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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중보 기도 (요 17: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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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서 본 보여준 대표적인 모습이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섬기면서 사는 본을 보여주셧습니다. 사랑하는 삶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능력의 전도자로서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말씀을 권세있게 증거하는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삶에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주님을 통해서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것 중에 하나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공생애 사역 시작할 때에는 40일 금식기도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쁜 사역의 과정 에서도 새벽기도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 산기도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두고도 겟세마네동산에서 철야기도 하심으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성정을 입으시고 섬기고 사랑하면서 능력있게 권세있는 삶을 살 수있었던 에너지와 능력을 바로 기도에서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자리이후에 하신 기도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과 기도하시는 기도의 내용들이 소개됩니다.
제자들은 이제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에 있는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부족함을 다 알고 계십니다.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제자들을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들 때문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자들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11월달 한달동안 함께 기도하실 것입니다.
이 한달동안 여러분들이 특별히 개인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줄 압니다.
물론 그 제목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주님의 기도를 보면서 교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중보기도하시듯이 우리도 함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은 제자들의 보존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 “저희를 보존”해달라고 기도합니다.
12절에 보면 내게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때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주님이 제자들을 지키어서 멸망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제 주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께 보존을 기도합니다. 물론 그 중에 정하여진 멸망의 자식은 예외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제자들을 보존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2가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세상이 이들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들과 같은 생각,행동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미움과 적대의 이유입니다.그 미움이 올때 같이 미워하고 같이 대적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되고 미움을 미움으로 갚아서는 안됩니다. 그 악으로 갚고 미움으로 갚을때 그 손해가 고스란히 다시 교회에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주차해둔 옆집 검정색 그랜저 승용차가 돌아가면서 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차주인인 젋은 아들과 그 부모들이 함께 교회로 찾아와서 횡포를 부렸습니다. 교회에서 고의적으로 차를 그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가 교회마당에 차를 세우라고 한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임의로 세워놓고 문제가 일어나자 교회를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목사입장에서 싸울 수도 없고 한창 욕을 하고 한창 혈기를 부리면서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런데 같이 혈기부리지 않고 끝까지 온유함으로 이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 교회를 등록하신 어떤 성도가 이 모습을 끝까지 몰래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과연 목사님이 어떻게 대하는가? 본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라면 같이 혈기를 부리고 맞대항할 상황에서 끝까지 참고 조용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갖았던 교회에 대한 대적감을 버리고 교회에 등록하여 나중에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나중에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할 때 내가 그 시험에 빠지지 않고혈기를 앞세우지 않고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악한 마귀 때문입니다.
물론 마귀권세를 주님께서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귀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큰 힘의 대적자가 되어서 괴롭히고 공격합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마귀를 벧전5:8에서 우는 사자에 비교할 정도입니다.
주님은 세상과 마귀로부터 공격을 받는 제자들을 향해서 간구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성도들을 위해서 세상과 마귀로부터 패배하지 않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기업을 파멸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이름의 권세에 의지해서 이길 수 있습니다.
11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사라고 합니다. 주님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이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듯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먼저 교회의 지도자들의 보존을 위해서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자훈련 중에 읽는 책 중에 ‘기도 동역자’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맥스웰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직면하는 큰 5가지의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고독감이라고 합니다. 목회자들은 약 70%가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그렇습니다. 목회자들 대부분이 투명하게 자기를 보여주기가 어렵고 문제를 보여주면 연약하다라고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교인들은 목사가 완벽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무력감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근거로 하여서 목회자들중 10명중 9명이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 가정이 교회에서 목회자 가족이라는 부담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우울증으로 목회를 보존하지 못하고 목회지를 떠나는 목회자나 목회자 가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영적전쟁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영적 전쟁에 최고의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먼저 예수님을 공격하였고 바울을 공격하였고 지금도 목회자와 그 가정을 먼저 공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신앙을 보존합니다. 기도할 때 교회가 승리하는 교회로 보존됩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실패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제 내일부터 새벽을 깨우면서 다같이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승리를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주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들에게 승리의 기쁨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되기를 기도합니다.

11절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아버지가 하나를 이루신 것같이 결국 이 세상에 주님의 백성들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라는 개념은 바로 연합입니다. 우리는 이땅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연합하여 하나된 본을 받아 우리가 서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왜 연합을 위해 기도합니까? 마귀가 가장 공격하는 것이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연합을 깨뜨리려고 늘 공격합니다.마귀는 우리가 하나되 못하도록 지금도 공격합니다.그래서 예수님의 12제자들조차도 가롯유다가 결국 넘어가서 서로 하나되지 못하엿습니다.예수님은 우선적으로 제자들이 하나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교회가 하나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회의 일꾼들 지도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무엇보다도 하나되어서 하나님 아버지게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실 교회들 마다 문제는 언제나 앞에선 선봉장들에게서 문제가 많이 나타납니다.
우선 교역자들끼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오늘날 교회들의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교역자들끼리 하나가 되지 못해서서입니다.

