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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동하는 일꾼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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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인구의 대부분이 지옥이 있다고 믿는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잘 산다고 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지옥에 대한 두려운 마음과 경제 발전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미국과 유럽,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함께 그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의 71퍼센트가 지옥의 존재를 믿고 있는 미국의 일 인당 국민 소득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미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한 아일랜드도 인구의 53퍼센트가 지옥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성경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장차 세상을 심판하시고 또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을 믿고 있는 우리는 그 주님을 맞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친히 하신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그 대답을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재림 때에 일어날 일을 비유로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과연 주님은 이 비유로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각각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맡기신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제 그것은 우리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그것이 재물이든지, 건강이든지, 권세든지, 명예든지 다른 그 무엇이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맡기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소유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바로 주님의 소유라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종은 그 주인의 소유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주님의 달란트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각각 재능대로 맡기신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출 수 있는 만큼 비추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문제를 모두 다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맡기신 능력대로 일하는 것을 주님은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어서 열심히 일한 종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이 하신 ‘착하고’라는 말은 ‘선하다’ 혹은 ‘유능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충성된’이라는 말은 ‘믿을 만하다’ 혹은 ‘믿음을 가졌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은 한 달란트 받은 종보다 주인을 더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종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면 “잘했다, 유능하고 믿음을 가진 종아!”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잘했다는 것은 꼭 이익을 남겼기 때문은 아닙니다. 주인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세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일한 것이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적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이 맡겨집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영광까지 주어집니다. 주인에 대해서 전폭적인 신뢰를 가지고 충성하는 종들에게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끝으로 주님은 일하지 않는 일꾼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에게 주인이 불호령을 내리지 않습니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5:30) 도대체 그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섣불리 나섰다가 그 돈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섯 달란트라면 혹시 일부 손해를 봐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그리고 주인이 돈에 대해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의 잘못입니다. 그는 다만 주인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악할 뿐 아니라 아주 인색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주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는 항상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성경도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칭찬받은 종들은 주인을 알고 그 주인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주받은 종은 주인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주인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자는 기쁘게 일하지만 두려움으로 섬기는 자는 결코 위험한 모험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각종 은사들을 우리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과감하게 투자하는 모험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만약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남기지 못했거나 손해를 봤다면 그래도 주인이 그를 책망했겠습니까?

  어떤 임금님이 왕자를 결혼시키기 위해서 온 나라에 방을 붙이고 귀한 집 규수들을 모아 놓고 일일이 심사를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열 처녀가 후보로 남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열 처녀에게 한 가지 과제를 주었습니다. 쌀을 담은 그릇을 하나씩 주면서 임금님이 말했습니다. “이 쌀을 가지고 열흘 동안 지내다가 다시 오도록 하여라.” 어떤 처녀는 그 쌀을 가지고 죽을 쒀서 먹었습니다. 또 어떤 처녀는 그 쌀을 열 등분으로 나눠서 조금씩 열흘 동안 먹었습니다. 마침내 열흘이 지난 후 그 처녀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비실비실거렸습니다. 어떤 처녀는 쓰러져서 업혀 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한 처녀는 유난히 얼굴이 환하고 또 예뻤습니다. 뿐만 아니라 떡을 한 시루 머리에 이고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임금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해서 한 그릇의 쌀로 열흘 동안 먹고 또 떡까지 해가지고 왔느냐?” 그 처녀가 대답했습니다. “그 쌀로 떡을 만들어 가지고 시장에 나가서 팔았습니다. 남은 돈으로 쌀을 사서 또 떡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도 먹고 식구들도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임금님께 드리기 위해서 떡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과연 임금님의 며느리가 되었겠습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어떤 장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받은 만큼 더 벌어서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남긴 것이 없습니다. 그 종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그는 부정직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지나치게 신중했을 뿐입니다. 그 신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것이 왜 잘못입니까? 신중한 것은 잘못이 아니라 덕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한 것은 쉽게 자기 방어적인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는 모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맡은 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주인의 은혜에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모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랑은 모험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과 우리가 어떻게 맺어졌습니까? 십자가 위에 나타난 그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가 맺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도 그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주님이 그토록 사랑하셔서 목숨까지 버리신 이 세상을 우리도 또한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믿고 맡기신 모든 은사들을 가지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며 섬김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의 보좌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듣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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