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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를 이기는 말씀의 성벽 (느 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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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기 때마다 교묘하고 적절하게 찾아오는 유혹의 세력들이 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공동체의 누군가와 관련된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을 만납니다. 그 위기가 큰 사건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 사소한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기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고, 우리의 행복 추구에 걸림이 되는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시대가 변해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응급조치법을 가르칩니다. 예전에는 교련시간에, 요즘은 체육시간에 다룹니다.

만일 그러한 응급조치법을 모르는 사람이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여 어떤 조치를 취한다면 대다수의 조치들이 위기를 악화시킬 것입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간질의 발작이 있을 때,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벌에 쏘였을 때, 물에 빠졌을 때 등등 수많은 경우에 있어서 응급조치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위들이 위기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음을 보게 됩니다.

그만큼 위기의 순간을 위한 평상시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들을 위한 준비가 없을 때, 그가 위기의 순간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위기의 순간에 그의 눈에 보이고, 그의 손에 닿는 주변 환경을 통하여 위기의 순간을 넘기려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대다수가 위기를 악화시키는 유혹거리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위기 때마다 교묘하고 적절하게 찾아오는 유혹의 세력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응급조치 방법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대다수의 환경들은 위기를 악화시키는 유혹의 세력들입니다. 간질로 발작하는 사람을 급하게 들어서 침대에 눕히려 한다든지,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람의 의식을 깨우려고 머리를 흔들거나 타격을 가한다든지 하는 어리석은 유혹에 넘어가서 위기를 더욱 악화 시키는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처럼 위기의 때마다 주변의 환경들은 교묘하고 적절하게 유혹의 세력으로 찾아와서 더욱 더 위기의 덧에 걸려들게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육신의 모습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학교에서 위기를 맞이한 자에게 가장 빨리 찾아오는 친구들의 요청은 대다수가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악화시키는 파괴적인 것일 때가 많습니다. 부부싸움으로 갈등 관계에 있는 부부가 제일 먼저 만나는 이웃이나 친구들의 요청은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갈라놓는 파괴적인 것들일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대처할 응급조치를 준비하지 않은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영적인 세계에서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항상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단의 세력들은 우리가 맞이하는 위기의 때마다 교묘하고 적절하게 유혹의 세력들을 우리 주변에 펼쳐 놓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모르는 영혼들의 눈에는 그 유혹의 대책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취하게 됩니다. 결국 사단의 술수에 넘어가서 타락과 범죄의 길로 빠져버립니다.

이러한 예는 성경에서만도 무수히 나타납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의 눈에 애굽의 풍성한 땅이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가는 죄를 범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위기의 순간에 우상을 만들 금은패물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결국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드는 범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위기의 순간마다 유혹의 세력들은 아주 교묘하고 적절하게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2. 성벽 건설에 헌신하는 느헤미야에게 위기의 순간이 연속되었다.

느헤미야는 평신도 지도자로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사역 도중에 수많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위기를 말씀의 성벽으로 이겨내었습니다. 평소에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말씀의 응급조치가 언제나 그에게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느헤미야 자신과 그의 사역이 보존될 수 있었고,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위기의 극복은 느헤미야 개인의 생명 보존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보존과도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 건설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명이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한없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불순종할 때는 이방의 포로가 되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시대 후반기에 그 심판은 진행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취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전 931년에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는 거시적인 첫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말씀을 준행하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전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인들에게 멸망을 당하는 거시적인 두 번째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남 유다는 깨닫지 못하고 말씀에서 멀어진 삶을 살다가 결국 주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인들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주셨습니다. 왕국 분열을 통해서, 그리고 북쪽의 동족의 멸망을 통해서 깨닫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자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손에 빼앗기는 멸망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주전 538년에 스룹바벨의 인도하여 제1진이 유다로 돌아왔습니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 년 동안 사마리아인들의 방해 속에서도 주전 515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 후 주전 458년에 에스라의 인도로 제2진이 유다로 귀환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없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또 다시 영적으로 타락하여 주변 이방인들과 통혼하는 등 죄악으로 타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성벽이 무너진 예루살렘은 언제나 외적들의 침입에 두려워 떨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바라보는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벽 건설의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보존을 위한 예루살렘 성벽 건설이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1세의 술 맡은 관원으로 살아가다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접하고 소명을 받은 느헤미야는 에스라가 귀환한지 14년 후인 주전 444년에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벽 재건 운동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벽 재건 사역을 감당하는 느헤미야에게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느헤미야 6장에서만 세 번의 위기가 나타납니다. 느 6:1-3의 첫 번째 위기는 암살당할 위기였습니다. 느 6:5-9의 두 번째 위기는 느헤미야가 유대인의 왕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는 소문이 자신을 유다로 돌려보내 준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들려지게 하려는 비방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확신과 사역에의 헌신이 그를 모든 위기를 이기게 하였습니다.

