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전할 이유 (살전 2:1- 8)

  • 잡초 잡초
  • 478
  • 0

첨부 1


  여러분,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를 아십니까?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한 여인이 암 선고를 받고, 마지막 일생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안방을 눈물로 적시고 있습니다. 그의 남편 반성문은 한 때 조강지처를 버리고 외도를 하다가 이제 회개하고 돌아와 열심히 반성문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를 위해 식사도 준비하고, 암에 좋은 약도 구하고 최선을 다해 아내를 섬기고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가정의 소중함과 아내의 사랑을 깨달은 것은 다행이지만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하곤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될 일들을 외면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살다가, 장차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가장 많이 반성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자녀를 사랑하지 못한 것,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 것,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것.......아마도 사랑하지 못한 것을 가장 많이 반성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반성할 점이 있다면, 주님의 명령인 전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것, 전도하지 않은 것. 이것이 우리의 반성꺼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금요일, 토요일 기도원에 다녀왔습니다. 좀 쉬기도 하면서, 설교를 준비하고 돌아왔습니다. 요즘 야외에 나가 보시면 알지만 참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기도원에도 울긋불긋한 단풍이 들고, 그 많은 은행나무에도 노란 물감을 들인 듯 아름다웠습니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만 불면 우수수 떨어집니다. 차 위에도 떨어지고, 길 가에도 쌓입니다. 그 은행잎을 밟고 지나가다 보니 감성적이 되기도 하고, 좀 센티메탈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인생도 때가 되면 그렇게 낙엽처럼 떨어질 때가 있겠지......’하고 말입니다. 낙엽들은 할 일을 다 하고, 거름이 되고자 다시 떨어지는데, 우리 인생은 할 일을 다 하지도 못한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어찌할까...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한 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위해서 우리가 이 가을에 맺어야 될 열매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사랑의 열매, 전도의 열매라고 믿습니다.
  전도의 열매란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전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워하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 보셨습니까? 사랑해야만 그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첫 번째 보낸 편지, 후서는 두 번째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어떻게 방문하게 되었을까요? 이 사도바울의 전도 여정은 사도행전에 순서대로 잘 기록되어 있는데, 16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루디아란 여인을 만나서 거기서 기도처를 삼고 교회를 시작하는데, 길을 가다가 귀신 들린 한 여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이 여종을 점 치는 도구로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는 이 바울이 불쌍해서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니 이 여인에게서 점치는 능력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주인이 자기 사업을 방해했다고 바울을 고소하고, 그는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모진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지만 그는 한 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할 때 옥문에 열렸고, 그로 인해 간수장과 그의 가족에게 세례를 주고 그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더 이상 이 빌립보 성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핍박을 피해서 두 번째 간 곳이 바로 약12만 인구의 꽤 번화한 도시, 데살로니가입니다. 여기서는 단지 3주 동안만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이 놀랍게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또다시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바울은 감격에 겨워 그들을 가리켜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정말 나를 감동시킨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복음을 전했지만 아름답게 꽃 필 때 바울의 마음속에 흐뭇함과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전주에 가서 한 1년 동안 직장 때문에 살았다고 칩시다. 거기서 어떤 젊은 아주머니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뭐 처음에는 나가는 둥 마는 둥 별로 열심을 내지 않았지만, 서울로 올라온 지 한 6개월 후에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은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나간다고 합니다. 저녁 예배도 나가고, 새벽기도도 나가고, 십일조까지 낸다더라, 전도까지 했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마음이 흐뭇하겠지요? ‘그래. 집사인 나 보다 훨씬 낫다!’ 복음 전하느라고 애썼지만 참 보람이 있다는 걸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바울의 보람입니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 열심히 3주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얼마나 기쁜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그리스도 앞에서 내가 너희를 가리키면서 너희는 우리의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요 소망임을 나는 자랑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주님이 오셔서 ‘사도 바울아! 너는 일생동안 뭘 했느냐?’ ‘예. 주님 여기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보십시오. 이들이 바로 저의 전도의 열매입니다. 저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에게 오셔서, 네 열매가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여러분이 누군가를 가리켜서 ‘저 집사님이 바로 제 전도의 열매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전도 외에도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귀한 사랑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바울은 참 모범적인 전도자입니다. 