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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봉헌생활 (잠 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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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터(W. Van De Venter)라는 사람은 미술 학교의감독이었던 재능을 살려 미술 방면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복음 사역에 헌신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오래 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자신을 하나님께로 드리기로 결심하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신앙고백을 하면서 찬송가 71장에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사랑하고 의지하여 주 만 따라 가겠네.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라고 하면서 그의 신앙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봉헌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봉헌생활의 근거

봉헌생활의 근거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우리 주님이십니다. 내가 복을 받았으니, 내가 부자가 되었으니, 내가 잘 되었으니 주님께 드려야 하겠다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봉헌생활에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다 주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존심도 버리셨고 체면도 버리셨고 생명도 포기하셨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멸시 천대를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봉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56장 1절에서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봉헌생활이어야 합니까?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피 흘리시고 상하시사 십자가에 죽어 주심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그 사랑 고마워 이 몸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헌의 근가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느낄수록 많은 봉헌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받은 사랑이 적다고 생각하면 적게 봉사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받은 분들인 줄 믿습니다.

2. 우리가 봉헌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몸으로 드리는 봉헌의 생활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13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선교사들이 들어오지 아니하였다고 하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분들이 재물과 시간이 남아돌아가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선교 역사를 보면 처음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돈이 없어서 가재도구를 다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여비삼아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들은 그 몸으로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몸으로 드린 봉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라는 사람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검은 대륙의 성자,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로 불리었습니다. 그는 토머스 딕 박사의 ”종교철학“ ”미래국가의 철학“을 읽고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고 합니다. 리빙스턴은 어려서 부흥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때 마침 아프리카를 위해서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많이 억압하고 괴롭혔는데 이제 오늘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해서 모두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리빙스턴은 돈이 없었습니다. 헌금바구니가 돌아오자 그 바구니를 바닥에 놓은 후에 그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어른들은 나무랐지만 어린 리빙스턴은 자신의 몸을 아프리카 선교에 드린다는 의미로 헌금 바구니 위에 올라앉은 것입니다.

후에 그는 성장해서 아프리카로 건너가 선교사가 되어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말년에 리빙스턴 선교사는 1873년 5월1일에 내출혈 폐결핵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이 위대한 인물을 아프리카에서 장사지낼 수 없다며 유해를 영국으로 보냈고,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 크롬웰, 밀턴, 넬슨, 웰링턴 등과 함께 가장 높은 곳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프리카에서는 리빙스턴하면 전설 같은 존재로 모두 존경합니다. 이것이 몸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들이 이 몸으로 헌신하고 봉헌하는 심정으로 주님을 섬겨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기쁨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건강하고 신선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시간을 드리는 봉헌생활이 있습니다.

봉헌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자세도 중요하고 몸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시간을 드리지 못하면 탁상공론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떤 분은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못하겠다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신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합니다. 놀고, 즐기고, 유흥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인색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봉헌하는 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날 같이 분주하고 바쁜 시대에 시간을 내서 봉헌생활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주일날은 한 시간이라도 더 잠을 자고 싶을 것입니다.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을 것입니다. 사업에 한 시간이라도 더 투자하고 싶을 것입니다. 주일날 가족과 한 시간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을 것입니다. 취미생활도 더 하고 싶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 소중한 것을 잃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시간내기가 어려운 때에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의 봉헌생활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적절하게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복병은 게으름입니다. 나태함입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남은 시간을 드리는 것을 헌신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내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봉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앞으로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어쩌면 내일이 내 날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이 나의 앞에 예고 없이 닥쳐온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시간의 청지기 역할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에 소홀이 여기면 훗날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을 듣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때는 핑계도 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 때문에! 사업 때문에! 공부 때문에! 직장 때문에! 누구 때문에! 봉헌의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기회 다 지나가 버리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을 기억하시고 잡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을 때도 다음이 아닙니다. 한가해진 다음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구원 받을 때도 요다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6:2) 봉헌 할 시간을 드리는 것도 바로 오늘입니다. 지금입니다. 먼저 주님을 생각하고 떼어 드리는 것이 봉헌이요, 헌신입니다.

