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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책임교육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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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사복음서 안에 무화과 비유를 여러 번 말씀하시고 또 설교하실 때도 무화과 비유를 인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18절이나 마가복음 11장12절에도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기사가 나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무화과나무는 주인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심었습니다. 이것은 관상용 나무가 아니라 열매를 구하는 나무입니다. 주인이 이 무화과나무를 심는 목적은 오직 열매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도 열매가 없고 이년이 지나도 열매가 없고 삼년째가 되었는데도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화가 나서 아주 단호한 말씀을 합니다. "어찌 땅만 허비하느냐 찍어 버리라" 주인은 이제는 이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찌 땅만 허비하느냐. 내가 3년간 기다려 준 것은 열매를 얻고자 함인데 이제는 열매가 없으니까 찍어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주인의 무서운 심판입니다.

  주인의 질책

  그런데 3년을 기다렸다는 이 말씀부터 생각합시다. 주인은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3년이나 기다려 주었습니다. 이것은 주인의 인내이며 사랑입니다. 그런데 3년 기다린 주인의 말씀 속에는 지금까지는 내 땅이 허비되는 그 손해를 감수했지만 이제 열매가 없으면 내 땅을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찍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는 참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길 때는 하나님이 참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킬 때 여호와 하나님이 분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를 섬길 때는 하나님이 참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손상시키는 짓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채찍을 들고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가정에 남편의 주벽이 아주 심합니다. 술을 먹고 지내는 것은 부인이 참아주는데 주벽이 점점 심해서 엄청난 빚을 지게 되는 단계에 이르고 고급술을 좋아하다 보니까 술값이 만만치가 않은 것입니다. 결국은 집을 담보하게 되고 이제는 가정의 존패 위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벽이 그냥 술버릇으로 끝나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남편은 패인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남자가 술 먹고 노름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그런 일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행위가 혼자서 저지르고 있을 때는 여자가 참아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직접적으로 여자에게 구박과 멸시를 하고 너는 내 여자가 아니라는 단계까지 이를 때에는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집주인이 그런 심정인 것입니다. 주인이 열매를 안 맺고 있는 3년 동안은 참아줍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있으면 내 농사가 안된다, 내 과원의 땅이 허비된다, 이제는 더 이상 너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참아준 주인의 의도를 우리의 생애 속에서도 적용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3년이란 시간을 늘 적용합니다. 하나님은 참아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고 하나님의 포도원이 손상되는 그 지경에서는 주인이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릴 때 이 원리를 가지고 다스립니다. 기회도 주지 않고 당장 찍어버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시지만 그 기회 안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이 찍어버리는 무서운 심판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원지기의 애원

  그런데 이 과원지기가 주인 앞에 깊은 애원을 합니다. "주인이여, 한 해만 더 참으소서" 하고는 "내가 땅을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이렇게 간청을 합니다. 이 과원지기의 간청은 동정심이 아닙니다. 그저 간청하는게 아닙니다. 이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하는 말속에 설교의 핵심이 있습니다. 지금 이 과원지기는 열매를 못 맺는 무화과를 생리적으로 보지 않고 병리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무화과가 처음부터 열매를 못 맺는 나무로 보지 않고 무언가 지금 잘못되어 가지고 병들어서 이 무화과는 내가 좀 더 가꾸고 노력을 하면 열매가 맺을 수 있는 나무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금년에만 그대로 두십시오"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유실수 나무는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안 맺어지는 무실수 나무를 심어놓고 열매를 기대하면 안됩니다. 단풍나무를 심어놓고 박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됩니다. 생리적으로 열매가 없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화과는 생리적으로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열매를 안 맺는다고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해를 참아달라고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 편에서 참아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여, 이 나무를 한해만 그대로 두십시오"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한 해만 참아주십시오. 내가 땅을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내게 이 나무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과원지기의 중심되는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생리적으로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는 구제불능이야, 너는 열 번 죽다가 살아나도 할 수 없어' 그렇게 사람을 생리적으로 단정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금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면 무엇인가 병리적인 현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장애물이 있고 병이 나 있는 것이지 '창세 전부터 너는 믿음으로 살 수 없는 인간이다, 너는 충성 못할 인간이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의 약점을 볼 때마다 병리적 현상으로 보는 눈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겨주고 기도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자리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과원지기의 심정으로 무화과에게 다가가듯이 우리가 뭇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건전한 충성심

