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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입니까?(2) (눅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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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우리교회 <비전 크로스>성경공부 후 과정으로 실시된 성지 순례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곳은 십자가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인데 온갖 장사치들이 판을 치는 바람에 그 뜻 깊은 곳들을 떠밀려 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비아 돌로로사>의 의미를 뒤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고난의 길”이란 뜻입니다. “비아”는 길을 뜻하고 “돌로로사”는 “슬픔, 고난”을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법정으로부터 성밖의 골고다에 이르는 약 800여 미터에 달하는 언덕길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형장으로 걸어가신 최후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 길을 순례하던 순례객들은 <비아 돌로로사>거리에 특별히 의미 있는 14 지점을 표시하여 두었고 순례자들은 매 지점마다 걸음을 멈추고 처형 받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길옆에 첫째 지점, 둘째 지점 등의 표지를 돌로 새겨 놓고, 그 매 지점마다 의미를 부여하고있습니다.

첫째 지점은 예수께서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으셨던 곳입니다. (요19:16)
둘째 지점은 예수께서 채찍을 맞고 온갖 조롱을 당하시며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신 곳입니다.(요 19:17)
셋째 지점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메고 가시다가 땅에 첫 번째 쓰러지신 곳입니다.
넷째 지점은 슬픔에 잠긴 마리아를 만나신 곳 입니다. 지쳐 쓰러지셨던 예수께서 정신을 가다듬고 겨우 일어나 십자가를 지시고 일어서던 순간 많은 군중들 틈에 울면서 따라오던 마리아와 시선이 마주치신 곳입니다.
다섯째 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거들어 같이 메고 간 지점입니다.
여섯째 지점은 베로니카라고 하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일곱째 지점은 십자가를 지시고 두 번째로 쓰러지신 자리입니다.
여덟째 지점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오히려 그대들과 그대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우시오.”라며 예수를 따라오며 통곡하는 여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내리신 곳입니다.
아홉 번째 지점은 예수께서 처형될 골고다 정상을 올려다보시면서 세 번째 쓰러지신 곳입니다.
열 번째부터 열세 번째까지는 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네 가지 사건이 있는 곳입니다. ①옷을 벗기고  ②십자가 형틀에 달리시고  ③운명하시고  ④십자가에서 내리우신 곳입니다.
열네 번째 지점은 예수께서 묻히신 지점입니다. 여기까지가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 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피 흘리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께서 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므로 모든 인류의 죄악을 소멸하시고 사망 권세 깨뜨리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너희도 각각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즉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녕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지난 16일 주일에는 본문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관계의 가치관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야만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제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제시된 두 번째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마16:13-28)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며 예수께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같은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말씀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이때로부터, 다시 말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예수께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들은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임 당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주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며 단호하게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돌아보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며 호되게 책망하시고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질병이나, 사업의 문제, 남편과 아내의 문제, 자녀 문제 등 이런 것이 나의 십자가이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십자가가 아니라 “짐”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인생의 무거운 짐들은 모두 예수께 맡겨버리고 대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험악한 죽음의 장소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참 제자가 되고자하면 예수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나라 민족의 독립을 위해 독립군으로 활약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독립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독립군에 들어가려면 누구든지 반드시 세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째, 당신은 총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둘째, 당신은 굶어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셋째, 당신은 추위에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 세 질문 모두에 ‘예’ 하고 결단해야만 독립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내가 총에 맞아 죽어도, 굶어 죽어도, 추위에 얼어 죽어도 나는 나라 민족의 광복을 위해서 헌신하겠습니다.’ 이렇게 결의를 다진 사람들만 독립군, 광복군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조국을 위해서 목숨 바치고, 굶어 죽어도, 총에 맞아 죽어도, 얼어 죽어도 좋다는 청장년들이 모여서 나라 독립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는가? 나는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살다가 죽을 것인가? 나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죽자!’ 이렇게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 독립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니라 사형의 도구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예수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라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라 민족이 잘 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도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있어야 그 가정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십자가를 지는 성도가 많을수록 그 교회는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가정, 십자가 없는 교회, 십자가 없는 나라 민족에는 부활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 평강 교회 성도 여러분은 모두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천국 열쇠를 받았던 베드로가 졸지에 사탄으로 취급되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일인데 사람의 일을 생각하므로 베드로는 사탄으로 몰리게 된 것 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리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는 예수님 자신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쓴 잔을 옮겨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내 자의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을 따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기도를 드리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고 했습니다.(눅22:44) 그만큼 십자가를 지기 위해선 피나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기도 없이 자신을 부인하거나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십자가를 가로 막아서게 된 것은 기도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즉 예수를 등에 업고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에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한 후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정하셨지만, 베드로는 그러한 기도도 없이 자신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으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내 생각과 의지, 내 꿈과 소망을 던져버리고 오직 주님의 생각과 뜻,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자신의 삶의 양식으로 삼는 생활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예수의 제자가 되시겠습니까? 베드로처럼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출세와 성공, 부귀영화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일만을 추구하는 사탄의 종이 되겠습니까?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로 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빌립보서 2:6-11을 보겠습니다.
