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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행전 (행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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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가 쓴 「죽음의 순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호스피스 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책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5단계를 거친다고 말합니다. 1단계는 자기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부정하는 단계입니다. "나는 아니야! 나는 절대로 그 병에 걸리지 않았어"라고 반응하며 의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2단계에서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 내가 이 병에 걸렸느냐는 것입니다. 3단계에서 사람들은 거래합니다. 하나님이자 절대자 앞에서 어떻게든 죽음을 연기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4단계에서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마지막 5단계에서 사람들은 드디어 그 병과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수용의 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무한하거나 영원한 시간을 지상에서 보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효과적으로 경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부정이나 분노, 타협이나 우울증으로 보낸다면 이처럼 억울하고 비극적인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러한 단계들을 짧게 보내고 수용하고 행동하는 시간을 길게 가져야 합니다. 사명과 소명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기도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통하여 큰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에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시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큰 은혜 받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모여야 합니다

  본문 6절"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동편에 있는 감람원이라는 산에 모였습니다. 사도들은 나름대로의 생각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해하고 왜곡하였습니다. 예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줄곧 그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되어질 하나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더불어 그들의 인간적인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이제 부활하신 주를 보고서 다시금 정치적 회복에 관한 기대가 되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은 세상의 어떤 모임보다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됩니다. 위로와 치료와 사명을 받게 됩니다. 모일 때 나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모난 성격과 부족한 것들을 교정 받게 됩니다. 혼자만 있으면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거나 극단적인 방향에 빠지게 됩니다. 사탄이나 이단은 혼자만 있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쉽게 쓰러지게 합니다. 모임을 통해서 힘을 얻고 건전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중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변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자식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용서하고 품어주시던 부모님이 갑자기 회초리를 들고 나올 때 철없는 자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아버지가 변했어. 어머니가 변했어."
  그러나 이때 아버지가 변하고 어머니가 변한 게 아니라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님이야 자식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하기 위해 쓰린 마음으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이 변하셨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재빨리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 내가 변화되어야겠구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내가 원래 말씀의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주께서 돌아오라고 하시는구나.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변하신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우리가 완전히 변해서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될 것이 없는 사람만이 교회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야 할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값을 메길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립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는 곳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의 마음을 분산시킵니다. 교회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모이기를 폐합니다. 그러나 성도와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사도들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모일 때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고 성도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사람과 인생과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교회라는 모임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교회를 바꾸는 것이 아닌 잘못된 나를 주님께 합당한 인생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열심히 모이기를 힘씀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원하고 기뻐하시는 높은 수준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어 큰 사역을 감당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하늘의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키셨습니다. 그 능력이란 그들이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는데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 자신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 제자들도 똑같이 기름 부음을 받아 사역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에 의하면 성취의 날에는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시고 승천하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모든 신약의 백성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능력있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재주와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사명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무능하고 부족한 인간이라도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하나님의 귀하고 아름다운 도구가 되며 신실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독수리다운 것은 어떤 모습입니까? 독수리에게도 발이 있습니다. 하지만 독수리의 발이 나 갈고리 모양의 발톱은 땅 위를 걷기에 적합하다기보다 가지를 움켜쥐고 나무 위에 걸터앉는다거나 먹이를 낚아채기에 더 용이합니다. 독수리의 사명이란 걸어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하여 가지에 오래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독수리의 진정한 사명은 창공을 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적인 독수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가지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창공을 나는 자가되기 원하십니다. 창공을 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사명에 부응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지으신 주께서 내 이름을 부르실 때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사명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모습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과 지겹게 사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건물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일하는 경비아저씨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웃는 밝은 얼굴로 그 건물에서 가장 유명했습니다. 어떻게 표정이 항상 밝은지 물어봤더니 그 경비아저씨가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날인데 어떻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생전 처음 맞이하는 모월 모일이며 내일 역시 처음 맞이하는 모월 모일로 날마다 새로운 날인데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이 어제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나는 하루 더 늙었고 하루 더 먹었고 새로운 것들을 좀 더 많이 접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영감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사람의 나이는 세월로 따질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영감이 더욱 깊어집니다.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고 감사의 삶을 살아 더욱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함을 받은 것이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새 인생과 새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인간의 의지나 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더욱 성령 충만하여 이 시대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모여야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어의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증인'(마르튀스)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증인은 순교적 자세를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내 증인'이란 '예수에 의해서, 예수를 위해서,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미래 시제는 성령 강림의 약속의 실현과 더불어 제자들이 본격적으로 증인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이 되고,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교를 각오해야 합니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어떤 사람이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데 그만 연주 도중에 현(絃)이 하나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연주를 그친 것이 아니라 조옮김을 해가며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고 합니다. 몇 현에 불과한 현악기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더욱이 단 세 현만 가지고 연주를 끝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굉장한 제약입니다. 그만큼 제한된 환경 속에서 연주를 해냈을 때 그 아름다움이 더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사 모든 여건이 다 충족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핸디캡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여러 모양의 제약들이 나타납니다. 교회에도 장소라든지 위치라는 제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 그런 제약 때문에 일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그 일을 성취하고 나면 그런 제약이 한층 더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제약을 극복하고 일을 이루어냈다는 것이 더 기쁘고 보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많은 제약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표출해낼 수 있는 그런 멋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반드시 우리 모두는 주님의 좋은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증인이 됩시다. 이보다 더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해 드리는 기념비적인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마을에 바보 둘이 살았습니다. 그 둘은 너무 친했습니다. 밤이 되자 한 바보가
  "저기 있는 건 해야."(달을 보고)
  "아니야, 별이야."(달을 보고)
  둘이 싸우고 있을 때 나그네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저기 위에 있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 동네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요."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이제는 분명히 압시다. 성도행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이고, 성령받고,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많고도 놀라운 아름다운 신앙의 흔적이 반드시 있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김 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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