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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 (빌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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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불교 문학계의 거목이던 미당 서정주 시인이 믿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희(70)를 훌쩍 넘어 80대 후반의 나이에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준 모든 것을 버리고 믿음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아들의 권유로 젊은 부부들의 작은 성경공부모임에 갔습니다. 그것은 참 가볍기도 하고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불교 문학을 떠나서 믿음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바뀌게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살지 않던 시기와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미당 서정주 씨는 자신의 모든 업적까지도 내려 놓고 변화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 

처음 믿음에서 멈추는 사람

믿음을 교회에 가는 것만으로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그 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신이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잘 모릅니다. 믿음과 불신앙 속에 어중간하게 끼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편안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적당히 믿는 지혜로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의 동물과 새의 전투에서 왔다갔다 한 박쥐와 같은 신세로 결말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면 이제 그 실체를 알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항해하는 배에 있어 나침반과 같다고 말씀 드렸었습니다. 나침반을 가진 배가 나침반을 사용하지 않고 간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그것은 마치 음식을 앞에 두고도 굶어 죽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을 가진 이는 믿음의 실체를 알고 그 믿음으로 인해서 믿음이 약속한 바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 믿음은 믿음의 시작

처음 믿음은 완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또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안 것도 아닙니다.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때 실제로는 믿음의 1%를 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때의 믿음도 그 사람을 구원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단 1초를 믿었다 하더라도 참된 믿음은 그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구원시키시는 분이며 자신의 주인됨을 고백'하는 믿음의 핵심이 있을 때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한다는 의미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주인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도 순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은 불안전하고 부족하기에 계속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그 믿음은 믿음의 모든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그 분을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도 알아야 합니다. 그 믿음에는 알아가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 믿음은 믿음의 시작입니다.

죄인인가? 의인인가?

(죄에 있어)의인이 아닌 죄인

'교회 다니는 사람이 뭐 저래'라는 말에서 우리가 자유로울 수 는 없지요? 우리가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비추어진 우리들의 삶은 항상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낙담이 되시는지요? 낙담하지 마십시요. 어떤 사람은 이 문제 때문에 자신의 구원 문제까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던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한 우리는 항상 이 죄를 달고 다닐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죄를 완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하나하나 이겨가는 것입니다. 완전정복이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착해지고 난 다음 교회에 다니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군요.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한 교회에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 착하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교회에 다녀도 완전이란 불가능한데 교회 밖에서 착해지고 온다는 것은 더욱더 안 되는 것이지요. 교회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혹 죄인이라 하더라도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나와야 합니다. 죄가 많은 사람이 나오더라도 그 사람을 돌로 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둑질 하는 사람이라도, 이중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도, 이상한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들은 교회에 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심각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 매달려서 그 죄를 벗어 던져야 합니다. 교회는 그 사람이 그 죄를 벗어 던질 때까지 참아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졌어도 여전히 죄인입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될 때 두려워 하지 말고 숨기지 마십시요. 그 죄를 겸손히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하나 이겨나가야 합니다. 

(신분에 있어) 죄인이 아닌 의인

"당신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의인'입니다. 왕자가 혹 거지처럼 행동하였다 해서 그 누가 거지라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그가 만약 왕자라면 그는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왕자입니다. 그렇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그 사람은 이미 왕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죄를 범하여 죽을 운명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그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모든 법위에 믿음의 법을 만드셨습니다. 이 법은 초월적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죄를 지었고 죽어야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인이라 칭하고 구원을 얻습니다. 이 법을 아십니까? 이 법을 사랑하십니까? 이 믿음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대가를 치르신 법입니다. 그러기에 이 믿음의 법은 그 분의 깊은 사람을 받아들임으로 이루어 집니다.

이 믿음의 법으로 인해 믿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 아닌 의인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사망의 법은 믿음의 법에 의해 폐지되어지고 오직 생명만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그 백성을 사망의 그늘에 놓거나 죄인이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아닌 의인이기에 이제 의인으로서의 품위를 생각하십시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왕자는 왕자로서의 품위가 있습니다. 의인은 의인으로서의 품위가 있습니다. 품위없는 의인이 아니라 품위있는 의인이 되십시요.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이제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의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갇는 것입니다.

믿음과 함께 시작하는 것

홀로가 아닌 둘

사람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지만 가장 외로움을 탑니다. 전화나 마이크 등 첨단 장비로 가장 많은 다른 대상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외로움을 타지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홀로 방에 앉아 있노라면 어느새 생각하고 있는 나만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다시금 나 혼자 있게 됨을 발견하게 되고 항상 나 혼자 행동하기에 진정 나를 아는 사람도 나 혼자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요. 믿음을 갖게 되면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당신이 어느곳에 있든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던지 상관 없이 변함 없는 한 가지 진리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면 혹 당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은 더 이상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당신은 이제 홀로가 아닌 둘 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영적전쟁

우리가 믿는 '예수님' 하면 '평화'라는 단어가 생각이 납니다. 그 분은 참으로 평화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절 때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말씀 구절이 있지요. "하늘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원수를 용서하시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그 분의 평화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과 더불어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안에 거짓을 제하시고 진리를 세우시기 위해서 왔습니다. 거짓된 우리의 마음은 그 분의 검으로 도려내져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전쟁을 영적전쟁이라고 칭합니다. 우리안에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던 거짓과 탐욕과 음란한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마음으로 대체되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의 것들이 순탄하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 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그러한 거짓된 것들을 영적 전쟁을 통해 몰아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음흉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는 악한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이러한 갈등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성령의 음성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따라 사는 것이 영적전쟁의 승리입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주일날 아침에 교회를 가는 정도의 변화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다는 것은 모든 것이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이 변화의 핵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변합니다.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무엇이 변하였습니까? 당신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무엇이 변하기를 기대하십니까? 믿음을 가지고 사는 행복한 변화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죄를 이겨가는 아름다운 의인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은 더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기억하면서 당신안에 들려지는 그 거룩한 음성을 순종하면서 사십시요. (장석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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