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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은혜를 은혜되게 하라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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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오늘은 추수감사절 예배로 드립니다. 해년마다 감사절을 맞이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이 매년 치루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되며,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될 것잊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절기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고 했습니다. 수장절(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던 삼대절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추수하게 됨을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세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절대적인 규례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규례이므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 된 기독교인들도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11월 셋째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한국에서는 추석에 해당되기에 저희 교회는 조금 앞당겨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의 죄 위해 피 흘려주신 희생으로 구원받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추수감사절에만 할 것이 아니라 항상, 범사에 감사해야 마땅하며, 당연하고, 생활에서 감사 화 되어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이며, 당연한 일인 줄 믿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 뜻은 하나님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무시하며, 불신하는 자들에게 한 경고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망각한 채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불신앙하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섬기며 신뢰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은혜를 은혜가 되게 하라."는 주제로 감사에 대한 교훈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은혜를 헛되이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헛되이 버리므로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삼키는 탐식자요. 배은망덕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나환자들은 부정하다고 해서 일반 대중과 떨어져 결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과 가까이서도 대화를 할 수 없도록 율법으로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본문 12절에 보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도 문둥이들은 멀리서서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지르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들은 다 같이 주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구원해 주십시오." 간절한 외침은 참으로 훌륭한 기도였고, 예수님은 응답을 신속하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너희들의 병이 다 나음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대신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열 명 전부가 다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런 고침 받은 아홉 명이 배은망덕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정 반대의 전혀 다른 또 다른 한 사람을 보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살피면서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감사의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소극적으로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18절)

오늘 읽은 성경엔 은혜를 져버린 아홉 명의 유대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아홉명에 대해 안쓰러운 심정으로 물으셨습니다. 17절에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어서 18절에는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열 명이었습니다. 유대인 나환자 아홉은 율법대로 제사장에게 가서 보였고, 오직 사마리아 고침받은 나환자만 주님께 나와서 감사를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혈통적으로 반만 유대인인 이를테면 혼혈족이였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죄인시 당했던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마리아인 나환자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아홉은 율법은 지켰지만 감사는 잊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습니다. 그 중 아홉 명이 은혜를 망각해 버렸습니다. 열명 중 아홉 명이나 은혜를 꿀꺽 삼켜 버렸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 버림으로써 주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물어보신 겁니다.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성도 여러분! 처음에 이 사람들이 어떠했습니까? 얼마나 간절히 은혜를 사모했습니까? 얼마나 그들은 자기 병이 낫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외쳤습니다.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간절히 구했습니다. (눅 17:13)“..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러자 주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눅 17:14) “ ..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아직 그들의 몸이 나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그러자 가는 길에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 저주스런 병이 가는 길에 말끔히 나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괴롭히던 참으로 저주스런 병에서 완전히 놓였습니다.

여러분께서 이렇게 되었다면 어떤 행동을 하시겠습니까? 그냥 기뻐서 집으로 가시렵니까? 아니면 제사장에게 가라 했으니 제사장에게 먼저 달려가서 확인을 받으시렵니까? 아니면 사마리아 사람같이 열일 제쳐 놓고 고쳐주신 분께 달려와 감사하겠습니까?

어떤 모습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참된 모습입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엔 고침을 받은 아홉 사람은 그냥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 모두는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좋고, 믿음의 전통도 길다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갈 길로 사라졌습니다. 그 엄청난 병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 예수님에 대한 한마디 감사도 없이 그들은 자기 갈 길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말았습니다. 은혜를 은혜가 되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런 종류의 사람을 흔히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은혜를 은혜 되게 못하는 자들이 허다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며 기도 부탁까지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직장을 주셨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직장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직장이 바쁘다고 교회 출석을 중지합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은 꿈도 안 꿈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잘 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잘되고 번창하면 바빠서 교회에 못 나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번 돈의 십일조도 아까워서 못 드리고 감사헌금도 못 합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합격하자 교회도 끝입니다. 공부하느라 바빠 교회출석도 못합니다. 젊을 때 봉사하고, 충성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 젊음을 온통 세상에 다 바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다 은혜를 배반한 사람들의 사례입니다. 은혜를 은혜 되게 못하는 배은망덕한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 연조가 오래 된 신자들이 은혜를 더 많이 망각합니다. 그 만큼 은혜를 더 받아왔고 그 만큼 은혜 중에 더 많이 살았는데 오히려 갈수록 원망이나 불평이 늘어갑니다. 이젠 은혜를 당연시여깁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일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B. Lightfoot(라이트훗)은 "감사는 말로 하든지 행동으로 하든지 인간다운 최고의 미덕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은혜에 무감각한자들이 되어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제는 은혜를 받아도 감동마저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혹시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지난 한 해 동안 은혜를 주셨습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나 환난에서도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인내하여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다시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합력하여 유익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계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지진과 홍수와 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기에 성도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염려하며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가 기도가 되고, 걱정이 간구가 되었고,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의 말대로 "성도에게는 절대 무의미한 역경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절대 공의를 깨닫고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신앙으로 범사에 감사함 속에서 주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은혜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삼킨 배은망덕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은혜를 망각한 아홉 사람의 나환자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가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은혜를 은혜 되게 할 수 있습니까?