(빌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복종하는 생활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높여주시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복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승리합니다. 가정이 파괴된 가정은 남편이나 아내가 십자가를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아무리 원수같아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기도하며 사랑해야만 합니다. 부부가 서로 다른 생각을 내세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게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죄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죄는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죄악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죄를 짓든지 아니면 십자가를 지든지 둘 중하나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십자가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입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어느 부자 청년의 십자가는 재물입니다. 왕궁 옥상을 거닐던 다윗의 십자가는 건너편에서 목욕하는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였습니다. 문둥병이 낫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의 십자가는 국방장관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자신을 낮추어 엘리사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곧 겸손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던 요셉의 십자가는 요셉을 집요하게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이었습니다. 사실 십자가는 제자가 되려는 사람만 지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4을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아무든지”라는 말은 예수 믿는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목사와 장로 권사들만 지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성도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아담의 십자가, 다윗의 십자가, 부자 청년의 십자가, 나아만 장군의 십자가가 각각 다르듯이 여러분 각자의 십자가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아담의 십자가는 선악과이고 다윗의 십자가는 밧세바라는 여인이었고 나아만 장군의 십자가는 겸손이었고, 부자 청년의 십자가는 재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지 나사로는 가난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어떤 십자가도 자기 십자가가 제일 무겁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고통스런 일이 있을 때 자신만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십자가치고 가벼운 십자가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하늘로부터 힘을 도우십니다. 누가복음 22:42-44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라고 기도드리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43절)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44절)고 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시는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사자가 나타나 돕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마가복음 8:34을 보겠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말씀을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 “무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제자들”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참된 예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무리와 제자”의 구분은 바로 이 십자가를 지느냐 안 지느냐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십자가를지지 않은 “무리”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시겠습니까? 이왕에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이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0:38에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합당치 아니하다”는 말은 예수님의 마음에 안 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교회에는 네 종류의 직분자가 있다고 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성가대 등 직분은 없지만 십자가를 지는 사람, 이런 성도를 <제자>라고 부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직분만 가진 사람, 이런 사람을 <무늬만 직분자>라고 합니다. 직분자도 아니고 제자도 아닌 사람이 있는데 이런 분은 <새 신자>입니다. 직분자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 이러한 성도를 가리켜 <좋은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닌데 직분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직분자라면 더더욱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남의 십자가까지 지면 얼마나 아름답고 좋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주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과 다를 때 과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매 순간순간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매 순간순간 자기의 일을 생각하기도 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생활을 해야 날로 믿음과 은혜, 능력이 충만하여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벗어 던져버리고 안일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을 때 참된 제자의 기쁨과 소망이 충만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 마카리우스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속에서 예수님이 더없이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마카리우스는 예수님께로 달려가서 십자가를 대신 져 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실 따름이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또다시 예수님께로 달려가 간청했습니다. “주님, 제발 저에게 십자가를 넘기십시오.” 그러나 이번에도 예수님은 그를 모른 체하시며 십자가를 양어깨로 무척 힘들게 걸쳐 매고 묵묵히 걷기만 하셨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가슴이 아프고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예수님 곁에 따라붙으며 십자가를 넘겨달라고 다시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이윽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양어깨에 둘러맨 채 발걸음을 멈추더니 마카리우스에게로 몸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카리우스가 예수님을 처음 목격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것은 내 십자가란다. 네가 조금 전에 내려놓은 네 십자가는 저기 있지 않느냐? 내 십자가를 져주려고 하기 전에 네 십자가부터 져 나르려무나.” 사랑 받는 자 마카리우스는 뒤로 돌아 예수님이 가리키신 지점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는 얼른 자기 십자가를 걸머지고 예수님이 기다리시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와 보니 놀랍게도 예수님의 어깨에 걸려 있던 십자가가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는 어디로 간 겁니까?”
마카리우스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빙긋이 웃으며 대꾸하셨습니다. “아들아, 네가 사랑으로 네 십자가를 질 때는 내 십자가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단다.”
자기 십자가가 아무리 힘들고 무거울지라도 그 십자가를 사랑으로 지고 예수를 좇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표상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삶으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동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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