3. 위기에 처한 느헤미야에게 접근하는 유혹의 세력들이 있었다.

느 6:10-14의 위기는 느헤미야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 번째 위기였습니다. 이 위기는 느헤미야와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 느헤미야가 평소에 신뢰하는 인물을 통해 접근해 오는 위기였습니다. 우리들이 평소의 모든 삶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형태의 위기입니다. 느 6:10에 등장하는 “스마야”라는 인물은 느헤미야의 사역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동역자였을 것입니다. 언제나 느헤미야가 위기의 순간마다 돕던 자였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당시에 학사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을 이끈 평신도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존하기 위한 성벽을 건축할 때, 방해하는 자들의 살인 음모에 시달리는 위기 상황이 연속되었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사역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역임을 알았기에 느헤미야와 함께 했던 많은 동역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물들 중 “스마야”가 대적들의 뇌물에 매수당했던 것입니다.

뇌물에 매수된 느헤미야의 심복 스마야는 느헤미야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악한 의도 속에서 두문불출 하였습니다. 마치 예언자가 된 것처럼, 그리고 병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처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느헤미야가 자신을 찾아오게 하였습니다. 결국 두문불출하며, 느헤미야의 관심을 끌어 자신의 계획에 동참케 하려는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스마야라는 인물이 느헤미야가 포기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예언으로 주어지는 요구 또한 느헤미야가 거부할 수 없는 말씀이었기에 느헤미야에게는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스마야는 자신을 찾아 온 느헤미야에게 느 6:10에서 마치 예언을 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스마야는 자신과 함께 외소에 들어가 숨자고 거짓 예언으로 유혹하였습니다. 마치 자신이 느헤미야와 함께 위기와 고통을 겪고 있는 자인 것처럼 “우리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마야의 요구는 백성들 앞에서 느헤미야의 신뢰성을 파괴하려는 거짓 예언이었습니다.

당시에 느헤미야는 생명의 위협과 각종 위기에 민감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들이었습니다. 사단의 세력은 그러한 순간에 찾아옵니다. 우리들이 성령의 일을 선택할 때 사단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나, 동역자를 통해서 접근해 옵니다. 우리가 동역자의 필요를 느낄 때 사단이 접근하기 쉬워집니다. 우리들이 해결이 어려운 환경에 놓일 때 사단의 접근이 해결사처럼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기들은 대다수가 우리의 사역과 관련된 위기들입니다. 가정사역, 직장사역, 교회 공동체 사역, 선교사역, 구제사역 등 우리에게 소명으로 주신 사역을 감당해 나갈 때, 우리의 사역을 가로막거나 포기하게 만들기 위한 사단과 거짓 세력들의 유혹과 훼방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거시적인 영적 전쟁터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사역이기에 우리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고, 우리의 사역이 위협을 당합니다. 이럴 때 말씀의 성벽을 준비한 사역자는 그 위기를 이겨 나갑니다.

3. 느헤미야는 개인적으로 무장한 말씀의 성벽으로 위기를 이겼다.

느헤미야는 개인적으로 무장한 말씀의 성벽으로 이 위기를 이겨 낸 평신도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스마야의 거짓 예언의 요구에 대해 느 6:11에서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라고 즉시 반응하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이 반응은 스마야의 술수를 깨달은 후에 나타낸 반응이 아닙니다. 스마야의 위기의 요구에 즉시 나타낸 반응입니다.

느헤미야는 평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응급조치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혹하고 모함하며 위기에 빠트린다 하여도 자신이 간직한 말씀의 성벽이 그 모든 것들을 진단하며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즉시 거절할 수 있었던 말씀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라는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인 성벽의 문짝을 달기도 전에는 도망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직접 소명을 주신 분이 직접 소명을 거두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는 확고한 확신입니다.