1)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열 명의 나환자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 열 명 모두가 동시에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눈으로 병이 나은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 다 자기들의 병이 나은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본문 14절에 “...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고 당시 상황을 설명합니다. 나환자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병이 낳은 것을 보았습니다. 스스로 주님의 능력으로 고침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의 병 나은 것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출신 문둥병자였습니다. 모두가 은혜를 받았지만 은혜를 은혜로 안 사람은 그 사람 하나였다는 말씀입니다.(눅 17: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오늘 말씀은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 에서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라고 말씀하지만 사실 자기의 나은 것을 본 사람은 열 명 전부 다였습니다. 열 명 모두가 자기의 나은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사마리아인만이 한 사람! 오직 이 한 사람만이 그것을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병을 고치신 바로 메시야요. 감사해야 할 분임을 확실히 안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제사장을 찾아가 자신의 병 고침을 확인 받고, 이제는 결별한 가족들을 찾아갈 수 있게 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제사장에게 확인 절차를 밟으러 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자 그는 메시야 되신 주님께 달려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았다."고 한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은혜를 은혜로 몰랐습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눈멀고 마음이 어두워 은혜의 출처를 몰랐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여기십니까? 그러나 이런 일이 세상에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답게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이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모두가 그 사실을 확연히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깨달아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연"이라 돌립니다. "우연히 된 것이지 무슨 기도응답이냐? 때가 되어서 된 거지 무슨 하나님의 역사냐고 말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이야 내가 잘 해서 된 거지..." 혹은 "하나님의 도우심은 무슨 하나님의 도우심이야...내가 열심히 일한 덕이지..."

타락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를 조롱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은혜를 은혜가 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선한 일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압니다. 자기 삶 속에 생긴 모든 좋은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확연히 알고 하나님께 달려갑니다. 은혜주신 주님을 찾고 그 분께 달려갑니다. 오늘 사마리아 사람이 그랬습니다.

2) 두 번 째 일은 은혜를 주신 분께 찾아가야 합니다.

은혜를 은혜가 되게 하는 방법으로 고침 받은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께 되돌아왔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주님께 되돌아 온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15~16절을 교독합시다.

15절에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절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할렐루야!

열 명중 단 한 사람이 돌아온 것입니다. 9대 1로 자기를 고쳐주신 분께 되돌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러 달려온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16절에 분명히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고 오늘 성경은 그가 사마리아 사람인 것을 밑줄 그으며 강조합니다.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이 얼마나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유대인들이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했고, 더 많은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했어야 했던 의무와 사명이 있는 그들이었지만 모두 자기만을 위해 갈 길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냉담하게 자기 갈 길로 내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18절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마 당시 고침을 받았을 때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동안 함께 생활해 왔던 동료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게들! 우리가 나은 것이 예수님의 은혜가 아닌가? 그 분이 우리를 고쳐주신 것이 사실이니까 어서 그 분께 가서 감사하러 가세. 빨리 서두르게. 어쩌면 다른 곳으로 가실지 모르잖나? 어서 가세."

그러자 유대인들은 아마 "아니 난 지금 바쁘다네. 나는 어서 가서 이 기쁜 소식을 가족에게 알려야 하네. 감사는 나중에 함세."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닐세. 나는 제사장에게 가는 것이 급하네. 제사장의 확인을 얻은 후에 감사해도 늦지 않을 것일세."왜냐하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제사장의 고침을 받은 확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갑자기 바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이런 종류의 핑계를 대며 은혜에 대한 감사보다 자기 길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주신 주님께 달려오기를 거절하고 모두 다 자기 삶에 바빴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별안간 바빠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귀한 예배시간에 나오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자고 하면 별안간 바쁜 일이 많아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주일을 성수하고 주일을 지키자고 하면 갑자기 바빠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신 은혜를 받았으니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하자고하면 별안간 바빠지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세상일에 바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헌신하며, 섬기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주님의 핏 값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헌신과 봉사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자고 권하면 왜 그리 바쁜지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에 한 번도 교회를 위해 빗자루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봉사할 기회가 있지만 동참하지 못하고 구경꾼 신자로 전락하여 심지어 휴지하나 줍지 못하고 자리 정돈하나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오늘 아홉 명의 유대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은혜를 은혜가 되게 하는 길은 은혜주신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 분을 가까이 하며, 그 분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을 섬기고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3) 은혜주신 분께 사례해야 합니다.(16절)

