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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의 자세와 내용 (행 5: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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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도의 자세와 내용"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5장 42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  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때 반드시 전도라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것은 진주사범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가 저에게 "찬종아 교회 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하는 곳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의 대답이 "와 보면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성경적입니다.  "와 보라(Come and See)"입니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 처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조그마한 마루바닥 예배당이었습니다.  남자라고는 그 친구와 제가 다였고, 부인들 몇명하고 여자아이 몇 명 뿐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이나 목사님도 없었고 남자집사 한 분도 없었습니다.  갔더니 여자 집사님 한 분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또 언제 오는 것이냐?"  "일요일 날 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일요일 날부터 저는 계속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를 데려다가 교회당에 오도록 전도한 그 친구는 그 뒤에 교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사도행전 13장 48절의 말씀같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기에 제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즉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의 친구를 통하여 저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후 저는 계속 교회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과천교회 목사가 되어 여러분 앞에 서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다는 사실은 복 가운데 최고의 복입니다.  참 생명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해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창립한 제자들의 복음에 대한 자세입니다.  본문 42절을 보십시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첫째, '저희'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범위를 넓히면 오늘 우리들도 해당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부름받은 성도들입니다. 

  둘째, '날마다'입니다.  어떤 특정한 날에만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 제자들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금번 추수감사절에 총동원 주일을 지킵니다.  일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특히 지옥에 보내어서는 안될 사람을 구원하는 주일로 삼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가족 가운데 불신자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친구 가운데, 친척 가운데, 이웃 가운데 불신자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 분씩만 대상자를 정하십시오.  그를 지옥에 보낼 수가 없다고 생각되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냥 두면 그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살다가 그 영혼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대상자를 정하는 것이 제일 우선적입니다.

  사실 우리들도 초대교회 사도들과 같이 날마다 전도해야 합니다만 우리의 열심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금번 추수감사절을 계기로 총동원주일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한분씩만 책임지십시다.  우리 이름으로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한 분씩만 전도대상자를 정하시고 그의 구원을 위하여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번에 일분씩만 기도하십시오.  주님 응답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셋째, 복음 증거의 장소입니다.  먼저 '성전에 있든지'입니다.  교회당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모두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의 권유로 한번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인 따라 한번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호기심으로 한번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없이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국수 먹으려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악산 등산 가다가 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교회 가자는 등쌀에 부모님 따라 의무적으로 한번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장가 가기 위하여 처녀 만나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집 가기 위하여 총각 만나러 오는 처녀도 있습니다.  직장 동료 따라 구경 온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 상사가 과천교회에 한번 가자는 말 따라서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업상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먼저 믿은 우리가 전도해주어야 합니다. 

  리벨(Dr. Roland A. Leavell)박사는 현대 교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은 비율로 분석하였습니다.
  교인의 20%는 기도하지 않는다.
  교인의 25%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
  교인의 30%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교인의 50%는 교회학교에 출석하지 않는다.
  교인의 60%는 찬양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
  교인의 70%는 선교헌금을 하지 않는다.
  교인의 80%는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교인의 90%는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교인의 95%는 전도하지 않는다.
  교인의 95%는 전도한 영혼을 양육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현 주소입니다. 

교우 여러분!  나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이와 비슷한 실정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한국교회는 부흥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여기에 속하지 않아야 합니다.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뜨겁고 가득 차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전에서 예수를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다음 전도의 장소는 '집에서든지'입니다.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가귀도(引家歸道)라고 합니다.  가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가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쉬운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내가 가족들에게 빛과 소금의 직책을 잘 할 때입니다.  가장이라면 삶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이 예수 믿습니다.  공부하는 학생 같으면 교회 다니면서 공부를 더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예수님 믿습니다.  주부 같으면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하며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 남편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께 복음이 증거될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우리 믿는 사람을 볼 때 교회 다니는 사람은 즉시 천사가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내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말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생활습관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삶의 목표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럴때 가족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족 구원이 안되는 경우는 내가 변화되지 않아서 입니다.  교회는 출석하면서 내가 변화되지 않고 있으면 가족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이웃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친구 구원, 친척 구원, 직장동료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전도를 잘하는 구멍가게 주인이 있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물건을 사러 와서 묻습니다.  여기에서 제일 좋은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그야 과천교회지요!"  "그 교회 목사님은 설교도 아주 잘 한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그 구멍가게 주인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그 교회에 나가십니까?"  "아니요, 저는 바빠서 못 나가보았습니다."  "그러면 그 목사님 설교도 들어보지 못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목사님이 설교를 잘 하는 줄 어떻게 압니까?"  "우리 가게 단골 손님이 요사이 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았다면서 외상값을 잘 갚거든요"

