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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이 넘어진 이유 (삼하 11:1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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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늘 설교를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일이 가장 후회스러웠습니까? 배우자를 잘못만나셨습니까? 아니면 학교를 잘못 입학하셨습니까? 아니면 사업을 잘못 시작하셨습니까? 정말 그 결정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혹은 그 일로 인해서 나는 많은 심적 고통을 겪고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와 같은 질문을 다윗왕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다윗에게 “당신의 생애에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다윗은 지금 물론 천국에 있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간증할 것입니다. 제가 잠시 동안 다윗의 입장이 되어서 여러분에게 간증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저는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입니다. 저는 늘 형들과는 달리 들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전갈이 왔어요. 그래서 달려와 봤더니 못 보던 손님이 한 분 와 계셨는데, 그 분은 바로 사무엘 선지자였습니다. 저를 보는 순간 그는 말했습니다. “바로 네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구나” 저에게 다짜고짜 기름을 부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슨 영문인지 잘 몰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돌아가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저를 또 부르시더니,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가서 이 귀한 물품을 전달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전쟁터에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진영에서 아주 키가 큰 골리앗이란 장군이 나타나서 소리를 한 번 지르면, 이스라엘 병사들은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 골리앗이 감히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의분이 일어나서,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대적했습니다. 시냇가에 가서 물맷돌 5개를 주워서 그의 이마를 향해 정확히 던졌더니 그는 그 돌에 맞고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저는 그 즉시로 무명의 소년에서 인기 있는 장수가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저를 군대장관으로 임명했고, 슬하에 많은 부하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아니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저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모릅니다. 전쟁에 이기고 제가 귀향할 때에 예루살렘 성 주민들은 나와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사실 그 노래는 사울 왕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습니다. 그 뒤로 사울왕은 저를 질투하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 광야에서 때로는 굶주림으로 들에서 때로는 밤을 지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10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저는 오죽했으면 제가 죽인 골리앗의 고향인 블레셋에 가서 의탁해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길보아산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를 잃어버리니까 저를 왕으로 추대하기를 소원했습니다. 저는 헤브론이란 작은 동네에서 열두 지파 중에 유다 지파의 왕으로 임직을 했습니다. 저는 작은 땅덩어리를 지배했습니다.

  그 후 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제가 40대가 되었을 때 드디어 저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전쟁에 나가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마다 누군가 저를 돕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저와 함께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이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제가 전쟁에 승리할 때마다 그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하곤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지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그를 이기게 하시니라. 저는 날마다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곤 했습니다.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안정되었습니다. 이웃 나라들이 우리나라에게 조공을 바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 제가 가장 강성하던 그 때에,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장수들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저는 몸이 나른해서 낮잠을 한참 즐기고 일어났습니다. 저녁이 돼서 그 무더운 더윗 바람에 답답함을 느꼈고, 옥상에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습니다. 마침 옥상에 올라가니 그 날 따라 달빛이 휘영청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멀리 바라보았는데, 달빛 속에 어떤 한 여인이 전라의 몸으로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여인이 누구인가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니 알고 싶었습니다. 아니 한 번 보고 그냥 지나쳤으면 괜찮았을 터인데, 저는 두 번 세 번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참 아름다운 여인이구나. 저런 여인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사람을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는 바로 나의 충성스러운 30인 장군중의 한 사람인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거기서 끝나야만 했습니다. ‘아~ 내 충성스러운 장군의 아내이구나. 참 훌륭한 미모의 여인이구나.’ 그렇게 지나쳤으면 괜찮았을 텐데, 제 속의 욕심은 저를 계속 충동질 했습니다. 저는 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서 그 여인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저는 그 여인과 동침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 일을 영원히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서 그 여인에게서 전갈이 왔습니다. 아기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임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전장에 있는 우리아를 급히 불렀습니다. 그를 치하하고 그를 집에 가서 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아내와 동침함으로 저의 범죄를 은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아는 너무나 충성스러운 장군이었습니다. 요압장군과 자기의 동료들이 전쟁터에서 지금 싸우고 있는데 나만 편안하게 집에서 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왕궁을 지키는 병사들과 같은 막사에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저는 그를 또 불러서 그를 술 취하게 했습니다. 이번엔 아내와 같이 가서 동침하겠지. 역시 우리아는 아내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그러면 안 되지만 비장의 결심을 했습니다. 아까운 장수 하나를 잃어야만 했습니다. 우리아를 전쟁터에 보내는 편에, 요압장군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리아를 적신 깊이 떨어뜨려서 그로 하여금 죽게 하라고 밀령을 내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우리아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겉으로는 슬퍼하는 척 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내 범죄가 완벽한 범죄가 될꺼야. 아무도 모르겠지. 저는 드디어 우리아의 아내를 제 아내로 삼았습니다.

