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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주여 무한 감사합니다 (시 100:3-4, 시 30:11-12, 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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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먼저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것은 감사하고 어느 것은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일생동안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할 것입니다. 두 번째,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감사하라고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하나님의 은혜는 음악으로, 시적으로, 예술로, 문학으로, 조각으로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입이나 몸, 지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감사를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감사가 인색하면 인색한 삶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색한 은혜를 주십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주신 것도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우리의 가정, 삶이 풍요로워지고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골로새서 1장 3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어떤 기도든지 예배 중에 하는 기도입니까? 잠 잘 때 기도입니까? 아침 기도입니까? 식사 기도입니까? 여행 중의 기도입니까? 어떤 기도 속에서도 감사가 빠질 수는 없습니다. 항상 모든 기도에 우리는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에도 늘 감사를 생각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귀는 대체로 우리에게 마음을 통하여 시험하지 않습니까? 마음에 가라지를 뿌리지 않습니까? 생각을 깊이 해 보면 모두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라는 ‘Thank’라는 영어가 ‘Think’에서 왔다고 합니다. 생각을 깊이 하는 사람은 감사하고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을 잘못하고 가볍게 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감사하고, 생활로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노르웨이 격언에 ‘감사하는 마음은 사탄이 씨를 뿌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씨를 모두 우리 마음에 뿌리는데 원망과 불평, 낙심을 뿌리고 시기, 질투를 뿌리는데 감사를 해 보십시오. 뿌려도 싹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수분이 있고 불평하는 마음이 꽉 차야 우리 마음에 사탄이, 잡초가 우거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악한 사탄이 들어올 수도 없고 씨를 뿌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에 씨를 뿌립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말씀해 주신대로 오늘도 천군 천사가 주의 말씀, 주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의 씨를 뿌릴 때 감사하는 바탕이 잘 되어 있는 분에게는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살 때 영혼이 잘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며 범사의 축복이 넘치게 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민족, 감사하는 개인 모두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불평, 불만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병들었습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하겠습니까? 감사로 치료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전 세계 청소년들의 의식구조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제가 바로 며칠 전에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신 장상 총장께서 이것 말씀 한 것을 들었습니다. 전 세계 청소년, 중ㆍ고등학생 의식구조를 조사했는데 선생님의 은혜를 제일 감사하지 않는 나라 학생이 우리나라 학생이라고 합니다. 그 청소년이 그래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나라가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은혜를 감사해야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감사해야하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도 모두 사
람을 통하여 주시는데 감사해야합니다. 사람이면 모두 사람입니까? 감사하지 않아 보십시오. 어떻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 노릇을 하겠습니까? 사람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모두 불평, 불만을 갖습니다. ‘나’ 하나만을 생각합니다. 내가 되면 너는 안 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계층이 대립하고 상, 하가 없어졌습니다. 어디든지 질서가 있는데 이 질서가 무너져서 이렇게 혼란이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질서를 감사 속에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스포츠 가운데 두 가지 대조적인 것이 있는데, 하나는 복싱입니다. 복싱은 그저 링 안에서 그냥 벗어나지 않고 서로 K.O 시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공격해서 넘어뜨립니다. 또 하나의 스포츠가 있는데 골프입니다. 저는 골프장에 국내에서 우리 장로님들이 나가자, 나가자고 말씀하셔서 전체 저의 평생에 한 세 번 나갔습니다. 목회 잘 하려면 장로님께 잘 보여야 됩니다. 같이 나갔습니다. 골프를 치면서 ‘아, 이 골프가 좋은 스포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뭐냐 하면 서로 이기고 지고, 죽이고 살리는 것이 없고 끝까지 같이 가는 것입니다. 다섯 시간, 네 시간을 끝까지 함께 걸어가면서 골프를 같이 칩니다. 너도 치고 나도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잘 치면 박수를 보냅니다. 나