  누가복음 13장34절에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이 그 십자가 밑에서 조롱하며 자기 옷을 제비뽑아 가지고 있는 그 무리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주님은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사회나 개인에게는 병적인 현상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도 북한방송에서는 '어버이의 교지를 받들어, 김정일 위원장님의 교지를 받들어' 라는 등 지금도 그렇게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병든 이데올로기입니다. 오래 전에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선수가 사격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격선수가 무슨 말을 했느냐 '김일성 수령께서 교시하시기를 원수의 심장을 쏘는 마음으로 쏘라고 하셨는데 그대로 하여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렇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여러분, 무지도 병이고 강압도 병입니다. 어쨌든 우리 사회는 지금 병적인 현상이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부실하고 만족하지 못한 것은 생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병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고 새롭게 발전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모습 이대로 약해지고 이 모습 이대로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과원지기와 같은 심정으로 다가갈 때 그곳에 무슨 일인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원지기는 사실 잘못이 없습니다. 3년 동안 노력했고 할만큼 했습니다. 그런데도 열매를 안 맺는 이 나무가 원망스럽지만 과원지기가 다시 주인 앞에 하는 말을 분석해 보면 한 해만 더 참아 달라, 땅을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하는 말은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열매없는 이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사실상 이 과원지기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게 과원지기의 자세입니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십시오. 내가 더 수고하고 희생할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 기회를 다시 한번 내게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나무를 버릴 수 없다고 하는 과원지기의 책임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책임의식

  이 과원지기의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범이 되는 자세라고 봅니다. 철없는 아이들, 천진난만한 아이들, 지금 쳐다보면 희망이 별로 없는 아이들을 붙잡고 우리가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과원지기의 심정으로 다가가야 됩니다. '주님, 내가 그래도 이 생명을 붙잡고 내가 일할 여지가 있습니다. 내가 더 기도해 보고 희생해 보고 헌신해서 이 아이들에게 내가 열매를 맺도록 기회를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이 과원지기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정확한 책임론,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과원지기의 일하는 자세를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애매한게 없습니다. 단호합니다.
  서해교전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종합해 보면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정리가 안 됩니다. 일본에서 하는 말이 다르고 미국서 하는 말이 다르고 정부가 하는 말이 다르고 어민들이 책임이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했다가 무엇인가 정확하게 정리가 잘 안됩니다. 분명한 교과서적인 답이 안됩니다. 시사유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맹구와 영구가 서당에 가서 사자성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야, 맹구, 천고마비가 뭔 줄 알아?"
  "그거야 하늘에 고약한 짓을 하면 전신이 마비된다는 뜻 아니냐?"
  "야, 임마, 나는 이런 것을 배웠어. 유비무환이 뭔지 알아?"
  "유비, 비가 오는 날에는 무환, 환자가 없다"
  "원앙부부가 뭔지 알아?"
  "원한과 앙심이 많은 부부가 원앙부부야"
  "남녀평등이 뭔지 알아?"
  "남자와 여자는 등이 평평하다는 뜻이야."
  "야, 임마, 동문서답하지마"
  "너 동문서답이 무슨 뜻인지 아니?"
  "그럼 그것도 모르니? 동쪽문이 막히면 서쪽이 답답하다는 뜻이야"

  왜 이런 유모어가 생겨날까요? 요즘 우리 사회에 무슨 말을 믿어야 될 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서해 교전을 두고 맹구와 영구가 사자성어 공부하는 것과 방불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를 섬기는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 분명해야 됩니다. 이 과원지기와 같은 분명한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됩니다. '주인이여, 한 해만 더 참아 주십시오. 내가 땅을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와 같은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일이 잘 안됩니까? '하나님 아버지, 내가 아직도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해 보겠습니다'라고 나서는 이 과원지기의 심정이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일꾼이 아닐까요? 이런 일꾼이 몇 사람이라도 있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애매한 사람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이 무화과만 탓하고 나는 할 일 다했다고 무책임한 이론을 들고 나오는 이런 병든 과원지기가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언제나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많은 프로그램, 막대한 경비, 많은 사람들의 수고 등 여름행사를 해마다 되풀이 하지만 우리 앞에 감출 수 없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 허전함을 매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먼저 하나님 앞에 능력을 입고 일하자는 것입니다.

  교사 여러분들은 오늘 과원지기의 심정으로 사명감을 갖고 무장하고 섬기기 바랍니다. '주여, 금년만 참아주십시오. 내가 땅을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라는 분명한 청지기론, 분명한 청지기의 자세에는 애매한게 없습니다. 남 탓하고 무화과나무 탓하고 땅 탓하고 주인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여, 내가 땅을 파고 거름을 주어 보겠습니다.' 이 과원지기의 자세가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오늘 한국교회에 이 과원지기가 요구됩니다. 우리의 교회에 어떤 사람이 요구됩니까? 이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붙잡고 주인 앞에 애걸하는 이 과원지기와 같은 일꾼이 하나님 앞에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에 우리가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능력을 입고 일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드리는 여름행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름행사는 프로그램이고 수단이지 행사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수련회를 멋지게 했다'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련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 가는 열매가 영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 교회행사의 목적입니다. 그 아름다운 열매는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기도하는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보이는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성전공사를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름다운 포도원이 건설되어갈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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