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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주일] 진정한 개혁이란? (렘 23:1-4, 요 1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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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드릴 주제는 ‘개혁’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끄는 대통령들이 가장 많이 외쳐왔고, 우리가 자주 들어왔던 단어는 ‘개혁’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평생을 이 나라 정치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지도자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중요하게 이야기했던 것, 바로 국민에게 원하고 따라오라고 했던 것은 ‘개혁’이란 단어였습니다. 우리는 10년 동안 너무 자주 듣다 보니까 언론에서 ‘개혁이란 말에 너무 지쳤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개혁이란 말이 무엇이 잘못 되었길래 우리가 피곤함을 느꼈을까요? 또한, 진정한 개혁이란 무슨 뜻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옛날에도 임금이 바뀌게 되면 그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철학과 구상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내용을 바꿨습니다. 이와 같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역시 ‘이렇게 나라를 바꿔서 잘하겠다.’고 외치곤 합니다. 또한, 유권자인 우리 국민들도 그 정책을 믿고 ‘저 사람이 이런 제도들을 바꾸면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하곤 합니다. 그리고 선택된 지도자들은 우리들에게 요구하기를 내가 그렇게 주장했으니 당신들도 지금까지 살아온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살라는 주문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조직과 사회 속에서 큰 도움과 발전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정치적인 지도자였던 대통령 두 사람이 가장 못한 것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녀들에 대한 개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통령의 자녀들이 세명씩이나 개혁적인 인사가 되지 못해서 범죄자가 된 것을 우리는 봤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결토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혁을 외치는 사람과 그 주변의 가족의 실천이 필요하고 개혁이 이루어지려면 진정으로 개혁을 외치는 사람의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 개혁이란 주제로 시작하게 된 이유는 10월 넷째주가 전통적으로 개신교에서그 역사를 찾는 종교개혁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이란 무엇입니까? 독일에서 ‘마틴 루터’라는 카톨릭 교회 수사가 로마 교황에 대해 ‘이런 것이 잘못되었다.’라고 반기를 든 사건입니다. 그는 교황과 카톨릭 교회의 신앙에 대해서 95개 조항을 다루면서 이것은 틀리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95개의 조항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여러 가지 논란을 겪고 더 나아가서 국가간에 전쟁까지 겪게 되고 결론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떨어져서 여러 가지 자유로운 풍토의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하나 둘씩 시작되서 요즈음은 로마 카톨릭 교회보다 더 많은 개신교회가 생겨나고 교인수도 증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회에서는 오늘은 개신교회의 시작인 종교개혁주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주일이라고 할 때 대부분 ‘그런 것이 있었구나! 참으로 중요했구나!’ 하고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양실공동체교회가 가진 신앙을 비추어볼 때 종교개혁주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의미를 다시금 찾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만일 우리 양실공동체교회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나왔다고 합시다. 여태까지 우리가 기도의 방법으로 배워왔던 ‘모든 것을 맡긴다.’ 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지켜왔던 믿음의 방법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고 매달리고 요청하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안 배워왔고 안 들어왔기 때문에 그러한 신앙적인 길로 돌아선다고 하는 것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신앙적인 지도자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배워오고 당신이 믿었던 모든 것들이 틀렸다! 옳지 않다!”라고 했을 때 그 개혁적인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 개혁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지난 1500년 동안 주장하고 믿어왔던 그 믿음의 뿌리들을 흔드는 일을 ‘마틴 루터’가 했습니다. 로마 교황이 가졌던 모든 권한들에 대해 부정하고 그것이 아닌 오직 성경과 신앙으로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이전까지 배워왔던 흐름을 뿌리채 흔드는 이야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종교 개혁이 왜 일어났을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기도 하지만 중세를 거쳐서 그동안 이어져 왔던 로마 카톨릭에 아니, 기독교 역사가 워낙 부패하고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에 반대되는 빙향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원하는 것은 돈, 세상과의 권력, 이 세상을 조금 더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사람들을 핍박하는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자신들이 부패하면서도, 항상 교회는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중세의 종교적인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틴 루터’란 사람을 내세워서 이렇게 개혁하고 교회에 반란을 일으킬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레미야서에 나온 성경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선 목자를 보내실 때 양을 제대로 다스리거나 먹이지 않는 목자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 역사나 많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옳지 않은 종교 지도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는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져버리는 행동도 하였음을 알게됩니다. 우리 양실 공동체 교회는 교단이 없습니다. 교단이 없다는 것은 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를 이루는 더 큰 모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 개신교단 중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교단장 선거’라는 제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장로교단들이 대부분 교단의 대표인 교단장을 뽑는 선거방식은 회원들이 모여 투표를 해서 표의 과반수 이상을 얻은 사람이 교단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 민주적인 제도이고 합리적인 제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점점 발생이 되었습니다. 이 선거란 제도가 점점 인간적인 형식에 의해 그 교단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교회가 크고 교단장이 얼마나 부유하느냐에 따라 결정된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선거를 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고 여행을 가게 해주고 심한 경우에는 뇌물까지 주면서 교단장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한국 장로 교단 중에 적게 쓰면 수억원, 많이 쓰면 수십억원이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퍼졌습니다. 그리고 교단장을 하기 위해 수십억원이나 되는 돈을 쓴 경우가 있다고 말한 목회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십억원이란 돈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개인의 주머니에서 수십억원을 꺼낼 수 있었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교인들이 하나님께 바치라고 드린 돈, 이웃을 위해서 쓰여지기를 희망한 헌금을 목회자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위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심각했고 그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가졌으면 지난 장로교단 선거에서 제도를 정말 개혁적으로 바꿨습니다. 선거방식이 아니라 출마한 사람을 앉혀놓고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옳은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했을 것이고 출마자들이 돈 쓸 필요도 없었을 것 입니다. 그것이 민주적인 제도이고 옳은 제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지도자도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지도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과 권력을 누리려고 할 때 신앙은 간 곳 없고 신앙은 부패하게 되는 것이 종교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지도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러신다면 오늘 요한복음에 있는 말씀 두 절만 읽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리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지도자가 되려면, 나의 중심을 버리고 내것을 땅에 묻고 묻은 것이 성장해서 하나님의 역사대로 열매맺기를 바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적에 옳은 교회로 갈 수 있고 지도자가 우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안에서 내 중심에서 생각이 있다면 옳은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양실교회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이 성경의 말씀대로 그 의미를 찾곤 합니다. 누구든지 그가 자신의 것을 버리고 남을 위해 섬기려고 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지도자요, 쓰임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 안에서 내가 하려는 것이 많고 주장을 내세울 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혁이라고 외쳤던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자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은 내 자신 안에서의 개혁이었습니다. 개혁하기를 바란다면 나를 외치기 전에 내가 먼저 개혁할 것이 무엇인지 찾고 개혁하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개혁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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