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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칭찬과 격려와 축복(삼하 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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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화시키는 힘

어느 택시 회사에 성미가 무척 까다롭고 모가 나서 직장 전체의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드는 한 수리공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인사과장이 그 사람의 해고문제를 사장에게 정식으로 건의했지만 사장은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 칭찬하면서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사장의 그 이야기는 머지않아 수리공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놀랍게도 그 사람은 유능하고 유머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칭찬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칭찬에 인색한 편입니다. 자식도 속사랑으로 키워야지 겉으로 사랑을 표현하면 망친다는 엄격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칭찬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칭찬은 사람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줍니다. 칭찬은 새로운 일을 하게 합니다. 칭찬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모두 긍정적인 성품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꾸중이나 비난보다 먼저 칭찬을 해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기관에서 남자들 수백 명에게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남자들이 살아가는 동안 살맛나는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아내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때라고 대답을 했고 두 번째는 직장에서 일이 잘 되고 동료와 상사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는 때라고 대답했습니다. 칭찬은 사람들을 신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가장 무시무시한 바다의 포식자 범고래, 3톤이 넘는 범고래, 사람이 다루기에는 너무 호전적이고 한 입에 물어 찢어 죽일 수도 있는 범고래를 채찍으로 조련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지만 3톤이 넘는 무게의 범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칭찬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착안해‘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 사이의 반응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그것은‘뒤통수치기 반응’과‘고래반응(칭찬반응)’이라는 겁니다.‘뒤통수치기 반응’은 비판할 항목들을 모아 놓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를 치듯이 쏟아 부어 놓는다는 것이고, 반면에‘고래반응’은 비판과 비난 보다는 늘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인데 아주 간단한 이론이지만 결과에서는 엄청난 반응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겁니다. 인간은 칭찬과 격려를 받을 때 활짝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삶의 현실은 칭찬과 격려 보다는 질책과 책망, 정죄와 저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본지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은 칭찬부터 합니까? 비난부터 합니까? 자녀가 시험점수를 받아 오고 아내나 남편이 무슨 일을 하면 칭찬부터 합니까? 비난부터 합니까?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닦았는데 이 때 남편이 "당신 왠 일이이냐? 오늘 해가 동쪽에서 뜨겠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편이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장미 꽃 한 송이를 사 가지고 저녁에 들어갔는데 이것을 받고 아내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아니야?" 라고 말한다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아이가 모처럼 100점을 받아 왔는데 엄마가 그것을 보자마자 "너 누구 시험지 컨닝한 것 아니니?"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며 칭찬부터 합니까? 비난부터 먼저 하십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70년 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에 모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이 일을 의논하였고(대상 13:1). 온 회중과도 합의했습니다(대상 13:2-4).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뺀 3만 명의 정예를 모았습니다(삼하 6:1). 전국의 유명한 악사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행사였습니다. 새 왕의 등극과 함께 전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법궤) 중심으로 뭉쳐지는 대동단결의 장면입니다. 전 이스라엘의 중심이 그 법궤 앞으로 집결되었습니다. 다윗이 법궤가 들어 올 때 춤을 추었습니다. 70년 만에 들어온 법궤이니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단강을 가를 때,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맨 앞에 나아갔던 능력의 법궤입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 때 찬 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윗이 너무나 좋아 춤을 추며 기뻐하였는데 그의 아내 미갈이 창문으로 그 장면을 본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기며 비웃었습니다. 마음으로 비웃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집에 들어 왔는데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 체통이 참 볼만하더군요. 건달처럼 신하들의 여편네들보는 앞에서 몸을 온통 드러내시다니"(삼하 6:20)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오후 찬양예배시간에 전교인이 하나가 되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로 향한 감사의 한마당을 은혜롭게 가지면서 얼마나 기쁨과 감사가 넘쳤는지 모릅니다. 모든 지단체가 최선을 다해 오랫동안 준비한 찬양을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로 장로님들로 구성된 어느 남선교회 회원들이 어린 아이들처럼 재롱을 섞어 순수한 감사의 고백을 온 성도들 앞에서 표현한 결과 모두가 기뻐하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회원들의 부인들이 체통 없는 일을 했다고 비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역시 우리 교회는 미갈보다는 수준이 앞서는 것이 분명합니다.

