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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건축의 다섯 시점 (학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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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건축의 다섯 시점 (학1:1-11)

(요약)

구약의 성전건축은 신약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개인 신앙의 완성을 의미한다. 학개서에 나타난 건축의 여러 시점은 신앙의 단계를 보여준다. 먼저 불신자 상태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때가 있다. 다음은 말씀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때이다. 다음은 인내하며 말씀을 믿음으로 계속하는 때이다. 다음은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이 임하는 때이다. 그리고 성도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사명을 감당하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때이다. 처음 시작한 믿음을 끝까지 잘 잡아 견고한 성전의 터전을 이루어야 한다.

(설교)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시지만 시대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은 각각 달랐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을 모시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아름답던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첩 놓이지 않고 로마군에 의해 무너집니다. 왜 무너졌을까요?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의미는 구약의 보이는 성전시대가 끝나고 우리 성도들이 성전이 되는 보이지 않는 성전시대가 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예수 믿는 모임인 교회가 성전이요(엡2:21-22), 우리 성도들이 성전입니다. 지금도 행7:49의 말씀처럼 변함이 없이 천상천하 우주가 모두 하나님의 성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늘의 하늘도 우리 하나님을 용납하기 비좁은데 그 크신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우리 같은 맘 좁고 또 좁은 죄인을 택하셔서 성전 삼고 임하여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학개서의 말씀은 보이는 성전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성전 건축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섯 단계의 성전 건축 시점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임하시는 영의 단계를 보여주는 진리로서 우리가 성전을 바로 건축하려면 약 다섯 시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시간 나의 신앙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거하실 아름다운 심령성전을 건축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성전건축의 다섯 시점은 무엇일까요?

1. 첫 번째의 시점은 예수 복음을 전도 받는 때입니다.

1절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그랬습니다.
이 6월 초 하루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개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만 불순종하고 있는 때입니다. 불신자에게 적용한다면 전도를 받지만 아직 예수 믿지 않는 때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말씀이 다가왔다는 점에서 귀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에게 적용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없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기능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유월 초하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때의 삶이란 생명도 기쁨도 만족도 없는 때입니다. 거기엔 행복이 없어요.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학1:6-11에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은 심령은 만족이 없어요. 인간은 하나님을 모시도록 창조되어졌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학1:7)고 말씀하십니다.

2. 두 번째 시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경외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12-15절을 보면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 때는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했습니다.

두 번째의 성전 건축 시점은 6월 24일,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듣고 순종을 결단하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일하는 법을 봅니다. 나 혼자만 각성했을 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각성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러나 13절에 나와 있듯 이스라엘이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돌아온 것은 여호와께서 총독의 마음과 대제사장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켰기 때문입니다. 여기 흥분시켰다란 성령의 감동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번째 시점이 되면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을 잘 받아요. 아무리 성령이 역사하셔도 완악하면 감동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의 문을 엽니다. 하나님의 감화가 있고 감동이 있고 순종이 있는 때입니다. 말씀을 듣고 통회하고 돌아섭니다. 밭으로 말하면 옥토가 되는 때입니다. 옥토만 되면 농사는 이미 성공한 것 아닙니까?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려면 말씀 듣고 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세 번째의 때는 인내하며 믿음으로 계속하여 전진하는 때입니다.

2장 1절에 “칠월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그랬습니다.
이 세 번째 시점은 7월 21일인데 이때는 성전 재건이 계속 진행되는 때입니다. 이때는 무엇보다 인내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인내하고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까? 2장 3절에 나와 있는 대로 아직 건축의 결실도 나타나 보이지도 않고 또 해 놓은 것이 눈에 보잘 것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건축해 보았지만 처음에는 터도 좁은 것 같고 윤곽이 안 나타나니 재미도 없고 일도 힘들고 언제 끝날지 막막합니다. 그러나 다 지어지면 그 때야 기쁘고 힘이 생겨나고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무엇도 해 놓고 싶지만 한참 건축 중일 때는 용기가 잘 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축복을 누리기 전까지는 막막하고 답답하고 정말 이 길이 복된 길이고 영광의 길이고 생명의 길인지 쉽게 마음에 와 닿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어 말씀에 서고 서고 또 서고 몸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고 순종하며 나를 내려놓고 전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롬5:3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했습니다. 지금 많은 성도들이 지금 이 칠월 이십일일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용기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2:4절-9에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계십니다. 지금 이 가운데 있으니 계속하여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4. 네 번째 시점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2:10에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둘째 셋째 계속하여 믿음 가지고 전진하면 드디어 네 번째의 때를 맞게 됩니다. 그 때가 9월 24일입니다. 드디어 돌 위에 돌이 놓이고,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였습니다. 이 지대가 놓였다는 것은 우리 신앙이 제대로 잡혀져서 이제 반석이신 주님께서 중심에 들어오셨다는 말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응답이 오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경험되고 영혼에 평안도 오고 천국의 기쁨도 오고 의롭게 살아지기도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현실로 느낍니다.

그러므로 이 날이 오기 위하여 예수님을 주로 믿고 그 앞에 순복하며 온전히 예수님의 복음에 서고 하나님께 기도와 예배생활 잘하며 주의 말씀 따라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이 되도록 제대로 훈련해야 합니다. 이 기초가 잘 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말씀을 들었어도 기초가 얼마나 잘되었느냐는 다릅니다. 기초가 잘 되면 그 심령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지금까지는 부정한 죄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이 네 번째 시점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모두 다 처리하시고 더 이상 진노하지 않으시고 기뻐하사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9월 24일 경은 이스라엘의 철로 보아 이른 비가 내리는 때라고 합니다. 철은 못 속이잖아요. 이번에 전날까지 얼마나 추웠습니까? 그러나 입춘이 되니 바로 풀리잖습니까? 그러므로 이 이른 비는 바로 성도들에게 부어 성령 충만입니다. 이처럼 우리 심령만 준비가 되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5. 그런데 학개서 마지막 부분에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또 하나의 날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2장 21-23절에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23절에 그 날이라는 날이 있습니다. 이 날은 정해져 있으나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날입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날로서 궁극적으로는 재림의 날이요 가깝게는 성령 강림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온전케 하시는 날이요, 능력 주셔서 귀히 쓰시는 날입니다. 이 다섯 시점가지 온 성도들은 능력에 사로잡혀 예수 복음 들고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건축자를 귀히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히3:6에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처음 시작한 이 믿음을 계속해 나가십시다. 온전한 믿음과 경건의 훈련을 받으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터가 세워져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날이 오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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