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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계명강해(5) - 약속 있는 첫 계명 (신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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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의 비애

해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면 카네이션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꽃집으로 모여들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카네이션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아버지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립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어버이주일에 교회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요? 뿐만 아니라 5월이 되고 어버이날이 가까워오면 백화점마다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고급 식당마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해서 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예(禮)’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가운데 부모에 대한 예인 효(孝)를 가장 소중히 여기기에 적어도 어버이날에만 보면 우리나라에는 정말 효자 효녀들이 많고 부모들은 자녀들로부터 효도를 듬뿍 받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2000년 5월 21일, 어버이날의 분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국을 큰 충격으로 몰고 갔던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고려대학생인 이은석 군의 부모 살해사건입니다. 이 젊은이는 소위 명문대 생이었고 그 아버지는 해군사관학교 출신, 어머니는 이화여대 출신의 명문 가정이었다는 점에서도 충격을 주었지만 그가 부모를 잔인하게 토막살해한 뒤 그 주검을 서울 시내 곳곳에 버렸다는 사실로 인해 모든 언론에 ‘막가파 패륜아’로 도배되었던 바로 그 사건입니다. 기억나십니까?

어디 이뿐입니까? 잊을 만하면 또 다시 이러한 패륜적인 사건이 언론에 등장해 사람들을 충격에 몰아넣곤 합니다. 용돈을 안 준다며 칠순 노모를 살해한 아들, 친구들과 함께 밤중에 복면을 하고 자기 집에 들어가 식칼을 들고 부모를 위협해 돈을 훔쳐낸 아들 이야기 등등 정말 이 나라가 그토록 효를 강조하는 나라인가 의심될 정도의 사건이 오늘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

십계명은 열 개의 계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한다면 나머지 제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앞부분의 네 계명을 살펴보았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가 그것입니다. 오늘부터 나머지 여섯 계명을 살펴볼 것인데 방금 말씀드린 대로 이 여섯 개의 계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섯 개의 계명 가운에 첫 번째 계명이 무엇이냐?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에는 하나의 약속이 붙어있습니다. ‘그리하면’ 다음에 붙은 말입니다. 뭡니까?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장수하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었습니다. 오래 사는 것만큼 좋은 복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 오래 살기만 하면 복이 되겠습니까?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노 권사님에게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권사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고 말씀 드리니까 이 권사님은 한숨을 푹 쉬면서 “아이고, 목사님. 늙은이가 오래 살면 뭐 합니까?”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 깜짝 놀랐습니다만 나중에 권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말씀을 하실 만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권사님에게는 자녀들이 여럿 있었는데 모두 공부를 잘해 소위 명문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시집을 잘 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자녀들이 하나둘 직장에서 쫓겨나고,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남의 보증을 섰다가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자녀들의 아들딸이 잘못되고, 이혼을 하고, 급기야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자녀까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경우는 장수가 결코 복일 수 없습니다. 오래 살면서 자녀들 잘못 되는 모습을 보거나 인생의 쓴 맛을 다 보게 되면 어찌 장수가 복이겠습니까? 오히려 장수가 저주가 되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하면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즉 장수할 뿐만 아니라 금상첨화로 자녀들이 잘 되고 모든 일이 형통하고 세상에서 모든 복을 다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약속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굉장한 복을 누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까?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 효도하는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의 제5계명은 인간관계에 있어 첫 번째 나오는 계명일뿐더러 그 계명에 순종하면 놀라운 복을 약속한 계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 이런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그렇습니다. 부모 공경이야말로 진정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이렇게 틀림없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

