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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을 소화하라 (민 13 : 25 - 14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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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민 13 : 25 - 14 : 10
제 목 : 고난을 소화하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내용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점령하기 전에 그 땅을 탐지하기 위하여, 열 두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땅을 탐지하고 온 열 두명의 정탐꾼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 중의 열 명은 그 땅에 대해서 악평을 하지요.  그 거민들은 우리보다 강하고,  그 땅은 우리가 도저히 점령하지 못할 땅이라고, 악평을 합니다.
“왜 이런 땅을 구지 얻으려고 하느냐?  우리를 거기서 다 죽일 작정이냐?”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두 사람,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지요. 
이 두 사람은 다른 열 명과는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 땅은 너무 아름답다.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붙여 주시면, 능히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에 대한 결과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의 보고대로 되어졌습니까?  불평했던 대다수의 사람, 열 명의 보고대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고했던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대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그러나 객기가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할 줄 아는 신앙,  여러분 이것이 믿음인 줄 믿습니다.

히 11 :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내가 못하면 안 되는 일입니까? 
“나는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상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떤 상입니까?  그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대로 이루어 주시는, 응답의 상인 줄로 믿습니다.

막 11 : 24절에 보면,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할렐루야!!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많이 일어나,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뜻하지 않는 일들을 접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게 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인생은, 분명 세상 사람들과 다른 줄로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을 또한 우리가 믿고 있기에, 우리는 그런 뜻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를 가지고, 대처해 나가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이기며,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지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특별히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믿음을, 여러분 가운데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 믿음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보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무슨 뜻입니까?  먹기 좋게 차려진 밥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노력한 것도 없이, 그저 수저만 들면 먹을 수 있는, 차려 논 밥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밥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들이 정탐한 가나안의 땅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제 그 땅을 쳐들어가기만 하면, 그 땅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 땅을 그들이 다 차지했습니까?  아니지요? 
오직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똑같은 밥이라도, 먹기 좋게 잘 차려진 밥상이라도, 그것을 먹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 잘 소화를 시키면, 그것이 우리의 몸에 건강으로 작용하고 힘을 얻게 하는데, 똑같은 밥을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체하게 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몸을 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쳐진 모든 환경들이 그렇습니다.  똑같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결과가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환경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맞닥뜨리며 이겨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 부딪히게 되면, 지레 겁을 먹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리고는 늘 고통 가운데 허우적거립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이러한 두 가지의 반응은, 꼭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집니다.  똑같은 말씀을 전하는데, 똑같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감동을 받으며,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그 신앙이 바꿔지고, 심령이 깨어져서 달라지는 사람이 있는데, 반면에 어떤  사람은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괜히 상처받고, 시험 들고, 은혜를 못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가, 지금 병들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이 회식에 가서 음식을 먹는데, 꼭 탈나는 사람이 있지요. 그래서 불평합니다.  “물이 안 좋은 것 아니냐?  음식이 좀 상한 것 아니냐?”
아니 그럴 것 같으면, 그 음식 먹은 모든 사람들이, 다 체해야 정상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자기만 탈났다면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음식이 아닌, 자기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기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자주 탈이 나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저는 없어서 못 먹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같은 고난이 다가와도 어떤 사람은 넘어집니다.
실패합니다. 좌절합니다.  그래서 늘 생활에 불평이 있고, 원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이 다가와도 넘어지지를 않습니다. 절대 환경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팔을 걷어 부칩니다.  “오냐 너 잘 만났다. 어디 한번 해보자!” 달려듭니다.  여러분, 그 고난이 견디겠습니까?  한 길로 왔다가도 일곱 길로 도망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고난이라고 하는 것이, 꼭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식과 같다는 것입니다.  누구나가 밥을 똑같이 먹듯이,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고난도 똑같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우리가 소화를  시키지 못하면 체하게 되고, 우리의 인생에 문제가 생기게 되지만, 그 고난을 우리가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게 되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변하여, 우리의 인생을 강건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뭐라고 보고를 했습니까?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언제나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편인 줄로 믿습니다.