셋째는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 봉헌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은사를  한 가지 이상은 주셨습니다. 음악을 잘 하시는 분도 있고, 악기를 잘 다루시는 분도 있고, 그림을 잘 그리시는 분도 있고, 기획을 잘 하시는 분에, 음식을 잘 만드시는 분에, 운전을 잘 하시는 분에, 말씀을 잘 하시는 분 등으로 은사가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한 가지 이상은 다 주셨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이고 달란트가 있습니다. 이 은사를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 은사나 재능은 단순히 돈벌이에만 사용하라고 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사 주신 분이 속상해 하실 것입니다. 자기만 위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사를 하나님의 일에 봉헌하시기 바랍니다.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물질로 봉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물질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이 물질에 목숨을 겁니다. 그래서 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이 봉헌생활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11조를 하나님께 봉헌하는 삶을 약속하고 그대로 행하여 그의 자손이 마침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물질 봉헌 중에 십일조 봉헌은 축복이 보장된 약속입니다. 얼마나 그 약속에 하나님께서 관심이 많으시면 “나를 시험하여 보라.”고 까지 하셨겠습니까?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의 실력이라면 하나님께서도, 교회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은 건강한 신앙생활의 두 기둥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후9:8절 말씀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넘치게...모든 것이 넉넉하여....넘치게 하려 하신이라.”는 말씀이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셔도 넘치도록 하실 분이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봉헌생활을 하여도 항상 넉넉하게 드리는 자들이 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물질 봉헌생활도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넉넉하게 봉헌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라고 하면 세계적인 재단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거대한 재단은 아닙니다. 록펠러가 어렸을 때에 어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고향집을 떠나 뉴욕에 왔습니다. 아들을 도시로 보내는 어머니는 불안했습니다. 록펠러의 오른 손을 붙잡고 세 가지 부탁을 간곡하게 하였다. “1)록펠러야, 어디 가든 제일 먼저 네가 다닐 교회를 정하고 예배 시간마다 빠지지 말고 출석하되, 맨 앞자리에 앉아라, 하나님은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복을 주신 단다. 2)그리고 십일조 주머니를 만들어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그 돈을 쓰면 안 된다. 하나님께 넉넉히 바쳐야 한다. 3)그리고 너에게 말씀을 전하고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목사님을 평안히 잘 섬기도록 해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 단다.” 록펠러는 어머니의 부탁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복잡한 뉴욕 시에 도착하여 남의 심부름꾼으로, 또는 직공으로 시작하여 급기야는 미국의 제일가는 재벌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그 때 어머님이 하신 말씀을 가슴에 천금처럼 안고 살아갔더니 이처럼 성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은 지금 뉴욕 시민들의 수돗물을 공짜로 먹이고 있습니다. 적은 돈이 아닌데(1년에 수억 달라가 넘는) 모두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관리하는 직원만도 30여명이 넘는답니다. 비록 무일푼으로 시작했지만 그는 항상 넉넉한 생애를 살아간 것입니다. 교회에도 일찌감치 나와 여유 있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기도 시간도, 찬양시간도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넉넉히 여유를 가지고 하세요. 늘 쫓기듯이 하지 마세요! 해치듯이, 때우듯이 하지 마세요!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인색함 때문에! 넉넉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넉넉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같이 하시겠습니다. {“예배도 넉넉하게, 찬양도 넉넉하게, 시간도 넉넉하게, 물질도 넉넉하게, 봉사헌신도 넉넉하게, 마음도 넉넉하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넉넉한 축복을 주시고 넉넉한 생활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는 것을 평생을 통해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잠3:9,10절에 “9)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근거로 남은 여생이 하나님께 봉헌생활로 사셔서 창고가 가득히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는 생활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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