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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주일] 평탄한 길 (스 8: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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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주 설교제목은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이번 말씀은 ‘평탄한 길’ 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약 540년 전입니다.  바벨론 땅에 유대인 포로였던 에스라 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에스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되어간 때에 율법에 아주 밝은 학사였고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스라가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샤의 왕의 총애를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본토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환의 길에는 유대인을 미워하는 족속들이 진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보물을 가지고 돌아가서 성전에 장식하도록 허락을 받았기에 보물을 운반하는 대열을 이끌어야했습니다.  아주 위험한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왕으로부터 호위군대를 요청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전에 왕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선한 보호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시고 도우십니다, 라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신앙을 강조한 적이 있었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말을 했기에 지금 와서 왕이여 군대를 풀어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요, 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전도한 일에 불신을 초래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손상을 가져올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대열을 이끌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교훈이 됩니
다.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난관, 인생의 길을 놓고 때때로 어떻게 기도해야할지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내일부터 믿음의 성도들을 예수님의 12지파로 보면서 매년 상, 하반기에 갖는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다니엘서를 다시 보면서 말씀과 기도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주제는 ‘깨어 영생을 얻는 자들’이고 표어는 ‘새벽의 삼삼오오’, 입니다. 새벽에 함께 일어나 함께 오는 그런 가족 그런 교우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면 새벽에 도우실 것입니다.  에스라는 위기의 길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1. 먼저, 평탄한 길을 구하는 것

그의 기도를 들어보실까요
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8:21 There, by the Ahava Canal, I proclaimed a fast, so that we might humble ourselves before our God and ask him for a safe journey for us and our children, with all our possessions.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하나님과 인간의 접촉점을 '극한 상황'혹은 '한계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형편과 처지를 말합니다.  이때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것은 평탄한 길, 안전한 여행길을 기도하는 것이지요.  평안이 중요합니다.

중국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길을 떠날 때 인사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루핑안(一路平安)’, 이라고 합니다. 가시는 길 내내 평탄한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뜻의 인사입니다. 일루핑안. 그렇게 한번 인사를 서로 하시지요.  우리는 천국가는 나그네.  서로 간에 이런 인사를 하면서 중국어도 익혀 보시면 좋을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매우 중요한 은혜가 하나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그것은 평안이요 평탄한 길입니다.  이 길은 지금으로부터 488년전, 독일에서부터 일어난 이른바 종교개혁의 대운동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고난이 있었던 교회의 큰 개혁의 운동이 일어난 그 때의 시작은 마틴 루터가 로마교황청을 향해서 95개의 질문을 만들어 1517년10월31일, 당시 그가 재직하던 독일의 빗텐베르그 교회의 문에 붙혔던 일이었습니다.  그 질문 속에는 면죄부를 삼으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로마 천주교설교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32. 면죄부에 의해 자기들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르치는 그 스승과 함께 영원히 정죄(定罪)를 받을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면죄부를 사는 것 같은 돈으로 구원을 사는 행동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자기와 세상 자랑을 다 비우고 겸허하게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도록 형벌과 죽음, 지옥에 대한 교훈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94번째 루터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94. 그리스도인들은 형벌·죽음·지옥을 통하여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노력하도록 권면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루터는 95개조항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95.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평안의 보장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수많은 고통을 통해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한다(행 14:22)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충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평안의 보장보다 고통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믿어야한다’, 는 이 밀은 오늘 설교제목과 비교할 때 어떻게 생각이 됩니까.  오늘 설교제목은 ‘평탄한 길’입니다.  영어로는 safe journey, 즉 안전한 여행, 입니다.  루터는 평안의 보장보다 우리는 ‘수많은 고통’을 통과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행위,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에게 많은 환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천국여행은 평탄한 길보다는 고난의 길이라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자 이 말씀이 신기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탄한 길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평탄이 아니라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평안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다 이겨놓으셨으니 그 분 믿고 나아가면 환난을 이긴다, 평안이 온다, 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평안은 이김으로써 얻는 것인데 그 이김이 주님을 통해서 이미 이루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이 이겨놓으신 것을 이기는 것 뿐입니다.  주님이 이루신 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안, 평탄은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을 당하든지 아니면 환난의 위협이 있든지 어떤 경우든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완전히 낮추고 겸손해 졌을 때 주어지는 형통이요 평안이요 보호요 승리이며 평탄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마음의 의심, 두려움, 교만, 등을 이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개혁은 친
히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속죄 구원의 길, 죄와 싸워서 승리하는 일을 이루신 것이며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불신앙만을 이기고 믿음으로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믿음을 지키는 싸움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승리와 평탄함을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바로 심령의 개혁, 믿음생활의 개혁,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가장 큰 종교개혁의 요구인 것입니다. 

