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종교개혁주일] 종교개혁과 생명적 변화 (엡 4:17-29)

  • 잡초 잡초
  • 249
  • 0

첨부 1


오늘은 마틴 루터(M. Luther)가 1517년 10월 31일 로마 교황청을 향하여 95개조에 달하는 항의문을 내걸고 개혁의 기치를 든 지 488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중세 로마교회는 사도들의 신앙에서 이탈하여 교권의 남용과 교회 안에 우상적 요소를 용납하는 등 세속적이고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교회가 본연의 목적을 망각하고 궤도에서 이탈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어 멸망의 길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형편은 정치, 사회, 문화, 예술 할 것 없이 개인의 자유와 의사는 무시된 채 모두 다 로마 교회의 교권주의자들에게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급기야 문예부흥(Renaissance)운동이 터지게 되고, 이어서 종교개혁(Reformation)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둘 다 로마 교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운동이지만 문예부흥운동이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면,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입니다. 옛날이마 지금이나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이어져야 됩니다. 개혁자 칼빈(J. Calvin)은 「개혁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 개혁의 요체를「말씀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 이는 단순히 옛날로 돌아가는 복고(復古)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말씀에 의하여 새롭게 변화되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이나 단체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새롭게 바꾸어 버리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개혁」은 궤도를 이탈하고 비정상적인 길로 가는 것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정상적인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새롭게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이며 개혁교회가 지향하는 노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 개혁은 어느 특정한 시대에 있었던 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이루어나가는 생명적인 운동입니다.

구조적 변화

성경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일러줍니다(고전10:31).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이 최고의 가치를 망각한 채 자기의 욕심에 따르는 목적을 추구하곤 합니다. 이럴 때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자기를 합리화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소위 「장로의 유전」이라 불리우는 제도로 사람들을 얽어 묶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시며 이들을 책망하셨습니다(마15:3). 개혁은 이렇게 잘못된 제도나 관행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의도에 맞는 제도를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중세 로마 교회의 잘못된 제도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후 교회는 급속도로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직자들에게 특혜가 주어지면서 성직이 매매되기 시작하였고, 사도들의 신앙이 퇴색되면서 교회는 속화일로를 걸었습니다. 그레고리 1세(GregoryⅠ)가 교황으로 즉위한 A.D. 590년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까지 약 1천 년간을 신앙적으로는 기독교의 암흑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데, 로마 교회에서는 이때가 교황권이 하늘을 찌를 듯한 전성시대라고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유나 권리를 평등하게 누리도록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도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신앙이 앞서는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권리를 평등하게 누리도록 되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가 아닌 이교도들의 지역이나 로마 카톨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곳일수록 독재권력과 인권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척도에 따라야 된다.

성경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이며 가장 정당하고 바른 길을 일러주는 지침서가 됩니다. 개혁주의 신앙노선은 오직믿음(SolaFide),오직은혜(SolaGrace),오직성령(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또한 개혁은 사상이나 이론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곧 행동으로 옮겨지는 삶이어야 합니다.

위선의 옷을 벗는 것.

신앙생활이 잘못 길든 사람은 자칫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구조 속에 갇혀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의 특징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고 표현하였습니다(마7:15).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형식 종교로 전락해 버린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마23:15). 그들은 사람들의 눈만을 의식하는 자들이었고 속은 불신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겉으로 거룩하고 진실한 것처럼 위장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겉모양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고 하였습니다(시51:6). 중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는 형식 종교로 전락하였고, 겉으로만 거룩을 표방하면서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었습니다. 참된 신앙은 위선의 옷을 벗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타락한 교회와 변질되어 버린 신앙을 과감하게 타파하며 제 모습으로 돌려놓게 하는 시도입니다. 개혁 운동은 잘못 된 일들을 과감하게 척결하고 정리하는 행동입니다.

교회의 사명과 관련된다.

요한복음 2:1-11에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의 첫 번 이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쓸 모 없는 물을 가치가 있는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도하시는 교회 운동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변화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것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바뀌어 지는 생명적 변화를 의미합니다(고전15:53).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변화된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춰질 때 바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복음의 위력을 나타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인격의 변화

본문 말씀 22-24절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개인에게 있어서 옛사람이 새 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인격의 변화가 개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변화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고후5:17).

마음은 인격의 주체

기독교의 복음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겨냥하고 작용하므로써 그 인격을 새롭게 만들곤 합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 씨 뿌리는 비유는(마13:18-23), 네 종류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였는데 여기 좋은 땅이 아닌 길가 밭이나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은 모두 버린바 된 자연인 그대로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본문 말씀 17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허망한 마음은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마음이요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은 마음을 뜻합니다. 로마서 1:28에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황폐한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개혁 신앙이고(빌2:5) 곧 상실된 마음이 제 주인을 찾으므로 비로소 새롭게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지난 시대에 있었던 한 사건이 아니고 언제 어디에서나 성령의 주도하시는 능력에 힘입어 생명적 변화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3대원리는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정직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우리 삶의 정직과 진실이 무엇입니까?

