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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점명중(打點命中) (고전 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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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10월의 마지막 주일이네요. 오늘도 말씀 안에서 풍성한 영혼의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어떤 남자가 질문을 받았답니다. 당신 교회 목사님의 눈동자 색깔은 무슨 색인가요? (아마 외국의 경우였나 봅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했답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기도할 땐 목사님이 눈을 감으셔서 볼 수가 없었고, 설교할 땐 제가 눈을 감아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
오늘 여러분은 제 눈동자 색이 어떤 색인지 확실히 알고 가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주보에 고린도전서 9장 전체를 읽어 오실 것을 예고해 드렸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사도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 변증(辨證)하는 내용입니다. 다른 사도들처럼 마땅히 권리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바울은 스스로 자유인이 되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많은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서는 유대인이, 율법없는 자들 앞에서는 율법없는 사람처럼,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줏대없는 사람이나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보통 자신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또한 못할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설교할 때에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대부분 [표준새번역 성경]을 인용합니다. 저 또한 평생 교회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개역성경이 익숙하지만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 가운데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개역성경의 문체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말투도 가급적 교회스럽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목사스럽게 목소리를 거룩하게 내는 것이 저에게도 권위적으로 보이게 되는 플러스 요인이 되겠지만 그 또한 역시 갓 교회에 나오신 분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억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생각(목회철학이라고 부르기엔 좀 부담스럽지만)은 화학조미료, 인공조미료를 가급적 빼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니고 있는 맛 그 자체를 성도들이 맛보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혹시 조미료 맛 좋아하시나요? ^^)

■ 상받기 위하여...! 푯대 인생!
사도바울의 인생은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인생>입니다.