바울은 ‘내가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 때문에 복음을 전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의식주를 제공받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에도 가끔 있습니다. 교회는 나오셨는데 보면 장사하는 게 목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해놓고 물건 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도의 동기는 순수해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그 열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에게서 어떤 전도자의 좋은 모범을 배울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바울이 복음 전한 상황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2절 말씀을 읽습니다.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아멘.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빌립보에서 많은 고난과 능욕을 당했고, 데살로니가로 왔는데, 여기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많은 싸움이라는 게 뭘 의미합니까? 복음 전하는 일이 평탄치만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많은 반대와 박해가 있었습니다. 많은 투쟁과 갈등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자기 힘으로는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내가 많은 싸움 중에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힘으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에 의지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하라면 대개 교인들은 부담을 갖는 것 같습니다. 전도 얘기 좀 안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울은 우리보다 엄청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요즘은 복음을 전한다고 핍박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목사님 저는 너무 바빠요’ ‘너무 분주해요.’ ‘저는 몸이 약해요.’ 여러 가지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이 아름다운 전도의 사명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잘 감당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전도란 꼭 즐거워서, 늘 기뻐서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바울도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내가 부득불 할 일이니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도 복음 전하기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가기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라도 갔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늘 성령 충만해서 전도합니까? “아이구 늘 해야 하는 일인걸요”하고 새벽부터 늘 전도만 생각하고 다니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 얘기 좀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면 이 귀한 사명 감당하기를 멀리하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도 보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환경을 탓하지 말고 복음을 증거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으로 바울이 복음 전한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어떤 동기로 복음을 전했을까요? 오늘 이 시대에 우리들은 왜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4절 말씀을 한 번 읽어봅시다.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아멘.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첫째, 부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 전하라고 부탁하셨다는 얘기입니다. ‘부탁’, ‘옳게 여기심을 입어’라는 말을 바꿔 말하면, 하나님께서 바울을 테스트 하시고 옳다 인정하셔서,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하셔서 바울에게 복음 전할 부탁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탁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너희는 만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님이 부탁하셨고 명령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살 때, 장날이 되면 어머님이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가십니다. 그런데 옆집 할머니가 와가지고 ‘나 부탁 좀 할 게. 시장가면 감기약 좀 사다줘. 나 뭐 좀 사다줘.’ 하고 부탁을 합니다. 부탁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얘기입니다. 때로는 사오면 돈을 주겠다고도 하고, 때로는 돈을 주고 사오라고도 합니다. 믿기 때문에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뢰하셔서 우리에게 복음 전할 부탁을 하셨다면, 우리가 주님을 실망시켜드려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이 부탁! 여러분, 우리가 충성스럽게 순종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복음 전할 이유가 뭘까요?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함께 따라해 보십시오.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인생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이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가 들어드려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게 무엇입니까? 자녀가 부모의 기대와 소원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부모는 마음에 기쁨을 갖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릴 때에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디모데전서 1:4에 보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십니다. 믿는 사람만 구원받는 게 아니라 교회밖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까지 다 구원받기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우리가 그 소원을 이루어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버스 양편에 붙은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을 때가 있습니다. 1년 전에는 ‘가문의 영광’이란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요즘은 ‘가문의 위기’란 포스터로 바뀌었더군요. 저는 그 곳에 또 다른 제목의 포스터를 붙이고 싶습니다. 다음 나올 영화는 ‘가문의 기쁨’입니다. 가문의 기쁨은 무엇일까요? 가정에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바로 그  가문의 기쁨입니다.
