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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능력(롬 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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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롬1:14-17)    한재희 목사

하나님은 복음증거를 위해 바울을 부르시고 구별하셨다.(1절) 마찬가지로 우리도 복음을 위해 부르셨다. 복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다.(7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믿음의 자녀가 된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무엇인가?

1. 먼저 복음을 알아야 한다.(2-4, 16-17절)
•복음이란 무엇인가? 본문 2절을 보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복음이다. 3-4절의 설명을 보면 예수님은 육신으로 볼 때 이스라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영광을 얻으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복음인가? 그것은 바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어 주셨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한번은 죽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죽음 이후에 부활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가?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던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다시 교제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를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어떤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천국에 이를 수도 없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의 능력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완성하신 것이므로 이것이 가장 귀한 소식이요 복음인 것이다. *당신은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을 믿는가? 우리의 인생에 이것보다 더 기쁘고 복된 소식이 있는가? 승진이나 시험에 합격되었다는 소식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소식 듣기를 사모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이렇게 값진 복음이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16절에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말씀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복음은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한다. 복음은 차별하지 않는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그것은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안된다. 오직 복음(예수님)이 이루어주신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7절에는 말하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한다. 복음은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받았는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천국의 소망이 있는가? 예수로 말미암은 복음의 능력을 세상에서 증거하며, 복음의 능력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바란다.

2. 부르심의 목적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1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에 대해 말하길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된 나 바울은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었다.”고 말한다. 분명히 하나님은 바울을 목적대로 부르셨고, 오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다는 것이다. 바울을 부르신 목적과 우리의 목적이 다른가?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우리는 성도로 부르셨다. 그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신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 증거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소원은 동일한 것이다.
•8절을 보면 바울이 고백하길 “나는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볼 때 그들의 믿음이 알려지고 있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목적대로 복음을 전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바울의 기쁨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목이 된 것이다. 진정 우리의 기쁨 역시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왜?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것이 축복의 길이요 영생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말하길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태도를 보게 된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자녀삼아주시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 것에 대해서 바울은 예수님의 종으로 온전히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삶으로 살겠다는 결단을 했다. **여러분은 어떤 결단속에서 살아가는가?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가? 정말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며 구원자라고 고백하는가?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부름의 목적을 발견했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삶을 조정하고 순종하는 삶을 이루어가길 바란다.

3.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첫째는 복음대로 살아가는 것이요. 둘째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믿음을 드러내는 삶이다. 로마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믿음 생활을 지역에 드러내었다. 로마는 큰 도시였으니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로마교회 성도들의 행실을 잘 알지는 못했을지라도 다른 지역의 성도들에게만큼은 잘 알려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대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내가 믿는 믿음을 지역에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전도를 하다보면 예수님에 대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본다. 왜 그런가?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먼저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올바른 믿음의 삶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잘못된 행실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드러낸다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라고 말씀하신다. 세 번째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 바울이 로마의 교인들에게 가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본문에 말하길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1-12절)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서 영적인 축복들을 나눔으로써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성도들이 함께 모일 때 서로의 믿음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연합되는 것을 원하신다. 믿음 또한 예수님 안에서 성도들의 연합됨을 통해서 자라게 되는 것이다.

<결론>
같은 시대에 산 두 사람의 인생을 비교해 보자. 네로 황제는 로마의 통치자로 15년 동안을 군림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기에 그는 타인에게 해를 끼친 포악한 삶을 살았다.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대 궁궐이었다 궁궐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에는 값진 향수를 뿌리는 샤워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가 쓴 왕관은 10만불이 넘었으며 그가 입던 옷은 너무나 많아서 한번 입은 옷은 두번 다시 입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미녀들에게 싸여서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향락을 즐겼으며 그 앞에서는 이 세상의 온갖 희안한 게임과 예술 사건들이 쉬임없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만족이 없었고,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이에 비해 바울을 보자.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세상에 대한 야심과 집착으로 살았으나 그리스도를 안 후는 이 모든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분토처럼 버리고, 타인과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았다. 그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과 삶의 자세는 복음의 빚진자(14절)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부름의 목적을 바로 알고 순종하는 삶이 되자.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조정하자.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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