둘째는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라는 반응입니다. 느헤미야는 당시에 에스라와 마찬가지로 백성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이 제사장이 아닌 평신도라는 위치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아닌 평신도로서 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상황만으로 본다면 느헤미야가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거짓 예언을 거절할 수 있었던 신앙의 기준은 평소부터 지니고 있었던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나 인간관계가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과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택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명령하신 일은 “성벽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으로부터 “중지의 명령”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볼 때 “제사장 외에는”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느헤미야와 같은 위기 상황이나 인간관계를 고려할 때 사단의 술수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장벽으로 지니고 있다면 느헤미야처럼 즉시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예언이 거짓 예언임을 깨달았습니다. 느 6:12-13에 보면,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라고 깨달았습니다. 스마야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먼저이며, 깨달은 것이 그 후입니다.

위기는 우리의 즉각적이며 예민한 응답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처럼 말씀의 장벽을 준비하지 않으면 즉각 응답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예언을 거짓 예언으로 분별할 수 있는 신앙의 기준 두 가지는 언제나 우리에게 있어야 할 말씀의 장벽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성벽 재건이 끝나기 전에 자기로 하여금 도망치게 할 리가 없다는 약속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법하도록 예언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위기의 환경보다도, 스마야와 같이 친분이 있는 동역자보다도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대적 도비야와 산발랏의 술수에 의한 음모를 깨닫고 위기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확한 깨달음은 하나님 앞에 정확한 기도제목을 들고 나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느 6:14에서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라고 간구합니다.

4. 그리스도인의 삶의 보존을 위해 말씀의 성벽을 건축해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위기의 상황을 승리로 이끌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을 알고, 그 법에 따를 때 승리를 맞이합니다. 우리들이 소명으로 받고, 비전으로 삼으며, 사역을 감당해 나간다 할지라도, 비록 성령께서 주시는 일을 선택하여 사역해 나간다 할지라고 언제나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알고 적용해 나가지 않는다면 환경의 유혹에 걸려 넘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자들을 통하여 넘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느헤미야처럼 “위기를 이기는 말씀의 성벽”을 쌓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환경적인 유혹도 물리칠 수 있는 말씀의 성벽을 쌓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인간관계의 유혹도 물리칠 수 있는 말씀의 성벽을 쌓고 있어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환경과 경험으로 대하는 것은 위기를 확대할 뿐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말씀의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을 의지하는 것은 위기의 중심 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지녔던 두 가지의 말씀의 성벽은 우리의 모든 삶에 적용되어야 하는 성벽입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영원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비전임을 확신하고, 그 비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 비전을 멈추게 하거나 도망가게 하는 모든 말이나 환경이나 인간관계는 유혹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하나님만이 멈추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의 직업에 대한 꿈과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만이 멈추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향한 꿈과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만이 멈출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 공동체 사역의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만이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시기 전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환경도 이 비전을 멈출 수 없다는 말씀의 기준만 있다면, 우리를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과 금지하신 것을 알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영역으로 이끄는 모든 환경과 관계와 유혹들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과 금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기준은 언제나 우리 마음판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기의 상황이 다가올 때마다 먼저 이 말씀의 기준으로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의 유혹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기에 말씀의 기준만 있다면 위기를 확대시키는 모든 유혹들을 분별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거나, 기도하지 못하게 하거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훼방하게 하거나, 영적 권위를 부인하게 하는 것과 같이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들을 말씀의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성벽은 오늘날 우리들이 쌓아 나가야 할 성벽입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오염되지 않게 막는 성벽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성을 보존하는 성벽입니다. 세상의 도전을 이길 수 있는 성벽입니다.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이길 수 있는 성벽입니다. 오직 말씀의 성벽만이 우리를 영적 위기로 몰아가는 사단의 세력을 이기게 합니다. 오직 말씀의 성벽만이 우리 주변에 가까이 하고 있는 환경들을 온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보존하셔서 예루살렘 성벽을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성벽을 쌓고자 하는 소원을 품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말씀의 성벽을 완성하게 하십니다. 이제는 이렇게 “위기를 이기는 말씀의 성벽”으로 마음을 무장해야 할 때입니다. 다양한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그 위기에 즉시 응급조치로 대처할 수 있는 “위기를 이기는 말씀의 성벽”을 준비할 때입니다. 말씀으로 준비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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