  허용범 장로님은 연세가 있으신데 그간은 할아버지 소리를 못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딸이 시집가서 외손녀를 낳으니까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그게 무엇입니까? 가문의 기쁨입니다.  정영진 장로님도 요즘 손녀를 보셨고, 이영일 장로님도 외손주를 보셨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저도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이 장가가서 아이를 낳으면 너무 좋아서, 설교 할 때도 우리 손주 얘기만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손주가 백일이 됐어요.” “이제 돌 됐어요.” “어제는 걷고 찬송도 불렀다니까요.” 너무 좋아서 말입니다. 그것이 가문의 기쁨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25년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이삭을 주시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너무 좋아서 할렐루야! 노래를 부릅니다. 가문의 기쁨이라고 쾌재를 부릅니다. 가정에는 뭐니 뭐니 해도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교회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만 모여서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새로운 영혼들이 늘 찾아올 때, 하늘나라에서는 팡파레가 울릴 것이고, 교회에는 기쁨이요, 본인에게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영신 교우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증거 했고 이제 복음만이 아니라 이제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너희를 향한 우리의 사랑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너희를 위해서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도 나눠주고 생명까지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바울이 베푸는 이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 사랑의 출발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들을 언제 본적이나 있습니까? 본 적이 없는데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도 바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죄인이었을 때, 그가 연약할 때, 그가 괴수 중의 괴수일 때 하나님이 그에게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구원의 자녀로 삼으시고,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사랑이 너무 놀라워서 그 사랑을 이제 이웃에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 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사랑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았기에 이웃들에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난 저 사람 사랑하지도 않는데.......’가 아닙니다. 그도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울타리 안에 있는 자녀이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울타리 밖에 있는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오늘도 복음의 증거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0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바로 그 사랑을 우리 이웃에게 나눠 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진실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전도 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내를, 남편을, 자녀를 사랑한다면서 어찌 그대로 방치할 수 있습니까? 그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것이고, 그의 손목을 이끌고 주님의 전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전도 해야만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신실한 집사님 한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이분은 자녀가 다섯인데, 불행히도 그 집사님의 형님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명절 때 만나면 형님은 늘 외로워합니다.  “나는 아이도 없는데 나중에 명절 때 찾아올 사람도 없고 너무 안타까워~” 집사님이 보니 참 안됐습니다. 그래서 “형님, 그러지 마시고 제가 아이가 다섯이니 한 아이를 형님 집에 양자로 보내겠습니다.”라고  아내에게 의논도 안하고 덜컥 약속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어느 아이를 보내야 되는지, 아내에게 어떻게 의논해야 되는지 고민하다가 아이들 다섯 명 중 어떤 아이를 보낼지 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첫째 아이를 보았습니다. 장남인데 어깨가 떡 벌어지고 참 믿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장남은 안돼! 얘는 우리 집 기둥감이야. 장남을 보낼 수는 없지.”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보았습니다. 얘는 지난 달, 학교에서 본 시험에서 전교 일등을 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왜 보내나. 이 아이는 우리 가문의 명예가 될 아인데, 보낼 수 없지.”
  셋째는 자기를 쏙 빼 닮은 미남이라, “이 미남을 어떻게 보내 얘는 탈랜트나 영화배우가 될 텐데 이 얘는 안돼.” 넷째 아이를 보니 비실비실해서 늘 병치레를 하는데, “이 불쌍한 아이를 어떻게 보내. 이 아이는 우리 도움이 늘 필요한 아인데 이런 아이를 어떻게 보내.”했습니다.