  저는 날마다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예전과 같은 맛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즐거운 일을 봐도 마음에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삶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을 때,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내가 존경하는 나단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왕이시여, 제가 왕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 하려고 왔습니다.”
“말씀해 보시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동리에 아주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많은 가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는 암양새끼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식도 없는지라 마치 암양새끼를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며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 부유한 자의 집에 손님이 왔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양을 잡지 아니하고, 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양 한 마리를 빼앗아다가 그를 접대했습니다. 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흥분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런 나쁜 놈은 죽여야 돼. 어떻게 그런 놈이 있을 수 있어? 남에게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로 갚으라고 했는데.” 나는 한 없이 정의를 외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나단 선지자가 나를 향해 손을 뻗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그 악한 자가 바로 당신이니, 당신이 바로 그 악한 자니.”
  그 때 나는 앞이 캄캄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무서운 내 죄악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고꾸라졌습니다. 그리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몇 날 몇 일 눈물로 내 침상을 적시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내가 지었던 시들이 시편 51편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나는 이렇게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때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죄 때문에 징계를 받거나 벌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떠날까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나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 왕에서 하나님의 영을 거둬갈 때에 그가 얼마나 비참한 종말을 고했는지, 저는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범죄 이후로 제게는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다시 구원받은 자의 기쁨을 허락해주소서. 구원의 즐거움을 제게 회복시켜 주소서.’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긍휼을 베푸시고, 허물을 덮어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죄는 용서받았지만, 많은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50이었습니다. 저는 23년 이상 계속 왕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괴로움을 치뤘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댓가이겠지요.