비난보다는 칭찬하는 사람이 되자

심리학자들은 "결함이 가장 많은 사람이 남을 가장 많이 비판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한 일을 업신여기고, 경멸하고 조롱하며, 상대방의 약점을 풍자하여 비웃기를 좋아합니다. 미갈이라는 여인은 왜 다윗을 비난했을까요? 남편을 사랑하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남편인 다윗이 법궤가 70년 만에 돌아오니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왕의 체면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베옷 즉 평민의 복장을 하고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자세로 법궤를 맞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고, 사람의 체면을 의식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진솔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미갈은 그의 심중을 몰랐습니다. 그가 왜 그런지 모르고 자신의 체면만 생각했습니다.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셨는데 “심방가면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라”고 권고를 받고, 이제는 심방 가서 눈에 띠는 것 중에 마음이 들기만 하면 칭찬을 합니다. 그 중에 한 집에 갔는데 참 가난한 집이었는데 특별히 칭찬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책상보였습니다. 그 사모님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는데 그날 저녁, 선물이 왔는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사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겠습니까? 그런데 다음 주일날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사모가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앗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성도들이 모여 수군수군한 것입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네가 만약에 소자 한 사람을 실족케 하면 네 목에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 낳다"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면서 서로를 세워 주며 살아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이나 약점은 사랑으로 덮어주고, 절대로 조롱하거나 비웃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들어오니까 너무 좋아서 기뻐 춤을 춥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법궤를 메고 온 사람만 아니라 모든 백성을 축복합니다. 이 말씀 속에는 백성들을 칭찬했다는 말도 포함되고 백성에게 떡을 나누어 주고 자기 가족도 축복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축복하며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못한다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다른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교인들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데도 아무도 웃지를 않습니다. 별 소리를 해도 눈만 끔벅끔벅하지 아멘 소리도 하지 않습니다. 이 목사님이 아무리 해도 반응이 없으니 교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웃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한 여자 성도님이 용감하게 "당회의 허락이 떨어져야 웃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눅이 들었으면 그렇겠습니까?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칭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부족한 점이 있다하여도 칭찬해야 합니다. 서로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한다하여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칭찬하셨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칭찬하신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백부장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군인 백 명을 거느린 로마 사람 장교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를 점령하고 있던 로마 사람들을 멸시하고 미워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아주 더러운 이방 사람들이라고 단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 사람 백부장을 인정하고 칭찬했습니다. 보통으로 인정하고 칭찬한 것이 아니고 최고로 인정하고 최고로 칭찬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물론 백부장에게 칭찬 받을 만한 착함과 믿음이 있기는 했습니다. 자기 하인이 병들었을 때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이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착한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축복을 선언했습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 찌어다." 예수님의 칭찬을 들은 백부장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어서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칭찬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 시킵니다.

마태복음 9장에 열 두 해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온 몸에서 피가 흐르는 수치스러운 병을 가진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저주 받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가까이 하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자를 인정하고 칭찬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들은 그를 돌이켜 보지도 않았고 그에게 관심을 두려고도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돌이켜 그 여자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물론 그 여자에게 칭찬 받을 만한 믿음이 있기는 했습니다.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함이라." 그 여자를 가리켜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칭찬했고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의 칭찬을 듣고 고침을 받은 그 여자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칭찬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미갈이 비난한다고 법궤가 예루살렘에 오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에 맞지 않아 비난한다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비난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소리 지르지 않으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르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남이 봉사하는 것을 보고, 다른 성도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칭찬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칭찬 한 마디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 학교에서는 우등생이었습니다. 같은 학생인데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꾸중과 비판과 질책이 있었고,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인정과 신뢰와 칭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신뢰와 칭찬과 격려는 에디슨을 세계적인 발명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칭찬하지 못하고 비난한 결과

