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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시온에 돌아왔다! (슥 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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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가랴서 8장 1절을 보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2절과 3절과 4절의 첫 문장을 보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곧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란 고백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이란 고백이 함께 포함된 고백인데요,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고백이 스가랴서 8장에 총 열다섯 번 이상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눈으로 따라와 보실까요? 6절, 7절, 9절, 11절, 14절, 18절, 19절, 20절, 23절까지!

그렇다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힘주어 강조하시면서 친히 말씀하시는 예언의 내용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회복의 약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무너진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축복의 말씀인데요, 스가랴는 이 말씀을 10가지의 메시지로 정리하여 전해 줍니다.

여기서 각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총론적 관점에서 두 가지를 확인하고 갑니다. 첫째, 이스라엘 전체의 회복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예루살렘 성읍의 회복이요, 예루살렘 성읍의 회복을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 없이 예루살렘 성읍의 회복이 불가능하며, 예루살렘 성읍의 회복 없이 이스라엘 전체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해서 이 땅의 교회가 온전하게 서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3절 말씀을 보면, <내가 시온에 돌아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인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돌아오셔야만 회복의 역사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제 곧 대림절인데요, 다시 오시는 우리 주님을 영접해야만 무너진 모든 것을 회복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에게 회복이란 불가능합니다. 왜? 회복이란 과거의 어떤 상태로 되돌리는 것, 혹은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 그 누구라서 어제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서만 달려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어떤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이란 우리 삶에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중요한데요, 성경에서 말하는 회복이란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닙니다. 무너진 오늘을 추슬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은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워 어떤 과거로 보내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무너진 오늘을 세워 보다 나은 내일을 창조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점에서 오늘 주시는 말씀은 교회 창립 25주년을 맞이하며, 동광 역사상 첫 희년을 대망하는 우리 동광 가족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 각자 금년 한 해의 삶을 정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올 해 나의 삶을 돌아볼 때 무너진 곳은 어디이며, 다시 세워야 할 지점은 어디인지, 잘 점검하고, 잘 회복해서,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는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를 소망합니다.

# 2
그러면, 이제 말씀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 가지 죄송한 말씀은, 스가랴 8장에 있는 축복 상자가 10개나 되는 관계로, 오늘 이 시간에 10개 다 풀어드리지 못하는 점입니다. 오늘은 4개의 상자만 풀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혜량하시고, 다음 주일을 기대하면서,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첫 번째 축복 상자부터 풀어 보겠습니다.

1. 사랑의 공동체를 회복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시 오셔서 주시는 첫 번째 말씀, 이번 감사절을 지내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라는 겁니다. 사랑의 공동체로 감사하라는 거지요. 여기서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 다시 듣겠습니다. / 8:2 / (읽기) / 우선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질투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질투의 대상은? 시온이군요!

무슨 뜻인가? 왜 시온을 질투하시나? 시온이란, 나중에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단어이긴 했지만, 본디 예루살렘 성전이 서 있던 언덕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이유는 시온의 언덕위에 서 있던 성전 때문이었군요. 그랬습니다. 성전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배가 무너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퀴즈 문제 하나 풀고 갑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과 직접 관계가 있는 계명은 십계명 가운데 몇 계명입니까? 제2계명이지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너는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며,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 하셨지요.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마침내 하나님의 선민의 자리에서 바벨로의 포로의 자리까지 전락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 그것은 저들의 성전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저들의 사랑과 믿음이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서 화가 나신 하나님, 더 이상 이스라엘을 돌보시지 않자, 저들에게 극심한 환난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내가 시온 때문에 크게 질투하신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아멘! <에이, 어떻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까?> 반문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도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감사한 일 맞습니다. 왜?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정말입니다. 사랑하기에 질투합니다. 사랑이 식어버리면, 질투할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우상을 섬기든 말든, 나 아닌 사람하고 연애를 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질투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전히 질투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 때문에 질투하시는 하나님,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뜻이지요. 해서 오늘 주시는 첫 번째 메시지, 나 여호와가 아직 질투하면서 여기 시온에 돌아왔으니, 어서 시온을 다시 세우고, 성전을 다시 세우고, 우리의 사랑을 다시 꽃피워 보자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 하나님을 잘 사랑하셨습니까? 나의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내 가족을 사랑하셨습니까? 내 가정, 사랑의 공동체 맞습니까? 내 구역, 내 교회, 내 서울,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 맞습니까?

혹시 이 점에서 소홀한 점이 발견되거든, 자복하고 회개하시고, 금년이 다가기 전에 어서 사랑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고백하며 예배하는 일에 태만하지 마시고, 예배의 회복을 통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도 회복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여 넘치는 사랑으로, 내 생애 최고의 감사절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까지 사랑만 하겠습니다.>

2. 진리의 공동체를 회복하라!

