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 큰 일 내셨군요~! (시 126)

  • 잡초 잡초
  • 381
  • 0

첨부 1


할렐루야!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시 한편을 읽어 드림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교회 홈페이지에도 가을 사진과 함께 올렸던 시인데... 가을이라는 계절을 보내면서 시 한수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 분위기가 좀 나나요? *^^*

■ 시편 126편의 소개
오늘 우리는 시편 126편을 읽었습니다.
이 시편의 가사로 지은 찬송도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있습니다. 찬송가 260장입니다.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시편 126편은 우리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도 좋을 만한 아름다운 싯구입니다. 특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라는 구절은 정말 멋진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시를 ‘공동체 탄원시(Community Laments)’로 분류합니다. 아직 포로에서 돌아오지 아니한 사랑하는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간구하는 내용이 탄원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이 4절에서 끝났다면 아마도 그렇게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연한 결단의 싯구를 담고 있기에 이 시편을 탄원시로만 보기엔 적절치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시의 배경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1절에 나오는 ‘포로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포로들이 돌아오는 기쁨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꿈꾸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대로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꿈같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포로귀환의 기쁨을 회상하다가 왜 갑자기 생뚱맞게 씨 뿌리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 언뜻 보면 이 둘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고국으로 돌아 온 바벨론 포로들
오늘의 시편은 경탄과 감격으로 시작이 됩니다.
포로 생활 70년...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36년간 지배를 받다가 맞은 해방도 이 민족의 경사요 감격이었는데 그것의 2배의 시간을, 그것도 먼 이국 땅에서 세월을 보낸 이스라엘 민족이 돌아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쁘고도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귀환한 이 백성들은 B.C. 440년경에 귀환하였는데 대략 2만명 정도의 인구가 귀환했던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수입니다.
이 엄청난 포로들을 되돌려 보내 준 페르시아의 왕은 고레스 였습니다.

(스 1:1) 『<고레스가 유다 포로 귀환을 허락하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왕위에 오른 첫 해이다. 주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다.』

고대 시대 상황 속에서 이런 노동력을 고국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희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유능하고 똑똑한 젊은 귀족들, 왕족의 자녀들이 많이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고향 땅에서 무너진 성벽을 지키며, 무너진 성전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남겨진 자들에게는 이 포로들의 귀환은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70년 동안 헤어져 있던 이산가족들이 찬양을 부르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웃음바다, 울음바다가 되기도 하고, 서로 얼싸안고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을 것입니다. 꿈만 같았던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성경의 표현대로 ‘꿈꾸는 것 같았다.’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제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탄식으로 얼룩졌던 얼굴엔 기쁨이 터져 나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던지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이 편이 되어 주셔서 그런 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칭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이 일이 바로 큰 일, 대사(大事)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시인은 고백합니다.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정치적인 꼼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이야 말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 능력의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라는 것을 시인은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레스 왕이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동 시키셨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감동시키셨다는 히브리 표현 <우르>는 ‘휘젓다, 뒤 흔들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의 역사와 시간을 휘젓고, 흔드셔서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을 행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시인은 바라봅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목도(目睹)하면서 감격하며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감격만 할 것인가?
자, 여기까지만 와도 참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해 보면서 감격해 하고, 박수 치고,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어~’라고 고백하는 것... 이런 신앙만 해도 참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말 그대로,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거? 고레스 때문에 된 건데 뭘 그리 호들갑이야?
시대가 그렇고 그러니깐 저절로 된 거지...
우리가 운이 좋았어...
어쩌다 보니 시간이 아다리가 딱 맞았네그려~~

뭐 이 정도로 상황을 분석·정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키에르케고르는 두 종류의 신앙인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는 <경탄하는 신앙인>입니다. 지금까지 봤던 오늘 이 시편의 앞부분처럼 하나님의 일을 보면서 기뻐하며 감격하는 신앙인입니다.
다른 하나는 <따르는 신앙인>입니다. 바로 우리가 살펴 볼 시편 126편의 뒷부분까지 나아가는 성도가 바로 이 신앙인입니다.

