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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출 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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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특별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거룩한 나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출하실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들판에서 조용히 사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가시 떨기나무 앞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이 억압 받는 것도 잘 안다. 억울하고 분해 울부짖는 것도 보았다. 내 백성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야겠다.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 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 내야 되겠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그곳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그런데 이 일을 모세 네가 맡아야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제가 어떻게 바로 왕에게 가서 바로와 싸우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는 증거다.”라 하셨습니다.

모세는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만큼 그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그것 때문에 왕의 자리도 포기했습니다. 그는 이 들판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양떼와 살고 싶었습니다. 그가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시오. 우리 독립해야 합니다. 나를 따르시오. 하나님이 저를 세우셨습니다.’ 하면 누가 제 말을 믿어주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는 곧 나다”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재촉하셨습니다. 너는 어서 가라. 장로들을 모으라. 그리고 이렇게 말해라. “너의 조상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고 하라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 저들이 제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헛소리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그 지팡이를 땅에 던져라.” 모세가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습니다. 다시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으라.” 다시 잡았더니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흔들렸습니다.

Ⅰ. 사람은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

사람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그래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야 손을 품에 넣어 보라.”(Now put your hand into your bosom)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 보았더니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그랬더니 여상한 손이었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쉽게 이 일을 하겠노라고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는 어느 모를 보아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주여 죄송합니다. 저는 도무지 말재간이 없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워낙 입이 둔합니다. 혀가 굳은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꾸짖으셨습니다.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를 만들었느냐? 누가 눈을 열어 주거나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게 하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더냐? 어서 가거라. 네가 입을 열 때에 내가 도와주마. 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리라”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죄송합니다. 보내실 만한 사람이 따로 있을 줄 압니다. 그런 사람을 보내십시오.” 하고 물러섰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화를 내셨습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않으냐? 내가 알기로는 그는 말을 썩 잘 하는 사람이다. 그가 지금 너를 만나러 오고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하나님과의 긴 대화입니다. 모세는 스스로 이 일만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격 미달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정치하려면 조직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인맥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능력도 평가 받은 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내가 우리 민족의 최고 통치자입니다. 나를 따르시오.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 합시다.” 하면 다 콧방귀나 뀔 것이 뻔합니다. 이를 아는 모세로서는 “못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겸손한 뜻에서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무능하다고 고백합니다. 자기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마구 밀어붙이십니다. 하나님이 강요하십니다.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자주 그런 말을 합니다.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 학교 영어 선생님이셨습니다. 충청도 양반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장로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두렵고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그러기를 세 번이나 거듭했습니다. 하다 못해 그 교회 당회장께서 제게 좀 이해와 설득을 시켜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자격이 있고 없고는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또 공동의회에서 세 번이나 된 직분을 거절하시면 하나님이 섭섭하게 생각하십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또 장로에게 주는 위로와 축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한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당회장 목사님의 기도와 영향이 컸으리라 믿습니다. 결국 그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는 교감도 되셨습니다. 고등학교 교장도 되셨습니다. 우리를 자격이 있다고 세우는 것 아닙니다. 모자라더라도 하나님의 교회가 필요로 하면 일을 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전혀 이 일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고집이 센 사람입니까? 그가 좀 모자랍니까?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제발 이것만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세는 이런 도박을 할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낳은 영웅이 있습니다. 1944년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웅변대회가 있었답니다. 한 학생이 당당히 1등을 했습니다. 그는 여자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탔습니다. 곧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버스를 탔습니다. 운전기사는 고함을 칩니다. 웅변대회에서 1등한 학생과 교사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학생은 그럴 수 없다고 버티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설득시켰습니다. 그는 자리를 빼앗기고 150km를 선 채로 오면서 이 분노를 평생 간직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는 검둥이였기 때문입니다. 백인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입니다. 소년은 미국의 인권운동가 말틴 루터 킹 목사로 성장한 것입니다. 1896년 미국 대법원은 공공시설에서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분리시켜도 좋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이것을 분리평등(separate but equal)이라고 했습니다. 1954년에 일 워런이 이끄는 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 “분리평등”을 없애라고 만장일치로 결의했습니다. 이 역사적 판결을 흑인 민권운동은 십계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려는 절규와 울분을 해방한 모세였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희생한 영웅입니다. 사람은 편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위험한 모험을 피하려고 합니다. 승산이 없는 도박을 싫어합니다. 모세는 그래서 “하나님 저는 못 합니다. 누구도 저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저는 살인전과자입니다. 전국에 체포수배령이 내려 있습니다. 말이 어눌합니다. 저는 조직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저는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Ⅱ. 이제는 가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승산이 없습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자격이 없습니다. 그 말은 핑계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누구신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습니다. 뱀 꼬리를 잡으라 하십니다. 잡았더니 또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믿을 수 없는 모세에게 이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손을 품안에 넣어 보라 하십니다. 그랬더니 한센 병이 걸렸습니다. 다시 넣었다가 끄집어냈더니 정상적인 손이 된 것입니다. 모세는 거듭 못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이 못난 것아 두려워 말라. 이제는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피하고자 변명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승산 없는 일을 지시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스라엘은 곧 없어지게 될 판입니다.

얼마 전 어느 신문(2005.10.27 중앙일보)에 재미난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 젊은이는 사무실에서 화가 날 때마다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스마일 볼”을 든답니다. 당구공보다 좀 큰 웃는 얼굴이 그려진 공이랍니다. 공을 뒤집어 보면 “Yes. No”를 비롯해서 “You can count on it”(믿어봐) “chances aren't good”(기회가 좋지 않아) 등 20여 가지 대답이 떠오른답니다. 우리는 “못해먹겠다.” “그럴 것 같다(Look like yes)”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흔들리기도 합니다. 갈팡질팡합니다. 사람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습니다. 모세도 그런 류의 사람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자신은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밀어붙이기식 같은 요구를 하십니다. 너무 무리한 요구입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모세 이외에 사람이 없었을까요? 모세만한 인물이 없었을까요? 미디안 들판에서 양떼를 치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는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살인범입니다. 깨끗하고 더 나은 사람이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가 바로에게 가서 “우리 백성을 해방시켜 주세요.” 한다고 해 봅시다. “당장 저 놈을 잡으라. 저 놈은 애굽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다.” 하면 그로서 모세의 삶은 끝입니다. 스스로 사자 굴로 들어가는 격입니다. 기름을 뿌리고 불로 뛰어드는 꼴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네가 적임자다. 네가 하라” 하십니다. 그는 자격 갖춘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핑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욕먹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칭찬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해야 합니다. 물러서도 안 됩니다. 변명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순종 뿐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자기 주장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모세는 숨어 살아도 찾아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적임자로 점 찍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표 내는 것 아닙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싫어도 해야 합니다. 시간을 바칩니다. 돈도 내놔야 합니다. 때로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선뜻 “제가 하지요.” 하는 사람 적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어느 날 시골에 조용히 묻혀 사는 여든 살 노인 모세를 찾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는 이미 과거의 화려한 삶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하나님은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격입니다. “모세야 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라. 그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옛 고향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 아는 이도 별로 없습니다. 인맥도 없습니다. 조직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맨손으로 왕과 싸우라고 하십니다. 어림없는 일을 명령하십니다. 모세답지 않게 조목조목 따졌습니다. 그는 절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야! 어리석은 곰탱이 같은 사람아 내가 해 주마.” 화를 내셨습니다. “이제는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힘이 듭니다. 때로는 욕을 먹습니다. 그러나 변명하지 맙시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 합시다. 그래서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11.6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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