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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는 하나님을 춤추시게 한다 (시 5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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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행복하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좋아하면서도 다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이 언제나 행복하고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항상 행복하게 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명령하셨다는 것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기뻐하며 항상 행복하게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명령하셨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항상 기쁘게, 항상 행복하게 사는 일은 실제로 가능합니다.

어떻게 하면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데살로니가 5장 16절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하나님의 명령에서 그 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정말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늘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교인들 중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니까 제가 보기에 조금은 어거지(?)로 감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머리가 다치지 않아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렇게 완벽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라는 것 이상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의 원문 뜻은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라’입니다. 주어진 진 기회를 잘 활용하라는 말씀과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전혀 다른 말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면서 사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였다면 그것이 바로 세월을 낭비한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기회’라고 하는 말의 시제입니다. 우리는 기회하면 대개 주어지는 기회만을 생각합니다. 기회의 시제가 언제나 미래입니다. 기회는 미래에 있는 것이라고 우리들은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다립니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우리들의 대부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시는 기회의 시제는 미래가 아닙니다. 그런 시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주어진 기회의 시제는 과거완료진행입니다. 기회는 과거에 이미 완성이 되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꽉 차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에베소서 5장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주어진 기회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라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시면서 17절에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말씀하십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주어진 기회를 활용할 줄 알게 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 때문에 우리에게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연은 무능함과 무관심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능하시다거나, 전능하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면 우리에게 우연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우연이라는 것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입니다. 그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고 옳으십니다.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의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얻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 한 분이 젊었을 때, 아주 젊었을 때, 20대 초반에 장사를 아주 잘하여 매일 저녁 골프 가방으로 돈을 하나 씩 벌었습니다. 젊다 못해 아직 어린 나이에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자연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세상과는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맞아 큰 부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부도여서 결국 자신도 할 수 없이 부도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망한 그는 많은 빚을 지고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졌던 크리스천들에게 감옥은 다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가져다줍니다. 그 장로님도 그랬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보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철없는 성공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지게 함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를 망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출옥하게 되었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다시 그 사업이 잘 되어 전에 부도를 내어 졌던 모든 빚을 다 갚게 해 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장로님에 제게 해 주셨던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목사님, 빚 갚는 거 참 재미있어요. 저는 요즘 빚 갚은 재미에 삽니다.’ 사람들 중에는 빚 떼어 먹는 재미로 사는 분들도 많은데 그 장로님은 빚 갚는 재미에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그 이야기를 제게 했을 때 제가 그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그 때 잘 망했지요? 그러자 그 장로님이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잘 망했어요. 그 때 안 망했으면 저는 망했어요.’(?) 맞습니다. 하나님은 망하라고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망하지 말라고 때때로 우리를 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면 망하는 것 같아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공한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망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하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많은 성공을 패망의 기회로 삼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그 뜻대로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믿음으로 그 속에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그 뜻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 속에서 기회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언제나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때 비로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환경을 뛰어 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우리에 양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항상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하박국을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 있게 하여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복을 주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시며 그 믿음으로 그를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살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복을 받으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절정은 주의 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이해함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회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사의 조건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일어나는 세상 속에서도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고래 중에 가장 크고 사나 운 범 고래를 조련하여 쇼를 하는데, 그 범 고래를 조련할 때 가장 중요한 방법이 칭찬과 격려라는 것입니다. 자꾸 칭찬하며 그 크고 사나운 고래도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불경스러워 보이는 비교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분을 읽고 묵상하다가 엉뚱하게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라는 말씀을 읽다가 감사는 하나님을 춤추시게 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고, 하나님도 기쁘시면, 그 기쁨이 절정에 달하면 춤을 추실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그렇게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당신을 기쁘시게 하여 춤추시게 하는 자에게 세상의 구원이 아닌 당신의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뉴앙스는 내가 한번 구원과 축복의 본 떼를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장 잘 표현한 말 중에 하나라고 저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돌에 새기고 축복에 대한 은혜와 감사는 물에 새기며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는 믿어도 구원의 삶, 은혜의 삶, 축복의 삶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참으로 많은데 우리는 그것을 은혜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일만을 생각합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원망만 합니다. 불평만 합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참 많은데 왜 우리는 그것을 은혜인줄 모를까요? 왜 그것을 감사할 줄 모를까요?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숙제를 드리고 싶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여러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여러분을 묶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깊이 묵상해 보는 한 주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하나는 48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라는 찬송입니다. “세앙 모든 풍파 약한 너를 흔들어 낙심할 맘 네게 일어 날 때에 주가 주신 복을 세어라. 주가 주신 복을 네가 알리라.‘라는 찬송입니다.

이번 한 주간 주가 주신 복을 세는 주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세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한번 정리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번 꼼꼼히 써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감사 할 줄 모르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은 참 섭섭해 하십니다. 신명기 32장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 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힘들고 어려워서 감사를 잊은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와 축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와 축복을 감사 할 줄 모르고 사는 것은 참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삶은 꼬이는 삶입니다. 어리석은 삶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풀리는 삶입니다. 지혜로운 삶입니다. 칭찬은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격려하는 행위입니다. 감사는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격려하는 행위입니다. 칭찬과 감사는 똑 같은 것으로 칭찬과 감사가 있을 때 아랫 사람과 윗 사람이 모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춤을 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춤을 추시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을 춤추시게 한 자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 가 하나님이 구원을 보이리라”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음 주일 추수감사절에 마음 없는 돈만 가지고 헌금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굿판에 복채 들고 오듯 마음 없는, 감사 없는 돈만 넣어 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16편 12절에서 14절의 말씀을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올해 제가 벌써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전쟁 통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장 힘들고 가난하고 어려울 때 태어나 그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중에서도 조금 더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님들이 공부하라고 들볶지를 않아 공부를 탁월하게 뛰어나게 잘 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일류 학교를 다녀 본 적도 없습니다. 살면서 이런 저런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저 하나 열심히 잘 한 것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너무 좋아서 그냥 교회 하나 열심히 다닌 것 밖에는 없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다보니 작은 믿음이라도 생겨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이해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아주 조금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겨자 씨 보다도 작은 믿음 위에 복을 주셔서, 젊어지는 것이 싫을 만큼의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때 아멘 할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작은 복이 아닌 넘치는 복을 저도 받았습니다.

남은 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입으로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저는 저의 시간과 생명과 재산을 구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그와 같은 마음을 경히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뻐 받아 주실 것입니다. 영광 받아 주실 것입니다. 제 감사 때문에 하나님은 춤을 추실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구원과 축복의 본 떼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 축복이 차고 넘쳐서 제 자손들이 그 복을 이어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은혜와 축복을 남달리 받고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여수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늘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춤 주시게 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증인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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