(빌 3:13-14)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상을 받기 위한 달음질... 이것은 결코 우리의 이기심이 될 수 없습니다. “상 받을려고 교회 다니나?” 라고 쉽게 비웃지 마시길 바랍니다. 운동선수들이 얼마나 뼈를 깎고, 근육이 터져나갈 듯한 고통을 겪으면서 연습을 합니까? 스포츠 선수들 쉽게 돈 번다고 비웃을 수 있지만 아마 운동하는 분들만큼 그분들이 영업을 뛰고, 장사를 해도 저는 성공할 수 있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뜀박질하는 목적은 단 하나, 상 받기 위해서입니다. 상이 뭐 대단해~ 하면서 건성건성 사는 인생보다는 오히려 상을 받으려고 바짝 자신의 삶을 추슬러 열심히 사는 인생에 전 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신앙의 길에도 상이 있습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바로 앞 구절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9:24)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이 말씀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우리가 받을 상은 하늘에서 받을 것이지만 교회에서 상을 주는 것은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뭐다 해서 교회에서는 상을 잘 안주는 것이 은혜로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늘에서 상을 받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도 상 받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 받는 사람은 물론 한 사람이기 때문에 상 못 받는 더 많은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상을 못 줄 수도 있습니다. 상 받는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 상 받는 사람 1 - 자기 절제
상을 목표로 한 사람은 가장 먼저 자기 절제부터 해야 합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자기 절제가 기본입니다.
운동선수들, 자기 절제 참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TV나 신문에 등장하는 선수 정도가 되려면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자기 절제를 통과한 선수들입니다. 권투선수가 체급을 통과하는데 코치에게 침 삼켰다고 야단맞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 정도까지..?’라는 생각이 든 적 있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수영 금메달을 딴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선수는 ‘수영 선수는 땀을 안 흘리는 것 같지만 자신이 흘린 땀을 다 합치면 수영장을 다 채울만큼 흘렸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태릉에서 훈련하는 체조선수를 인터뷰 하는데 소원이 뭐냐고 물으니, ‘삽겹살 한번 실컷 먹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독일에서 출간된 지 2주일 만에 7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의 외무부 장관이면서 부총리인 [요쉬카 피셔]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쓴 책은 정치 평론이나, 세계정세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나는 달린다.>라는 제목입니다.
피셔 장관은 푸주간집 아들로 태어난 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삶의 밑바닥을 헤매며 방랑하는 많은 시간들을 보냅니다. 택시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중에 드디어 그는 35세 나이에 연방 의회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헤센주 환경장관이 되면서부터 일약 정치가로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는 키 181cm에 75kg의 몸을 가진 멋진 사람이었었지만 더 높은 정치적 입지를 얻기 위해 뛰다보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럴 때마다 먹고 마시는 일을 반복 했답니다. 그 결과 몸무게가 112kg가 나가는 거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1996년에 그의 아내에게 이혼 통고를 받았습니다. 이혼 사유가 너무 뚱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되돌아 보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75kg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 방법으로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끈기 있는 지속, 철저한 자기 관리, 그리고 꾸준한 인내로 다시 75kg 몸매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 22살 연하의 젊은 여성과 재혼하여 다시 한번 화제에 오르내린 적이 있습니다. (여성분들이 좀 싫어하시겠지만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5번 결혼한 독일의 분위기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 몸 하나도 내가 조정하지 못한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미국에서도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준회원으로 허입해서 몇차례의 시험과 면접을 통과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어느 목회자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목회자 진급에서 누락되었답니다. 그 이유는, 자기 관리도 잘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러 성도들의 영혼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체질적으로 몸집이 크신 분들에겐 죄송한 말씀인데, 자기 절제가 안되는 사람에 대한 경종으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고전 9:25)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어지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곧 말라서 바삭바삭 부서져 버리는 월계관을 위해서도 뼈를 깎는 노력과 허파가 터질듯한 고통을 견디는데,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는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상 받기 위한 목표를 갖고 신앙생활에 임하고 있는가?
또 그 상을 받기 위해 나는 어떤 실천적인 생활의 습관, 절제를 삶 속에서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은 결코 관람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아무리 내가 경기장의 트랙을 벗어나고 싶어도 우리가 숨쉬는 이 생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이상 우리는 경주자입니다. 이왕 한번 사는 인생이라면 상받는 인생으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상 받는 사람 2 - 방향을 잡고, 정확한 타점을!
경주자의 자세가 자기 절제라면, 경주자의 요령은 26절의 말씀에 나옵니다.

(고전 9:26)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달음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홍만 선수가 K-1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knee-kick, 무릎치기 하나로 상대방을 눕혀 버렸습니다. 잔 펀치 소용없더군요. 확실한 한 방이면 경기가 끝납니다.
아무리 슈팅을 많이 날려도 정확히 골문을 향해 쏜 슛이 골대에 꽂히는 것 하나만 못합니다. 흔히 경기에선 이기고 스코어에선 졌다라고 위로의 평가가 나오지만 경기는 역시 경기인 것입니다.

어떻게...? Know-how 의 삶 이전에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Know-why? 왜? 라고 물어야 합니다.
‘어떻게 돈을 벌지?’ 라고 묻기 전에 돈 버는 목적에 대해 먼저 하나님께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대학가지?’라고 무작정 달릴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떻게 해야 부흥하지?’라고 고민하기 전에 우리 교회가 이곳에 왜 서있는가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방법의 문제>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문제> 때문에 쓰러집니다. 의미없는 달리기는 지칩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공허한 삶은 몸부림치면 칠수록 ‘그래서 뭐하겠다는거지?’라는 삶의 회의를 더 가속화시킬 뿐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Nihilism, 허무주의입니다.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은 ‘그까이꺼... 뭐 대충...’하는 식의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살아 버립니다. 의미와 목적을 묻는 질문엔, ‘그냥요... 좋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의미대신 감각, 진지한 삶의 고민보다는 순간적인 육체적 욕구가 더 우리를 움직여 가는 동력원이 됩니다.