이스, 굿 샷, 그리고 파 그러고 모르는 분들은 모르는데 그런 말을 씁니다. 얼마나 격려를 해 주는지 끝까지 가고 마치고는 샤워하고 식사를 나누고 참 좋은 스포츠다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일생을 가정이든 교회든 민족이든 이웃이든 부모, 형제, 자식, 스승과 제자 우리는 골프처럼 끝까지 함께 가면서 격려해 주고 굿 샷, 잘 했다고 박수해 주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나라 정치, 사회를 그렇게 풀어서 그린으로 나가는 푸른 초장의 민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같이 있는 이웃이 중국과 일본이잖아요? 중국은 정권이 수없이 바뀌어도 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절대로 적을 해치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택동이 못된 짓을 얼마나 했습니까? 그래도 전부  봐 주는 것입니다. 일절 언론 하나도 터치를 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도 들추지 않습니다. 참 좋은 나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자녀들과 부인을 그냥 지내게 합니다. 그 때 있던 사람들과 그냥 지냅니다. 그 다음에 등소평이 얼마나 등쳐먹었습니까? 그래도 모두 그냥 둡니다. 전부 그대로입니다. 저는 참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너와 나에게 모두 기회가 오는데 서로 같이 살아야합니다. 주은래, 수많은 사람이 그 다음에 정권을 잡아도 계속 나라가 편안하게 나아갑
니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바뀌어도 편안하게 갑니다. 남의 나라, 먼 유럽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 내가 되면 너는 복싱으로 모두 죽이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 살고 내 주변은 전부 피투성이로 만듭니다. 감옥에 집어넣든지 백담사에 쫓아내든지 해외로 도망치든지 그 자리에서 죽든지 모두 만신창이, 만신창이 안 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주변에 있는 사람이 영광굴비같이 묶여가고 어렵습니다. 불안합니다. 줄 한 번만 잘못 서면 큰일 납니다. 이렇게 살면 되겠습니까? 우리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한 사람을 울게 하고 내가 편히 잠들 수 있습니까?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많이 싸웠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많이 싸웠습니다. 물론 지금은 싸우지 않습니다.  지금은 절대로 져 주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복종하니까 일절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반부에는 제가 안 지려니까 많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이상하게 속상하면 밥을 안 먹는 것입니다. 밥 안 먹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혼자 먹을 수 있겠습니까? 저 사람 울고 자는데 나 혼자 편하게 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 번도 빠짐없이, 이것은 제가 고백으로 할 수 있지만, 제가 계란 프라이를 해 서 비벼서 줍니다. 먹고 싸워야 내일 또 싸울 것 아니냐고 우선 먹어야 되지 않느냐고, 좀 오해를 풀라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제가 간질여서 어쨌든 한 숟가락만 먹어달라고, 잘 하고 못 한 것은 내일 보자고, 어쨌든 먹으라고, 그래서 한 번도 집사람이 이렇게 싸워서 안 먹는 일이 없습니다. 제가 끝까지 먹이니까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배부르고 남은 굶어 자면 되겠습니까? 그게 가정입니까? 나는 이긴 자가 되어서 편히 자고 한 사람은 울게 하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저는 좋은 남편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래서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나는 웃고 하나는 울고 한 사람은 고통,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면 안 됩니다. 같이 살아야 합니다. 같이! 사람이 이기는 이김은 잠간인 것입니다.

  며칠 전 국민일보 이만창 편집국 부국장이 쓴 데스크 칼럼에 나온 내용입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 선거에 그 부시 부자선거에 핵심 참모가 에트워터입니다. 이 분은 선거의 귀재입니다. 이 분 때문에 모두 대통령 될 정도니까 대단한 실력입니다. 이 분은 선거에 아주 특별한 방법이 있는데 이 사람이 하는 방법은 상대의 약점을 잡아서 철저하게 진돗개같이 물고 늘어집니다. 끝까지 어쨌든 그 하나를 계속 그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는 이깁니다. 그런데 이 분이 바로 얼마 전에 서른 아홉 살인데 뇌종양에 걸려 병이 들었습니다. 생명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나이가 서른 아홉 살인데 이 분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대통령 시킨 분이 자기를 도와주지 못 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못 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앞에 서서 너무 지나치게 과잉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남은 몇 개월 동안 간증을 많이 했습니다. 간증 내용은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파괴해서 얻은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 삶을 주신다면 나는 예수의 사랑으로 승리하고 싶다.’

