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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영을 주소서 (겔 1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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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한 다음,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에스겔도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발 강 가에서 환상을 보고 그것을 적은 것이 바로 에스겔서입니다.
그 때 일부 백성은 예루살렘에 남아있었습니다.
남아있던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 있는 사람들을 향해 좋지 않은 소리를 했습니다.
15절 뒷부분에 그들이 한 좋지 않은 소리가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이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예루살렘 이 땅은 이제 우리 것이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참 고약한 소리입니다. ‘여러분, 먼 외국 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까? 속히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기 바랍니다.’ 해야 할 텐데 그 반대의 소리를 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을 보면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쓸 만한 사람들은 잡아가고 비천한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남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세상이다.’ 하는 마음으로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의 흐름에서는 잠깐 벗어나는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중국동포들이나 구소련지역의 동포들에 대해서 우리가 마찬가지의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분들은 일제 때 일본에 의해서 이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후손들입니다.
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간 사람들의 후손들입니다.
그 때 나라의 힘이 약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들이 좀 못 산다고 해서 한국이 그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있는 사람들이 이 소리를 전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끌려가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으고 이스라엘 땅을 그들에게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17절)

16절 뒷부분을 보세요.
하나님은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의 성소가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면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성소를 만드는 것이지 성소가 하나님의 임재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당을 성소 가운데 성소로 삼으면서, 동시에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이 계신 곳, 거룩한 곳, 성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터가 또한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해서 그 곳이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19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마음, 일치된 마음과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19절에 있는 “그 속에 새 영을 주고” 이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이 새 영이라는 말이 예전 성경, 「개역성경」에는 “새 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원어는 “루하으 하다샤”인데 “새로운 정신”이라는 뜻입니다.

