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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행 13: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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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집에 처녀가 살고 있지만, 먼 곳의 처녀와 결혼하는 이유는, 그 처녀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옷을 하나 사면서도,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는 이유는, 마음에 드는 옷을 사기 위해서다. 우리 동네에도 음식점이 많지만, 먼 곳까지 가서 찾아가는 이유는, 내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마음에 들기만 하면,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신분을 초월할 수 있다. 돈도, 거리도 문제가 안 된다.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2왕, 사울과 다윗이 나온다. 사울 왕과 다윗 왕은 똑같이 40년 간 나라를 다스렸다. 이들은 통치기간도 같고, 머리에 썼던 왕관도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의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22)고 했다. 이 말은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사울은 폐해졌고, 그의 후손들이 계속 왕이 될 수 있는 축복을 놓쳤다.

1.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한 이유?

(1) 처음과 끝이 달랐다.
사울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다. 왕으로 선출될 때에도, 나서서 자랑하거나 거만하지도 않고, 겸손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며 멸시하면서, 예물을 드리지 않겠다고 비웃는 사람에게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을 가졌다(삼상10:27). 그러나 사울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욕심이 나타났다(삼상15:9).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기념비를 세우기에 급급했다(삼상15:12).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했다(삼상15:10-23). 이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사울을 버렸다. 처음과 끝이 달라지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해 촛대를 옮기게 된다.

(2) 자기 잘못을 회개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잘못을 오히려, 성공의 밑거름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못한 후에도 계속 잘못을 고치지 않아서, 영원한 실패자가 되기도 한다.

  사울이 잘못했을 때, 사무엘의 책망을 받았지만, 잘못을 고치지 않았다. 사울은 다윗을 억울하게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2번이나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지만(삼상24장, 26장), 여전히 다윗을 미워한다. 자기 잘못을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 한다.

  하나님은 죄 없는 완벽한 의인을 찾으시는 분이 아니다. 자기의 잘못을 알고, 회개하고 고치려고 애쓰는 사람을 찾으신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어서, 그의 삶과 장래가 형통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자.

2. 다윗 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이유?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때,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때에, 그의 마음에 들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믿음이다.
  히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다윗 왕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나?

(1)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다(왕상9: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다윗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온 마음을 바쳐서,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다윗이 어린 시절, 블레셋은 거인 골리앗 장군을 앞세우고 이스라엘을 침략했다. 그때 이스라엘 군사들은, 그 누구도 그와 맞서 싸우지 못하고, 벌벌 떨고있었다. 다윗은 심부름을 왔다가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그를 보고, 어린 다윗이 나가서 싸우겠다고 하였다.

  이런 믿음으로 나갈 때, 얼마나 하나님의 자존심이 높여졌겠는가? 그는 비록 어리고 몸은 작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이렇게 외쳤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고 하였다.

  다윗에게는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었다. 이런 용기는 믿음에서 왔다.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은 골리앗보다 강하시며, 하나님은 칼과 단창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분이심을 믿었다.

  믿음은 용기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울 왕과 백성들은, 편안할 때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 골리앗을 보고 두려움에 눈앞이 캄캄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이 계심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어떤 환경에서도 비겁하지 않고,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기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믿음의 용기가 없기에 넘어진다. 골리앗이 있기에 이스라엘이 패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불신 때문에 무너졌다. 가나안 정탐을 갔을 때도, 정탐꾼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제대로 보았다. 그들은 장부였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10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 불신이 문제였다. 우리의 삶의 문제는,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가 소년 다윗처럼 작고, 세상은 골리앗만큼 크다고 할지라도,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하16:9을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로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에게, 위로해 주시고, 능력도 베풀어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나요?

  가나안 사람이 장부들이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아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하나님만 바로 볼 수 있으면 문제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다윗과 같이, 넉넉히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며,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다. 믿음의 사람은 담대하다. 졸장부가 아니라 대장부다. 그러므로 믿음의 대장부가 되자.

(2)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했다(왕상9:4).
"바르게 하여…"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했다. 바르다는 말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곧은 마음을 뜻한다.

  잘못을 지적할 때,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회개하는 사람을 말한다. 회개는 겸손하고 진실한 자만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을 때, 나단 선지자는 잘못을 꾸짖었다. 그때 그는 왕이었기에, 얼마든지 변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변명도 없이, 그 자리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중심으로 회개하였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모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엎드려 회개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때 지은 시가 시편51편이다. 그는 침상이 썩도록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죄를 내려놓는 진실한 마음이다. 우리의 죄를 솔직히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신다.