이 시편을 지어 노래했던 시인은 그저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해 감탄만 하면서 주저 앉지 않았던 행동하는 시인,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삶의 가치로 응답한 자입니다.

이제 다시 나라도 재건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으니 집도 새로 지어야 하고, 양식도 더 많이 장만해야 합니다. 무너진 성벽도, 허물어진 성전도 다시 지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어쩌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이뤄질 것 같지 않았던 포로귀환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이제 다른 일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라고 말이죠.

■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사람의 일
그러나 오늘 이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과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았던 지혜자였습니다.
지금 당장 포로들이 돌아왔지만 아직도 바벨론에는 돌아오지 못한 포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노래로 호소합니다.

[4] 야훼여, 저 네겝 강바닥에 물길 돌아오듯이 우리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 오소서.

포로들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일이기에 이 일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기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허물어진 성벽을 재건하며,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은 이제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과 고향 땅을 지켰던 이들이 힘을 합쳐 이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힘을 주어 부르짖는 것입니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 들이리라. [6]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가는 자, 곡식단을 안고서 노랫소리 흥겹게 들어오리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이렇게 큰 일을 행하셨으니 이제 우리의 몫은 우리가 감당하겠나이다.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시편의 노랫말처럼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은혜의 날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 성벽을 다시 쌓고,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는 역사를 힘을 모아 감당했던 것입니다.

요세푸스라는 고대의 역사가는 느헤미야 시대의 성벽재건공사는 최소한 2년 4개월이 소요되는 공사규모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52일만에 이 공사를 완공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이 시편의 고백처럼 그들은 울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이 공사를 감당했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음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예정입니다. 이 한해를 돌아볼 때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또 우리 교회를 향해 주셨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할 때에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서는 될 수 없었던 숱한 일들을 회고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가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다짐해야 할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뒷짐지고 앉아서 구경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셨기에 박수만 치고 있으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 5: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역사를 일으키시니 저절로 밭에 열매가 뚝 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하시니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사업이 저절로 번창해지고 수익이 증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의 왕 하나님께서 노력하지 않아도 공부가 잘 되고, 성적이 쑥쑥 올라가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일을 행하시니 나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부응하여 더욱 더 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 씨를 뿌리는 일을 할겁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하나님은 위대하시니 그저 우리에게 은혜 부어 주씨옵소서.’라고 기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제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겠습니다. 기도하오니 웃으면서 추수할 수 있는 기쁨을 주옵소서.’라고 노래하면서 성전에 나아간 것입니다.

거두는 일은 웃으면서 하는 일이라 웬만한 사람이면 해낼 수 있습니다. 추수철엔 밤 따기 행사, 더덕 캐기 행사 등등이 열립니다. 도시인들도 재미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돈을 내고서도 와서 합니다.
하지만 씨심기 행사, 김매기 행사 등은 아직은 본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 일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애정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요, 희생없이는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주인이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뿌린대로 거두리라!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 우리가 해낼 수 있는 몫까지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는 것이 믿음 좋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을 행하셨으니 이제 우리도 우리가 해야 할 몫을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무작정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 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 눈물로, 울면서 씨를 뿌리는 것 정도는 이제 우리가 감당하겠나이다! 라는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올해도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또 앞으로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실천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만큼 하셨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성경은 ‘뿌리는 자’, ‘뿌리러 나가는 자’에 대해 말합니다. 지금 행동하는 신앙인을 찾는다는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시지 않으시렵니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시지 않으시렵니까?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눈물을 쏟는 심정으로, 울음을 억누르며 고통의 현재를 극복하고자하는 심정으로 씨를 뿌리는 오천교회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우리 오천교회는 뿌리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우리 세대에 더 많이 뿌리게 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가 거둬 먹는 것들은 모두 다 윗세대 분들이 뿌린 것입니다. 지금 그것 따먹는 재미로 뿌리는 것을 안하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웃음으로 단을 거두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씨를 뿌리시는 오천가족 여러분,
바로 여러분들에게 기쁨으로, 웃음으로 단을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정연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