모세와 함께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약속의 땅, 축복의 땅 가나안에는 다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고, 사사건건 시비하던 사람들은, 모든 일에 있어 늘 부정적이었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 땅을 차지했습니까?  긍정적이요, 소망적이요, 신앙적인 말을 했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과, 그리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비록 사단의 올무에서 벗어나 천국 백성이 되어졌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 누릴 수 있는 축복은, 결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성도라 할지라도, 불평하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 모든  일을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사업이나, 그 가정이나, 그 앞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믿음의 눈을 뜨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소망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업도 잘 되고, 가정도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게 잘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제 말입니까?  성경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에서만 이러한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얼마나 이러한 일들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그것을 또한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우리가 살펴보게 되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삶이, 결코 부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또한 육신적으로, 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역경과 시련을 겪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한결 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인생에 갖가지 어려운 시련과 고통을 있을지라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이고, 모든 것을 회복하고, 오히려 그 이상의 것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백성들이 소화시킬 수 있는 고난을 주시지, 소화시킬 수 없는 고난을 주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견디기 힘든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환경, 몸의 질병, 마음의 근심, 걱정, 고민,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우리가 능히 소화할만한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안 당해본 사람은 그 고통을 몰라요. 목사님이시니까 그런 소리하지요.”
모르긴 뭘 모릅니까?  목사라고 여러분과 삶이 다릅니까? 
목사는 태어날 때 금 수저 입에 물고 태어납니까?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삶에 고통이 있다면, 목회자들도 다 당하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목회자들의 삶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 고난을 소화했느냐?  못 했느냐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해서 고통스런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아마 우리 목회자들이 가장 먼저 불평하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인생이 힘이 듭니까?  내 힘으로 감당하려고 하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음식을 먹고 소화가 잘 안되면, 체한 체로 그냥 지냅니까?  어떻게 합니까?  소화제를 먹지 않습니까? 
체하면 소화제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어찌 고난을 당하면 기도할 줄 모릅니까?
체하면 약국에 가서 약 사먹을 줄 아는 사람이, 어찌 고난을 당하면 어찌 교회에  나와 기도할 줄 모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핑계요, 자신의 신앙이 부족  하다는 표시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까?  영혼의 약국인 교회에 나와서 소화제를 얻어 드시길 바랍니다.  교회에 나오면 좋은 약이 있지 않습니까?  새벽 기도회나, 금요기도회 나와 보세요.  기도의 약발로 고난을 소화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 정해진 예배 시간마다 잘 참석해 보세요.
신약으로, 구약으로 말씀을 잘 조제해 여러분에게 나누어주지 않습니까?
그 약만 잘 받아먹어도, 능히 여러분의 고난을 소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도 사실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여러분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어떤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고, 여러분의 믿음대로 축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옛날에는 군대에서 군인들이 아프면 의무실에 가서 약을 타 먹게 되는데, 그 약만 먹으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습니다. 
군대 약이 그렇게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의무실에서 군인들에게 주는 약이 무슨 약인 줄 아십니까?  소화젭니다.  배가 아파도 소화제, 머리가 아파도  소화제, 이가 아파도 소화제, 무슨 병으로 왔든지, 배 째지 않는 병이면 다  소화젭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 겁니다. 
이를 두고 의학 용어로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플라시보 효과” 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꼭 이와 같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단순히 믿기만 하면 응답이 되느냐?  꼭 거짓말 같고,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지만, 정작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은, 희한하게 응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다는 겁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냥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될 것인데, 왜 굳이 인생에 고통을 당하게 하시고,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시는가?  아마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다에 태풍이 있어야 바다가 정화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되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때로는 이런 풍랑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 풍랑 때문에, 내가 더 새로워지고, 더 성숙해지고, 그래서 더욱 더 축복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환난이 오게 되어있고, 죽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 앞에 어려운 역경과 시련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이후로는 넉넉한 믿음으로 이겨 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닥친 고난과 시련, 역경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기며 소화시킬 수 있을까?  그 구체적인 방법 두 가지를, 이 시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고난 앞에서도, 우리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 열 명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보기에도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 성벽은 철옹성 같아서,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겠고, 이길 수 없겠도다.” 지레 겁부터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습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14 : 8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생각은, 곧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가나안으로 이끄신 것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두려워 떨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두려워 떨기보다는 담담하게 맞서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골리앗 장군이 이끄는 불레셋 군대가, 사울왕을 위시한 이스라엘군대를 모욕  했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자신들을 욕하는 수모를 겪고 있으면서도, 누구하나 대항하고자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들에 비해 배 이상으로 큰 골리앗을 보고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렇게 큰 몸집의 장군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골리앗과 대항해 싸운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담대하게 나가 싸웠습니다. 