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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체(10) - 고난 (Sufferings)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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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사의 달 11월을 맞이하였습니다. 들판의 누런 곡식들을 보며, 주렁주렁 달린 노란 감을 보며, 빨강, 노랑, 주홍색으로 물든 산을 보며, 나를 지으신 주님, 나에게 날마다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생각해봅니다. 가을, 가을은 사색의 계절입니다. 생각해보면, 감사드릴게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제목들이 참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내가 남을 위하여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감사드릴 제목이 아닙니까?
오늘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구역장으로, 권찰로,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주방봉사로, 주차봉사로, 음향봉사로 성도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드릴 일입니다. 나도 교회를 위하여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사회에 뭔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나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게 감사드릴 제목입니다.

2. 오늘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의 희생 위에 우리가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수성가했다하더라도, 여러분의 어머니는 여러분을 낳으시느라 수많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요, 피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요, 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그들의 스승처럼 순교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복음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울사도도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교부들이 화형을 당하고, 십자가형을 당하였고, 그 이후 중세시대를 넘어 종교개혁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위클리프, 후스 같은 개혁자들이 복음 때문에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에서, 네덜란드에서 박해를 견디다 못해 미국에 건너 온 청교도들이 기독교적 가치관에 따라 나라를 세웠습니다.

영국, 미국의 십자가 행진이 19세기 말에 우리 조선 땅에도 이어졌으니, 어둠과 고통에 처해 있던 우리 조상들에게 복음의 빛이 비춰졌습니다. 영국 선교사 토마스 목사님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조선에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열정을 불태우다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따라 평양에 가는 항해길에 올랐습니다.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제너럴셔먼호는 대원군의 쇄국 정책에 따라 맞선 우리 수군과 대치하여 싸우던 중, 좌초하여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승선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뭍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우리 군관들이 그들을 하나씩 처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들고 뭍으로 내린 토마스 목사님은 백사장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댄채 한동안 기도를 드린 후, 자신을 죽이려는 박춘권에게 성경을 전해주며 받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병졸들은 받기를 거부하고 그를 즉시 처형해버렸습니다.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토마스 목사님은 천국으로 갔습니다. 토마스 목사님의 순교의 피가 훗날 평양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토마스 목사님을 죽인 박춘권은 훗날 예수님을 믿고 영주교회의 영수(요즘말로 장로)가 되었습니다. 박춘권 앞서 토마스 목사님으로부터 성경3권을 건네받은 최치량은 성경이 금서라는 사실을 알고 겁을 먹은 나머지 평양 주사 박영식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박영식은 그 성경을 한 장씩 뜯어 자신의 집에 도배지로 사용하였습니다. 집안을 온통 성경으로 도배한 박영식, 들어가도 나가도, 누워도 앉아있어도 성경말씀 밖에 안 보이니, 박영식은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았고, 최치량도 구원받았습니다. 성경으로 도배한 박영식의 집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던 장대현교회의 전신,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여러분과 저는 지금 순교자의 피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장로교를 전해준 최초의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그가 미국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인천 제물포에 도착한 것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새벽이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문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가 지금 다 이루어졌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교회가 세워져 있고, 골짝골짝마다 기도원이 들어서 있고, 4명중 한 명이 주님을 믿는 백성이 되었고,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해외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목사님, 언더우드 목사님의 피와 눈물과 고난 위에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장하였고, 우리가 주님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오늘 바울 사도께서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의 믿음의 선배들이 너를 위하여 피를 흘렸으니, 이제 네가 수고할 때다. 네가 복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때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청산교회를 위하여 네 눈물과 네 땀과 네 기도와 네 물질과 네 시간과 네 재능을 바칠 때다.”

2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사도는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괴로움을 기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 고난, 그것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연약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의 고난을 대신 짊어져주십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들을 통하여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대신 져주시고 슬피 우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복음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손발이 되어, 연약한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위로와 격려를 해줍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바울사도께서 교회의 일군이 되어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곧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맡겨주셨다란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 교회의 일군이 되어, 장로, 권사, 집사로, 구역장 권찰로, 성가대원으로, 교사로, 다양한 은사로 곳곳에서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봉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으신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6-27절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바라는 영광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 우리도 그분처럼 영광스럽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는 구체적인 일은 무엇입니까?
28절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하여 우리는 수고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권하고, 가르치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완전하다”는 말은 완벽하다가 아니라, 성숙하다는 뜻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수고합니다.
목회의 가장 큰 보람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도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장로, 권사, 구역장, 권찰, 교사, 집사 모든 직분자들은 성도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서도록 격려하고, 칭찬하고, 세워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주일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경암송 잘 한다고, 주일 잘 지킨다고, 헌금 잘 한다고, 집사님, 장로님들이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얼마나 칭찬해주시든지, 저는 교회만 가면 신났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에 남광교회에서 아침 9시에는 아동부 교사로, 11시 주일예배 때는 성가대원으로, 오후2시에는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은 말할 것도 없고,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오선생, 오선생” 하면서, 어린 저를 얼마나 격려해주시는지, 밥도 사주시고요. 아무리 봉사해도 힘이 절로 났습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대구제일교회로 옮겼는데, 가자마자 초등부 교사를 맡았습니다. 남광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열심을 알고 있던 전도사님과 부장 장로님께서 처음 제일교회에 온 저에게 연구주임이란 자리를 맡겨주셔셔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니, 죽어라 일했습니다. 세워주고 격려하니 죽어라 일하더라고요.

교회의 중직자 여러분, 우리 교회 젊은이들이 좀 부족하더라도 자주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밥도 좀 사주시고,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신나서 죽어라 봉사할 것입니다.

4. 그런데, 교회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수고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해주고, 세워주는 일은 말만큼 쉽지 않습니다. 봉사 잘 하고, 신앙이 잘 자라면 그들을 칭찬하고 세워주는 일이 쉽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맡은 일에 무책임하고, 불성실하고, 이기적인 태도로 신앙생활하는 후배들을 지속적으로 권면하고, 칭찬하며, 세워주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책망하고, 비판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29절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했습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되니,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하십시오.

<마더 테레사 자서전>을 보니까, 테레사 수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몽당연필에 불과하다.
그분이 쓰는 분이시다.
그분이 생각하는 분이시다.
그분이 결정하는 분이시다.
다시 말한다. 나는 그분 손 안에 있는 작은 몽당연필에 불과하다.”

그렇습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작은 몽당연필이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 그분은 크신 분, 위대하신 분,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통하여 능력을 행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통하여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손에 쓰임받도록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건강을 그분께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의 손에 쓰임받는 보잘것없는 작은 몽당연필,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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