  밧세바와 나 사이에 낳은 첫 아이는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둬가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징계를 내리신 것입니다. 아마 그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는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그 아이는 범죄로 태어난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내게 두 번째로 큰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내게 많은 자식들이 있었는데, 암논이라는 왕자가 다말이라는 이복누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말을 자기 침상으로 끌어들여서 그를 강간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내쳐버렸습니다. 다말은 너무 괴로워서 집 안에서 나오질 않고 숨어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왕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암논을 죽여버렸습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형제간에 칼부림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는 동시에 두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아들 압살롬이 나를 반역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내 성을 빼앗고 내 적들을 취했습니다. 나는 맨발로 울면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요압장군의 활약으로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왔지만, 압살롬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은 요압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동시에 두 아들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밧세바 와의 범죄는 제 생애에서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후회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마 이렇게 간증하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납니까? 하나님의 사람이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까지 들었던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넘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 위대한 다윗이. 그처럼 성령 충만한 다윗이 어느 순간에 그렇게 힘없이 넘어진다면 저와 여러분은 유혹 앞에 얼마나 약한 존재일까요. 우리는 결코 자신만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위대한 다윗이 어느 날 갑자기 넘어진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그의 자만심 때문이었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그 당시의 다윗은 암몬 족속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어서 잠깐 휴전을 하고 돌아왔는데, 따뜻한 봄이 되어서 다시 전쟁에 출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까짓 암몬족속과의 전쟁쯤이야 내가 굳이 나갈 필요가 있나. 내가 일국의 왕인데.’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압장군과 다른 병사들을 보내고 자기는 예루살렘에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다윗의 자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어려운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 때마다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주신 능력을 의지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윗의 마음속에 교만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모든 승리가 내가 잘나서 잘 되서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 때문에 잘되었다고 믿어지면서 느껴지면서 그는 바로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제 왕이라는 존귀한 신분인데 내가 어찌 전쟁터에 나갈 필요가 있겠느냐. 그것은 지금까지와의 다윗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교만에 빠졌고, 자만에 빠졌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범죄했을 때 나단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범죄함으로 나를 업신여기고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다고 책망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환경 중 가장 좋은 여건에 있지만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여건이 너무 좋을 때 자만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그들이 가장 좋은 환경가운데 있을 때 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두셨는데 그 곳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풍성했습니다. 먹을 것이 충분했고, 얼마든지 쉴 수 있었으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함이 없는 그 가운데, 그들은 범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그러합니다. 그가 굶주릴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한 눈 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복하고 좋은 환경, 권력과 명예를 한손에 누릴 때 자만했습니다. 그 자만한 마음 때문에 그는 전쟁에 나가지 않고, 왕궁에 남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다윗이 전쟁터에 나갔다면 이런 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본분을 다했다면 그는 결코 이런 유혹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들을 태만히 하고, 자만에 빠졌을 때, 그는 범죄의 늪 속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다. 우리들의 위기는 어디에서 옵니까? 잘될 때, 건강할 때, 사업이 부강할 때,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때,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위기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려울 땐 열심히 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어 달립니다. 죽자살자 달려듭니다. 이제 살 만 합니다.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직장도 안정되고 남 만큼 살게 됩니다. 기도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점점 기도가 멀어집니다. 말씀과 멀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이런 꿈을 간증했습니다. 한번은 꿈을 꾸었는데, 사탄들이 모여서 전략회의를 하고 있더랍니다. 어떻게 하면 믿는 자들을 타락시킬 수 있느냐고 사탄의 괴수가 부하들에게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들이 실행해 본 것을 보고하라고 주문했더니,  첫 번째 부하는, “광야 사막 길을 걸어가는 예수쟁이들을 찾아가서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더라구요. 제 위협에 오히려 태연히 기도 하는데, 참 맹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부하가 보고하기를, “저는 바다를 항해하는 예수꾼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암초를 부딪치게 하고 태풍을 불어 넣어 주었어요. 그런데 태풍에도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더라고요. 예수꾼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예요.”  세 번째 부하의 보고는 이러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그들을 무조건 축복해주었어요. 그들이 비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 되게 해 주었어요. 다 잘되니까 그들은 점점 기도가 멀어지더라구요. 기도 안 해도 잘 되고, 기도 안 해도 건강하고, 기도 안 해도 밥 먹고 사니 십년이 지나니 육체와 영이 완전히 썩어버리더라고요.” 누가 사탄의 괴수에게 칭찬을 받았겠습니까? 네. 물론 세 번째 부하입니다.
  여러분이 기도 안 해도 살수 있다고 생각될 때, 이제 섰다고 생각될 때, 그 때가 곧 위기의 순간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이 넘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게으름 때문이었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읍시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아멘
  다윗이 일어난 시간이 저녁 때 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까? 다윗은 저녁에 일어났습니다. 다른 사람과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 일어날 시간인 새벽 시간에 그는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자고 저녁에 일어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잘못된 삶이고 무질서한 삶이고 게으른 삶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 유대지방은 기후가 덥기 때문에 점심 먹고 나면 한 두 시간 자는 풍습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자는 것이지 저녁까지 자는 잠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다윗의 삶에 문제가 있고 무질서가 찾아왔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왜 새벽기도 못나옵니까? 새벽에 못 일어나서라고 합니다. 왜 못 일어납니까? 애국가 나오고도 비디오 한 편 더 보고 두 세시에 잠듭니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갈 때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결해라, 돈 천원 줘서 보내고 내내 또 잡니다. 낮에 자고 밤만 되면 또 쌩쌩 살아나서 밤새도록 무언가에 붙들려 있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삶은 아닐 것입니다. 새벽기도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밤늦게까지 자지 않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붙들고 있고  뭔가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게으름입니다.

  오늘, 다윗은 바로 그런 영적인 게으름과 육적인 게으름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긴장이 풀렸습니다. 한껏 게으름에 빠져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게으른 마음과 나태한 마음은 사단의 공작실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게으른 마음을 가질 때 사단은 바로 그 마을 집중적으로 유혹하고 공격하곤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바쁘다는 것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도 없고, 너무 바빠서 예배도 못 나오고, 너무 바빠 전도도 못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반대로 너무 한가하고 무료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 무료하고 한가한 시간에 건설적이고 보람 있는 일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가하고 무료한 시간이 오면 자기 본능의 욕구를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자기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분주하게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놀라고 해 보십시오. 일주일도 못 되서 병날 것입니다. 사람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바쁘게 사는데, 그것이 영적인 우선순위에 바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하는데 바쁘고, 기도하는데 바쁘고, 봉사하는데 바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에 바쁠 수 있다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게으름과 육체적인 게으름은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어 갈 뿐입니다. 우리 마음에 유혹의 창문을 열어젖히는 그런 결과가 되고 맙니다.

  세 번째로 다윗의 넘어진 이유는, 자기관리의 실패 때문입니다.