그렇다면 이제 어떤 것이 진정한 부모공경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 번째로 참된 부모공경을 오늘 본문인 신명기 5:16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 본문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공경한다’는 날은 히브리말로 ‘카바드’ 즉 ‘무겁다’라는 말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부모 공경은 부모를 무겁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십시오. 부모를 무겁게 여긴다고 하면 혹시 부모를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말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니라 부모를 인정한다, 존중한다, 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한자의 효도할 효(孝) 자를 보면 늙을 로(老) 자 밑에 아들 자(子) 자가 붙어 있어 아들이 나이 드신 부모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모를 업은 아들이 생각하기를 “아이고 무거워라, 노인네가 뭐 이렇게 무거워?” 하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업고 갈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부모를 부담스러워하는 자녀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평생 키워놓았더니 부모가 부담이 되고, 모시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태도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부담된다는 부모 본 적 있습니까? 없지요? 아니, 있습니다. 요즘 저는 TV를 보며 자주 울곤 합니다. 무슨 남자가 TV를 보며 우나 흉보지 마십시오. KBS에서 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데 저는 볼 때마다 웁니다.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딸을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입양 보낸 친부모가 양부모 밑에서 장성한 자녀들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만약 이 프로그램 보면서 안 운다, 남자가 무슨 눈물을... 하며 이를 꼭 악물고 눈물을 참는다면 그 분은 뭔가 정서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는 분입니다. 물론 겉으로 볼 때는 모두 부모가 자녀가 부담스러워 해외에 입양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 자녀가 부담스러웠을까요?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참 묘한 공통점을 보게 됩니다. 가정형편으로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을 입양 보냈지만 그 부모는 자녀에 대한 죄책감과 그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더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부모 가운데 한 사람도 자녀가 부담스럽다는 부모는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자녀들은 부모가 부담이 된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흔히 “나는 장남이라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모신다”거나 “나는 장남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부모를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바로 “내 부모가 정말 무겁고 부담스럽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안 될 말입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못 살아서, 부모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아서, 천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부끄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 두십시오. 부모를 부끄럽다고 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며 나 자신과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절대 하나님으로부터도 존중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고 명합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 ‘카바드’라는 히브리말은 주로 하나님에 대하여 쓰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존귀히 여긴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로는 우상을 섬기고 거듭 하나님을 배신하며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행동이 결코 하나님을 ‘카바드’ 즉 존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고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그 분께 전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카바드’ 하라, ‘무겁게 여기라’는 것은 마치 하나님 대하듯 부모를 존귀히 여기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부모님을 인정하고 부모에게 절대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도 효도하고 충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부모를 소홀히 여기는 자녀가 어찌 하나님의 참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제대로 섬길 수 있겠습니까? 옛말에 “효자 집안에 충신 난다”고 했습니다. 효도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나가서 나라의 어버이인 임금에게도 충성한다는 뜻인데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참된 효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께 참된 충성을 드릴 수 있는 법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진정으로 부모를 소중히 여기는 자녀는 부모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에게 절대 순종하기 좀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여러 모로 나보다 못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감각도 나보다 떨어지고 공부도 나보다 덜 했고, 사회적 지위도 나보다 높아본 적이 없고 때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시골 촌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님에게 “노인네는 좀 가만히 계세요. 해 드리는 진지나 드시고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망할 집안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조건이 못나 보여도 부모는 어디까지나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사신 분으로 인생의 지혜를 가진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아가 부모님은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외적인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인간적인 모습을 나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지혜와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해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니 하나님의 대리자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듯(소중히 여기듯),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부모님을 무겁게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참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녀는 부모의 뜻에 절대 순종해야 하지만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순종하지 말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 대답은 에베소서 6:1에 나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순종은 순종인데 왜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뜻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안 믿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내가 교회 안 다니기를 원한다면 과연 그 뜻에 순종해 교회 다니기를 포기해야 할까요? 또 부모님이 “너희는 교회 다녀도 난 안 간다”고 하시면 그 뜻에도 순종해서 절대 부모에게 전도하면 안 될까요? 아니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구원에 있어서, 영생에 있어서만은 절대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부모의 뜻을 거역해서라도 나는 신앙생활 해야 하고 또 부모님에게도 전도해야 합니다. 기독교 케이블 TV를 보니 요즈음 인기 있는 설교자 목사님이 특강을 합니다. 그런데 강의 중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교회 갈께요. 부모님이 워낙 완강하셔서’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말은 ‘부모님은 지옥 모셔드리고 저는 천국 갈께요’라는 말과 똑 같습니다”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말이지요? 참 험한 말처럼 들리지요? 그런데 저도 이 분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저는 별로 용기가 없어서 이런 말을 잘 못 하는 것뿐입니다. 부모님의 뜻에 순종해서 전도 안 하고 그 분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효도 아닙니다. 절대 순종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 문제만은 양보 못한다, 반드시 복음 전해 부모님 생명 구원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부모님 돌아가신 후 나만 잘 믿다가 나중에 천국에서 사랑하는 부모님 못 만날 텐데 그 때 아무리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후회하기 전에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십계명 가운데 다른 아홉 개의 계명들은 모두 내가 지키고자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지킬 수 있는 계명이지만 딱 한 개의 계명만은 정해진 때가 있어서 그 때가 지나면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계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계명이 그런 계명이며 그 때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제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즉 부모님 살아생전에만 지킬 수 있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를 공경하려 해도 부모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것이 이 제5계명입니다. 저는 아직도 양가 부모님들이 다 생존해 계십니다. 연세들이 높으시지만 아직은 건강하십니다. 이런 저에게 충고를 해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 하세요. 아무리 효도 하고 싶어도 안 계시면 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효도할 부모님이 아직 계십니까? 아니면 아무리 효도하고 싶어도 더 이상 효도할 부모님이 세상에 안 계십니까?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자기 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신 후 몇 년 지나 어머님도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루면서 문득 “이제 내가 고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설움이 북받쳐 오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은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이 때가 지나고 나면 아무리 후회해도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계명이 바로 5계명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한 평생을 사셨는데 자녀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살다가 자기도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그제야 깨달아 지더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점점 깊이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나를 위해 한평생을 사셨던 그 부모가, 내 효도를 받아야 할 부모님이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5계명은 반드시 지금. 바로 지금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오늘은 시 한편을 읽어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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