여러분, 나만 이기고 남을 어떻게 하더라도 남을 지게하고 남을 구렁텅이에 빠뜨린 사람의 마지막은 절대로 좋지가 않습니다. 그 수명과 영광이 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님과 스승의 은혜도 감사하고, 모든 분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늘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의 표현을 크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33편 2절에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편 91편 1, 2절에 “지존자의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사과나무의 사과, 밤나무의 밤, 배나무의 배,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열매는 입에 감사가 없으면 열매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입술의 감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열매는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너희는 내게 나아와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 내 안에서 먹고 즐거워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2장 6절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소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여러분, 감사함과 즐거움으로 사는 복된 생애가 되기 바랍니다. 사람이 꼭 100%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플라톤이라고 하는 철학자는 인간 행복의 조건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먹고, 살고, 입고 살기에 부족한듯한 재산, 내가 모두 쓰기에는 아직까지 부족한 것이 그것이 행복입니다. 모두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약간 부족한 물질,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부족한듯한 외모, 너무 뛰어난 외모보다는 약간 모자란듯한 것이 좋습니다. 그런 가정이 좋은 것입니다. 자기 살기에도 참 편합니다. 최고가 아닙니다. 세 번째, 자신의 생각에 1/2밖에 나는 성공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성공의 반까지 와 있는 사람, 그것이 행복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지는 체력, 열 명이라도 와 봐! 이것이 아니고 겨우 그저 비슷하게 살아가는 건강, 그것이 좋다는 것입
니다. 연설할 때 1/2만 박수가 나오는 것, 그런 말솜씨, 연설 웅변이 1/2밖에 박수를 못 이끌어 내는 사람, 그것이 행복입니다. 저도 이렇게 설교해도 끝까지 아멘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모두 아멘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전부 칭찬해 주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 현대인들은 모두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고로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주신 이 적당한 은혜가 참으로 크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야 매일 매일 감사하고 일생동안 감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사하는 민족이 잘 됩니다. 감사하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부모에게 효도하면 복 받습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 하지 않고 어른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세종대왕 때 장영실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훌륭한 발명가입니다. 이 분은 첩의 아들입니다. 아주 노비입니다. 노비! 그래서 고을 원에 원님 밑에서 아주 문안으로도 못 들어오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을 원이 사용하던 장롱이 부서져서 그걸 고치라고 했더니 어떻게 잘 만드는지, 그래서 고을 원이 이 사람을 가까이 일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 지역에 흉년이 들었는데 강물을 산으로 끌어다가 전부 흉년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서 자기 수하에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 소원이 뭐냐? 그러니까 나는 어머님과 함께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 어머니는 불행한 사람, 남의 첩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와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이 살게 했습니다. 세종대왕이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렇게 지극한 효성이 있고 머리가 이렇게 영리한 사람인 줄 알고 세종대왕이 데리고 갔습니다. 얼마나 머리가 좋은 지 우리나라 측우기도 이 분이 발명했고, 물시계, 모래시계도 이 분이 발명했습니다. 세종대왕 때 우리나라 발명에 아주 전성기가 왔는데 그 중심에 선 사람이 장영실입니다. 노비도 벗고 벼슬을 얻고 임금님 모시고 잘 살았습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면 천한 노비도 임금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땅에 낳아주신 부모님 잘 섬기고 질서를 알고 감사하게 살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천국의 영생을 주셨습니다. 항상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으로 늘 함께 하십니다. 어떤 어려운 일, 어떤 위기를 당할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25년 동안 어려운 일 없이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부흥시켜 주셨습니다. 도와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은혜입니까? 가정의 은혜를 생각해도 나 같은 가정에 예수님 믿어서 공부한 사람 하나 없던 우리 집안이 전부 대학 졸업하고 박사가 이글거리는 집안이 되고 얼마나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위가 없지만 이렇게 온 세계에 모두 저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게 하셨습니다. 어디가도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도 ‘아유, 목사님 아니세요?’ 그리고 공짜로 그냥 어디가도 하여튼 필리핀 가서 딱 두 집에 들렀습니다. 한국 식당에 갔는데 아이고 목사님 어서 오세요. 또 우리 여러 장로님들하고 같이 식당에 올라가는데 누가 약국에서 사람이 톡 튀어나오더니 ‘목사님이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그래서 박카스도 마시고 그랬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 너무 감사한 것 밖에 없습니다. 폐병 걸려서 삼십 년 전에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병 다 낫고 깨끗하게 치료되어 이십 오 년 동안 이 바쁜 일 하면서도 한 번도 병원에 누워 본 일 없습니다. 이 모든 건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하세 감사하세 주님께 감사하세 영광의 주님께 감사하세 세세토록 감사하며 사세. 이 짧은 생애를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미국 사람들은 세 가지 단어만 가르친다고 합니다. thank you, excuse me, I am sorry인데 항상 누구라도 먼저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 안 되는 것을 미안하다고 안 해서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조그만 것이 계속 확대됩니다. 그것 내 잘못이라고 먼저 빨리 손드는 것입니다. 그것 내가 그랬다고 죄송합니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용어를 활용할 줄 모릅니다. 내 잘못입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집에서도 누구에게든지 내가 미안합니다. 그러면 다 될 일을 왜 이기려고 합니까? 참된 승자는 감사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최후의 단소승자, 끝에 웃는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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