목회상담학자인 하워드 클라인벨이라고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쓴 [Well Being] 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즉 어떻게 하면 당신의 마음을 더 강력하게 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부분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첫째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가치를 받고 태어난 존재라는 자기 존재 의식, 다시 말해서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내가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정해졌다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얻어야합니다. 외교관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학을 습득해야 합니다.
셋째는 스스로를 이끄는 내적인 힘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이죠. 내 스스로가 자신을 볼 때에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도 신뢰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큰 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쓰고 있다면 정확한 목적을 위해 시간관리를 하시기 바랍니다.
허공을 치듯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면 좀 더 타점을 좁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살려하는데 시간이 없다고요? 친목계다, 동창회다, 계모임... 그런 거 몇 개 끊어도 큰 일 나지 않습니다. 저희 집에 TV를 아예 없앴습니다. TV 없이, 끄고 살아도 아직까지 별일 없이 우리 식구 잘 살고 있습니다.
무의미하게 언저리만 쳐서는 타점을 올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담장을 넘기는 멋진 타격이 나와도 파울 볼이 되면 타점을 올릴 수 없습니다.

■ 상 받는 사람 3 -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
Cumming Walk라는 사회학자는 인생 삶의 성공 요소를 4가지로 말합니다.
1. 목적[Goal]이 있어야 한다.
2. 지식[Knowledge]이 있어야 한다.
3. 기술[Technique]이 있어야 한다.
4. 태도[Attitude]가 중요하다.
이 중에서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4번째 태도인데 93%의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삶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9: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가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그 의미가 좀 더 다가옵니다.

(고전 9:27)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서 이기자고 외쳐 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엔 패자 부활전이 없습니다. 단 한번의 플레이로 끝나는 일생일대의 한판 경주인 것입니다.
연장전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 정직하게 설 뿐입니다.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눈 속임해서 위기를 모면하거나, 연기를 잘 해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꾸밀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편법이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순간순간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고, 얕은 수로 순간을 모면하는 것으로 유혹해 갑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공항에 가면 저절로 줄일 설 수 밖에 없도록 끈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여권 검사를 위해 immigration 수속대 앞에 서면 노란 선이 있는데, Waiting here 라고 써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 선이 질서를 잡아 줍니다. 이번 지방회에서 필리핀 갔을 때에도 공항에서 어떤 분이 이미 라인이 닫혔는데도 줄이 짧게 서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서 있다가 거부 당하고 다시 줄의 맨 끝으로 내 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 라인을 어기면 안됩니다.

우리나라 사람 질서 안 지킨다고 질서운동 표어가 곳곳에 나부낄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질서 잘 지킵니다. 저도 뉴욕에 갔을 때에 신호등 빨간등이 되면 대한민국의 명예를 걸고 횡단보도 안 건넜는데 미국사람들이 안 건너는 사람 보면 ‘저 사람 한국인이야.’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한국 사람들 신호 잘 지킵니다.)
그런데 은행에 어느 때부턴가 번호표를 뽑는 기계가 들어오고 나서 줄 서서 기다리는 불편도 없어지고, 누가 먼저왔느니, 늦게왔느니 하면서 싸울 일도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질서를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립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상 받기 위한 자기 절제, 스스로 자기 몸을 쳐서 복종 시킬 수 있는 영적 장치를 마련하시라는 것을 권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원칙을 세우십시오.
죽어도 양보할 수 없는 신앙과 양심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십시오.
주일 성수, 십일조에 대한 삶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시고 그것을 가족들과 속회원, 선교회원들 앞에 공포하십시오.
삶의 질적 성숙을 위한, 시간관리를 위한 결심을 주위의 친구들에게 선포하십시오.

인도의 시성 R.Tagor는 “죽음의 신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때 당신의 생명의 광주리 속에 무엇을 담아서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인가?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A.Dante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대답할 말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편안함과 욕망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인내와 자기 절제로 삶의 승리, 신앙의 승리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정연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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