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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선 순위 1번(마 6: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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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 1번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인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알아보려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사는가를 보면 압니다. 예수님이 수제자 베드로에게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물으신 다음 목양의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우선순위 1번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세상 것도 다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스톤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주임교수님께서 삼위일체에 관한 것을 카톨릭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라고 하여 한 과목을 이수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 삼위일체신학의 권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에 마침 한국에서 오신 신부님 한 분이 있어 한 학기 같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신부님들은 독신으로 일생을 삽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가정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에서 오는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많은 것을 그 신부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성직자가 가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포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한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산상수훈의 중심 주제는 삶의 우선순위 문제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지말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우선순위의 문제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사실 염려의 문제입니다. 세상 것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세상 것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우선순위 1번에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도 하지만, 그는 축복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부름을 받았으나 그는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겨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후손이 왕손이 되었고, 성경책도 그의 후손의 손으로 쓰여졌습니다. 예수님도 육적으로 말하면 그의 후손입니다. 왜 그가 그러한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의 믿음은 하나님이 우선순위 1번에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100세의 나이에 아들 이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나님은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고 보니 그 아들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관심은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삭이 첫 번째고 하나님은 두 번째인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려고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선순위 1번인지, 아니면 아들이 1번인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것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선배 목사님 가운데 별명이 아브라함 목사님이 계십니다. 왜냐하면 나이 40이 되어 아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 아브라함 목사님이 한번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있는 친구목사들이 초청하여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로서는 미국 방문이 쉽지 않았던 때입니다. 친구들 때문에 모처럼의 기회를 얻어 미국을 한달 동안 여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뉴욕에 도착하여 관광을 하고 다음 장소인 워싱턴으로 옮겼습니다. 워싱턴에서 한국에 있는 사모님과 아들하고 전화를 하던 중 아들이 “아빠, 보고싶어, 빨리 와!”하는 말을 듣고는 아들이 보고싶어서 남은 서부관광과 하와이 관광을 포기하고 1주일만에 한국으로 왔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낳았으니 아들 이삭에 대한 관심이 어떠했는가를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마치 우상단지처럼 생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밖에 나가 조금 늦게 들어와도 가슴이 철렁하는 긴장 가운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으로 보시고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가리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물론 다윗에게도 흠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우선순위 1번에 두고 산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한번은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한 나머지 나가서 춤을 추었습니다. 한참 춤을 추다보니 바지가 벗겨진 것도 모르고 그냥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 다윗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왕의 체통을 지키라고 못마땅한 듯이 말을 던졌습니다.  다윗은 미갈의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더 못마땅했습니다. 나와 함께 사는 부인이라면 내 마음을 그렇게 몰라준단 말인가!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데, 내가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몰라주는 아내가 미웠습니다. 그 뒤로부터 다윗이 미갈과 침대를 같이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생과부가 된 셈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귀한 것들은 대부분 두 개로 짝을 지어 만드셨습니다.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손도 두 개, 발도 두 개, 신장도 두 개로 만드셨습니다. 만약 하나가 고장나면 다른 한쪽으로 대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심장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왜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된 후 먼저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번제(burnt offering)는 양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보면 자기의 부족, 허물, 세상에 속한 것들을 태운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도입니다.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솔로몬아,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이렇게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예수님이 들으시고 발걸음을 멈추시고 바디매오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십니다. 네가 원하는 소원대로 들어준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솔로몬이 이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솔로몬이 구한 것이 ‘지혜’였습니다.  “나는 나이가 어려 이 나라를 통치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를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더니 그가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자기 나라를 잘 통치하고, 지배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려면 우선 지혜가 필요하기에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구한 지혜도 주셨고, 구하지 않은 부와 국방력, 그리고 세상 영화도 그에게 주셨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그의 지혜와 영화를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미국에 ‘투르뇌’라는 유명한 설계사의 간증입니다. 이분은 선교에 관심이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1주일에 한번 모이는 저녁 찬양집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분입니다. 우리교회의 ‘마가의 다락방 모임’과 같은 성격의 기도 모임입니다.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은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에 모여서 기도로 후원하는 선교를 위한 기도모임입니다. 선교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래서 후방에서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다음날까지 그려가야 할 과제가 있어서 찬양집회에 참석을 해야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심했습니다. 그러나 매주 나가는 모임에 빠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해서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니 저녁 10시가 넘었습니다. 그냥 화판 앞에 앉아서 약 5분 정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몇 분 안에 주요 도안과 계획을 짜낼 수 있었습니다. 그 날밤 그가 그렸던 설계가 채택되어 백만장자가 됩니다.

여러분,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신앙이 더 중요합니다. 요셉이 일류대학교 나와서 크게 쓰임 받았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의 TV방송설교를 듣고 여러분들이 전화를 해옵니다. 대치동이 어디에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대치동이 시골인가 봅니다. 잘 모릅디다. 대충 위치를 알려주면 전화를 한 분이 사는 곳과는 거리가 멀기에 가까운 교회로 나가라고 권합니다. 저는 욕심이 없습니다. 가까운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꼭 나온다면 말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꼭 한마디를 붙입니다. “기왕에 신앙생활을 하려면 열심히 하세요. 하나님께 인정받고, 목사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세요. 목사님의 디딤돌 성도가 되어야지 거침돌 성도가 되지 마세요.” 여러분, 신앙생활은 누가 인정해주느냐 인정해주지 않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신경 쓰지 마세요. 하나님이 의롭게 봐주시고, 자신 앞에서 떳떳하면 됩니다. 미국 ‘Time'지에 난 기사입니다. 실화입니다. 버나드 레빈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경찰입니다. 순찰을 돌면서 그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거기서 일하는 여자 종업원과 친하게 됩니다. 한번은 식사 후 그 종업원과 복권 숫자를 놓고 놀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 종업원이 부르는 숫자대로 복권  하나를 사기로 했습니다. 그 종업원이 부른 여섯 개의 숫자를 적어 가지고 가면서 만약 이 숫자가 당첨이 되면 그녀에게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복권이 일등에 당첨되어 6백만 달러를 타게 되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60억이 되는 돈입니다. 아니, 이 동네는 전혀 놀라지도 않네요. 레빈은 돈을 받아 가지고 정확하게 절반을 그 종업원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여자 종업원에게 신의를 지켰다고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신의  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의‘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자신 앞에서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신의는 꼭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월급을 받아도 먼저 십일조 떼고, 감사와 선교 헌금도 하고 사십시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문맥은 염려라는 주제에서 나온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는 자는 세상 염려도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상원의 원목(Chaplain)으로 계신 오글비(Lloyd John Ogilvy)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최근에 두려움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미국 상원의원을 상대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 왜 두려움에 대한 주제로 책을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미국에서 상원의원이라고 하면 대통령 다음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지금 뉴욕주 상원의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그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오글비 목사님의 글에서 그들이 그 누구보다도 많은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목사님의 목회는 두려움 가운데 있는 그 상원의원들에게 상담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합니다. 권력과 돈이 우리에게 두려움과 염려를 없애주는 것이 결코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전에는 결코 참 평안을 찾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염려와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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