“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오늘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사례했다"는 말씀은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뜻입니다. 부랑자로 떠돌던 문등병자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는 은혜에 감격하여 뜨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병을 치유해 주신 주님께 눈물을 흘리며,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주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을 주님 앞에 한없이 낮추고 머리 조아려 감사했습니다. 그는 온 마음으로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다른 이들에 대해 물으십니다. 주님은 의아해 하시는 말투로 물으셨습니다. 17절에 “...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절에는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감사는 기뻐하시고, 기특해 하셨지만 한편으론 유대인의 행실에 섭섭함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홉 사람에게 주지 않았던 또 다른 큰 은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문둥병자들은 받지 못한 참으로 놀랍고 큰 은혜였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문둥병에서 낫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의 구원이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에게 구원의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19절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사마리아 사람은 육신의 치료와 함께 영혼의 구원까지 받은 것입니다. 그는 원하는 것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홉 사람이 이 귀한 은혜를 받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홉 명의 문둥병자는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얻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필요한 구원의 은총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간절히 찾고 찾던 건강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육신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필요한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귀하고, 영원한 구원의 은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죄사함과 영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귀한 기회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 돌어와 사례한 사마리아 사람은 육신과 영혼의 고침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육체와 함께 영혼의 구원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었을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원까지 얻었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9절에 “...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할렐루야!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단지 육신의 은혜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지 육신의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최선을 다해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종교생활은 하지만 여전히 그 영혼은 지옥에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큰 은혜가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육신적인 것을 전부로 여기고 삽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메어달려 좋은 직장을 은혜로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원하던 좋은 직장을 얻었으나 직장 때문에 신앙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직장이 천국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그 은혜를 망각해 버린 아홉명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에게 꼭 필요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습니다.??문제는 주님께 나와 감사하는 삶을 거부하여 신앙생활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학 진학에만 목표를 가지고ㅛ 교회에 나온 것이기에 결국 구원받지 못하는 반열에 합류하는 사례가 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장사가 잘 됩니다. 그러나 그는 돈벌이에 빠져서 은혜를 헛되이 받은 배은망덕한 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는 여전히 지옥이 그의 미래입니다.

어떤 이는 육신의 질병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병상에서 "믿습니다."고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가 질병에서 고침받자 그는 세상 일하기에 바빠졌습니다. 이런 이들이 다 배은 망덕한 자들이요. 은혜를 망각한 오늘 본문의 아홉 명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마리아 사람은 은혜를 은혜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고치신 이가 예수님 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고쳐주신 분께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그 분의 은혜에 영광을 돌리며, 엎드려 사례합니다. 그의 이런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원하는 것에 더해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는 영혼의 구원까지 얻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주님은 이렇게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그들에게 절대로 필요한 온 천하보다 귀한 은사와 구원의 은혜까지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에 더하여 꼭 필요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은혜를 받되 영혼의 구원까지 받으셨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까지 받았습니까? 은혜가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선 주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그는 구원의 백성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참으로 믿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영혼의 구원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섬기는 성도들이 참으로 구원받은 참 성도입니다. 오늘 말씀이 이런 사실을 확인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한 해 동안의 은혜주심에 감사하고자 모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시100:4, 107:8, 118:19, 138:2), 그 백성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시7:17, 28:7, 35:18),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사악한 자를 징벌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시 107: 21절에 “주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고 말씀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심지어 하박국 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감사를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감사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딤전 4:4절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속으로 부터 자발적으로 솟아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에 대하여 유일한 신앙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살전 5:16~18). 감사하는 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감사의 생활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요 우리를 지으신 분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신 마음속에 감사의 마음이 넘치고 감사의 말, 감사의 노래, 감사의 예물을 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만을 토하는 곳에는 마귀가 역사합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만물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죄에서 구속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믿음의 생활을 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금년 일 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농사짓고, 수확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나의 생계를 이어갈 근원을 주신 그 은혜의 표시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처음 익은 열매와 제일 좋은 것을 감사의 예물로 드리는 그런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출23:16~19).

추수감사주일인 오늘 여러분은 무엇으로 은혜에 사례코자 합니까? 얼마나 은혜를 은혜 되게 하시고자 준비하셨습니다. 기껏 돈 몇 푼을 들고 오셨습니까? 참으로 감사하는 감격스런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그러면 이 감사주일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무서운 것은 출 23:15에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손에 헌금이 얼마나 있느냐가 아닙니다. 아무리 헌금이 많이 있어도 감사의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빈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마음속에 감사가 차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감사의 고백이 우리의 입술에 있어야 합니다. 입술의 열매인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손에 하나님께 바칠 예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무서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물질로 바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건물을 잘 짓고 장식을 잘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돈 많고 지식이 많고, 명예가 있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릴 때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일 년 동안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는 최선의 표현을 하여야 합니다. 이제 바라기는 우리의 손이 하나님 보시기에 빈손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이 크신 은혜와 은사에 무엇으로 감사할꼬?" 참으로 부족하고 송구스런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사례하며 드릴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의 몸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돈으로 헌금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재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여러분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에게 가슴에는 기쁨이 넘치고, 입술에는 찬양과 간증이 넘치고, 손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넘쳐서 흔들어 채움을 받는 금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한 해 동안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여러분의 마음과 손이 부끄럽지 않게 감사하며,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감사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 빌어 드립니다.

<축 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영원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위로, 충만케 내주하시는 역사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하기위해 모든 은혜를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 줄 확연히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헌신의 삶을 살기를 다짐하는 모든 미스바교회 성도님들의 심령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나이다. 아멘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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