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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덤벙대는 사람도 쓰신다(막 14: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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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벙대는 사람도 쓰신다

  ‘말라츠’라는 심리학자는, 95%의 사람들이 어떤 약점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약점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약점을 극복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배우지 못한 약점을 가진 링컨과, 소아마비의 약점을 가졌던 루즈벨트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가난의 약점을 가졌던 록펠러는,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다. 귀머거리의 약점을 가졌던 베토벤은 최대의 악성이 되었다. 헬렌 켈러는 3중고의 약점을 극복하고, 장애우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으며, 그들을 위해 사회사업을 했다. 수학을 못한다고 시험에 낙방하지 않는다. 다른 과목을 잘 하면 된다.

  마라톤의 황제 아베베는, 세계최고기록으로 올림픽마라톤 2연패한 최초의 선수로 “맨발의 황제”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러나 그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제는 다 끝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베는 마라톤 대신 양궁으로, 지금의 장애인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땄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약점이 아니라,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약점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다. 하나님은 약한 자에게 관심을 가지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신다. 강한 자는 교만하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바울은 혈통으로나 지위로나, 학식으로나 율법의 의로 볼 때 부족함이 없는 자였다(빌3:5-6). 교만해 질 수 있는 요소가 많았기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가시를 허락하셨다.

  이 가시로 인해,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고 하였다.

  뭔가를 가진 자도, 약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연약함이 무슨 장애와 문제가 되겠는가? 있는 그 자리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한다면, 더 크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다. 모든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다.

  무한대에 만을 더하나, 억을 더하나, 다 똑같이 무한대다. 무한대의 힘을 가지신 하나님께, 나의 능력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한대의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을 내가 의지하느냐, 의지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된다.

1. 베드로의 모습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14:28)라고 담대하게 요청한다.

  그래서 바다 위를 걷게 되지만, 사나운 폭풍우를 바라보며, 겁에 질려 물에 빠진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얼마나 웃기는 장면인가? 어부는 수영이 기본이다. 그러니까 헤엄쳐 나오면 되는데, 살려 달라 소리치고 있으니, 그는 덤벙댈 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자, 제자들은 “침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며, 정답을 말했다.
  예수님은 크게 감동하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7-18)고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셨다. 예수님은 감동하시어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21).

  그랬더니 이번에 베드로는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됩니다”하며, 극구 막아섰다. 이에 다시 실망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23)고 말씀하셨다. 바로 같은 장소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이렇게 금방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가, 실망을 주었다 하는 덤벙대는 인생이 베드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다른 제자들은 조금 민망해도 가만히 있는데,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기도록 하지 않겠다며, 예수님을 말렸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요13:)고 하시자, 이번에는 당황스럽게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했다.

  본문을 보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29).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였다. 그리고 닭이 울자, 회개하며 울었다.

  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의 자는 모습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0-41) 하셨다. 세 번 동일한 말씀으로 하신 후,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였다.

  그런데 자지 않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의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렸다. 깨어 있으라 하면 자고, 자라고 하면 깼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베드로다. 신약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이 베드로다. 단순, 무식, 다혈질 그 자체의 인물이다.

  이렇게 문제투성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크게 변했다. 주님께서는 투박한 베드로를 잘 다듬어, 반석으로 쓰셨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다듬어 달라 기도하자. 우리도 하나님께 붙들리면 베드로처럼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2. 변화된 자의 모습
사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는 실수 연발이었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는 능력으로 충만했다.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허다한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았다(행5:15-16).

  풍랑을 보고 무서워했던 베드로가, 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도 몰랐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12장). 얼마나 깊이 잤든지,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웠다.

  다 주를 버려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맹세하며 저주까지 했던 그가, 나중에는 순교를 했는데, 베드로는 자신은 예수님처럼 죽을 수 없어, 십자가에 거꾸로 죽여 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공회에서 제사장들이 협박을 하였지만, 이런 압력에서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었다(행4:8).
또 그는 실패를 거울삼아 큰 교훈을 남겼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5, 7-8)라고 하였다. 기도하라면 졸기만 하던 베드로가,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철야기도도 하고, 깨어 있으라고 강조했다.
  베드로는 다혈질의 사람이다. 다혈질의 사람은 준비성이 부족하고, 일을 대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벧전3:15을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한 번도 준비한 적이 없던 베드로가, “항상 예비하라”고 했다. 그는 이제 대충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예비하고 준비하는 인생으로 변하였다. 대책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인생을 아름답게 바꿔주셨다. 우리 인생에는 약점이 있다. 약점 때문에 괴로워 말라. 약점 때문에, 축복이 될 수 있다. 