  교우 여러분!  이것입니다.  예수 믿는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가족 전도는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계심

  내가 변화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주시는 복입니다.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전도의 내용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심히 핍박했습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채찍질 했습니다.(40절)  예수의 이름 말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능욕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41절)

  유대인들이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이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인 점을 인정했습니다.  인격이 고상하고 병자도 고치고 좋은 일도 행하고 기적을 베풀며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라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가 그리스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골 촌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구원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입니다.  창세기 3:15 "여인의 후손으로"  이사야 7:14 "처녀잉태로서"  마태복음 1:23 "성령의 잉태로서"오셨습니다.  죄 있는 인간의 죄를 없이 하려면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셔야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는 ①원죄가 없어야 합니다.  ②자범죄도 없어야 합니다.  ③그 영은 하나님 이어야 합니다.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입니다.(빌립보서 2:6)  ④육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요한복음 1:14)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통하여서만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만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서만이 인간을 미혹하는 악한 귀신의 세력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확신하고 전도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이 생각하고 비교하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종교 다원주의 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여 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생명을 얻고 예수 안 믿으면 생명을 잃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가르쳤고 집에서도 가르쳤습니다. 
  어느 주일학교 선생님이 교회에 가다가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넷을 전도해서 데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아이들에게 계속 가르쳤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오랜 후에 그 아이들이 성장했고 각기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선생님도 현직에서 은퇴를 하게 되어 은퇴 겸 생일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선생님은 자기가 그때 가르쳤던 네 사람에게서 온 감사편지를 낭독하였습니다.  하나는 중국 선교사로서, 하나는 은행 총재로서, 하나는 미국 31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네 번째는 대통령 후보로서 일하고 있는 제자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할 때 크게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 평생의 삶의 목적을 바르게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믿음을 가졌을 때 공부하는 목적이, 경제생활의 목적이, 사회생활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믿음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믿음을 줄 수 있는 선조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섯째,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잠깐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계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사도들의 신앙생활하는 자세였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 받은 제자들의 자세입니다.  나쁜 일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은 계속 해야 합니다. 
  기도생활은 좋은 것입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찬송생활은 좋은 것입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감사생활은 좋은 것입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교회 봉사는 좋은 것입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열심으로 교회 출석하는 것 좋은 것입니다.  계속 해야 합니다.
  전도 잘하는 것 귀한 것입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계속 영적인 복을 주십니다.
  십일조 헌금을 드리는 것 좋은 것입니다.  쉬지 말고 계속해야 합니다.

  본문은 "전도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전도보다 귀한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목숨은 전도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쉬면 안됩니다.  사람의 생명의 기한은 아무도 모릅니다.  반드시 늙은 분이 먼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이가 먼저 죽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지옥 가지 않습니다.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재림하시는 그 날은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은 심판 받아 지옥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가 이제 여호와를 말하지 않으리라 하면 내 가슴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전도의 열정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계속 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주어질까요?  사도들이 가진 힘은 성령 충만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성취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증인이 되는 것은 성령충만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충만은 가득 찬다는 말입니다.  그 일에 몰두한다는 말입니다.  미친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 충만입니다.  말씀 충만입니다.  능력 충만입니다.  그때 예수 자랑하게 됩니다.  교회 자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사람은 구원의 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오늘 이 은혜가 우리 교회에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 찬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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