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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려 주시는 은혜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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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결실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린 가운데 10월 둘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조석으로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색채를 띠기 시작하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마음이 분주해지기 쉬운 계절입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달려 나와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 위에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10월 3일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우리나라의 최경주 선수가 상금 9억원을 받으며 우승했습니다. 2002년 2승을 올린 뒤 3년 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달성한 그의 경기는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고, 세계 여러나라에 녹화중계 되었습니다. 이날 시상식을 마친 뒤, 연합뉴스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우승했는데 소감은 어떤가? 라는 질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바친다. 그동안 경기가 안 풀려 가슴앓이를 많이 했는데, 이번 우승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확 풀렸다” 고 했습니다. 이번 대회를 우승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느냐? 는 질문에는 “경기 전날 교회에서 하나님께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고 했습니다.

고국팬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성적이 안나와 걱정하시는 분들께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겠다고 늘 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우승 소식을 전하게 돼 기쁘다. 마음이 안정이 되니 더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해 드리고 싶다.  많은 기대를 해 주시는 고국팬들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기대와 기다림 속에 3년 동안의 슬럼프를 딛고 일어선 승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들려 주신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보면 포도원주인은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기를 3년이나 기다렸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자 찍어 버리려 했습니다. 그때 과원지기가 간청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나이다. 이후에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 버리소서” 라고 한 번 더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한번 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을,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과원지기는 중보자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결실의 계절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입니다.
본문 6절 말씀에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 지라”고 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에다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흔한 일이 아닌 주인의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중동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안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특징이 있다면 관상용으로는 부적절한 볼폼이 없는 나무요, 이리저리 비틀어지고 제멋대로 퍼져 재목으로도 쓸만한 나무가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아름다운 꽃도 향기도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한 가지 찾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열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1년에 3번이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1년 중에 4월과 5월을 제외하고는 늘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은 틀림없이 열매를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주인이 과원지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고했습니다. 주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 나무가 애물단지였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특별히 호의를 베풀어서 포도원에 심었는데 결실을 내어야 할 때가 지났음에도 아무런 결실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땅을 덩그렇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무를 심었으면 결실을 맺었을 텐데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 나무는 땅 속에 있는 자양분과 수분을 흡수하므로 다른 나무들이 더 좋은 결실을 내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였습니다. 또한 일꾼들의 노동력도 헛수고로 만들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공원에서 전도하다가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전도지를 주면서 “예수 믿어요”하고 말하자 이 청년은 건네준 전도지를 박박 찢어 버렸습니다. 이 청년의 모습을 본 목사님은 전도가 되고 않되고를 떠나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아도 좋으니 냉면이나 함께 하자고 해서 억지로 음식점으로 데려갔습니다. 청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성탄절에만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인지 다른 아이들보다 이런 저런 선물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생각하기를 ‘나도 이제 평상시에도 교회를 잘 나가야 되겠다’ 고 다짐을 했는데, 그 순간 어떤 여선생님이 오더니 ‘너는 평소에 교회도 안나오던 아이가 웬 선물이 한 보따리냐?’ 하더니 반 이상을 빼앗아서 교회에 잘 나오는 다른 아이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다시는 죽는 날까지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어릴 적 상처가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으로 그 마음속에 남게 된 것입니다.

교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어린 영혼들을 사랑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인데,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그 존재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상실한 것입니다. 게다가 다른 일꾼들의 수고도 헛수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에 열정을 갖기 바랍니다.

토스트예프스키는 “자기를 희생하는 만큼 행복한 여생이 된다” 고 했고, J.F. 케네디는 “여러분이 나라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그것을 묻지 말고 대신에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잎만 무성한 것입니다.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원망과 불평만 앞세운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6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이유는 열매 맺기 위함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수년이 지나도록 열매가 없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베어 버려야 합니다. 땅만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열매 맺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과원지기의 은혜를 입은 무화과나무입니다. 8절 말씀에 보면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없으면 찍어 버리소서하였다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포도원지기가 나무를 베어 버리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내가 둘레도 파주고 거름도 주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간청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원지기이신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가로막고 중재하셔서 우리를 멸망과 심판에서 건지신 것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도 주의 은혜로 덤으로 사는 인생임을 깨닫고 겸손히 열매 맺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추수감사절에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문 뉴욕타임즈지에 실린 “돌아온 탕자” 라는 이야기는 미국전역을 울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뉴욕 맨하탄 39번가의 회사에서 일하는 빈센트 존스는 3년 전 어느 날 출근길에 25센트(약300원)을 구걸하는 노숙자와 마주쳤습니다. 노숙자는 서있기도 불편한 듯 한손은 벽을 집고 , 다른 한 손으로 구걸했습니다. 뉴욕 도심에서 노숙자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존스는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존스는 25센트 동전 2개를 주고 커피와 샌드위치도 사주었습니다. 그는 주로 39번가에 나타나곤 했는데 중증의 알콜중독자였습니다. 그는 술을 사기위해 계속 구걸을 했습니다. 존스는 이 노숙자를 볼 때마다 술을 사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돈을 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스스로 술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존스는 노숙자가 불쌍하기도 했고 노숙자에게 한없이 끌려들어가는 듯한 자기 자신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존스는 “하나님이여 왜 이 사람이 계속해서 나타납니까?” 하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숙자는 레이몬드 로렌스로 존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죽음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로렌스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신발을 다른 노숙자에게 빼앗겨서 맨발로 길에서 자다가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존스는 불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로렌스의 가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로렌스는 열자리 숫자 전화번호 하나를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이동생 캐서린의 전화번호였습니다. 그의 누이동생 캐서린도 뉴욕 39번가에서 출근하고 있었지만 오빠가 그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로렌스는 과거 보스턴에 있는 명문 버클리 음대를 다닌 재즈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바흐의 전주곡을 멋있게 연주했던 그는 알콜중독자로 파멸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로렌스 어머니 알버타의 소재도 확인되고, 그의 어머니 알버타는  고향 버지니아주 포츠머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알버타는 날마다 동네 교회에 나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존스는 로렌스를 바로 고향으로 보낼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 정성스럽게 먹여주고, 씻어주고, 술도 끊게 했습니다. 거의 정상인으로 돌아왔을 때 존스는 로렌스를 포츠머스에 데려갔습니다. 이들을 맞은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시작되는 주일인 21일 존스는 로렌스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로렌스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라는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존스는 혼자말로 “내 친구 레이몬드 로렌스” 하고 부르며 조용히 교회를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빈센트 존스가 실천한 사랑은 과원지기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저주로 인하여 멸망해가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부족하고 연약하여 쓰러지고 넘어지는 자들을 우리가 먼저 용서하고 그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또한 가정이나 교회, 이 사회의 어렵고 힘든 부분들이 모두가 다 내 탓인 줄로 알고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 주인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찍어버리라고 했지만 과원지기는 무화가나무가 열매 맺지 못함을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와 이웃의 잘못을 바로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있는 가정과 교회, 사회는 참으로 살기 좋은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입니다.