다음은 당회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하나되도록 복종하셔야 합니다. 서로를 주장하려고 하거나 서로 위에 군림하거나 하면 결국 하나될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제직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됨을 위해서 우리가 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당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직들을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우리가 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죄악에서 꺼내어 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를 이루어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됨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기도"를 통해서 되어집니다. 이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우리의 옛자아를 쳐서 복종해야 합니다.이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하나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됨은 우리 자신들이 무조건 “하나”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같이 하나님같이 온전해지는 인격과 삶의 하나로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3절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은 하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온전함을 이루어서 아버지께 영광을 나타날 그날을 위해 주님께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라고 하고 있습니다.온전함을 이루어지길 소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고 소원하는 것은 바로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6: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온전함을 이루는데 어떻게 이루는가 하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온전함을 이루어가는데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복수개념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에 힌트를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엡4:7절을 먼저 보십시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리고 엡4:11-13절을 또한 보십시다.
"그가 혹은 사도로,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여기 보면 `온전함을 이룬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은 무엇입니까? 이 말의 원어를 보면 `위골된 뼈를 맞춘다'는 뜻에 사용됩니다. 즉, 접골해서 뼈를 온전히 맞추어 간다는 뜻의 단어입니다.다른 말로 하면 “온전함을 이룬다”는 것은 “바로 잡아 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 온전케 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위골된 뼈를 바로 잡아서 자기 기능을 정당하게 활용케 하는 것이며, 그 일을 할 줄 모르는 자를 훈련시켜 그 일에 합당한 자로서, 그 일을 제대로 하는 자로 만들어 내는 것을 온전케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엡4:12절에서 말하는 온전케 한다(equip)는 뜻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지체가 온전하게 되어서 서로 연결되면 결국 몸이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몸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아직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고 지금 온전함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마치 공사중에 있는 건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완성을 향해 공사중에 있는 건물은 쉴사이없이 공사가 필요합니다. 건물을 짓다가 중단되어진 상태는 너무나 보기가 싫습니다.

현재 예수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훈련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큰 핵심 부분입니다. 구원얻은 이후 계속적으로 해당되는 일은 언제나 완성을 향한 훈련입니다. 이를 위하 여러가지 사건을 만나고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온전함을 통한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서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교회 공동체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진리로 거룩하기를 기도합니다.

17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라고 합니다.
19절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하려힘이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있을 때 거룩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힘이 있을 때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별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이 거룩함의 실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진리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 말씀대로 순결하고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진리로 거룩한 교회 말씀으로 바르게 세워져 가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거룩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신분얻은 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그것은 시작으로서 그 거룩한 신분을 완성시켜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거룩한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거룩한 삶을 결단하기 위한 거룩한 의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감동이 오고 마음에 결단이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거룩한 마음을 주시는 분,거룩한 의지를 결단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난 지금 어떤 거룩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르겠노라고 자신있게 말했건만 실제적으로 당장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싫어 그 거룩의 길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가정,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 친구, 이웃, 교회가 바로 내가 섬겨야 할 십자가요, 거룩에의 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의 모든 것을 쏟아 섬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고치시는 의원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환자가 비명을 지르고 의사를 욕하면 의사는 자기를 욕하는 것이라고 듣지 않습니다. 아파서 그런다는 것을 압니다. 바로 그것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에의 길입니다. 주님은 친히 그 길을 걸으셨고, 또한 우리들 에게도 그 길을 갈 것을 요구하시며 그것이 거룩에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함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목사가 되어서 생기는 큰 시험 중의 하나가 목사는 늘 괜챦은데 교인들이 못 좇아 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이것도 좀 따라주고 저것도 해주면 금방 뭐가되어질 텐데... 라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교회를 찾아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이요, 주를 찾아서 나아온 자들입니다. 오직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려내는 것이요, 치료하는 것이요, 은혜입니다. 영적 불구자들을 업으며, 찾아가며 살려내며, 지키는 것이 목사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왜? 못 따라오느냐? 왜 그것밖에 안되느냐? 하기 이전에 그러기에 나의 섬김이 필요한 것입니다.왜 그런 상황을 주셨습니까 ? 나의 거룩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비단 목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신자들이 이같은 제사장적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연약한 자들, 부족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들을 섬겨야 할 책임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그같은 일을 감수하리라 결심하셔서 이 신앙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먼데서 찾으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 옆에 그 대상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내 이웃을 사랑하는가? 내 몸같이 섬기는가?를 보십시오. `나는 내 혈육 하나도 제대로 못 섬기고 투덜대고 억울함을 못 풀고 드러누워 있지는 않습니까?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자존심을 죽이고 자기를 죽여서 묵묵히 섬기는 자리에서시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 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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