  마지막 다섯째 막내를 보니까 얼마나 귀여운지 “요 귀여운 것을 어떻게 보내. 재롱떠는 것을 보면 하루 피곤이 가시는데, 내가 너 때문에 사는데 넌 안돼.”라고 했답니다. 아이가 다섯이지만 한명도 보낼 아이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날 밤, 그 집사님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가슴 저미도록 깨닫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 나는 다섯 명이 있어도 하나도 보낼 수 없는데 주님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나를 위해 내어 주셨다니’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6.25전쟁이 막 끝나고 나병환자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에 미국의 로타리 클럽 회원들이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곳 저 곳을 돌아보다가 미국에서 파견된 한 간호사가 환자에게서 나오는 진물과 고름을 닦아내는데 고름을 짜면 얼굴에 튀기도하고 손에 묻는데 묵묵히 그것을 하고 있더랍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에 감격하여 사진을 찍으면서, “세상에 이럴 수가... 이것은 정말 100만 불짜리 사진이야. 누가 내게 100만 불을 줘도 나는 이런 일은 못할 거라.”라고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간호사가 그를 쳐다 보더니 “나도 그 일을 못합니다.” “아니 지금 하고 있지 않소?”, 간호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기 때문에 이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너에게 생명까지도 내어 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복음을 전했을까요?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아멘.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유모가 그 자녀를 대하듯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고 너희를 양육했다고 기록합니다. 11절에 보니까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이 바울은 그런 심정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전도할 때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자녀들이 부모 말을 잘 못 알아듣더라도, “네가 철이 들면 알아 듣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전도해야 할 태신자들이나 새신자들은 영적인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못합니다. 혼자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갑니다. 화장실에 가면 바지도 내려 주어야 합니다. 머리도 못 감고 양치질도 못합니다. 부모의 손이 다 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전도해도 그 이후에도 하나 하나 챙겨 주어야 하는 것이 새신자입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항상 관심의 중심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의 관심이 자기를 향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새신자들도 늘 관심이 필요합니디ㅏ. 전도를 잘하는 비결은 늘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신문에 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가장 효과적인 전도 방법은 ‘만날 때 마다 전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기는 면역력이 약해서 쉽게 병에 전염됩니다. 새신자는 잘 넘어지고 시험도 잘 들고 의심도 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신자들을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부모와 같은 인내심이 없이는 사랑의 마음이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치 유모의 심정으로 아비의 심정으로 자녀를 대하듯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때로 태신자들이 여러분들을 실망 시키더라도 의연하십시오. 의례히 그런 줄 아십시오. 약속을 했다가도 그 다음 주에 또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이 태신자입니다. 포기 하지 마시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할 때 여러분에게 좋은 열매가 맺어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전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고생하며 복음을 전하고 나니 그것이 참 보람되더라는 고백을 귀담아 들읍시다.

  오늘 성경 1절에 보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고백합니다. 길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복음 전도에는 헛된 일이 없고 무의미한 일이 없습니다. 그 곳에는 반드시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다. 3주 동안 복음을 전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니 바울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오죽했으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했겠습니까?

  또한 하늘의 상급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 보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를 가장 귀히 여기시고 그를 위한 놀라운 축복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며칠 전에 산 책의 이름이 ‘나는 즐겁고 행복한 전도자’입니다. 박치영 집사란 분이 쓴 책인데, 이 분은 복음전도의 사명을 깨닫고 직장에 6개월간 휴직계를 내고 2개월 동안 전국을 전도할 준비를 했습니다. 전도 탑 차를 하나 사서 옆에 성경말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하며 전도를 위한 차량으로 개조를 했습니다. 모든 전도 물품 전도지 전도 선물 등 모든 것을 준비하고 출발 했습니다.
인천을 출발해서 강화대교 전라도 부산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까지 4개월 동안 열심히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는데 다시 2차, 3차전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4개월 전도 여행을 위해서 7천 만원을 투자 했다고 합니다.
그는 책의 마지막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제 일생의 마지막 소원은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제가 사는 이유입니다. 기업을 운영하고 돈을 버는 이유가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전도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자의 삶을 사시다가 주님 앞에서 칭찬과 면류관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게 주어진 시간과 은사와 재능을 땅 속에 파묻고 게으름 속에 있다가 주님의 보좌 앞에 서는 날 눈물 흘리며 부끄러워하며 후회하는 그런 인생이 되시겠습니까?

  이제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영무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