하는 곳을 구별하셨습니다. 즉 고센 땅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 인간적으로 눈으로 보면 고센 땅은 소외되고 수준 낮은 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경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축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의 후손들이 목축했기 때문에 그들이 거하는 고센 땅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버려지고 소외된 고센 땅에서 야곱의 70명의 후손들이 200만 명이 된 것입니다. 고센 땅은 한 가족이 한 민족이 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별 볼 릴 없는 곳이고, 비록 작아 보이지만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때가 되면 강대해질 것입니다. 비록 작은 소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섬기고 돌볼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라게 됩니다. 결국 그 겨자씨는 큰 나무가 되어서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작냐 크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입니다. 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아니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작은 것이 큰 하나님의 나라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아 보이는 것일수록 그 미래의 가능성을 보는 믿음으로 더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하겠습니다. 작은 말, 작은 미소, 작은 어루만짐, 작지만 따뜻한 눈빛을 귀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2. 고통을 잘 소화해 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려면 고난을 잘 소화해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고난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8-14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의 가족은 70명에서 200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어엿한 하나의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등장했습니다. 요셉은 훌륭한 농업정책과 토지정책을 수립하여 애굽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왕은 요셉을 잘 몰랐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고센 땅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거슬렀습니다. 만약에 전쟁이라도 나면 이스라엘이 적군에 동조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정책이 단계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첫 번째 정책은 강제노동을 심하게 시켰습니다. 즉 국고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짓는 일에 이스라엘을 동원시켰습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이 강제노동으로 피곤해지면 부부관계가 줄어들고, 결국 인구가 줄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강제노동에 이스라엘을 동원시키면 국고성을 빨리 지울 수 있기 때문에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이스라엘은 더욱더 번성하였습니다. 고난 속에서 출애굽 공동체, 출애굽 교회는 더욱 더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애굽 왕 바로는 두 번째 계략을 시행했습니다. 즉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를 통하여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남자이면 죽이고, 여자 아이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애굽 왕의 말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핑계를 대었습니다. 결국 두 번째 계략도 성공을 못하자 애굽 왕은 직접 자기 백성과 신하들에게 이스라엘에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고난을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 더욱더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격과 신앙은 편안한 환경보다는 고통 속에서 더 정금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통과 고난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도하는 시간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통과 고난은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학대 받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당시 가장 부강한 나라를 떠나고 광야 사막을 통과하여 가나안에 가려고 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고난 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도 소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강하기만 하고 풍요로운 환경에만 있으면 하나님 사모하기 힘들어집니다. 이 땅에서 모든 축복들을 다 누리면서 천국을 소망하기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시고, 또한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고난과 약함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때에 우리가 눈물로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은 더 복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시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들으실 때에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가지 예로 하나님과 마음이 합했던 다윗을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왜 다윗이 그토록 큰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다윗과 사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울은 사실 거의 역경과 고난 없이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형통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품고 씨름하면서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통이 힘들다고 피하면 축복의 기회도 사라집니다. 우리가 고난이 괴롭다고 외면하면 변화와 성숙을 위한 기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과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잘 품으면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통 중에 있든지 아니면 번영 중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잠언 27:21을 보시면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칭찬 듣고, 번영할 때에는 자칫 자신의 힘과 지혜로 된 것처럼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번영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번영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동시에 고통의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들을 테스트하시고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강대해질 수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모든 고난을 이긴 후에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이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3-4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란 중에 받은 하나님의 위로를 가지고 환란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극복한 우리들은 반드시 동일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세 번째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강대해지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이들을 통하여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15-21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창성해졌습니다. 그러자 애굽 왕 바로가 또 다른 악한 계략을 시행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 산파에게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애굽 왕 바로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결국 사내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습니다. 그러한 히브리 산파의 행동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심히 강대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히브리 산파의 집을 왕성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한 산파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들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를 경외하느냐입니다. 잠언 1:7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존귀히 섬기고 순종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십브라와 부아처럼 왕성해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과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초 위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두려워해야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 근심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이 밀려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민수기 14장을 읽어보면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 명의 정탐꾼과 출애굽 1세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없었고, 약속의 땅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수기 14:9을 보시면 유명한 그들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계속해서 쓰임을 받았고, 약속의 땅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이들을 사용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이 있다고 교만하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그들로 인하여 그들의 집이 축복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때에 쓰임 받고 축복 받게 될 것입니다.

결단을 위한 감동의 말씀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성장하고 확장되는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과하면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이들을 통해서 확장되어 갑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이 맡겨주신 작은 일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을 순종하는 믿음으로 잘 감당해야 할 줄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더 확장되고 강력해질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삶 그리고 모든 일들을 귀히 여기고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때로 학대를 받고, 고통 가운데 있을 수 있지만 그것까지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축복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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