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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손 안에서 (렘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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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손 안에서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예레미야 18:1-10)

저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시골 중에서도 깡 시골이었습니다.
신작로도 없고 겨우 소 달구지 지나다닐 수 있는 그런 시골이었습니다.
앞에는 강이 흘렀고, 뒤에는 높은 산이 둘러 있었습니다.
그 산을 넘어가야 학교가 있었습니다.
여름철 장마가 지면 물이 불어나 강을 건널 수 없어 학교를 갈 수 없었습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산길을 넘을 수 없어 학교를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산을 넘어다니던 친구 중에는 <확실>도 <서분네>도 있었습니다.
봄과 가을이면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펄쳐졌습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면서 자연을 만끽하며 자랐습니다.

동네 어구에는 토기장이 집이 있었습니다.
장독이며, 물동이며, 그 밖에 토기들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토기를 굽는 날이면 모두 구경을 가기도 했습니다.
불을 때는 나무들을 옮겨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학교엘 가며 오며 토기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도 내가 본 것 같은 토기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빚는 토기장이라고 하였습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어떻게 만드는가? 몇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이 바로 우리의 일생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그릇을 빚든지 그릇은 토기장이 손 안에서 지어져갑니다.
즉, 그릇의 모양과 운명은 토기장이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있습니다.
토기장이는 흙에 대해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마음 속에 이미 완성된 작품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부모, 교사, 동료, 심지어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의 손을 빌려 우리를 빚어갑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때로는 억울한 일, 기막힌 일,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경험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나의 인격이 빚어지고 가치관이 빚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치 있는 그릇으로 만들려고 각종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릇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밟고, 이기고, 문지르고, 때리고 두드리면서 만들어집니다.
가치 있는 작품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진흙이 <녹로> 위에서 형태가 주어지기 까지 매를 많이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깎이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숙한 신앙의 인격이 되려면 많이 맞은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2.  진흙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진흙의 보드라움과 고분 고분함에 있습니다. 모래 알 하나도 들어가 있으면 안 됩니다.
나무뿌리, 돌조각 하나도 들어가 있으면 안 됩니다. 완전히 보드라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은 망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에게 <순종>이 얼마나 훌륭한 덕목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고분 고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원리를 알기 위해서 진흙의 속성을 한번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흙은 흙만 있으면 안됩니다.
흙과 물이 섞인 것이어야 합니다.
진흙은 육체를 상징하고 물은 성령을 상징한다고 유추해 볼 때,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할 때 보잘 것 없는 흙과 같은 존재를 놀라운 그릇으로 빚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돌뿌리, 나무뿌리가 있는 한 그것을 추려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적인 작업입니다.

저는 지금껏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손 안에 붙잡혀 온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의지대로 했으면 목사가 안 될 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6.25라는 전쟁으로 강제로 가정을 흩어버리고, 눈물 젖은 빵을 먹게 하는 훈련을 거쳐, 고집과 아집을 꺾어버리는 불가항력적 녹로에서 항복을 받은 후에 고분 고분해진 후 부터 당신의 그릇으로 만들어 오늘까지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붙잡힌 손 안에서 이 자리에까지 온 것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자신을 되돌아 볼 때 여러분의 의지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손 안에서 지어져 가는 질그릇일 뿐입니다.
질그릇 처럼 약한 것이 없습니다.
질그릇 처럼 깨지기 쉬운 그릇도 없습니다.
주님이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의 육체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이와 같은 주의 음성이 들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 깨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이지만, 말씀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물과 같은 성령, 불과 같은 성령, 바람과 같은 성령의 역사로 깨질 수밖에 없는 질그릇이지만 모두 나사로처럼 죽었던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3. 녹로(轆轤)는  환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녹로(wheel)란 진흙을 가지고 균형 있는 모양을 내기 위해서 빙글빙글 돌리는 회전대(回轉臺)를 말합니다.
이 녹로는 누가 돌립니까?
토기장이가 녹로를 돌리고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토기장입니다.
저는 이것을 묵상하면서 큰 영적 교훈을 발견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녹로에 올려 놓고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돌립니다.
때로는 천천히 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급하게 빨리 돌리기도 합니다.
진흙은 돌릴 때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뺑뺑이 돌릴 때 정신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연이나 행운에 의해 조절 당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에 의해 조절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환경들을 배정하시며 그 환경이 또한 우리들을 빚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위기가 올 때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기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통로라는 사실입니다.
위기는 자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실수해서 그런 어려움이 닥쳐왔다고 해도,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어려움이 닥쳐왔다고 해도, 일단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믿고 넘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신앙적인 자세라는 말입니다.

카우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 올랐습니다.  그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그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이었습니다.
아차! 비로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때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 오를 만큼 강건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진흙은 녹로에 얹혀서 돌려져야 그릇이 됩니다.
고난과, 역경의 환경에서 것잡을 수 없으리만치 돌려진 후에라야 온전한 인격의 그릇이 되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은총은 고난을 통해 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은 은혜는 그것을 은혜인지 모릅니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9년 동안 시베리아 유배생활을 한 뒤 <죄와 벌>, <학대받는 사람들>을 썼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단테는 정적들에 의해 추방된 뒤 방랑하면서 <신곡>이란 불후의 명작을 집필했습니다.
헨델의 메시아도 호화스러운 작곡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헨델은 반신불수로 감옥에 갇힌 후 세계인의 영혼을 뒤흔드는 명곡을 작곡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환경이 어떤 환경이든지 그것만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영국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가 쓴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 속에 살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 새는 자기의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산을 향해 날아가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산을 떠나면 죽을 것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으나 그것은 허사였습니다. 폭풍을 이기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새는 폭풍이 부는 대로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폭풍을 따라 한참 날아갔습니다. 드디어 폭풍도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눈 앞에는 푸른 초장과 멋진 수풀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살던 거친 수풀의 산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훌륭한 수풀과 산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렘33:3)
지금의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만 발버둥치지 말고, 신앙의 날개를 펴고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가 펼쳐져 있을 것입니다.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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