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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의 세력 (행 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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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에 아주 무건디(묶은) 집사님 한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자신의 설교가 감화력이 있다 생각하고 뿌듯하여 물었습니다.
[ 집사님, 어떤 설교를 듣고 그렇게 감동을 받았습니까? ] 하니
[ 목사님, 몇주전 설교 본문에 제가 은혜를 받았다 아입니까? ] 하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은혜 받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20절 보세요.
20절 [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
오늘 본문말씀은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는
20절 말씀의 실제적인 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시작은 에베소에서 시작됩니다.
에베소에 이른 바울이 그곳의 제자들을 만나
[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 고 물으니
[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느니라 ] 고 합니다.
그 때 바울이 예수를 증거하고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12사람이 방언도 하고 예언을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았겠습니까?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던 성도가 성령을 체험하고 나면
그 놀라운 충격과 변화는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은 자만이 압니다.
계속되어지는 에베소의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도 성령 사건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사역을 두란노 서원의 사역이라고 합니다.
이 두란노 서원의 사역이 어떻게 시작되어집니까?

에베소는 교통과 무역의 관문 역할을 했던 항구 도시로서,
특히 이방 미신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미신의 정도가 지나쳐서 소위 ‘에베소 주문’ 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부적과 같은 것으로서
이 주문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만사형통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미신이 도시에 보편적으로 성행했습니다.에베소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가 <숭배자> <신전을 지키는 자> 입니다.
이름만큼이나 에베소는 신전들로 유명했습니다.
주신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이름이 <다이아나>로
헬라어로는 24절에 나오는 <아데미>입니다.
이 여신 숭배는
웅장한 신전, 제물의 상품화, 그리고 매춘의 합법화가 특징입니다.
지금도 이 신전은 터만 남아 있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이러한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
그리고 기타 여러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무려 3년간(주후53-56)에 걸쳐 에베소에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확장시켜 나갑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도 자기규례대로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강론과 권면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되려 비방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8절에 [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
에베소 회당에서는 신앙의 거장인 바울 사도가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목사가 아니라 대 사도인 바울입니다. 매주 빠짐없이 강론했습니다.
한두 주일도 아니고 석 달 동안을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담대히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했다는 말입니다.  강론의 주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석 달 동안을 담대히 전한 하나님 나라!
이는 하나님께나 모든 성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삶의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참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9절에
[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았습니다.
마음을 닫고 불순종했을 뿐만 아니라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이 목회 하시는 교회에서
목사님을 싫어하고 그의 가르침을 못마땅해 하는 교인들이 있었답니다.
나병환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목회 하시는데 무엇이 불만일까 생각하여 봅니다. 
우리는 이 기가 막힌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베소 회당이 바울 사도를 감당하지 못하였구나!
에베소 회당이 하나님 나라를 감당하지 못하였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시민 정신과 시민의식으로 사십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고향 소식, 고국 소식을 알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에베소 회당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회당 사람들은 하나님나라와 관련을 맺고 싶지 않았습니다.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품기에는 마음이 너무 좁아 있었습니다.
고전6:11에
[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
성도 여러분 혹 우리 가운데 마음이 좁아
하늘나라에 관한 소식에 무관심하거나
받아드리지 못하는 교인 없습니까?
마음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의 비방이 심하니
바울은 그들을 떠나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 가서 제자훈련을 시켰던 것입니다.
본래 두란노 서원이란,
‘두란노’라는 수사학자요, 철학자가 강연했던 강연장을 말합니다.
요사이 말로 하면 아카데미와 같은 곳입니다.
바울에 관한 역사를 보면,
바울은 두란노라는 철학자가 강연을 하지 않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두란노 서원을 이용하였다고 전해 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이나 제자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럼 바울의 두란노 서원 사역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바울은 두란노 서원 사역의 특징은
1) 9절에 [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 합니다.
여기에 제자들은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드린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순종치 않고 비방했지만 그들 가운에 어떤 이들은
복음을 받고 바울을 좇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방하는 세력과 싸우는데 힘을 빼지 않고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기로 결심하는 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여기서 '따로 세우고'의 헬라어 '아포리조' 는
' 구별하다', '떼어놓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로부터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을 따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마음에 말씀으로 채워갔습니다.

바울의 두란노 서원의 사역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바울이 따로 세운 제자들을 제자훈련 시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항상 따로 세우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항상 이렇게 따로 세우는 일이 있습니다.
행13장에 안디옥 교회가 세계 첫 선교사를 파송할 때
[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 고 합니다.
선교사뿐만이 아니지요
삿6장에 하나님이 기드온을 통해서 당시 30000명이 모였습니다만
영적으로 민감한 자 300명을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
바로 기드온의 300용사이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따로 세운 사람, 즉 구별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따로 서라는 음성이 들려지면
따로 세움 받는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따로 세움 받은 제자들,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훈련 받았습니다.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2) 10절에 [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
아~! 열심히 제자훈련 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게 되었구나
그런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아에 교회가 세워진 배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력은 아시아 주변으로 뻗어나가 2년 동안 바울 열심 있는 사역은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많은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루커스 계곡(the Lycus Valley)에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세워졌고,
소아시아 지역에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등
여러 교회들이 속속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란노 서원의 바울의 헌신된 사역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혹 성경을 보면서 바울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통해 나타난
희한한 능력에 눈이 휘둥그러지겠지만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고
저들이 나가서 교회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세력이 있는 곳에는 이렇게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의 세력을 얻어 교회를 세워 나가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이렇게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이나 집중하여 제자훈련 사역을 하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11-12절에 보니
[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려면
앞서 바울 사도를 통해 선포한 메시지를 다시 환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강론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나라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들어가니
병이 낫고 악귀가 나가는 희얀한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내게도 하나님 나라가 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몸에 내 삶에 악한 것들이 도망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런 표적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기적은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이적은 모두 사실입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시기 대문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적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입니까? 도구일 뿐이지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실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의 손을 빌어 이적을 마음껏 드러내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전기 또는 열을 전하는 물질을 도체 혹은 전도체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시도록 내어놓은
전도체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부도체, 절연체(nonconductor)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량도체이지만 바울은 바로 온전한 전도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전기적인 도체와 부도체의 구별은 외관상으로는 반드시 명확하지 않습니다.
고온 또는 강한 전기장에 놓거나 불순물을 가하면
부도체도 전도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절연체로 알려져 있는 것의 대다수가
약간씩이나마 전기전도성을 가지고 있는 반전도체인데(semi)
그러나 절연체의 범주에 포함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도체의 전기전도는 온도상승과 더불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에서 육신의 한계 속에서 몸부림치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빛을 줍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어서
반전도체(semiconductor)와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열이 닿을 때, 하나님의 전류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성령의 능력 받아 하나님의 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전도체를 라 하는데
우리는 라고 하면 지휘자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 되어
말씀을 따라 움직이면 세력을 얻을 줄 믿습니다.