폴 틸리히라고 하는 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의 불행은 역사 속에서 볼 때, 어디에서 오는가요? 고대 사람들은 불행을 운명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잘살고 못사는 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중세기 사람들은 불행이 죄와 저주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병이 들고, 홍수가 나고, 흉년이 와도 그 목든 것이 저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어떤 노력과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람들은 불행이 교만에서 온다고 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집도 짓고, 옷도 좋은 것을 입고, 잘 먹고 생활합니다. 그러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성경에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어리석은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인간은 약하고 하나님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이고 정직함입니다.

사람들이 `스티븐 호킹` 박사, `아인슈타인`보다 위대한 과학자라고 칭송을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근육이 굳어 가는 병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현대의학으로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그가 2년이 아니라 10년, 20년 지금까지도 살고 있고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는 「시간과 역사」라는 책의 서문에 “나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또 그 힘 때문에 살아간다”라고 썼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는 것입니다. 그가 쓸 수 있는 생존의 시간은 2년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뿐 아니라 그의 능력까지도 크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은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감사는 인간이 해야 할 본질입니다. 우리 인생은 감사 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구원받은 것도 감사하고, 이날까지 살아온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 신앙인이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종교 개혁은 단순히 종교구조를 고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화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고, 전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면서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을 믿고 사는 사람이 신앙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가운데 `세바스찬 바하` 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곡을 많이 썼지만 그의 인생은 작품처럼 화려하지 못했고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열 살 되기 전에 조실부모해서 고아로 자랍니다. 형 밑에서 크면서 많은 구박을 받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결혼했는데, 그만 아내가 13 년 만에 죽었습니다. 또 다시 결혼을 해서 자식이 스무 명이나 되었지만 그 중에 열 명이 죽었으며 남은 열 명 가운데 하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 죽고, 그 중에 하나는 뇌성마비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자신은 나이가 들어감에 눈이 점점 안 보이다가 그만 맹인이 되고 말았고 뇌일혈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곡을 만드는데, 그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오라트리오를 만들 때 맨 밑에 싸인을 하는데, `세바스찬 바하`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합창곡을 만들었을 때는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께.` 오르간 반주곡을 만들 때는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싸인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기를 전혀 내세우지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내세우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내세우고 모든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은 그의 어려운 인생을 아름다운 인생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진정한 개혁은 사람의 개혁입니다.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물이 고이면 언젠가는 냄새가 나게 마련입니다. 물은 흘러야 맑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문화도 정체되어서는 안 되고 흘러야 합니다. 하나의 기관도 새로워져야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면 쉴 새 없이 새로워졌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박해를,내부적으로는 이단을 물리쳤고 자체를 정화하는 개혁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기간에도 수도원에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교회를 개혁해 가는 것이 가장 건전하며 신앙적으로 모범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이 스스로를 점검하여 잘못된 것이나 왜곡된 것을 찾아서 바로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자체 정화 운동을 전개해 왔는데 그것이 성령운동 또는 경건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되려고 하면 "내 탓이요"라는 자각과 "내가 죄인입니다"라는 회개운동이 내 안에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운동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모든 잘못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자체 개혁은 결코 일어나지 못합니다.

또한 개혁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므로 타인이 나를 개혁하는 결과가 됩니다. 기독교가 다른 세력에 의해서 개혁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개혁하면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항상 자발적인 개혁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이 개혁이 계속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요? 눈으로 보아 알고 있으면서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무엇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습니다. 알면서도 용기가 부족하던지 아니면 안일하게 생각하는지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내 몸에 내 손으로 수술하는 칼을 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시해야만 살 수 있다면 감행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거듭난 심령들이 세례 받는 예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성례전에는 세례와 성찬식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세례는 씻음을 받음과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며, 성만찬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세례(Baptism)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예식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씻음을 받고 깨끗하게 된 것의 증명이며, 주님의 사람이 되기를 결단한 우리의 서약을 표시하고 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속에 이루어 놓으신 신분의 변화를 외적으로, 공적으로 인치는 예식입니다. 또한 세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갈3:27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세례는 세상에 속했던 내가 세상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타락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며 적극적인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는 인침입니다. 또한 세례는 회개와 용서의 예식이며 하나님의 은총의 확증입니다. 회개하는 자녀의 죄를 완전하게 도말하여 씻겨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곧 세례입니다. 세례는 새로운 피조물로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주실 때 역사하신 성령님 안에서 내가 변화된 생의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주님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의식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들어오는 '입장허가'입니다.

세상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한국교회가 복음을 재발견할 때 영적 각성이 일어나고, 영적 각성은 도덕적 갱신과 사회적 변혁으로 이어져 교회가 사회를 정화하고 선도하는 중심세력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교회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그 화려한 성장도 유럽교회들처럼 하나의 과거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서 정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