사실 종교개혁의 요구는 루터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개혁의 요구들 중에는 스스로에 대한 살핌이 부족한 가운데 남보고는 잘하라고 하는 그런 개혁의 구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루터 때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면서 많은 고뇌를 겪고 그 후 자기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깊은 깨달음,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른다는 큰 각성을 가진 후에 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개혁의 불쏘시개에 기름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질문을 우리 마음 벽에 붙이면 어떨까요? 
첫째, 나는 진정 사랑의 사람인가
둘째, 나는 진정 정의로운가
셋째, 나는 진정 신앙인인가
넷째, 나는 진정 희생하는가
다섯째, 나는 진정 전도하는가

글쎄, 우리가 이 외에도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지만 감당을 도저히 못하겠고요…이 질문이라도 스스로에게 던져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떨까요. 어떻게 대답할까요. 
우리는 그 가운데서 진정 이 모든 일이 이루는 평안, 평탄한 길, 형통을 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평탄한 길을 구하는 것은

2.둘째, 하나님의 은총을 선언하는 것

역경에도 은혜가 있습니다. 역경 속에 은혜가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역경 자체가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신앙인을 만드는 그 자체가 은혜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에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설교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단의 신학을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신 고 박형룡목사님의 설교집이었습니다. 그 설교집의 제목이 역경의 은총이었습니다.  지금 그 설교를 기억은 못하나 역경의 은총이라는 제목이 깊이 인상적으로 남았고 그 의미가 생각납니다.  신자들은 역경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오는 은총이 있기에 역경자체가 은총이기도 하고 역경 속에서도 은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때문에 역경 을 감사하면서 역경 속에서 오는 은혜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의 하나는 시편 119편 165절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 늘 부담이 있었습니다.  왜 장애물이 없는가.  이것은 좀 기복적인 말씀이 아닌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 신앙을 가진 자.  순종하는자, 라고해도 역경이 있잖는가.  그런데 어떻게 큰 평안이 있으며 어떻게 장애물이 없는가, 라는 질문이 늘 생겼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나면 금방 집안이 잘되고 건강하고 자녀가 잘되고 문제가 척척 해결되고… 그렇게 될 줄 알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혹시 계신지요.  그런데 예수믿으니까 오히려 시련이 오고 핍박이 오고 위기가 오고 사업에 직장에 가정에 자녀들에게 곤란한 일들이 생기는 일은 없었는지요.  신앙생활은 당연히 장애물과 역경을 예견해야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역경이 있습니다, 장애물이 많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라고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의 환난을 당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16:32) 그리고 이어서 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주님 안에서 큰 평안과 형통의 길이 열리고 승리한다, 는 말씀이지요.  이 말씀이 바로 시편 119편 165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는데 그 이유는 장애물이 이미 없는 것 같이 길이 다 예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큰 역경이 오지만 큰 길이 예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출애굽의 큰 구원은 그것이었습니다.  애굽에 노예생활을 할 때 때가 되면 애굽을 떠나 구원을 얻을 큰 구원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는 유월절의 밤에 바로왕은 꼼짝 못하고 그 모든 백성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다시 바로 군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 홍해가 놓여 있을 때 이미 그 홍해 안에는 구원의 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주시면서 반석의 물을 주시면서 먹고 살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이 크게 가로막고 있었지만 무너뜨릴 길이 이미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역경에는 그 속에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믿는 자, 순종하는 자, 그리스도안에 있는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 이미 받은 줄로 믿는 자에게는 그 길이 열릴 것이요 그 평안이 올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평탄한 길을 이제 기도하고 믿어야합니다. 모든 역경에는 평탄한 길이 그렇게 해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역경에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역경을 만나도 그 역경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평탄한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정면승부가 필요합니다. 담대해야합니다. 문제가 올 때 기도하고 그 문제를 향해 정면승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홍해도 길을 열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믿고 그렇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오는 곤란도 감수하면서 은혜의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학사이며 제사장이었던 에스라가 왕의 은총을 입고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아닥사스다 왕이 그에게 성전을 지을 많은 돈을 주었고 옛날 성전에서 사용하던 금으로 만든 그릇들과 은으로 만든 그릇들, 그리고 많은 양의 보물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 도둑들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은 다 나있고,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는지도 다 압니다.
그런데 그들은 군대가 없습니다. 재물을 지킬만한 힘이 없는 것입니다. 돈만 빼앗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목숨까지도 위험합니다.
누가 그 길을 따라 나서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그 길을 따라 나서겠습니까? 아무리 계산을 해 보아도 실속이 없는 여행길입니다. 고생이 이미 예약된 그런 길입니다. 그것을 알고는 아닥사스다 왕이 군대를 보내서 보호를 해 주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4개월이 걸리는 여행길, 그것도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야 하는 길, 언제 도둑을 만날지 몰라 두려워해야 하는 그 길, 그런데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의 왕이 군대를 보내서 아무 조건없이 그들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그 제안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
이렇게 군대의 보호를 받고 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길이 보이면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응답인가 하고는 감사한 마음으로 덥석 받습니다. 그 길을 선택합니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길인가 아닌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급하니까 그 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에스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군대의 보호를 받으면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보장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가서 성전을 건축하고 다시금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왕의 군대는 여행길에는 보호가 될 수 있지만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나아가서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들에게 의지하고 여행을 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보호를 요구할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보호로 모든 일을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들의 출발이 군대를 의지하고 세상적인 힘을 의지하는 잘못된 출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가 결심을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평탄한 길을 간구하면서 왕의 호위를 요청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전에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었습니다. 