8:3 / (읽기) /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시 오셔서 주시는 두 번째 말씀, 이제 내가 다시 돌아왔으니 진리의 공동체를 회복하라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우리의 가정이 진리의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의 교회가 진리의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 서울이 진리가 통하는 도시가 됩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말입니다.

해서 하나님이 다시 오시어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시니, 3절,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으로 회복됩니다. 여호와의 산이 성산, 곧 거룩한 산으로 회복됩니다. 모든 이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진리의 공동체라 칭송합니다. 모든 사람이 거룩한 성산이라 찬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두 단어가 만나고 있으니, <진리와 거룩>입니다.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이 되니 여호와의 산이 거룩한 산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졌던 두 번째 이유, 저들 가운데 진리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에 진리의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인간의 탐욕만이 이글거리자, 결국 이스라엘 전체가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진리가 통하지 않는 예루살렘 성읍에 거룩함이 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거룩함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진리가 통하지 않으니 힘의 논리, 자본의 논리가 판을 칩니다. 약육강식, 돈 놓고 돈 먹기, 억울하면 출세해라! 이런 억기 주장만 난무합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도성 예루살렘 거리가 가장 세속적인 거리가 되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그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 찾아오시자, 예루살렘 안에 진리가 회복됩니다. 할렐루야! 일단 진리가 회복되자, 거룩함도 회복됩니다. 할렐루야!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만민들이 진리의 성읍이라 찬송합니다. 여호와의 산을 오르는 백성들이 거룩한 산이라 찬양합니다. 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거룩한 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진리가 통하는 가정되기를 원합니다. 진리가 통하는 우리 교회되기를 원합니다. 진리가 통하는 우리 수도 서울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 남산이 거룩한 성산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진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주님을 모시고, 오직 진리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 일에 우리 동광 교회가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진리 따라 살아왔는지,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왔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 주님의 진리의 빛에 비추어 무너진 곳이 있으면, 이 시간 회복되는 역사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해서 진리와 함께 거룩함을 회복하여, 오직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는 내 생애 최고의 감사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동남과 동녀가 가득한 공동체를 회복하라!

8:4-5 / (읽기) / 얼른 듣기에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시온에 다시 돌아오시니,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예루살렘 길거리에, 그것도 지팡이 하나씩 짚어 나와 앉을 것이다? 하나님이 다시 오시니, 동남과 동녀가 성읍 거리에 가득하여 장난할 것이다? 회복의 축복 치고는 좀 거시기 한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당시 예루살렘 성으로 심방을 가봅니다. 가을 날 오후, 점심 진지를 잘 잡수신 어르신들이 예루살렘 거리의 양지 바른 곳에 나와 앉아 덕담을 나누고 계시군요. 그 앞에선 동남과 동녀, 곧 남녀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고요. 재기 차는 아이들, 고무줄놀이 하는 아이들, 자치기 하는 아이들, 땅 따먹기 하는 아이들, 구슬치기 하는 아이들, 그러다 한 아이가 크게 외치자, 모두가 모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합니다. 말없이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시는 우리 어르신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갑니다.

꼭 외지의 군인들이 쳐 들어오기 전의 <동막골> 같은 모습인데요, 이 그림을 보시면서 여러분의 마음엔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이 장면을 한 폭의 그림에 담는다면, 어떤 제목을 붙이고 싶으십니까? 저는 <샬롬>이란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은 본디 평화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거리에 늙은이들이 나와 앉질 않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들의 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세대가 바로 노인과 아이들입니다. 예루살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떠나시고, 바벨론이 쳐들어오자, 예루살렘 거리에서 더 이상 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의 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신음 소리, 통곡하는 소리, 저주하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 싸우는 소리,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소리만이 가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시 오시자, 그랬던 예루살렘에 우선 노인들의 웃음과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늙으신 지아비와 지어미가 다시 나와 환하게 웃으십니다. 거리거리마다, 우리 아이들이 몰려나와 신나게 놀기 시작합니다. 이제야 예루살렘 같습니다. 이제야 평화의 성 같습니다. 해서 주신 말씀, 동남과 동녀가 가득한 공동체를 회복하라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연세 높으신 어르신을 모신 가정은 이미 복 받았고, 앞으로 더 큰 복 받을 가정입니다.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를 공경하는 공동체 역시 복 받은 공동체요 복 받을 공동체입니다.

노인들이 탄식하는 공동체, 절대로 복 받지 못합니다. 노인들을 박대하는 가족, 절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없는 공동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듣기보다 나 부모의 소리만 강요하는 가족,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동광 교회는 참 행복한 공동체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르신들도 많고, 우리 가운데 아이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싶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나와 천국 잔치를 만끽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금년 나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어떤 어르신께 어떤 기쁨을 드렸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떤 아이에게 어떤 사랑을 전하셨습니까? 특별히 외로운 어르신, 소외당한 아이들을 품고 주의 사랑을 전하신 기억이 있으십니까?

