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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제가 뱀에게 속았습니다 (창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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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최초 인간이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의 지식 나무 열매를 따먹은 후에 무엇이 달라졌으며, 또한 처음 범죄한 인간이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증거 합니다. 

1. 최초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함을 받은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들어 주신 복된 장소였습니다.  에덴에서 인간의 위치는 피조물의 왕으로서 피조물을 다스리며, 지키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그러한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돕는 배필”로서 서로 상응하는 자 곧 아담과 같이 능력 있는 자로서 그의 아내를 창조하시고 함께 살도록 짝을 지어주셨습니다(2장). 그러므로 최초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된 아담과 그의 아내는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오직 그분만을 섬기고 신뢰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은혜는 인간의 범죄로 깨지고 맙니다.  인간의 범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신하고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을 신뢰하여 새로운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한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말에 속아서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경은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이 여자에게 했던 말을 기록하고 있는데,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4b-5)였습니다. 

그러나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기란 참으로 쉬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따먹음으로서 나타난 결과들이 처음 뱀이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거짓이란 아무리 화려한 포장을 한다고 해도 진실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탄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창세기 3:7절에서 증거 합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 자신의 몸이 벗은 줄 알고”하였습니다.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라는 말을 직역하면 "그들의 눈이 열렸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눈이 열렸다는 것은 단순히 이제껏 뜰 수 없었던 눈을 뜨게 되었다거나, 아니면 어두웠던 눈이 밝아져서 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이제껏 벗은 줄을 몰랐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인식이 변화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식의 변화는 어떤 것이었는가? 뱀은 분명히 “너희가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뱀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벌거벗음에 대한 부끄러움을 갖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범죄 이후 인간에게 달라진 점입니다. 성경이 새삼스럽게 벌거벗음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외형적으로 옷을 입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악에 대한 수치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죄로 인한 비참함에 빠진 이후에 최초의 시도는 죄로 인한 그들의 비참함과 수치심을 가려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창세기 3:7b에서 증거 합니다. 그 말씀에 따르면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하였습니다.

2. 그러면 인간의 최초의 시도 곧 죄의 수치를 가려 보려는 시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 창3:8절에는 인간의 최초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증거 합니다. 그 사실을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담과 그 아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범죄 이후에 나타난 현상으로서 인간을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후로 하나님에 대하여 이제껏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범죄한 후에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하나님은 과거처럼 좋은 분으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인식의 변화는 처음 창조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한 아담을 사랑하셔서 아담을 위하여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을 위하여 각종 실과를 심으심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셨으며, 또한 사랑스러운 아내까지 주신 참으로 좋으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처음 아담과 그의 아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하나님의 모습이셨습니다. 그들은 처음 자신들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그들이 대면했던 하나님은 분명히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본장 8절에서도 증거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라고 소개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처음 에덴을 창설하시고 인간을 두심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려고 하셨던 것처럼 여전히 변함없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셨음을 증거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셨지만, 아담과 그의 아내가 처음 상황과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달라진 점을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고 증거 합니다.  사실 인간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였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친밀감의 파괴는 곧 인간이 범죄한 이후에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서 갑자기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뀐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이 하나님께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어떤 것을 위협하거나, 심히 무섭게 다루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아담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십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 10절에서 아담은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숨었을 까?” 또한 본장 9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과연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으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답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 숨었는지 몰라서 찾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 숨어 있는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실은 시편 139:7절 이하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셨습니다. 성경의 이러한 증거는 곧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고 해도 결국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어 있을 수 없음을 증거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 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그의 소재를 묻는 것이 아니라, “너는 왜 그런 상태로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네가 왜 숨게 되었느냐” 그 이유를 묻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아담의 대답은 “예.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 하고 대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또한 숨게 된 이유를 자신이 “벗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다”것은 어떤 의미인가? 여기서 벗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저질은 죄와 또한 그 죄로 인하여 결과 곧 죄의 비참함과 수치심 때문에 숨었다는 말입니다. 

4. 그러면 아담에게 그러한 인식의 변화는  어떻게 하여 생긴 것입니까?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왜 갑자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추궁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그러한 변화는 하나님께서 처음 언약을 맺을 당시 그들에게 먹지 말라고 하셨던 선악의 지식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당사자인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추궁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추궁에 대하여 죄의 전말 곧 범죄한 인간의 악함이 어느 정도 인지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추궁에 대한 아담의 대답은 (12)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습니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아담의 대답은 자신이 선악의 지식 나무 열매를 먹은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대답을 자세히 돌아보면 그의 죄 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에게 그의 아내를 데려 왔을 때는 너무도 좋아서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라고 하여 아내를 자신과 동일한 1인칭을 썼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이후에 아담은 자신의 아내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라고 함으로 3인칭을 써서 대답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담의 대답은 인간의 악함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대답입니다. 아담의 말의 의미는 곧 좋으면 “내 아내”라고 하다가도 기분이 나쁘면 “부부는 남남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범죄한 이후에 아담이 자신의 아내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아담은 죄에 대한 책임도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자신을 범죄하도록 만들었다고 책임을 전가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죄를 범한 처음부터 인간과의 관계가 깨졌음을 의미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13)고 추궁합니다.  그리고 아담의 아내는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도록 만든 그 원인을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여자의 대답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과 범죄한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변화에 대하여 인간이 어떤 인식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즉 여자는 분명히 범죄하기 전에 뱀의 상징되는 사탄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4b-5).  그런데 이제 여자의 대답 속에는 그 때 뱀의 말이 자신을 꾀이는 말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때 뱀이 했던 말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그것은 단지 자신에게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한 속임 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자의 대답을 한마디로 말해본다면 “하나님 제가 뱀에게 속았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속은 내용은 처음 뱀이 다가와서 말할 때만해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을 신뢰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 은혜를 완전히 무시하고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을 그들을 하나님으로 만들어줄 새로운 구세주로 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 여자는 뱀의 그러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었으며, 자신은 뱀에게 속았다는 것입니다.

범죄한 이후에 여자의 대답으로서 “내가 속았습니다”라는 고백은 인간의 참된 안식과 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우심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초 범죄한 인간은 뱀에게 속아서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고 범죄하여 타락하여 뱀이 말한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그 동안까지 에덴에서 풍성하게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범죄는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간의 범죄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오는 범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그의 아내가 범죄한 직후에 바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이 파괴된 이 세상에서 처음 인간이 자신들이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다시 그들을 원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범죄한 이후 인간이 처한 이러한 상황은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더욱 인간을 억압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의 단절을 아무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다시 얻을 수 없는 절망감이 지배를 했습니다.

5. 사탄의 속임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참으로 교묘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하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여기며 살거나, 아니면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생명은 오직 자신이 주인이며, 자신이 왕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거짓이 진실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이란 시간이 흘러도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거짓된 믿음 속에는 참 생명이 없습니다. 처음 사탄의 거짓말에 대한 대가는 지금도 우리에게 죽음과 죄의 비참함과 수치심 속에서 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범죄했던 아담과 그의 아내가 느꼈던 사실 곧 “하나님 내가 속았습니다”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참 생명과 참된 안식과 참된 복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얻어지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셨고, 또한 자신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만 얻어지고 누릴 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속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을 그대로 믿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에 후회는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나는 속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 그분만을 섬김으로서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위재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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