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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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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5장에는 아담 자손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누가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향수하다(살다)가 죽었더라"는 말이 계속 되풀이된다. 그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900세 이상 살았지만, 에녹은 훨씬 짧은 365세를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옮겨졌다.

  에녹의 승천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저편에 인간이 생활할 천국이 있고, 인간의 영혼이 결코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임을 말해준다. 또한 마지막 날 들림 받을 성도들의 모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땅에서 장수한다고, 반드시 복 받은 것은 아니다.

  똥을 집어먹을 만큼, 오래오래 살면 뭐하나? 오래 사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는 자의 최후는, 흙이 아니요 공동묘지가 아니라, 영원한 안식처 곧 하늘나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면해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다 실패했다. 그러나 에녹은 죽음을 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동행해서 죽음을 면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만, 영생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다. 그런데 동행한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걷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그 뒤를 따라 걷게 만들다, 생활하게 하다는 뜻이다. 곧 하나님의 뜻이 에녹의 뜻이 되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면, 에녹도 싫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면, 그도 좋아하게 되었다. 이것이 동행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이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참 아름답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전혀 주님의 뜻과 반대 될 수도 있다. 마치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 지도자들 같이, 행동할 수도 있다.

  목사들의 목사 불리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목사들이 분주함으로 일하는 것은, 헌신의 표시가 아니라 배신의 표시'라고 했다. 목사는 기도와 말씀에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데 있다.

  우리 인생의 최대성공은, 일보다 성공보다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데 있다.  기도할 수 없을 만큼 바쁘고, 예배할 수 없을 만큼 바쁘고, 말씀을 묵상할 수 없을 만큼 바쁘다면,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서, 교제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어떻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까?

1.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에녹은 엘리야처럼, 특별한 능력이 주어져서 동행하지 않았다. 모세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기에, 동행하지도 않았다. 에녹은 우리처럼 죄를 짓고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인물이었다.

  창5:21을 보면 에녹이 65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를 낳은 후, 하나님과 300년 간 동행하였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죄짓는 사람이었다.
에녹의 부친 야렛은 '내려간다'는 뜻이다. 에녹(하녹)의 의미는 '창, 단창'이다. 가인과 같은 의미다. 

  에녹이 살았던 시대는 창6:5-6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했다.
  다음과 같이 상상해보자. "하나님께서 어느 날 에녹을 부르셔서, 에녹아! 세상이 정말 악해졌구나! 거룩하고 의로운 나 여호와가, 더 이상 세상의 불의를 용납할 수 없으니, 이 세상을 심판하겠다. 그 징표로 장차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 하라."

  그래서 말씀과 같이 에녹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다. 그 뜻은 무트(죽다) + 솰라흐(보내다) = '그 아이가 죽으면 홍수 심판을 보내겠다'는 뜻이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저 아이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고 했는데'하며, 아이를 쳐다 볼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떠올렸다.

  이렇게 에녹의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심판을 깨달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에녹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들처럼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살았다. 특별한 사람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직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를 느끼고 살 때, 우리의 삶에는 변화가 온다.
다이너마이트로 세계적인 대부자가 된 노벨이, 프랑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호텔에 배달된 신문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에는 '알프레드 노벨 사망'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사실은 노벨의 형이 사망했는데, 노벨이 너무 유명하니까, 그 이름을 잘못 기록한 오보 기사였다. 더 충격적인 내용은, 자신을 죽음의 상인이라고 하였다. 노벨은 이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하루종일 호텔에 머물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만약 이대로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죽음의 상인이었다고 말하겠지, 세계적인 발명가라는 명예와 엄청난 재물도 소용이 없었다. 생명과는 무관한,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역사의 죄인이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살상무기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벨은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 그 기금으로 노벨상을 만들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신문의 오보가, 노벨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 왔다. 자신이 죽었을 때,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라는 단순한 진리가, 세계최고권위의 상을 만들었다. 이처럼 에녹의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순간부터 달라졌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삶은 달라진다.

  에녹은 므두셀라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이 된다는 말씀을 듣고 믿어,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는 순간부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므로,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2. 사랑의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사랑이 참 많으신 분이다. 하나님의 의와 심판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하나님을 무섭게 느끼고 떠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의 주님이신 동시에,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시어,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죄인에게 먼저 찾아오셨다. 이 점이 에녹의 삶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므두셀라의 이름은 '그가 죽으면 홍수 심판이 온다'는 뜻이라고 했다.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 심판이 내렸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
  노아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는 369세가 된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최고로 장수한 사람으로 969세까지 살았다. 그런데 창7:11-12절에 보면, 놀라운 사실이 나타난다.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 369세였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는, 므두셀라가 969세 되던 해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이 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므두셀라가 죽자 이름과 같이,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지는 노아의 홍수심판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셨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오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오래 살게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세상에 대해서 오래오래 참으셨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악한 세대를, 당장 심판하셔야 했지만 사랑으로 참으셨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 죄를 고백하는 순간,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켜 주신다. 에녹도 인간이기에, 잘못을 했다. 그의 이름을 본다면, 좋은 이름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동행하셨다. 자신의 죄를 들고, 주님 앞에 나가 용서를 구했기 때문이다.

  에녹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갔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고 동행하셨다. 요일1:9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다.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며 나오시기 바란다.

3.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히11:5-6을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 천국으로 데려간 에녹을 언급한 후에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주신다. 어떤 상을 주시나요?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칭찬을 받는다(히11:5).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인간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말은, 정말 칭찬 받을 일이다.

  자식이 효도할 때, 효자 상을 받고,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증거로, 열녀라는 명예를 주기도 한다. 임금님을 위해 목숨을 버린 신하에게 충신이라는 명예를 붙여준다. 에녹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큰 명예가 주어졌다.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이런 영광을 차지했다.

  육으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 그래서 마3:17을 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십자가까지 지시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할 때,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 주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이 되는, 은혜가 있기 바란다.
(2)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지는 복을 받았다.
믿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준다. 요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음은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준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던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렀으니, 그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에는 많은 불신자들이 지옥으로 던짐 받게 될 것이나, 우리는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진다.

  살아 있을 때 주님께서 오시면, 공중으로 들림 받는다(살전4:17).
육체적인 죽음을 보지 않고, 홀연히 변화된 몸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과 동행하시다가,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홀연히 들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았다(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조상 에녹이 있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후손 노아가 나올 수 있었다.

  노아는 세상이 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삶을 살았다. 의인이고 완전한 자라는 인정을 받았다.
노아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5:29을 보면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노아는 가문의 자랑이요 기쁨이다. 세상살이가 힘들지만, 노아를 보면서 위로를 얻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자녀가 가문의 자랑이며 위로가 되기 바란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할 살 수 있었던 것은, 조상들의 신앙이,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섰다는 증거다.

(4) 하나님 자신을 주는 복을 받았다.
에녹의 시대에 사람들이 타락하게 된 이유는, 아벨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이 죽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께서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무엇인가?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자신을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너에게 주겠다"며, 가장 열정적인 사랑을 주신다.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상이 가장 좋은 상이다. 에녹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송두리째 상급으로 받았다. 우리도 이런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나의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란다.

  결론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다. 하나님과 동행 할 때, 기쁨이 있고 안전이 있고 행복이 있다. 세상에서의 삶이 끝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저 천국으로 데려 가신다. 하나님과 동행하시다가, 데려감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건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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