랜스 암스트롱이란 사이클 선수가 있습니다.
1999년에 우승하여서 7년 연속 우승을 했습니다. 그는 1996년 고환암에 걸렸는데 생존율 47% 밖에 안되는데 이겨냈습니다. 2003년 투드르 프랑스 자전거 경기대회 15일 째의 일입니다. 그 전날까지 암스트롱은 종합성적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15초 차이로 독일의 얀 울리히(Jan ullrich)가 뒤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내려오는 도중 암스트롱은 응원을 나온 한 어린이의 가방을 피하려다가 가방끈에 핸들이 걸려서 도로에 나 뒹굴었습니다. 뒤쫓아 오던 울리히는 가까스로 피해서 충돌을 면했습니다. 울리히는 한번도 우승해 보지 못한 만년 2인자 입니다. 번번이 암스트롱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치고 나가면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요. 모처럼 암스트롱을 꺾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달리던 울리히는 암스트롱이 넘어진 곳에 와서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암스트롱 선수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함께 달렸습니다. 그 날 구간 우승은 암스트롱이 차지했고 그 여세를 몰아 5년 연속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암스트롱의 5년 연속우승, 7년 연속우승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울리히의 기다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페어플레이를 넘어서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세워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 앞에 많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토록 죄와 허물, 실수로 뒤덮인 추하고 더러운 우리들이 오늘 이 시간까지 생명을 연장 받고 쓰임을 받게 된 것은 길이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열매 맺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도 우리들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이해하고 용서하며 길이 참고 기다려 주면서 받은바 은혜를 보답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주어진 시간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과원지기는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라고 했습니다. 1년 동안 다시 거름을 주고 가꾸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열매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은 시간을 아낍니다. 결코 삶의 의미도 삶의 목적도 잃어버린 채 그냥 무책임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시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을은 기도하는 계절입니다. 빈 마음 공허한 마음에 하늘이 주시는 은혜로 채우는 시간입니다. 또한 가을은 봄에 씨 뿌리고 애써 가꾼 농부들이 싱싱한 열매를 거두는 계절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열매를 찾으시는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야만 합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다리시는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 명의 아들을 둔 자상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식들의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모두 해결해 주는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연말이 되자 아버지가 세 아들을 불렀습니다. “벌써 한 해가 다 갔구나, 그 동안 너희들은 어떻게 보냈는지 말해 보거라”

아버지의 이야기에 첫째 아들은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한  해 동안 사업이 내내 부진하여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여유 있게 말했습니다. “얘야 그런 일에 그렇게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 네가 잃은 돈을 내가 다 회복시켜 줄테니 자신감을 잃지 마라”

둘째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연초에 직장상사와 서로 오해하여 크게 다투었습니다. 지금은 미움을 받아 한직으로 밀려나 힘든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얘야, 살다 보면 그렇게 일이 잘 안풀릴 때도 있단다. 그것도 크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네 직장 상사를 찾아가 너에 대한 오해를 풀어 달라고 얘기해 보겠다”

끝으로 셋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1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연초부터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생각을 많이 했지만 아직은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 해가 다 지나고 나서 아무런 결실이 없어 그저 세월이 아까울 뿐입니다”

셋째의 말에 아버지는 앞의 두 아들에게 보여 주었던 여유 있는 태도와는 달리 몹시 침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정말 한 해를 잘못 보냈구나 세상에서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한 시간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었으니 이 아비는 그것만큼은 도무지 보상해 줄 방법이 없구나” 라고 한숨지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상한 이 아버지의 안타까운 한숨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만일 네가 인생을 사랑한다면 네 시간을 사랑하여라 왜냐하면 인생은 시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간이 오기 전에 주님께 돌아와 열매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국의 가을이 아무리 높고 맑고 아름답다고 해도 열매가 없는 가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번 가을은 기도해오던 일들을 응답받음으로 그 열매로 가득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영혼구원의 열매, 전도의 열매로 풍성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쓸모없다고 기다려 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작년에 열매를 바라며 기다리셨던 하나님은 올해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내 모습이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처지와 같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 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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