  다윗이 옥상을 거닐면서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목욕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여러분, 안 보는 것이 좋은 것들은 가능하면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보면 시험에 들 것도 안 보면 괜찮습니다. 듣지 않을 얘기들은 듣지 마십시오. 들으면 시험에 듭니다. 화가 됩니다. 오히려 안 들으면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있으니 무작정 안 볼 수 만은 없습니다. 다윗이 아름다운 여인의 목욕하는 나체를 보았습니다. ‘아 아름다운 여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그냥 지나쳤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지목했고 깊이 묵상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해야 되는데 그 여인의 나체를 묵상했습니다. 마음이 본능이 불 같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호기심이 일어나서 사람을 시켜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라는 것을 안 이후에도 그는 동침하기를 원했습니다. 절제하지 못 했습니다. 다윗은 보는 것으로 멈춰야 했지만 그저 질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통제 불능의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믿음이 뛰어난 사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지 않으면 더 좋고 보더라도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굉장히 혼탁한 시대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이트 가운데 음란물 사이트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책자들 가운데도 음란한 것들을 자극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쉽게 유혹 받고 동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마틴 루터는 “새가 내 머리 위에 앉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둥우리를 치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유혹이 찾아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유혹의 늪 속에 자리를 깔고 눕는 것만은 막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 무엇을 느끼느냐도 중요합니다. 보고 마음으로 느끼니 말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유혹 받으면 절제가 잘 안됩니다. 마음이 먼저 달음질 쳐 악을 향해 갑니다. 우리는 이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내 영혼이 잘됨처럼 내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자기 영혼을 잘 관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고 강건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마스 코틴이라는 사람이 쓴 역사 이야기 가운데, ‘세 명의 에드워드’라는 글이 있습니다.어느 나라의 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그의 왕위를 첫 번째 아들에게 물려 줘야 하지만, 첫 번째 아들은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먹기를 좋아했고, 어마어마한 비만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당연히 큰 아들이 왕이 될 차례였는데, 민첩하고 욕심이 많은 둘째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형을 감옥에 가두면서 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이 언제든지 이 감옥을 나올 수만 있다면 나는 형에게 왕위를 내어 드릴 것입니다. 이 감옥은 이만한 창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몸의 살을 빼서 이 창문으로 나올 수만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왕위를 내어 드리겠습니다.”하고 약속했습니다. 이후 감옥의 형에게는 각종 산해진미의 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안락한 삶이 주어 졌습니다. 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몸 하나 관리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큰 나라를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형은 도저히 그 창을 벗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점점 더 비대해져만 갔습니다. 어느 날, 동생 왕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은 감옥 문을 열고 형을 끌어내 왕으로 삼았지만 비만증에 걸려 며칠 못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자기 영혼을 관리하지 못하고, 자기 육체를 관리하지 못하고, 자기 삶을 경영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은 실패자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영혼과 육체적인 삶과 여러분의 가정을 잘 관리하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무너진 이유는 영적 생활의 부재입니다.

  다윗이 쓴 시편들을 보면, 다윗이 아침에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정오에 기도하고, 저녁에 기도하고, 밤에 기도한다는 시편의 구절들이 참 많습니다. 그는 하루에 몇 번씩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울 때 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시편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데 그 말씀이 내게 꿀 송이 보다 더 달도다.” 꿀 송이 보다 하나님 말씀이 더 좋다고 고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인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가 정상에 서고 성공했다고 여겨질 때, 그는 점점 게으름과 나태에 빠져서 기도를 멀리하게 되었고 말씀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다윗이 만약 유혹의 그 시간에 말씀을 묵상할 수 있었다면,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면 적어도 그 유혹에서만은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실패의 이유를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기도해야 될 시간에 겟세마네 동상에서 피곤에 지쳐 졸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도해야 할 시간에 기도하지 못하니 결국 넘어졌고, 예수님 앞에서 세 번이나 그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어리석은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롯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방 땅에 가서 포로가 되었지만, 훌륭한 삶으로 그 나라의 총재까지 된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위험이 찾아왔습니다. 간신들의 음모에 의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하면 그가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인데도 그는 예루살렘 쪽을 향해 창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그는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의 창문을 활짝 열 때 유혹의 창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기도의 창문을 닫으니 유혹의 창문이 활짝 열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기도의 창문을 열 수 있다면, 하나님 말씀의 창문을 열 수 있다면, 우리는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염려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교인들이 너무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평안하니 잠이 오고, 점점 기도를 쉬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 50년에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인,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잠자기 바쁜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깨어서 기도해야 될 때가 아니겠습니까!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 질까 조심하면서 깨어 기도하는 영신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에 빠지지 마십시오. 게으름에 끌려가지 마십시오. 깨어서 기도함으로 여러분의 모든 유혹 앞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영 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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