에스겔은 여러 곳에 이 “새 영”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18장 31절에는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라고 말하고 있고 에스겔서 36장 26절에서 28절까지에서는 오늘 본문과 거의 비슷한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은 새 영을 강조한 예언자입니다.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새 영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새 영을 받아야합니다.
우리 민족이 새 영을 받아야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게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신 주여, 우리에게도 새 영, 새로운 정신을 주옵소서.’ 기도하시어서 새 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 영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새 영을 받으면 의욕이 넘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인들, 의욕을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아무런 소망이 없다. 이 강대한 바벨론 제국에서 우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포로로 지내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듣자니 예루살렘 성은 잿더미가 되었다고 하더라. 여기에서 이대로 이 사람들이 섬기는 말둑 신을 섬기며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이 새로운 의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여기시고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은 비극적인 일, 위험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질병 가운데 근육이 점점 힘을 잃고 굳어져 버리는 근무력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몸을 차차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무서운 질병입니다.
그런데 근무력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의욕무력증입니다. 보통 의욕상실증이라고 합니다.
이 의욕상실증에 걸리면 슬럼프에 빠지고 탈진상태가 됩니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이것을 ‘대피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엘리야에게 이 의욕상실증이 찾아왔습니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밑에 앉아서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의욕상실증은 주변에 빠르게 전염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의욕을 잃고  디베랴 호수에 모였습니다.
디베라 호수는 많은 제자들이 제자로 부름 받기 이전에 어부로 일하던 곳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포기했다.  먹고 살기 위해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가겠다.‘ 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리에 도마,  나다나엘, 요한, 야고보,  또 다른 제자 둘이 있었는데 요한복음 21장 3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했습니다.
베드로의 의욕상실증이 순식간에 이들에게 전염되어서 집단의욕상실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의욕상실증이 전염되는 것은 조류독감 전염보다 더 빠르고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제일 치료하기 힘든 환자는 낫겠다는 의욕, 또는 살겠다는 의욕을 포기한 환자들입니다.
살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환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의욕을 잃은 가운데 있습니까?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까?
‘하나님, 내게 새 영을 주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 영, 새 정신을 주어 의욕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욱 넘치는 의욕을 가지고 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흔히 나이가 많아지면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그저 현상유지에 힘쓴다고 합니다.  안전제일주의로 나간다고 합니다.
정년퇴직한 분들이 좀처럼 새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이 안전제일주의가 잘못되면 무사안일주의가 되기 쉽습니다.
이번 분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둘, 최근에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하나는 최의원이라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구약학자인데 올해 여든한 살입니다.
이 분이 일흔세 살이 되던 해에 ‘구약성경을 순수한 우리말로 번역해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최의원 목사님은 우선 키가 높은 책상부터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 작업을 끝내려면 앞으로 10년쯤 걸릴 텐데 앉아서 이 작업을 하면 근육무력증이 찾아오기 쉽다. 서서 해야 하겠다.’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합니다.
최 목사님은 8년 만에 이 작업을 끝냈습니다. 하나님은 의욕을 갖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셔서 그가 계획하는 일이 예정했던 것보다 빨리 끝나게 하십니다.
최의원 목사님은 구약성경을 히브리 원어에서 직접 번역하면서 외래어를 쓰지 않고 한문 투의 단어까지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원칙을 지켰다고 합니다.
예전 성경의 창세기 3장에 “화염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불꽃이 튀기는 칼’이라고 했고 버터는 ‘쇠젖기름,’ 치즈는 ‘쇠젖묵’이라는 새 말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최 목사님은 이렇게 번역한 성경의 제목을 「새 즈믄 우리말 구약정경」이라고 했는데 잘 아시는 대로 ‘즈믄’은 ‘천’의 우리말입니다.
오늘은 한글날인데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매우 기뻐하실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70대 중반에 성경 번역에 도전하는 것, 얼마나 놀라운 의욕입니까?
하나님께서 새 영을 주시면, 새 정신을 주시면 성도 여러분도 그런 의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에게도 새 영을 주셔서 그런 의욕, 그보다 더 큰 의욕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분에 대한 것입니다.
안동에 최의숙(崔義淑)이라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올해 나이 아흔 살, 안동교회 원로목사님의 사모님입니다.
최의숙 사모님은 지난 25년 동안 한국, 영어, 일어로 네 번씩 필사했다고 합니다.
세 나라 말로 필사했으니까 성경을 열두 번 필사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록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분은 그동안 필사한 성경들을 아들 셋과 교회 도서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최의숙 사모님은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올해 아흔입니다.
그런데 출가한 두 딸에게 줄 성경필사본을 완성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하루 열 시간씩 성경을 정성껏 옮겨 쓰고 있다고 합니다. 대단한 의욕이지요.
성경을 필사하는 동안에 고혈압도 없어졌고 눈도 밝아져서 돋보기를 안 쓰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욕이 있으면 하나님이 건강도 지켜 주십니다.

여기 연세 많은 분들, 새 영을 달라고 간구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을 받아 새로운 의욕, 큰 의욕을 갖고 사시기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새 영을 주셔서 넘치는 의욕을 갖고 가운데 활기 있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새 영을 받으면 큰 힘을 받아,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여러 명의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사사라고 하면 타고난 영웅, 타고난 장사,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잘 살펴보면 사사 가운데는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 당시 왼손잡이는 장애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드보라는 여자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여자는 싸움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에는 기드온의 소심한 행동이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은 또 아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칠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정식 아내들 말고도 첩이 있었습니다.
여자를 좋아했고 무절제한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서 가출한 사람입니다.
잡류들과 어울렸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조폭이었습니다.

이런 사사들이 어떻게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첫 사사는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을 비롯해서 삼갈, 입산, 압돈 이런 사사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소사사라고 부릅니다.
첫 사사 옷니엘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사사기 3장 10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에게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라사다임을 이기니라

여호와의 영은 기드온에게도 임합니다.
사사기 6장 34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사사기 11장 29절은 입다에게도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고 말합니다.
삼손의 이야기에는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이야기가 유난히 여러 번 나옵니다.
사사기 13장 25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사사기 14장 6절, 삼손이 딤나라는 곳에서 젊은 사자와 맞닥뜨렸을 때의 일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의 영이 임했기 때문에  삼손은 아스글론 사람 삼십 명을 죽일 수 있었고,(삿 14: 19)
자기를 결박한 새 밧줄 둘을 불탄 삼과 같이 끊을 수 있었습니다.(삿15: 14)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서 떠났을 때 그는 무기력하게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힙니다.