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8:22 I was ashamed to ask the king for soldiers and horsemen to protect us from enemies on the road, because we had told the king, "The gracious hand of our God is on everyone who looks to him, but his great anger is against all who forsake him."

하나님의 은총은 사람들의 협력 도움을 통해서도 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이 경험한 일입니다. 동인병원 앞에서 야간에 정면으로 좁은 골목에서 어떤 차를 만났답니다.  후진하기도 매우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냥 버티고 저 차가 물러서게 할까, 하다가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먼저 일단 눈부신 조명부터 한단 내리고, 조심스럽게 후진해서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상대편 지나가는 차를 보니 교회 집사님이시더랍니다. 그래서 인사하고 난 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얼굴 붉히고 싸웠다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꺼리더랍니다.  다행히 길을 먼저 비켜드린 것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육체의 생각을 접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학사 에스라는 스스로가 말한 것으로 인해 그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일을 했습니다.  바사 왕에게 포로귀환 명령 이전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해 오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증하고 자랑하여 온 일입니다.

8:22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후략)

이 때문에 학사 에스라는 22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심정을 고백합니다.

8:22 (전략)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이제 와서 자신의 선포하고 간증하였던 내용을 눈 앞에 고통과 장애물이 생겼다고 해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은 영적인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사 에스라가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영적인 자존감을 가지고 취한 태도 때문입니다.

저도 친구들에게 목사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다 책임지실 것이라고 했기에 제가 신학교 등록금이 없을 때 친구들을 찾아가거나 친척의 도움을 받는 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이 부끄럽게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선언을 약하게 할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에스라 같은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평탄한 길을 구하되 주님께서 예비하신 십자가의 길, 그 안에 있는 천국의 열린 길과 부활의 권능을 우리는 선언해야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출애굽의 대장정도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큰 증거를 남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한 은혜임을 선언하면서 지혜롭게 이런 부분의 전적인 은혜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고 나타나는 도움은 세상의 것이라도 감사하게 받아야합니다. 이 신앙이 확고한 가운데 오는 모든 도움은 주님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난계로 사역을 할 때 지역이 협력해 오면 받아야합니다.  다만 그 일이 주님의 은총이라는 사
실을 확실히 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기복신앙은 우리의 삶과 함께 신앙이 연결되어 있기에 근본으로는 동기의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더라도 욕심과 정욕으로 쓰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쓸 생각을 하시면 그 기도에 주님은 평탄한 길을 주실 것입니다. 이미 모든 직장, 생활 속에서 주님의 평탄한 길, 예비된 사명의 길, 선교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적극적으로 이 지역을 향해 나아가면서 주여, 평탄한 길을 여소서, 이 곳에서 저 사랑의나라를 향한 길이 형통케 하소서, 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3. 셋째, 평탄한 길의 인도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환난 속에서 오는 평탄함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때때로 아주 중요한 때에 어떤 면에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고난과 역경을 막아주시고 평탄한 길이 열리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평탄한 길을 열며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다시 에스라의 기도를 생각합시다.
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내가, 라는 에스라의 기도를 이제 우리가 드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평탄한 길을 여는 사람이 됩시다. 전에 18일에 바자 전 날 우리 교우들이 제 방에 와서 장애인을 데리고 서울 숲 나들이 한 때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고 기뻐했습니다.  장애인들을 돕는 그 모습을 모두가 칭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역경에 있는 분들에게 형통의 길, 평안의 길이 있음을 전도하는 일도 해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그들에게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평탄한 길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탄한 길을 구하고 은총을 선언하며 이제 평탄한 길을 여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올 것입니다.

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8:23 So we fasted and petitioned our God about this, and he answered our prayer.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을 베풀기 전에 반드시 먼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을 온전히 통과하면 놀라운 축복과 형통의 길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가 그 약속을 확인하는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세는 40년동안의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했으며 야곱은 20년 요셉은 13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장에 길이 안보이고 답답해보이고 방해물이 내 앞에 견고하게 진을 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고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믿고 의지하면 놀라운 은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작은 축복을 위해서는 작은 시험이 큰 축복을 위해서는 큰 시험이 예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절망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따라서 큰 환난 속에서도 큰 평안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그렇게 믿고 긍정적인 신앙의 고백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탄은 우리의 믿음과 기도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전적인 은혜를 구하여 보는 결단입니다. 이번에 그렇게 기도하면서 정말 신앙과 기도에 깨어나고 은혜에 깨어난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민 6장에서 우리에게 복과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평탄을 간구하는 것은 매우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외침인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와 우리의 평탄한 길을 구하는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8:23 (전략)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이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 앞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 앞에 평탄한 길이 열리고 이 가운데 역경의 은총이 증거되는 역사를 일으키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오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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