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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 (요 6: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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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13)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나이다.”(14)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이 대답에 주님은 크게 만족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칭찬하고 “네가 복이 있다. 너는 반석이다.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하시면서 주님이 간직해 온 비밀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공개를 합니다.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관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0-21)

그동안 좋은 시절만 보았던 제자들에게는 충격의 말씀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죽으면 제자들이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그 동안 봤던 기적과 신비한 체험들이 물거품 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물위를 걸으셨던 기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는 예수님이 이 나라의 왕이 되실 것을 기대하며 꿈꿔왔었는데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얼마나 실망스러웠겠습니까?

이 때,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나가서 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십자가에서 죽으시다니요, 말도 안 되는 예깁니다. 예수님 같은 분이 죽으신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 얘깁니다.

이에 주님이 대답이 이렇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일중에 먼저 하나님의 일을 강조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도 그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일은 어떤 것입니까?           
 
1. 사람의 일은 고난 없이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책망 받은 것은 예수님이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풀어 말씀드리면 결코 고난 같은 것은 예수님에게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의 일뿐 아니라 예수님은 사단의 일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 [피얼스]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교회를 시무하시는 중, 장로님 한 분이 너무 목회 정책을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다양하게 괴롭혀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모하고 목사님은 성의를 벗어 던지고 탄광촌으로 들어가 막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마저 버리고 타락하여 살던 어느 날, 술에 만취되어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을 때, 그 옛날 피얼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뚜웬]이라는 청년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술에 취해 죽어가는 사람이 피얼스 목사임을 알고, 뚜웬이 눈물로 절규하면서 호소하는 말에 충격을 받고, 성전으로 달려가 회개하면서 울고 있을 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바로 오늘 베드로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피얼스 목사님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장로 한사람이 괴롭힌다고, 나의 일을 버렸느냐?. 피얼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일어나라 이제 내가 너에게 새 힘을 주리라. 이제는 사람의 일을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그렇게 새롭게 된 피얼스 목사님은 세계를 27회나 순회하면서 말씀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성령의 충만을 경험케 하는 위대한 부흥사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요한삼서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절)
이 말씀은 한국경제가 어렵고 배고팠던 시절에 굉장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말씀입니다.
그 시대 성도들에게 원동력이 되었고 신앙생활에 스파크를 일으켜 열정을 갖게 했던 성경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점점 변색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잘 믿었더니 사업이 잘되고 부자가 되어 복을 받았다”라는 간증이 표준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자동적으로 부작용을 낳게 되었습니다.
고난당하고 핍박당하고 그래서 부자 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예수를 잘 못 믿은 것으로 생각된 것입니다.
고난을 받는 사람은 뭔가 신앙생활을 삐딱하게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만사형통하고 고난 없는 예수를 찾다 보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편의주의에 빠집니다.
안일주의에 빠집니다.
이것저것 간섭하고 간섭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먼저가 아니고 사람의 일이 먼저 앞서서 편의주의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예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고 쉽게 예수를 믿을까?
이것이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 없는 생활은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때때로 아픔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을 버려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프고 힘이 든 것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그리스도인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참새 떼가 옹기종기 모여 씨앗을 쪼아 먹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문득 참새를 어루만져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살금살금 참새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참새들은 벌써 눈치를 채고 나뭇가지 위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참새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려면 참새와 같은 모습이어야 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을 거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얼만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해산의 고통 뒤에 자식을 품에 안고 행복해 하듯, 고난 뒤에 영광의 열매가 맺혀진 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일은 인자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인간적인 동정심입니다.
동정심과 사랑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사람의 일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그 뜻이 담겨 있습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
사람의 동정이 때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제 오늘 본문 28-29절을 읽어봅시다.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일에 대한 정의를 예수님께서는 인자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1차 내려 주셨던 떡 ‘만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차와 2차의 떡을 내려 주셨는데 1차에 내려준 떡은 육신이 살아가기 위한 만나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할 때 먹은 떡으로 하루만을 위한 떡이었습니다.
이는 영을 살릴 수 없는 떡으로 썩어질 떡입니다.
요한복음 6:49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광야에 내린 만나는 육을 위한 만나였습니다.
따라서 만나는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었습니다.

2) 2차 내려진 떡이 있습니다.
2차 내려진 떡도 하늘로서 온 것으로는 만나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떡은 생명을 주는 영원한 떡입니다
이 떡은 매일 먹을 필요가 없는 한번만 먹으면 되는 떡입니다.
한 번만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떡의 주인공이 라고 했습니다.
보문 35절에,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요 6:50-51절에,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주리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 이로라 하시니라.”
(요 6:50-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 첫 번째는, 예수님이 곧 생명의 떡이신 것을 믿고 이 떡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양들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37-39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쫒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니라.”(37-39)

이 구절에서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전도보다 귀중한 일은 없습니다.
또한 전도하여 그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치고 건강한 양들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도 너무 귀한 일입니다.
이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기에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 10:11-12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10:11-12)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기에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에 길 잃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길로, 생명의 떡으로 인도해주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중대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김포중앙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본문 39절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가슴에 새겨집니다.

눅 15장에 보면, 잃었다가 되찾은 기쁨의 사건 3종류의 비유가 나옵니다.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동전의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들의 공통된 내용이 있는데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내용은 귀중한 것을 찾고 나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 찾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김포중앙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기쁜 열매를 맺습니다.
잔치를 베풀 만큼 기쁘고 영광된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얻은 교훈을 가슴에 새기십시다.
사람의 일은 고난 없이 신앙생활을 하려는 마음입니다.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형통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일과 맞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의 영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열매를 맺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교회는 다음주일을 전도축제로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460여명의 태 신자를 놓고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태 신자들의 마음을 옥토와 같이 만들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든지 마음 문을 열게 하시고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서울 한남동의 고급 빌라에 파출부로 일을 다니는 집사님이 계셨답니다.
넓은 집을 청소하면서도 그 집사님의 입에서는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364장)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495장)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안방에 앉아서 온갖 세상 집 다 걸머진 양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 담배만 피우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의 잦은 외박에 자식들은 자기 일이 바쁘다고 얼굴 보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저절로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새로 온 파출부는 힘든 집안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하면서 찬송을 부르며 일을 합니다.
매일 그렇게 즐겁게 일을 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무엇이 그리 기뻐요?”
“기쁘지요. 우리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저와 같이 예수님 믿으시겠어요?”
“예수 믿으면 그렇게 기뻐요?”
“그럼 기쁘지요. 마음이 아주 평안해져요. 주인아주머니도 한번 교회에 가보실래요?”
“한번 따라가 볼까요!”
그 다음 주일 주인아주머니와 파출부 아주머니는 감이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주인아주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쁨 속에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파출부 집사님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를 통하여 평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받는 복입니다.

나아만은 작은 소녀가 전해 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찾아갔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요단강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그에게 문둥병이 치료되어 어린아이 살같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깨끗하게 치료된 것입니다.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나아만은 기뻤을 것입니다.

그가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처음 한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소녀의 등을 두드리면서 고맙다고 했을 것입니다.
큰 선물을 들려서 그 작은 소녀를 자기 고향 부모님에게로 돌려보내었을 것입니다.
그 소녀 덕분에 건강을 회복했기 에 너무나 고마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비취리라”고 했습니다.
옳은 데로 이끌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중에 최고의 일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부흥하는 최고의 길도 전도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전도축제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일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안겨 드립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전하는 일에 힘을 쏟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주께 돌아와 생명을 얻는 천국의 잔치가 벌어지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다.
그래서 오늘도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열정을 지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박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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