혹 별로 기억나는 일이 없으시거든, 이 해가 가기 전에 어서 가서 어르신들과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의 어르신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교회 각급 교회학교에 들러 구체적으로 사랑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서울을 살리는 첩경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습니다. 위로 부모 세대를 잘 모시고, 아래로 자녀 세대를 잘 사랑하여, 약속된 복을 받아 누리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생애 최고의 감사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기적의 공동체를 회복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오셔서 주시는 네 번째 말씀, 기적의 공동체를 회복하라는 겁니다. / 8:6 / (읽기) / 거기 <기이하다>는 표현이 있는데요, 히브리어로 불가능한 일, 혹은 경이로운 일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다!>는 말씀, 곧 남아있는 백성들이 보기에 이 일은 불가능한 일이요, 경이로운 일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기적을 허락할 터이니, 너희는 오직 믿음으로 기적의 공동체를 회복하라는 거지요.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눈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눈엔 경이로운 일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린 기적이란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여기서 끝인 줄 알았습니다. 바벨론에서 죽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온 세계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랬으니 상대가 누구이든 이스라엘을 만나기만 저들을 조롱하고 멸시했었습니다.

그런데 6절 <이 일이 그 날에> 일어난다는 겁니다. 너희 눈에는 불가능한 일을 내가 이루어주신다는 겁니다. 인간의 눈엔 기이하게 보이겠으니, 나 만군의 여호와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해서 주신 말씀, 이제 내가 여기 왔으니, 어서 기적의 공동체를 회복하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공동체는, 세상 사람들 보기에 기적의 공동체 맞습니다. 왜? 저들이 보기엔 이제 여기서 망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모신 공동체,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더 큰 역사를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보기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한데, 하나님의 사람들,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는 기적입니다. 저들에겐 기적이란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다른 말이 없습니다. 해서 주신 말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기적의 공동체를 회복하라 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귀한 축복과 권한을 주셨는데, 어인 일인지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때입니다. 어떤 분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약합니다. 어떤 분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 보다 더 계산적입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빨리 포기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기적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왜? 입으로는 <주여! 주여!>를 외치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서, 그 가정에서, 그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지난 한 해, 나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질문입니다. 금년 한 해 살아오면서, 세상 사람들이 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이번 감사절, 어떤 기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예정이십니까? 혹시 아직까지도 변변하게 내 놓을 만한 기적 한 자락도 없는 건 아닙니까?

혹시 별로 기억나는 기적의 사건이 없으시거든, 이 한 주간, 하나님을 다시 만나시기 바랍니다. 다른 세속의 일들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해서 여전히 나 때문에 질투하시고, 나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기적의 주인공 되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시 오시면, 절망했던 영혼이 다시 소성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무너졌던 가정이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무너졌던 기업도 다시 일어나 성공의 기적을 일으키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린 모두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며 기이하다 할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 풍성한 기적으로 내 생애 최고의 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3
유명한 이야기 한 토막으로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 개 한 마리가 사방이 거울로 만들어진 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갈 땐 나 혼자였는데, 들어가 보니 자기 주변에 많은 개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이 개가 한껏 사나운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습니다. 이 개가 크게 짖어대자 저쪽 개들 또한 하나 같이 큰 소리로 짖어댑니다.

그러다 한 순간, 나는 혼자요, 저들은 수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해서 다음 순간 이 개가 꼬리를 내리고는 방안을 빙글 빙글 돌며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개들이 하나 같이 쫓아오는 것입니다. 해서 잡히지 않으려고 뛰고 또 뛰다가 그만 거기서 죽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 개가 거울 속의 개를 행해 꼬리를 흔들었더라면, 거울 속의 개들도 모두 그에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 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주일이 한 주일 남았습니다. 오늘부터 다음 주일까지, 누구를 향해서도 으르렁거리지 마시고, 짖지 마시고, 그냥 웃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진리의 말씀으로만 말씀하시고, 해서 기적을 빚어보시기 바랍니다. 하여 이 한 주간, 무너졌던 것들, 다 일으켜 세워, 아름다운 감사로 영광 돌리며, 더욱 충만한 2006년, 우리 교회 창립 25주년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소망을 가슴에 담고, 잠시 명상 기도하며, 주신 말씀 마음에 새깁니다.

사랑의 공동체!
진리의 공동체!
어르신들로부터 동남동녀들이 모두 행복한 공동체!
기적의 공동체 되기를 원합니다!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멘!
(장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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