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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시대를 알고 살아가는 길 (마 24: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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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해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한국 사람들도 휴가 갔다가 많이 죽었다. 금년 들어서는 미국 뉴올리언즈에 큰 재난이 일어났는데 허리케인의 위력 앞에서 도시 전체가 물 속에 잠겼다. 그런가 하면 파기스탄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압사 당하고 땅 속에 매몰되어 죽었다. 그 참혹한 현장을 뉴스로 접하면서 돕지 못하는 마음도 안타깝지만 왜 도처에 이런 엄청난 재난이 계속되어 일어나는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조류 독감도 세계를 휩쓸 것같은 재앙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엔 백신이 턱없이 모자라서 만약 조류 독감이 사람에게 발병되기 시작하면 수백 만명이 고통을 당하리라고 보도된다. 백신도 44만명분 밖에 확보가 안되었다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의 힘 앞에서 너무나도 무력한 흙덩이 인생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일들에 대한 성서적 대답은 이렇다.

첫째, 세상 끝이 다가오는 시대다. (마24:32∼34)

이 시대는 우주 시대요, 정보 시대요, 생명을 만드는 시대라 하지만 세상적으로는 희망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세상적인 것을 버리고 경성해야 할 때이다.
마24:3 제자들에 예수께 묻는다.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그때 주님의 대답이 마24:4∼41까지 기록되는데 세상 끝에 징조는 다음과 같다.
1. 신앙의 미혹자 내가 그리스도라고 자청하는 자의 등장! 거짓 선지자가 일어난다.
2. 난리와 난리 소문이 퍼져 나간다. 그러나 끝은 아니고 그 소문이 들려질 때 재난의 시작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게 된다.
3. 사랑이 식어진다. 사랑이 식어져 무정하고 무자비하고 자식이 부모를 모르고 부모가 자식을 팔고 사랑대신 차가운 냉소만 가득하다.

우리는 주님이 끝날의 시작을 아려주는 이 말씀 속에서 재난의 소식, 난리의 소식, 지진, 기근, 홍수의 소식을 듣는 세상에 살고 있다. TV만 켜고 신문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죽고 죽이는 소식을 듣는다. 세상이 끝이 다가오는, 끝으로 가는 시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끝을 향해 가는 시대의 징조를 모르기에 더욱 문제다. 조선일보를 보니까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코끼리들은 미리 알고 높은 고지로 피하여 살았다고 한다. 까마귀들도 미리 알고, 뱀들도 미리 알고 지진이 나기 전 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도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지진도, 해일도 예측하지 못하는 짐승보다도 못하다. 눅12:54을 보면 천기는 분별할 줄 알지만 왜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느냐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은 비가 내릴지 해가 비칠지를 예측한다. 그러나 사람은 시대를 잘 분별하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 시대를 우리의 양심과 관습과 도덕적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말씀으로써 안다. 주님이 해주신 말씀으로 보니 세상의 끝이 다가오는 시대이다. 비록 끝은 아니나 끝으로 향해 가는 시대이다. 세상에 계속 소망을 두고 살 것이 아니라 세상을 깨우고 건지는 일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에게 모든 권한이 있는 시대이다. (마24:36)

마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세상의 끝이 오게 되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전무후무한 환난이 있다. 계시록에 의하면 7년 환난인데 이 환난은 너무 엄청나서 그날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받지 못한다. 다만 택하신 자를 위하여 그날을 감하시기에 멸망에서 구원얻은 자가 있는 환난이다. 이 환난 이후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는 우주 질서의 개벽이 일어난다. 그때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시며 천사들이 함께 보내어져서 택한 자들을 모든 사방에서 모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24:13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끝까지 택한 자로 남아 구원을 얻는데 있다. 환난의 날, 천지 개벽과 함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날에 대해 언제일까 하는 관심은 알고 싶어도 나의 권한이 아니다. 오직 그날과 그때를 아시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능력과 영광으로 오시는 주님도 주님과 함께 보내어 주신 천사들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하나님이 모든 키를 쥐고 있는, 하나님에게 권한이 있는 시대이다. 땅의 도성은 무너지고 하늘의 도성은 영원한다.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언제나 비상시에 가지고 다니는 가방이 있다고 한다. 이 블랙박스가 핵 단추를 관리하는 가방이라고 한다. 세계를 전쟁 속에서 좌지우지하는 가방의 관리자가 미국 대통령이라면 다 믿는다. 미국 대통령이 모든 전쟁의 권한, 핵 무기 사용의 권한, 전쟁에 개입하는 권한을 가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날과 그때를 오직 알고 계신 하나님의 권한이 얼마나 엄청난 지를 알아야 한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하나님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 하나님이 재림의 시간을 앞당겨 12시 1분전으로 만들지 12시 10분전으로 할지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시간을 더디게, 마지막을 더디게 참아주신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깨어있지 못하고 아직도 땅의 도성에만 쌓아올리는 나를 위해 하나님이 끝날의 권한 행사를 유보하시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시는 것이 아니다. 벧후3:9 "주의 약속을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 원하시느니라" 그래서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이다. 벧후3:10은 계속 말한다. "그러나 주의 날은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의 말씀과 베드로의 말씀이 똑같다.
하나님에게 권한이 있는 이 시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멸망 받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살리고 죽이는 모든 권한이 있으나 회개만 하면 살려주시는데 그 권한을 사용하신다.