  사울 왕이 버림받은 이유는,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무엘같은 선지자가 바른 말로 깨우쳐 줄 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멸망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나 가정이나 개인이 망하는 것은, 정직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범죄가 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법무장관이던 지난 5월 말, 어느 조찬 모임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대표범죄는 위증, 무고, 사기 이 3가지"라고 말했다. 인구비를 고려하지 않아도, 2003년 우리나라의 위증은 일본의 16배, 무고는 39배, 사기는 26배나 많았다.

  일본의 인구가 우리나라의 약 3배인데, 이를 감안하면, 위증·무고·사기 건수는 너무도 많음을 알 수 있다. 위증·무고·사기의 공통분모는 '거짓말'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검찰 업무의 70%가, 이 3가지 범죄를 처리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거짓말 좀 하면 어때", 또 '거짓말'이 일반 사람보다, 권력층 지도층 인사들에게서, 더 광범위하게 애용된다는 데 커다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살아남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여기는 풍조까지 있다.
교묘한 말 바꾸기와, 기억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일관된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거짓말이 드러나면, 그의 정치나 공직 생명은 끊어진다.
잘못은 용서해도, 거짓말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지도자나 권력자의 거짓말은, 일반 사람의 거짓말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중한 벌을 받는다. '거짓말쟁이(liar)'라는 말은, 최고의 욕이며 모욕이다.

  우리가 정직하면, 많은 축복을 받는다. 의사 앞에서 정직해야 고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서야만, 용서받고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정직함은 큰 자산이다. 18세기의 가장 유명한 왕 중의 하나가 '프레드릭 대제'였는데, 한번은 그가 베를린의 교도소를 시찰하게 되었다.

  그런데 왕이 만난 죄수들은 모두 한결같이, 자기들은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교도소에 들어와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달랐다. 왕이 무슨 죄를 짓고 들어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강도질을 하다가 잡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은 교도소에 있어야 마땅한 죄인이라고 했다.

  그러자 왕은 교도소장에게 소리쳤다. "여기에는 모든 결백한 사람들만 있는데, 이 자는 죄를 범한 악한 놈이니, 이 친구가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물들여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 놈을 얼른 밖으로 내 보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자.
(3)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자(왕상9:4)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며…", 다윗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온갖 것에, 전적으로 순종했다. 그러나 사울은 순종하지 않고 변명만 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고 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되려면, 순종하는 자가 되야 한다. 다윗은 어떤 경우에도 순종했다.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이기에 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우리는 어떤 자녀가 마음에 드나? 무슨 말을 하면, 말하는 것마다, 따지고 덤비는 자녀인가? 아니면 순종하며 따르는 자녀인가? 어떤 자식이 마음에 드는 자식인가? 마음에 드는 자녀에게 더 주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

  말단사원으로 입사했다가, 사장이 된 사람이 있다. 회사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사주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다. 태만하고 공금을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에는 왜 축복이 나타나지 않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에 축복이 없고 이적이 없다. 성경에는 순종할 때, 수많은 이적이 일어났다. 내 상식에 맞든 안 맞든 순종할 때, 축복이 일어난다. 노아는 홍수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었기에, 두말 없이 순종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구원받았다.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죽음이 지나간다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자 죽음이 지나갔다.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라했을 때, 순종함으로 바다가 갈라졌다.

  난공불락의 든든하고 높은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침묵하며 돌라. 마지막 날에는 7바퀴 돌고 일제히 소리쳐라 했을 때, 그대로 순종하자 대포 한방 쏘지 않고 무너뜨렸다. 우리는 어떤가? 주님께서 전혀 전망도 보이지 않는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지는 않나요?

  순종하시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신다. 순종은 축복의 길이다. 인간의 상식과 과학을 초월한 사건들이, 순종할 때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이치에 맞든 안 맞든, 상식이든 비상이건, 과학적이건 비과학적이건, 베드로와 같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면, 이적이 나타난다.

  결론이다.

본문 22절을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했고, 23절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룰만한 그릇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였고, 구주가 되게 하셨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이 되었다. 다윗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조상이 되기에, 넉넉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 유익한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신에 충만하여,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이건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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