  모세는 입이 뻣뻣하여 말을 못하는 약점 때문에, 말 잘하는 아론을 동역자로 얻을 수가 있었다. 루디아는 먼저 남편이 세상을 떠났지만, 열심히 혼자 자주 장사를 하여, 바울와 함께 빌립보교회를 세웠다. 안나는 시집 간지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84년을 혼자 살았다.

  혼자 살았기에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가정의 약점을 승화시켰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창녀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고귀한 여인으로 변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약점도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

3. 어떻게 베드로가 변화될 수 있었나?

(1) 자신의 약점을 솔직히 드러내자.
우리도 주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회복된다. 약점이 많고, 부족함을 느낌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약점을 가지고 불쌍히 여겨 달라며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높이 보신 점은, 바로 이 정직성이다. 베드로는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아가 주님 앞에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변덕쟁이입니다. 저는 의지가 약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다”며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며 나아갔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 약점을 잘 보지 못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만큼 치유도 빨랐다. 간은 아파도,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는 이미 늦은 때가 많다. 그렇기에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병이 무섭다.

  그러나 증상이 나타나면 쉽게 고칠 수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약점을 보고, 주님 앞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의 약점을, 하나씩 치유하고 다듬어 가셨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을 예수님을 싫어하셨다. 속이 썩어 문드러졌는데도, 포장만 그럴싸하게 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베드로처럼 정직한 모습,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으시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고백하고 나오면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다.

(2) 격려할 때 치료된다.
기질에 따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면 담즙질의 사람은 꾸중을 들으면 돌이킨다.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변화시키실 때,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행9:4)하심은 거룩한 꾸짖음이었다. 질책을 들은 담즙질의 사울은, 그 뜻을 음미하고 나서 변화되었다. 꾸짖어서 변화되는 사람은, 냉혈한이나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싫은 소리를 들으면,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낸다.

  그러나 베드로 같은 다혈질은 다르다. 욕을 먹으면 변화는커녕, 풀이 죽어버린다.
  “맞아요, 주님! 죽여주세요!”하면서, 시름시름 앓느라 아무 일도 못한다. 다혈질의 사람은 꾸짖으면 안 되고,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꾸짖지 않고, 계속 격려해주셨다. 풀이 죽어있는 베드로를, 사랑의 눈으로 계속 바라보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만났을 때도, “네가 정말 나의 수제자가 맞느냐?”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한 배신자”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해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 물으셨다.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자, “내 양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계속 격려하셨다. 다혈질은 자기 약점을 잘 안다. 그래서 누군가 잘한다고 북돋아주면, 기운이 펄펄 난다. 이런 사람은 실수도 하지만, 제일 앞장서서 많은 일을 한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임하자, 당장 뛰쳐나가 설교를 했다. 그러자 3천명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모든 일에 앞장서서, 잘 이끌어나갔다.

(3) 성령 충만할 때 변화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약점은 제하여 주시고, 장점은 극대화시켜주신다. 성령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이 다혈질만큼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좋은 기질이 없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무조건 순종한다.

  요2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요한과 베드로 두 제자가 무덤으로 달려간다. 요한이 먼저 무덤에 도착했다. 그러나 무덤 속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뒤좇아 왔던 베드로다. 요한이 머뭇거리는 순간, 베드로는 머뭇거리지 않고 들어갔다. 머리 굴림보다, 행동이 더 빠르다.

  순종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힘이 있다. 요21장을 보면, 요한이 주님이라고 말하자, 시몬 베드로는 벗고 있다가, 주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신앙이다. 바다로 뛰어들 때, 계산하지 않고 단순하게 행동을 했다. 따져보면 헌신하기 힘들다.

  하나님 앞에서 누가 먼저 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몸을 던져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많이 깨우치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실천력 있는 사람들을 들어 쓰신다. 믿음에는 행동이 있고, 순종이 따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새벽기도 나오라면 그냥 나오면 된다. 이것이 베드로의 믿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머리를 굴려가며 재기 시작한다. “내가 새벽기도회를 나가면, 감기 들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교통사고 나지 않을까?”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순종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머리가 되시기에, 주님의 말씀에는 아멘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머리가 되려고 한다. 머리가 명령을 내렸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뇌성마비가 된다.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바로 건강한 몸이다.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자.

  결론이다. 약점은 실패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자리다.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리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가 중요하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맛보고, 힘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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