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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은 나그네 길 (시 9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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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대중가요 가운데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라는 곡이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1960년대 중반 라디오 연속극의 주제가였다.

그런데 그 '하숙생'이란 노래는 수많은 해가 바뀌고 지나 갔는데도, 아직도 그 노래의 가사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대부분 대중가요는 좋아하는 층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이 노래가 이른바 지식층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생길이 고달프고 허무하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탓이고,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를 체험하며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삶의 고달픔을 한탄한 노래와 시가 많은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에 스스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숙명과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나그네 인생길의 특징은 이정표가 없다.

인간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길 잃은 존재이다. 인생이 어디서부터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스스로는 모른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이라고 했다.
그 분만이 나그네 인생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한번은 공자에게 제자가 내세에 대해 물으니 "이 사람아 땅위의 일도 모르는데 죽은 후를 어떻게 알겠는가?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대답했다.

석가는 바로 이 도(道)를 닦기 위해 출가했다. 하지만 설산에서 수도한 석가도 제자의 집을 심방 했다가 버섯 나물을 잘 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 82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화장된 후 사리무덤에서 살아서 나온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사라림 숲 속의 큰 사라나무 밑에 병들어 누워서 마지막 임종 설법을 했다. 그 설법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석가 자신은 신이 아니므로 자기를 신으로 섬기지 말라고 했다.

성철스님은 위대한 스님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해탈할 길을 발견하기 위해 20년간 산사에서 두문불출하였고 10년간 눕지 않고 좌불자세로 잠을 자며 생노병사의 득도에 애를 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했으나 결국은 해탈의 길을 찾지 못했음을 솔직히 유언으로 고백하고 떠나갔다. "내가 일평생 수많은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속여 내 죄가 수미산을 넘는 도다, 산 채로 아비규환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 도다"
그가 최후로 남긴 천추의 한맺힌 말은, 그는 길과 진리와 생명을 찾지 못했노라고 고백한
것뿐이다.

한 이슬람교인이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 "왜 개종했느냐?"고 주변의 이웃들이 물었다.
"내가 세상을 살다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까 죽은 사람이 있고,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누구에게 물어 보아야 하겠습니까?"
"그야 산 사람이지" "그렇다면 마호맷은 죽었고 예수님은 살았으니 예수님께 길을 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인생의 삶과 죽음 생명의 궁극적 해답은 부활하신 예수님 외에는 가르쳐 줄 수없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하셨다(요14:2-3).

그러므로 인생은 "영원히 안식할 집을 찾아가는 도중" 에 있다 하겠다.
이제 최희준의 하숙생같이 살지말고 인생의 해답이 있는 소망있는 자로 살자.
이 땅위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승리하시다가 마침내 영원한 안식이 있는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자.

당신은 지금 몇시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성경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인생의 삶이 잘 살면 70이요 강건해야 80이라고 고백을 한다.
우리의 인생은 70-80이면 삶을 마감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래서 인생을 70년으로 보고 그것을 하루 24시간 안에 반영시켜 보라.

그랬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나이가 30세면 오후 2시 25분이며 , 40세면 오후 4시 16분이요, 45세면 오후 5시 43분이 된다.
또 나이 50이면 오후 7시가 되고, 55세면 저녁 8시 저녁식사가 끝나고 머잖아 자리를 깔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며, 60세면 밤 10시가 된다.

그러다 70세가 되면 밤 12시 종이 울리며 인생은 생명을 다하게 된다.
당신은 지금 몇 시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버얼써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가?
아니면 점심시간대를 지나고 나른한 오후가 시작되었는가?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야 할 시간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제 이브자리를 펼 때가 가까워 오는가?
인생은 결코 길지 않다.

그래서 권학문에서 “ 소년이노 학난성 이요, 일촌광음 불가경 이라, 미각지당 촌추몽 이요,
개전오옆 기추성 이라 “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나니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말라. 봄날의 연못가에 봄풀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것 같더니 어느덧 오동나무 잎이 바스락바스락 가을소리를 내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처럼 하루살이에 불과 할지 모른다.
곧 날이 저물고 깜깜한 밤 시간에 이르게 될 것이고 자정을 알리는 괘종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살며 만세반석을 쌓을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탐욕 속에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자.
떠날 때는 모두 다 두고 가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라.
그리고 그 위에 당신의 생명을 설계하라.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당신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 이웃들에게
주님을 닮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가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안다면 한층 인생의 무게가 더해질 것이다.

"어둔 밤 쉬 되리니 일할 수 있을 때에 힘써 일하라.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육신의 제한을 벗어나 영원토록 사는 길은 믿음으로 사는 길 뿐이다.
믿음은 칫솔과도 같은 것이다. 정기적으로 매일 사용해야 하는 것,
그러나 남의 것은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의 시계는 단 한번 멈추지만
언제 어느 시간에 멈출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이 내 시간이라 하고 살며 사랑하며 수고하고 미워하지말라.

내일은 믿지 마라.
그 때는 시계가 멈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나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음에도 굳이 이를 외면하다가는
천추의 한이 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라.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이 던져 주신 생명줄인 예수님을 붙잡아라.
정처없이 떠내려가는 세상 막대기를 잡고 함께 흘러가다가는 영원한 비극을 당한다.
하나님이 던져 주신 구원의 생명줄은 예수 하나밖에 없다.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 드린다.
(홍 요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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