셋째, 말씀만이 영원불변하는 시대이다. (마24:35)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보이는 것은 다 변한다. 그렇게 멋있게 보이던 애인도 70세가 되어 보면 구부러진 할머니, 할아버지요 그렇게 정신없이 읽었던 책도 이제 와서 보니 시시하다. 정신없이 배웠던 팝송도 별 흥이 나지 않는다. 세상 것은 다 변한다. 사상도 철학도 변한다. 관습도 전통도 변한다. 그런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원성의 가치를 지닌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바로 이 시대이다. 끝날이 다가오는 시대의 징조를 볼수록 영의 사람은 더욱 확실하게 된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은 그대로 되어진다. 예언된대로 이루어진다. 말씀이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이 말은 마24:32에 기록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에서부터 이어진 말씀이다. 무화과나무는 무엇인가? 바로 이스라엘을 뜻한다. 무화과나무는 우리나라 국화가 무궁화이듯 유대인들에게는 무화과이다. 그런데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온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는 이스라엘의 독립 예언이다. 나라를 잃고 식민지 생활을 하며 흩어진 이스라엘이 무화과나무에 잎이 나듯 독립 국가가 되면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알 듯 주님의 재림이 문 앞에 이르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나? 1948년 5월 14일에 독립을 하고 1967년 6월 예루살렘을 되찾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만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겔38:8에도 기록되어 있고 슥12:1∼14에도 기록되어 있다. 말씀의 예언대로 된 것을 우리는 보게 되고 주님의 말씀처럼 가지가 나고 잎사귀가 나온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을 볼 때 말씀의 놀라운 성취를 본다.

말씀대로 되는 것은 금세기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곧 오실 것이다. 그것이 말씀의 확실한 증언이다.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말씀은 글자, 문자, 책이 아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과 인격과 감정이 담긴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담긴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듯 이 말씀도 그러므로 영원하며 말씀 그대로 된다. 말씀 그대로 알고 말씀 그대로 믿어야 한다. 말씀은 점점 끝날 시대로 갈수록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생명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운 육체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이 시대를 바라본다. 이 시대는 세상적으로 멋지게 보일지 몰라도 끝을 향해 가는, 파멸을 향해 가는 기차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다시 듣고 외쳐야 한다. 도처에 재난의 소식이 들려질 때마다 시대를 말하고 무너짐을 향해 가는 세상의 기차를 멈추어 서게 해야 한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하라" 하였다. 이 시대를 사는 삶의 길을 간단하고 분명하다.

1.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일이다. - 근신하여 기도하는 일이다. (벧전4:7上)
2.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 - 열심히 뜨겁게 (벧전4:8)
3. 끝까지 견디며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마24:14)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을 맞이하는 지름길이다.
4. 깨어서 예배하는 삶이다. (마24:42, 44)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나 생각지 않을 때에 인자가 오리라"
주님 맞이하는 준비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

5. 지혜롭게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되라. (마24:45∼46)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하였다. 짐승들에겐 재난의 날을 피하도록 특별한 감각을 주었다. 그러나 사라들은 짐승만큼 후각, 청각, 촉각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도 능히 만물의 영장답게 말씀이란 안테나를 주셨다. 이 말씀이란 안테나에 귀를 기울이고 살면 누구든지 피할 것을 주시며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분별하게 해 주신다. 환난을 피하고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며 칭찬 듣는 복된 성도로 살아가려면 영원하신 말씀, 하나님의 말씀의 안테나로 시대의 신호를 들으며 살아가자. 그래서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의 양식을 나눠 주고 때를 따라 전해 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그 사람은 주인이 올 때에 복이 있다. 마24:47에서 말씀하신다. 성경을 가르쳐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이것이 끝날을 사는 택한 백성의 신앙의 길이다. 양식을 나눠주어야 한다.

끝이 다가오는 이 시대에 당신은 오늘까지 어떠한가? 하루의 삶 속에 오늘 이 다섯 가지의 삶의 길이 있는가? 기도하는가? 전도하는가? 서로 사랑하는가? 주님을 기다리는가? 말씀을 배우는가? 아니면 노아의 시대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기까지 깨닫지 못하는 삶을 사는가? (마24:38∼39) 사는 길과 멸망의 길 사이에서 이 시대를 제대로 사는 성도가 되라. 답이 있는데 왜 방황하고 머뭇거리는가? (김철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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