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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화롭게 살자 (롬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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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었은즉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오늘 우리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평화입니다.
평화를 찾기 위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평화가 이 땅에 오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올바른 조약을 맺어야 평화가 올까요?
우르과이 라운드가 잘 해결 되어져서 농민의 얼굴에 웃음이 있어야 합니까?
노, 사, 정이 하나되어 손에 손을 맞잡을 때에 진정한 평화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서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자”
하나님과 사람이 화평하려면 하나님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더불어서 사는 것은 바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이루어줍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2절에서는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지면 우리는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일 매일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즉시 사람은 의로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다른 말로 은혜롭게 살면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하나님께로서 오는 새로운 은사와 새로운 축복들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롬 6:14에서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평화롭게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의로워지면 그 위에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쏳아 부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우리는 죄수노릇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보시기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영접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찾았네”

나같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죄악된 삶을 버리고 의롭게 되어 은혜가 은혜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생활을 계속하려면 어떻게해야 합니까? 2절을 보세요!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간다” 서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여기 서 있다” 라를 말은 확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견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흘들리거나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엡 6:14절에서도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자면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입니다.

“서 있다”이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이고
둘째는>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한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파이프를 하나님의 은혜의 저수지에 연결시켜서 폭포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매일 받으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 가지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들어 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이런 체험이 있어야 하나님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술의 전혀 경험이 없는 의사에게
그래도 괜찮으니 시험삼아 수술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을 보세요. 3과 4절입니다.
“다만 이뿐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는데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확신에 서 있고 역경과 질고에 싸여 있는데도 저렇게 평화스럽고, 저렇게 늠름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세요!
자!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도 이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럼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보다 그 뒤에 있는 저 멀리서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는 주님을 바라보세요!
구름에 덮혀 있는 하늘만 보지말고 구름 너머에 있는 태양을 바라봐야 합니다.
소망 중에 계신 하나님을 쳐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룰 줄 믿습니다.”
사도베드로는 벧전 4:12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입니까?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이 우리가 가진 소망을 더 밝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련과 환난이 올 때에는 고민하게 됩니다.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원망도 하며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게도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멈추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환난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는 영적 테스트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닙니다.
고후 4:7 이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잊지마세요!
시련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험과 연단은 하나님 알고 나 자신을 더 잘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왜 착각 하는지 아십니까?
왜? 나 자신의 신앙이 굳건 하다고 생각하는지 아세요?
그건 시련과 환난을 겪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겪어봐야!
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에요!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 날 도와주세요!
하고 울부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다 형통하고 잘 되어야만 그저 언제나 건강해야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그를 믿겠노라”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세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을 섬기지도 않으며 절하지도 아니할 것이나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사랑해요 주님을 뜻을 믿기 때문이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요
언제나 나를 향한 그 크신 사랑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
우리가 함께 높이며 주를 찬양해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의 사랑은 금을 단련하듯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해서 보다 순수하게 보다 더 아름답게 완전하게 만드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더욱이 5절을 보세요!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이라구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바로 내 마음 안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18세기가 끝나갈 즈음에 챨스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이해될 수 없고 설명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것을 모르면 그져 열심있는 사람들로 보일 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찬송가에서는
“예수의 넓은 사람을 어찌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이 사랑을 체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은 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 한이 없어서 선한자에게도 악한자에게 비를 주신다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신 분들만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뭐하지 않아요?
우리가 가진 소망이 절대로 부끄럽지 않습니다.
왜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 한숨만 내쉬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어쩌면 좋겠느냐고 염려 해서도 안됩니다.
오히려 환난 중에도 기뻐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 분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시련을 이기게 하시는 아버지의 도우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가슴 속에 그것을 심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요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켜서 영원하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롬 8:32절에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 그런 분이 어찌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지 않겠느냐”
사도 바울은 이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절망하지 않으면서 “항상 기뻐하라”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이신가요?
그것은 연약한 사람!
경건치 못한 사람!
심지어 죄인들 원수에게 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마음을 가지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음행하였기에 잡혀온 여인을 향하여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면서 나로 너를 정죄치 안는다 하시면서 용서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의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사랑해 주시고 또 나 때문에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주 깊이 생각하십시다.
그리고 입을 열어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치면서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예수의 모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 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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