미갈은 남편의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여인, 하나님께로 부터도 버림을 받아야 하는 여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남편을 칭찬하거나 축복하지 못하고 조롱하고 비웃다 당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징계를 보면서 하나님도 너무하셨다고 말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남편 다윗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미갈은 얼마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까? 사울 가는 망했는데도 다윗은 미갈을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잊고 비난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비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모르고 자기의 자존심, 자신이 조금 손해된다고 다른 사람을 비난합니다.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서 비난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해 줍시다. 오히려 다윗처럼 축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붓은 마리아를 보며 주님께 '왜 허비하는가?'라고 비난하는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칭찬 받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되자

칭찬은 참 좋은 것입니다. 칭찬은 받아도 좋고 칭찬은 해도 좋습니다. 칭찬은 받아도 기분이 좋고 칭찬은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도 칭찬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칭찬을 받으려면 칭찬을 받을 만한 무엇이 조금은 있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도 칭찬을 받았고 하인들에게도 칭찬을 받았고 유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기도와 구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들도 칭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기도하는 믿음과 남을 돕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자꾸 받으면 우리는 그런 사람으로 되어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헵시바라 쁄라라고 칭찬하시면 우리는 기쁨의 사람이 되어가고 사랑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충성된 종이라고 자꾸 칭찬하시면 우리는 점점 충성된 종이 되어갑니다. 칭찬은 사람을 만듭니다.

성경에는 칭찬을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칭찬을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칭찬을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데마도 칭찬을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칭찬해야 하는 이유 두 가지

여러분들 모두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을 칭찬하고 남편은 아내를 칭찬하시기 바라고, 목회자들은 신자들을 칭찬하고 신자들은 목회자들을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사는 믿지 않은 불신자들도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람을 칭찬해야 하는 이유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사람은 누구나 자연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가 그 자연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을 칭찬할 때 그 선함과 아름다움이 발전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람은 누구나 믿음을 가지기 시작할 때 영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이 피어나는데 우리가 그 영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을 칭찬할 때 그 영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더 발전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격려하며 칭찬하며 영혼을 빛나게 하자!

누가 있어 무한한 위로를 줍니까? 누가 있어 무한히 격려해 줍니까? 누가 있어 무한 칭찬과 사랑을 줍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한없는 용서와 위로, 한없는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고 계십니다. 우리는 무한용서, 무한 사랑, 무한 격려의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 하나님의 격려를 받은 나! 우리는 이런 주님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까닭에 우리도 주님의 그림자 되어 격려하며 칭찬하며 사랑하며 삽시다. 그렇게 살아 사람들을 살리고, 춤추게 하고, 꽃피게 하고 빛나게 하고, 반짝이게 하고, 그렇게 삽시다! 얼굴이 환해지고 마음이 환해지고 영혼이 빛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증거, 영혼을 살리는 일이 아닙니까?

저는 목회사역을 하면서 아주 행복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아주 멋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주 행복합니다. 우리 교회도 사역의 현장에 아주 멋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심을 다해 사역하는 분들을 대할 때, 마음껏 재능을 발휘해 주님을 위해 쓰는 걸 볼 때 마음껏 자랑하고 칭찬하고 싶어질 때가가 많습니다. 또 그 외에도 거룩을 향해 투쟁하고 몸부림치는 걸 볼 때, 멋있게 성장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을 향해 순전한 마음을 가지는 걸 볼 때, 먼먼 방황에서 돌아와 주님 앞에 서는 것을 볼 때, 믿음으로 살려고 그렇게도 애쓰고 노력하는 걸 볼 때, 전도의 현장에서 정말로 눈물겹게 수고하는 분들을 지켜볼 때 저는 이런 멋있는 분들에 둘러싸여 사역을 하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을 때가 많습니다.

칭찬과 격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룩한 사역

우리는 다른 것은 몰라도 영혼을 빛나게 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칭찬과 격려에서 나옵니다. 이건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건 명예가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재능이 없어도 못 배워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룩한 사역,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춤추게 하고 영혼을 빛나게 하는 일. 이 일에 평생 목숨을 걸어 봅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간과계를 꽃처럼 피어나고, 보석처럼 빛나고, 별처럼 반짝이게 해 봅시다.

여러분들 서로 서로 칭찬하십시다. 칭찬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못난 것들을 보시고 황송하게도 예쁘다, 사랑스럽다, 아름답다, 의롭다, 충성스럽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을 칭찬합니다. 우리들도 서로 서로 칭찬하면서 사십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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