자신보다 배나 큰, 아니지요, 세배 이상으로 큰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담대하게 외치며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 큰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 한방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다윗은 골리앗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따 그 놈 덩치 한 번 크네,  내가 아무데나 던져도, 한 군데는 틀림없이 맞겠네.”  다윗이 돌을 몇 개  던졌습니까?  단 하나 던졌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한방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돌 던지며 염려했겠습니까?  이 돌이 맞을까  안 맞을까 고민했겠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담대하게 나아가질 못했을 겁니다. 염려하지 않았기에, 고민하지 않았기에, 골리앗을 보아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기에, 이스라엘 군대도 벌벌 떤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어떤 집사님이 10년 전에, 뇌에 종양에 생겨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젊은 집사였습니다.  이 집사님이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음식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습니다.  또 두고 가는 처자식 때문에 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성경 말씀을 읽고, 또 설교 테잎을 듣다가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래, 나만 죽는 것도 아닌데, 모든 사람이 시간과 장소와 방법만 다를  뿐이지, 이 세상에 왔던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죽게 되는데, 뭐 그리 불안에 떨며, 슬퍼 할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내 이 한 목숨, 이제 얼마 남지는 않았겠지만, 죽는 날까지 주님을 위해 헌신하다 가리라. 그러면 하나님 앞에 가서도  더 많은 상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이렇게 편하게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아직도 병원에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지금은 건강하게 사업도 하고, 주의 일도 아주 열심입니다.
머리의 뇌 종양이 커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10년이 지난 지금 의술이 발달하여 레이져로 수술을 받아 깨끗하게 고쳤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믿음은, 이렇게 불가능을 가능케 만듭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부정적인 열 명의 정탐꾼은 아낙 자손과, 철옹성 같은  성벽만 바라보았지,  그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은 바라보지를 못하고,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그들 앞에 놓인 환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에, 아낙 자손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메뚜기와 같은 존재로 보였고,
철옹성과 같은 그들의 성벽은, 한 마디로 성냥곽같이 보였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감당치 못할 고난이 있습니까?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까? 그 문제로 인하여 염려하고 고민하고 있습니까? 
고해와 같은 세상에, 낙엽같은 인생의 배를 띄우고, 험한 풍랑을 헤치며 저어  나가야 하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풍랑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배는 멈추어 버릴 것입니다. 오히려 그 풍랑 때문에, 우리 인생의 배는 빨리 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뜨고 바라보면, 우리 앞에 당하는 환난과 역경, 모든 시련의 풍랑이, “이것이 하나님 앞에 더 축복 받을 기회고, 은혜 받을 기회다.” 라고 생각되어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으로, 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고, 최후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앞에 닥친 고난과 시련, 역경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기며 소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로는,  우리가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소화시키고, 이겨 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져도, 이 임마누엘의 신앙이 없으면, 이내 부정적인 신앙으로 변하고 맙니다.  시간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신앙,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확신있는 믿음을 소유  하게 되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긍정적인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9절 말씀에,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는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마 28장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9절 말씀에서,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이, 다른 열명의 정탐꾼들과 다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열명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것과 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을 믿는 믿음은, 그저  막연한 믿음이었습니다.  확실한 믿음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기대하는 일을 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불투명한 믿음이었습니다.

다른 열명의 정탐꾼들이, 이런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그들은 광야에서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도,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결코 우상 숭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따랐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유일신 되심을 의심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과 함께 했고, 하나님 또한 그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런 임마누엘의 신앙이 있었기에, 그들이 가나안의 아낙 족속들과 굳건한 성벽을 바라보고 와서도, 담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 49 :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지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으시고,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신앙이 왜 중요합니까?  여러분 보세요.  여기 종이가 있지 않습니까? 이 종이는 약합니다.  찢으면 찢어집니다.  그러나 이 종이를 튼튼한 철판에 갖다 붙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종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종이 한 장은 약해서 찢어지고 말지만, 튼튼한 철판에 붙여놓으면, 아무리 힘을 줘도 찢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 15 :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또 7절에 보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요셉과 같은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 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사람들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며, 그 분만을 두려워할 줄 아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우리의 밥인 줄로 믿습니다.
세상 염려에 너무 사로잡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일로 너무 염려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신앙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염려 하나님께 맡기고,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 13 : 5 - 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담대한 신앙으로, 또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오늘의 고난에 먹히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믿음으로 소화시켜, 여러분이 당한  모든 문제들을 능히 해결하며,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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