사도행전은 성령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릅니다.
사사기 역시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일한 기록이기 때문에 마찬가지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인류의 역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선포한 예언은 시대와 나라와 개인이 가야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GPS나 네비게이션은 자꾸 새 것이 나옵니다만 예언서는 2,000여 년 전의 것인데도 성능이 변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언자들 가운데는 그 출신이 아주 낮고 성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여러분, 예레미야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렇습니다. ‘눈물의 예언자’였습니다. 좋게 말해서 눈물의 예언자인데 알기 쉽게 두 글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울보입니다.
에스겔, 다니엘, 포로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호세아, 가정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모스 양을 치며 뽕나무를 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요나, 다시스로 도망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니느웨가 구원 받는 것을 보고 싫어했습니다. 편협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미가,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이런 사람들 입에서 어떻게 그렇게 날카로운 예언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감 없는 예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내게도 새 영을 주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을 받아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새 영을 주소서. 그래서 큰 일을 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하나님, 이 민족에 새 영을 주소서. 그래서 세계를 위해서 큰 일을 하는 민족,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민족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새 영을 받으면 생활이 새로워집니다.

새 영에서 새 생활이 나옵니다.
새 영이 없는 새 생활은 껍데기 새 생활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외식(外飾)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이야기는 새 영을 받은 사람으로서 에스겔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지금 바벨론에 있는데 주의 영이 그를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스물다섯 명이 동문에 모여 있습니다.
이들은 백성의 고관들인데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꾸미는 사람들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들에게 심판을 예언합니다.
예언을 할 때 그 가운데 하나, 블라댜라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에스겔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참 무섭군요. 어떻게 말씀하시자마자 그대로 됩니까? 그리고 하나님, 참, 잘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백성의 고관인데 어떻게 이렇게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꾸밀 수 있습니까? 하나님, 나머지 스물네 사람도 이 블라댜 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했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3절 뒷부분을 보세요. 에스겔은 엎드려 큰 소리로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부르짖었습니다.
‘저들을 살려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미워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하면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기가 참 힘이 듭니다.’ 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아는 분들은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라고 대답합니다.
새 영을 받으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더 힘이 듭니다.
20절 앞부분을 보세요.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어 합니다.
20절 중간 부분을 보세요.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새 영을 받은 사람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습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은 새 영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되십니다.
새 영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존재입니다.
‘너무나 먼 당신’입니다.
나와는 깊은 관계가 없는 존재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존재입니다.
관념적인 존재입니다.
어렵고 힘이 들 때만 잠깐 찾고 잊어버리는 존재입니다.

새 영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목자가 되십니다.
상담자가 되십니다. 
잠시 잠깐의 하나님이 아니라, 스물네 시간의 하나님, 365일의 하나님, 내 평생 함께 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에스겔서 37장은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입니다.
이 환상의 이야기는 37장 1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라는 말로, 하나님이 영으로 역사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았다면 에스겔은 골짜기에 가득한 뼈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으면 우리는 뼈가 가득한 골짜기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을 받으면 우리는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에스겔이 대언하니까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고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고 극히 큰 군대가 됩니다.
이 환상은 에스겔서 37장 14절의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이 납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경의 여러 환상들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환상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영으로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려가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영을 우리 가운데 두겠다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영으로 시작해서 영으로 끝납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새 영을 주셔야만 진정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약속하는 말씀인데 회복에는 영적 회복이 선행되어야합니다.
새 영을 받는 회복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회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새 영, 새 심령을 주시고 새 언약을 마음 판에 새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백성에게 순종할 수 있는 동기를 주셔서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며  변화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가 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 우리에게도 새 영을 주소서!‘ 하는 기도, 중요한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새 영에서 여러 가지가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새 성전을 주셨는데 우리가 이 새 성전에 합당한 새 영 받은 성도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을 중심으로 새 영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도 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을 할 때도 영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서

그런즉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칩니다.

‘유다 백성에게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 나에게도, 우리 교회에게도, 우리 민족에게도 새 영을 주소서!’ 힘써 기도하여 새 영을 받아 새로운 의욕을 갖는 성도들, 큰 힘을 받아 큰 일을 하는 성도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고, 또 새로운 생활을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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