<< 짝퉁 신자 >>
그런데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니 에피소드도 일어납니다.
명품이 있어면 짝퉁이 나타나듯이
이런 진귀한 능력이 나타나니 짝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3절 이하에 보니
어떤 떠돌이 유대인 마술사들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바울이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으니
병이 낫고 귀신이 물러가니 희한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기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며 짝퉁 노릇을 합니다.
그러니 지켜보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우리 아버지도 제사장인데 하면서 흉내를 냅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또 벌어진 것입니다.
15절에 보니 악귀 들린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두 사람 위에 올라타 들고 패 주니
그만 혼 줄이 나서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명품과 짝퉁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는 악귀가 대답한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예수도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
이 말 속에서
영적인 세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귀는 ‘예수님’의 이름을 즉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지역에서 강력한 영적인 능력자 ‘바울’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다 영적인 세계에 유명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께 헌신된 하나님의 측근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짝퉁 신자는 귀신의 조롱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바로 이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교인들도 많고 목사 장로도 많지만 영적 능력을 가진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예수를 믿습니다만 몸으로 믿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몸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신자라고 할지라도
몸 바쳐, 너 죽고 나 죽는다 하는 데야, 귀신도 좇겨날 줄 믿습니다.
몇백명, 몇천명 모여 그냥 머무는 것 보다
따로 세움 받은 헌신된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나타낸 표적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17절 이하 말씀보세요.
[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 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
1)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바울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위기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 주 예수의 이름이 높여진 것입니다.
요사이 살리고, 살리고 ! 하는 말 유행하데요.
성도는 영적 분위시 살리고 살리는 <영적 살리고맨>이 되시기 바랍니다.

2) 18절 [ 믿은 사람들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 표적을 보기 전에도 믿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믿긴 믿은 는데 바로 믿지 못한 사람들이,
신앙생활 엉터리로 했던 교인들이
자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떤 직분자는 자기가 꽤 괜찮은 신자로 알고 교회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성령이 임하여 성령의 조명이 비추어지니
자기 속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부도를 당한 사람처럼 자기 인생에 부도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통곡을 하며 하나님 앞에 자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부흥은 바로 말씀의 역사요 회개의 역사인 것을 말합니다.
다 산 후에 부도난 인생이 되지 마시고
지금 심령이 가난한 사람 되어 천국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3) 19절 [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 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세력을 점령한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사탄의 세력이 가장 날뛰는 곳이 어디입니까?
문화입니다. 바로 미신 문화입니다.
첨단 과학사회라고 하지만 첨단으로 갈수록
문화는 점점 더 사탄이 장악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 문화를 표현하는 용어들 한 번 들어 보세요
포스트모더니즘, 뉴 에이지, 카오스니 퓨전이니
이것 다 사탄이 숨어들기 딱 좋은 은폐물 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 앞에는 사탄이 손을 들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은 오만이나 되는 책을 가지고 와서 불살라버렸습니다.
은 오만이라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근로자 오만명 일당이 되니 25억쯤 되는 가치입니다.
오늘 성경은 마술을 페리에르가(perierga)- 쓸데없는 일 이란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쓸데없는 일, 쓸데없는 것
그 값이 얼마라도 불살라 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부적 같은 것 태워 버리세요, 집에 달마도 걸어둔 분 태워버리세요
달마도 항아리 - 유명한 대사가 만들었다고요 - 깨뜨려 버리세요
저질 비디오, 섹시 달력, 진열장 양주 - 던져 버리세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악한 문화들이 먼저 사라지는 은혜와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의 두란노 서원의 사역을 통해
희한한 성령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행전의 저자 누가는 에베소 성령 사건을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19절 [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
이 모든 역사를 누가는
주의 말씀의 세력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말 이라는 것이 그렇잖습니까? 누가 말하느냐? 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지요.

에베소에서 바울의 말씀이 왜 이렇게 힘이 있고 능력이 있었습니까?
그답은 행20:19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밀레도란 곳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놓고 교회를 섬기는 일에 권면을 하는 말 가운데
[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
31절 [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일 ]
그러니 겸손과 눈물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된 것입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 그 말씀의 역사가
첫째는,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다 주의 말씀을 듣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즉 아시아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이 있는 곳에서 희한한 하나님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병이 낫고 악귀가 물러가고 짝퉁이 드러난 것입니다.
셋째로, 말씀의 세력이 있는 곳에는
시대의 가치관과 문화가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겸손과 눈물로 기도하고 말씀이 세력을 얻어
이 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하나님의 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5-11-13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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